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8)
외전12화
2. 꽃이 피어나는 봄.
집을 떠난 지 5개월. 남궁류청의 패배 선언을 끝으로 여행은 끝이 났다.
나와 류청은 남궁세가로 향했다. 남궁 세가에는 남궁완 아저씨와 남궁 세가를 방문한 아버지가 계셨고, 우리는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야만 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정혼을 허락 받았다. 남궁류청이 패배를 선언했기에 내가 남궁세가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 조건은 아이를 낳거든 무조건 백리가의 성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이름을 언급하지 안하는 고모의 쌍둥이 아이들과 같은 방식이었다.
둘째를 낳는다면 남궁의 성을 받고, 셋째가 태어난다면 다시 백리가에 입적하기로 했다.
두 번째 조건은 3년에 한 해 정도는 내가 백리 세가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아이들까지도. 남궁류청은······ 알 바가 아니었다.
마지막 조건은 제대로 예법에 맞추어 혼사를 치르는 것이었다.
약조를 마친 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백리 세가로 향했다. 그리고 당연히 바로 혼례 준비를 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빠, 빨리 말씀해 주세요. 혼례날이 대체 언제예요? 시간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아버지는 느긋한 태도로 차를 마시고 나를 보셨다.
“여인이 혼사에 초조한 모습을 보여 좋을 것 없단다.”
나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긴 아빠와 저뿐인걸요. 거짓된 모습을 꾸며 내서 뭐 하겠어요?”
“걱정하지 마라. 네 할아버지가 혼례를 올리기 가장 좋은 길일을 받아 왔다고 하셨으니.”
그러니까 알려 달라고!
날을 잡았다고만 하면서 언젠지 가르쳐 주지 않는 게 버써 두 다째였다.
처음 한 달은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하루 하루 날이 지나가는데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내가 혼사를 치러 본적은 없지만, 치르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다. 사내라면 납채 예물 준비로, 여인이라면 혼수 준비로 한창 정신없이 바쁠 시기였다.
얼마 전, 이상함을 감지하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래저래 말만 빙글빙글 돌리며 이리 말할 뿐이었다.
-너희들의 애정이 깊고 인연이 깊다면 조바심을 낼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그럴듯한 말의 속뜻은 이러했다.
애들 사랑따위 얼마나 가겠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일단 떼어 놓고 시간이 지난다면 식지 않겠어?
결국은 시간을 끌겠다는 이야기였다. 본디 남궁 세가와 혼사를 주도했던 할아버지가 이렇게 완강히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우울한 낯을 꾸며 내며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 이미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자 잠시 멈칫한 아버지가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러하냐? 그럼 어찌 내게 다시 물어보는 것이냐?”
“제가 들은 게 정말 맞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날짜를 들은 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가 이 혼사를 질질 끌 생각이라는 소리는 들었으니까.
그렇게 겨우겨우 아버지께 날짜를 캐낸 나는 경악했다.
“10년 후요? 10년 후? 아버지!”
“이미 들었다면서 왜 이리 놀라는 것이냐?”
“그럼 안 놀라게 생겼어요, 지금?”
10년 후면 대체 내가 몇 살이야? 아니 세상에! 어쩐지! 말씀을 안 하려고 하시더라니!
이 혼사에 관해서 만큼은 아버지는 매우 비협조적인 동료였다.
“아버지가 고집이 세신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는 네 할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재주가 없구나.”
“아버지이! 아빠!”
“그리 불러도 소용없느니라.”
역시 세상에 조별과제는 모두 사라져야 마땅했다!
안 시켜준다는 것도 아니고 시켜주는데 10년 후라니.
‘이 치사하고 졸렬한 방식은 대체 누가 생각해 낸 거야?’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허락이라도 받았으니 10년 뒤란 말이 나온거라고.
하지만 한숨이 흘러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후우, 이 막막한 일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을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백리 세가를 찾아왔다.
남궁세가의 안주인이자 남궁류청의 친모인 소부인이었다. 남궁류청도 함께였다. 어머니를 혼자 보내 수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남궁류청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소부인이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연이 네가 남궁 세가를 떠난 후에 나는 청이가 하도 시름시름 앓길래 중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단다. 그런데 어쩜, 명약이 여기 있었구나?”
나는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류청,이 자식 대체 집에서 어떻게 지냈던 거야?
그렇게 소부인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고 난 후, 나는 약간의 걱정과 의문을 담아 물었다.
“부인, 먼 길이셨을 텐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기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출타하신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소부인이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어머님이라고 하지 않는 게니?”
“아, 그······ 그게······.”
남궁류청이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어머니.”
아들을 흘겨본 부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란다. 아직 정식으로 혼인하지도 않았는데 그리불러서야, 예법에 맞지 않지. 그이가 참 주책맞았다고 들었단다.”
부인께서는 끝까지 명확한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할아버지를 뵈로 가셨다.
나는 그녀의 방문이 이 기약 없는 혼사 날짜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10년 후라니. 남궁세가에서 생각이 있다면 절대 동의할리가 없었다.
소부인이 사라지자마자 남궁류청이 손을 잡아 오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
나 또한 그 손을 꽉 마주 잡고 배시시 웃었다
“나도.”
“큼, 크흠!”
남궁류청을 안내하라는 명목으로 붙은 감시자인 장 부관이 헛기침을 하며 서로 1보씩 떨어지라고 말했다.
* * *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내 자네와는 처음 보는 듯하네만.”
“20년 전에 연회 자리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글쎄. 내가 연회에 한두 번 참석한 것도 아니고. 기억이 나질 않는군.”
백리패혁의 퉁명스러운 답에도 소부인은 입가에 고운 미소를 띤 채 답했다.
“천하 강자이신 백리 세가주께서 저 같은 일개 아녀자에게 관심을 기울일 일이 있겠습니까?”
소부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호호, 보통은 저를 기억 못 하지 않는데. 과연 영웅의 풍모를 지니셨습니다.”
백리패혁이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사람을 보는 데 외모는 겉가죽에 불과할 뿐이지.”
“그래도 제 아들은 저를 닮아 꽤 훤칠하여서 어릴 적부터 혼담이 끊이질 않았지요.”
그들이 과거에 혼사를 진행하려고 했던 일을 꼽는 것이다.
백리패혁이 말했다.
“매일 밤 달의 모양이 바뀌듯 인간사 또한 늘 같을 수는 없는 법이지.”
해석하자면 ‘그게 언젯적 일인데. 지금이랑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거든?’ 이 되겠다.
“달이 매일 이지러지더라도 결국에는 둥근 모양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또 해석하자면 ‘조금 돌아갔을 지언정 결국 똑같은 상황이지 않습니까.’ 가 되었다.
그렇게 계속 된 공방이 오고갔다.
백리패혁이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못 하는 말이 없구먼.”
“저는 일개 아녀자에 불과하지만, 제 시아버님이 남궁세가주이신데 익숙할 수밖에요.”
“······.”
백리패혁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소부인의 저 아리따운 한 떨기 꽃 같은 모습 뒤에 이런 전투요정이 숨어있을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백리 세가주를 앞에 두고도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
소부인이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자식은 부모가 제일 잘 안다고, 류청의 성격은 제가 제일 잘 알지요. 제 아비를 닮아 그 고집을 이길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10여 년 – 이건 과장이었다 – 을 연이 그 아이만 바라본 아이입니다. 10년 후의 혼사라니. 지금껏 1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10년을 못 기다리겠습니까? 그저 무의미한 세월 보내기일 뿐입니다.”
“······.”
백리세가주는 계속 침묵했고, 소부인은 말을 이었다.
“제 아들은 그러한데, 백리 세가주께서 보시기에 백리연은 어떠한가요?”
“······.”
“그러니 최대한 빨리 혼인을 시키고 차라리 하루빠리 후사를 보는 게 심적으로 안심되지 않겠습니까?”
부인이 느긋한 손길로 찻잔을 들었다. 살짝 내리 깐 눈매가 그윽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는 연이가 처음 남궁 세가에 방문하였을 때 대대로 며느리에게 주던 팔찌를 선물로 주었죠. 그때 이미예상했답니다. 10년, 기다리지요. 그때가 되면 말씀을 바꾸시면 안 되옵니다.”
결국, 백리 패혁도 마침내 인정했다.
남궁류청 그놈의 고집은 알 바 없었지만, 백리의강의 고집은 백리패혁이 제일 잘 알았다. 그리고 손녀는 제 아비인 백리의강 아래서 자랐다. 누굴 닮았을지는 명백했다.
게다가 남궁류청이 방문했다고 희희낙락한 모습의 손녀를 보니······. 어휴, 그래. 손녀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는가? 제 생전, 앞으로 3, 4년 후에는 백리의강이 가문을 꾸려 갈 터였다.
연이가 천마를 쓰러트렸다고 하나 아직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천마를 쓰러트릴 때 썼다는 힘은 이젠 모두 사라진 상태라고도 들었다. 머나먼 미래에 다시 그 힘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불가능했다.
밀어붙인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만, 내공독 문제도 해결된 백리의강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나이로도 무공을 보아서라도 일단 백리의강이 가주가 되는 것이 순리에 맞았다.
백리의강 그 녀석은 너무 고지식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래도 잘 이끌어가리라 믿었다.
그리고 아들 이후는······ 관심 끄기로 했다. 이미 그땐 죽어 흙이 되었을 텐데.
그렇게 백리패혁은 백리의강을 불러 혼례일을 확정지었다. 이듬해, 꽃이 만발한 3월 3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