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 * *
하루가 다르게 따스해지는 볕에 꽃이 만개한 강기슭의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수면 위에서 흔들거렸다.
배를 타고 여행하기 좋은 날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날씨였고.
우리는 강을 타고 쭉 북상하다 한 부두에서 내렸다. 선원이 짐을 내려 주자 부두에 모여 있던 마차를 하나 잡아 이동했다.
그 사이 내 손에는 작은 서신이 들려 있었다. 개방 지부의 전서구를 통해 받은 소식이었다.
“아버지랑 남궁완 아저씨가 잘 화해하셨대.”
“다행이네.”
“그러게. 그리고 네가 떠난 걸 알고 남궁완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나서 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린다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셨대.”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버지 말버릇이니까.”
“······.”
나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잠시 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안 좋아.”
남궁류청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배에서는 괜찮더니 왜 이래?”
“그러게. 나도 이제 다 나은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살짝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깥의 공기가 그나마 메슥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
그때 어깨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기우뚱 몸이 기울더니 다음 순간 마차에 누워 있었다. 머리로 딱딱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누워 있어. 그럼 좀 괜찮아질거야.”
나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남궁류청이 내게 폐관 수련에 들어가라고 말한 그날, 나는 그에게 사죄를 하고 모든 걸 더듬더듬 털어놨다. 내 고민과 갈등을.
한 번도 이렇게 말해 본 적이 없어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을 때,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속내를 꺼내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남궁 세가의 후계자에 대해 고민하는 내게 남궁류청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잘라 냈다.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남궁류청이 내 두 눈을 가리듯 손을 올렸다.
“······그만 봐.”
어둠 속에서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폐관 수련에 들어가면······ 이 온기 또한 한동안 느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소가주가 되어 계실 테고, 아버지의 유일한 딸인 내가 후계자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남궁류청처럼.
남궁류청이 남궁완 아저씨와 연락을 피하는 것 또한 후계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내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시간을 류청이 과연 기다릴 수 있을 까?’
이틀 정도를 더 달려 드디어 마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 생긴 깔끔한 객잔에 방을 잡고 나왔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갈림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으나 그 한 번을 빼고는 익숙하게 향했다.
1시진 반쯤 걸어 정오가 되자 촌락에 가까운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스무 채는 될까? 나무로 얼기설기 세워 만든 담벼락 안쪽에 허름한 집이 보였다.
집 마당에는 낡은 옷을 입은 아이가 흙투성이로 바닥에서 놀고 있엇고,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가 내가 다섯 살 때까지 살던 곳이야.”
남궁류청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의아한 눈빛에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야.”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 지나쳐 더 안쪽으로 향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는지 만들어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자 작은 무덤이 나타났다.
“음?”
나는 살짝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솔직히 나는 무덤을 찾기도 어려울 거라 여겼다. 거의 1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누군가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듯 아주 깔끔했다.
남궁류청은 물었다.
“누군데?”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날 키워 줬던 분.”
“······.”
“어머니의 시비였대.”
야율에게 들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 자신의 시비가 죽은 척 꾸며 나와 함께 떠나게 했다고.
하지만 마교에서 사람을 그렇게 쉽게 도망가게 할 리 없었다.
시비는 혈고는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독에 중독되어 있었고, 나를 키우다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얼굴도 이름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여긴 정말 처음 와 봐.”
“처음이라고?”
“응. 단 한 번도 온 적 없었어.”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있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했다.
“저기.”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사람이 뒤에서 접근하는 걸 전혀 몰랐다.
“두 분은 여기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이를 품에 안은 아낙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좀 전에 지나쳤던 허름한 집에서 머물던 여인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당황해 침묵하고 있는 나 대신 남궁류청이 양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한 후 답했다.
“······아시던 분이 쉬고 계신 곳이라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래요?”
아낙이 너무나 쉽게 경계를 풀며 웃었다.
“저희가 여기 묘지기를 하고 있어서요.”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묘지기요?”
“예.”
“누가 부탁한 건가요? 사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높으신 분 하인 같은 사람이 와서 맡기신 거라 저도 잘······. 처음 한 번 빼고는 매년 돈만 보내 주고 계시거든요. 이름이 뭐랬지? 우두?”
“······언두요?”
“아, 맞아요.”
아버지였다. 그동안 아버지가 관리하게 한것이었다.
아낙이 아이를 추어 올리곤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최근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예?”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서요. 지난 몇 년간 돈만 보내고 한 번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도 웬 여인들이 왔다 갔거든요. 그분들도 다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들이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 * *
나는 다시 객잔이 있던 현으로 돌아왔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백리 대협과 너희 어머니. 닮으셨네.”
“그러게.”
무덤을 찾아왔다는 이들은 어머니의 부하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 같은 사람과 얽히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조금은 그 의문이 풀린 느낌이었다.
나는 객잔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새로 생긴 객잔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시장 거리가 나왔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김을 뿜는 찐빵 가게부터 죽 늘어선 좌판들 앞에서 상인들이 호객하기 바빴다. 그리고 한쪽 골목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힐끔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는 어린 거지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린 거지들은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다 갑자기 우르르 흩어졌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거리를 살폈고, 남궁류청이 이미 이 상황을 초래한 원흉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춤에 넓적한 도를 맨, 누가 봐도 나는 흑도 방파 나부랭이요, 라고 말하는 듯한 진기를 가진 이가 나타나 있었다.
사내는 좌판에서 멋대로 음식을 가져가 먹으며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물었고, 상인들은 그에게 굽실거리기 바빴다.
꽤 악명 높은 녀석인지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흠칫 놀라며 피하듯 멀리 떨어지거나 돌아갈 정도였다.
그 와중에 누군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갑자기 좌판을 확 걷어찼다.
“어?”
이미 아니꼬운 낯의 남궁류청이 즉각 내게 물었다.
“왜 그래?”
“와, 쟤 아직도 저러고 사네.”
“······아는 사람이야?”
떨떠름한 어조에 저런 수준 낮은 인간과 아는 사이냐는 의문이 드러나 있었다.
“안다고 해야 하나? 하하, 예전에 저 자식한테 맞은 적 있거든.”
남궁류청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기다려.”
남궁류청은 사내를 향해 직진했다.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예전에 내가 여기서 구걸하며 살 때 거지들의 대장 격이었던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구걸해 온 걸 빼어다가 위의 놈한테 상납하는 역활을 하던 놈이었달까. 흑도방파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남궁류청이 그 사내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건들거리던 사내가 남궁류청에게 칼을 뽑아 들었고, 다음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사내가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류청에게 작신작신 밟히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구경하듯 모여들고, 곧이어 소란을 듣고 온 듯 사내와 같은 방파로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당연히 실눈 사내와 똑같은 꼴이 되었다.
실눈 사내가 악당들의 대사를 중얼거렸다.
“너, 너, 너 이 자식, 감히 흑웅방을 건드리다니······.”
남궁류청은 능숙하게 악당 처단자 역할을 했다.
“흑웅방주에게 가서 전해.”
그 뒤에는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 나도 집중해야 들을 수 있었다.
“남궁류청이라고.”
실눈 사내와 그 동료들이 허옇게 질린 채 떠나는 모습으로, 한 차례 극과 같은 상황이 끝났다.
불어오는 바람이 매우 산뜻했다. 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하늘을 보았다. 사람들이 남궁류청의 무공과 외견에 감탄하는 말들이 들렸다.
홀로 작게 웃던 내게 남궁류청이 다가왔다. 그를 바라본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남궁류청은 찐빵을 들고 있었다.
내 아연한 시선을 느낀 남궁류청이 말했다.
“먹고 싶어서 바라보던 거 아니었어?”
“······.”
“······아니야?”
나는 문득 너무나 우스웠다. 저절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거 알아? 나 여기, 이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났어.”
아주 어릴 적 날 돌보던 사람이 죽었다. 난 그대로 길거리를 떠도는 부랑아가 됐다. 그러다 번드르르한 차림새의 친아버지가 날 찾아냈다.
그때 나는 며칠 동안 굶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막 찐빵을 훔쳤고,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찐빵은 이미 내 손을 떠나 바닥에서 짓밟히고 뭉개져 있었다.
그때 남궁류청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이 내 뺨을 훔치고, 나는 그제야 왜 세상이 흐린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남궁류청을 향해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쥐었다. 그러고는 한발 더 다가가 그대로 고개를 들고 발을 세워 입을 맞췄다.
한참 뒤에야 나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남궁류청은 그대로 석상이 된 듯 싶었다.
“사랑해.”
“······.”
석상은 말을 할 줄 몰랐다.
나는 석상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돌아가자.”
“······.”
“하지만 역시 폐관 수련은 재미 없을 것 같아.”
남궁류청의 눈동자가 그제야 조금 반응을 보였다. 아직 입은 열 수가 없는지 눈빛에 그럼 어쩔 생각이냐는 의문이 드러났다.
“하나 물어볼게. 진심으로 답해줘. 류청, 남궁세가에 정말로 미련이 없어?”
“없어.”
“그렇구나. 그거 알아?”
“말해.”
“나도 백리 세가에 미련이 없어. 정말로 최선을 다했거든.”
“······”
그래,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가문보다는 아버지 옆에 남고 싶었다. 지금은 아버지보다 더 옆에 있고 싶은 사람이 내 눈앞에 있었고.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입가에 살짝 입을 맞췄다. 남궁류청은 흠칫 다시 돌이 되었다.
‘이거 재밌는데.’
나는 그의 반듯한 뺨을 간지럽히듯 만지며 물었다.
“그리고 너는 남궁 세가에 미련이 없을지 몰라도 내가, 내가 아쉬워. 네가 남궁 세가를 포기하는 게.”
뱃전에서 남궁류청에세 말하고 나서 혼란스럽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남궁완 아저씨와 소부인께 죄송해. 두 분이 내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널 홀라당 데려가면 얼마나 슬프시겠어?”
“······그건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류청, 내가 널 사랑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잖아?”
“······.”
“너는 내가 백리 세가를 이었으면 하는 거지? 왜? 너 백리 세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침묵하던 남궁류청이 말했다.
“······네게 마땅한 자격이 있으니까. 네가 아니면 누가 물려받아?”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그 말이야! 마땅한 자격을 지닌 네가 아니면 남궁세가를 누가 물려받아?”
남궁류청이 내가 뺨을 문지르던 손목을 꽉 쥐어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네가그랬잖아. 서로 함께 의논하자고. 정말로 맞는 말이야.”
나는 반대 손으로 남궁류청을 끌어안고 속살거렸다.
“그러니까 이건 어때?”
* * *
“서신? 누구에게서 온 건데?”
“도련님과 백리 소저께서 백리 대협과 소가주님 두 분이 함께 보시라고 보내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남궁완이 심 부관의 손에서 서신을 채어 갔다. 번개 같은 손놀림이었다.
“이것들이 내가 오자마자 도망치더니 이런 서신이나 보내고 있다 이거지?”
서신을 펼치고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남궁완의 눈동자가 갑자기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리고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잔뜩 커졌다.
심 부관이 속으로 셋을 세는 순간 노호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 이, 이게 무슨 소리야! 혼인이라니! 이것들이 완전 미친 거야?”
남궁완은 믿기지 않아 다시 서신을 읽었다.
[······하여서 저희 혼인했어요.본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천지신명께 하나가 되었음을 알리게 되어 이렇게 서신으로 말씀 드립니다.]
남궁완은 뒷목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이 서신 의강도 봤다고 했지? 의강은! 의강은 뭐라던가!”
“백리 대협은 서신을 읽으시고······ 몸져 누우셨어요. 전혀 모르셨던 듯합니다. 그저 폐관 수련 전에 바람 쐬러 간다고 했다고······.”
남궁완은 서둘러 서신을 마저 읽어 봤다. 서신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후계 문제도 의논은 했는데 아직 결론이 안 났어요. 류청은 저 때문에 백리 세가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류청과 남궁세가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요.]정신없이 읽어 나가던 남궁완이 잠시 이상한 점을 깨닫고 다시 읽었다.
“이것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류청은 백리 세가 편이고 연이가 남궁 세가 편이란 거야?”
“연 아씨가 남궁 세가의 편이랍니까? 역시 연 아씨, 생각이 깊으십니다.”
“아씨는 무슨 아씨야!”
“혼인했으면 아씨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요?”
“네가 저승사자랑 혼인하고 싶지?”
“······.”
잠시 이성을 잃고 괜히 심 부관을 동네 북처럼 두들기던 남궁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신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서로가 가문에 남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득하기로 했어요.그러니까 아버지는 류청을 응원하세요. 아저씨는 저를 응원하시면 돼요.
아저씨, 그런데 제가 이길 것 같지 않아요? 솔직히 이쪽은 제 전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두 분 모두 저희가 돌아갈 때까지 건강하세요.]
눈을 질끈 감은 남궁완이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한참 뒤 눈을 뜨고 말했다.
“부인에게 전해야겠다. 처소를 하나 마련해야 겠다고.”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