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9)
외전13화
백리패혁은 백리의강을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됐다. 그래. 서로 저리 좋아하니, 차라리 빨리 혼인시키고 아이라도 많이 볼 수 있게 하자꾸나. 이것이······ 서로에게도 좋겠지.”
하지만 말하면서도 입안이 썼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아이를 낳느라 몸이 상하는 것도 제 손녀딸 아닌가?
이를 생각하니 또다시 그놈을 때려죽이는 편이 깔끔한 해결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리패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디서 비명횡사라도 당하면 참······ 좋을 텐데.”
“······.”
그때 백리패혁의 부름을 받고 서재에 당도한 백리연이 하필이면 이를 듣고 말았다.
백리연이 문을 벌컥 열어 소리쳤다.
“아니, 할아버지! 아버지!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백리패혁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고, 백리의강이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아비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백리패혁은 눈을 부릅뜨고 백리의강을 보았다.
“네게 이런 간신같은 재주가 있는 줄 내 처음 알았구나!”
백리패혁은 생각했다.
이 능구렁이 같은 태도를 보니 고지식은 무슨? 전혀 신경쓸 필요 없어 보였다!
* * *
낙엽이 지고 칼바람이 부는 추위가 닥쳐왔다가 눈 깜짝할 새, 바람이 포근한 꽃향기를 머금었다.
그간에도 여러 일이 있었다. 먼저 소부인과 남궁류청은 백리 세가에 한 달 동안 머물다 돌아갔는데, 그동안 남궁류청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가르침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혹독한 수련을 받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남궁류청은 힘들어도 좋아했다······.
이어서 어마어마한 납채 예물이 들어왔다 나도 백리 세가에서 귀한 물건과 많은 보물을 꽤 보고 자랐지만, 남궁 세가에서 보낸 예물을 보고는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남궁 세가의 보물 창고를 모두 털어 온 듯한, 산처럼 쌓인 금은보화를 보며 매일 하나씩 패물을 차고 다니면 언제 다 차 볼 수 있는지 의미없는 계산을 해 보았다.
할아버지는 이 납채 예물을 보고 오히려 매우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누가 보면 손녀를 돈에 팔아넘긴다고 생각지 않겠냐고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그보다 더 많은 혼수를 마련해서 손녀가 남궁 세가가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살게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기겁하게 만든 것은······.
“와, 진짜 살아 있잖아?”
백리리가 감탄과 어이없음이 뒤섞인 표정으로 꽥꽥 우는 기러기를 바라보았다.
기러기는 평생 짝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혼례식 때 기러기를 두었는데 여기에는 백년해로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기러기 한 쌍을 구하기가 쉬울까? 보통은 나무 기러기를 사용했다.
“이거 남궁 공자가 직접 잡아 온 거라면서?”
“그렇다고······ 하더라.”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집안에서 기러기 못 잡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게 무슨 재주라도 되는 것처럼 말해?’라고 답하셨지만.
백리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데 잡은 건 그렇다 쳐. 어떻게 기러기를 살려서 여기까지 데리고온 거야?”
나도 그게 의문이었다 혼례식전까지 어떻게 살려두지······.
* * *
그리고 마침내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혼례식 당일은 화창하니 맑은 하늘이었다. 평년보다 이르게 찾아온 봄기운에 날이 따스하니 멀리 떠나기 아주 좋았다.
나팔 소리, 북소리가 아주 떠들썩하게 울려 퍼졌다.
이 혼례식을 구경하고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강호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라도,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본 명사들도 혼례식에 참석하러 왔고, 그 명사들을 보고자 하는 인파들까지 또 모여들어 근방의 여관, 심지어 근처 마을의 여관까지 빈 객실을 찾을 수 없었다.
먼저 길시에 맞춰 신랑이 백리세가에 당도했다.
혼례식을 구경하러 온 구경꾼들은 백마를 탄 혼례복 차림새의 수려한 신랑 모습을 보고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신랑은 신부를 만나기 전에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보통 이 세 가지 관문의 경우 가까운 친지들이 맡아서 냈다.
백리명은 어려운 검무를 요구하였고 신랑은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펼쳐 보였다.
두 번째는 백리리였다.
그녀는 신랑에게 활 실력을 내보이길 요구했는데, 종이로 만든 작은 새를 날려보내 단 한 발로 잡도록 했다.
백리 세가의 사람이 신랑에게 활과 화살을 건네고 백검단주의 막내 제자인 진진이 종이새를 받아들였다.
구경꾼들이 종이새를 보고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너무 작은 것 아니오”
“자네 보이나? 난 눈이 안 좋아서 그런지 보이지도 않네만.”
혼례식이었으니 보통 날리는 종이새는 아주 화려하여 눈에 띄는 것이 정석이었다.
신호와 함께 진진이 내공을 담아 종이새를 날렸다.
햇살을 받은 금빛 종이새가 허공을 유영하듯 미끄러져 날아갔다. 그래도 혼례식용 종이새라고 길게 드리운 세 개의 꼬리깃이 허공에 물결무늬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순간, 화살이 퍽 소리와 함께 종이새를 꿰뚫었다.
종이새가 터지며 안에 있는 붉은 새와 금박조각이 꽃잎처럼 휘날렸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머리맡으로 떨어지는 금박을 주우려고 소란을 피웠다.
마지막으로 친우로 초대된 서하령이 나서서 신랑과 비무를 펼쳤다.
경사스러운 날에 피를 보이면 불길하다 여겨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겼다. 상대도 본인도 상처를 내지 않고 승리해 내야 하는 어려운 비무였다.
서른 합 넘는 분투 끝에 신랑이 승리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가 마치 축제와 같았으나, 신부 측 사람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백리 세가주인 백리패혁은 손녀 사위를 보는 표정이 아니라 도둑질하러 들어온 원수를 맞이하는 표정이었다. 노려보는 시선이 무인이래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매서웠다.
그 옆의 백리의강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혼례식이 아니라 장례식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매서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신랑인 남궁류청은 의젓하게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약간 긴장한 모습은 날 선 시선때문이 아니라 새신랑의 긴장감 정도로만 보였다. 그 대범한 모습에 사람들은 역시 남궁세가의 자제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를 듣는 백리패혁의 입꼬리가 불만스럽게 씰룩였다.
화려한 혼례복에 머리쓰개를 쓴 신부가 들어오자 그제야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신랑과 신부가 함께 먼저 백리패혁을 향해 예를 올렸다.
백리패혁이 표정을 풀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덕담을 건넸다.
“인연을 맺은 걸 축하한다. 앞으로는 서로 공경하고 아끼며 존중해야 한다. 분별있게 행동하고, 자손을 번영시키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거짓 없이 진실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거라.”
한 박자 말을 멈추었던 백리패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든 이 할애비가 뒤에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거라.”
백리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백리의강의 차례였다.
절을 받는 백리의강은 딱딱하게 굳은 낯이었다. 딸아이가 시집을 가는 것인지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 표정만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절을 받고 나서도 백리의강은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다, 향이 반 개비 정도 타오르고 나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매우 짧았다.
“너희들은······ 백년해로해야 하느니라.”
백리연은 이것이 아버지 자신의 소망이 담긴 당부임을 알았다.
그때 백리의강의 손이 백리연의 손을 꼭 붙잡았다.
딱딱한 굳은살이 가득 박인 바위같은 손바닥이었다.
주화입마에 빠지고 난 후, 쉬이 잠들지 못하던 그녀를 밤새 토닥이던 손이었다.
그녀를 매일 안아주고, 깨우며, 붓을 잡는 법부터, 검을 쥐는 법까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가슴이 뭉클한 느낌과 함께 코끝이 시큰해졌다. 꾹 참았던 눈물이 복받치는 슬픔과 함께 터졌다. 서로 꽉 부여잡은 손등 위로 데일 듯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또 향 반 개비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꽉 쥔 손의 힘이 풀렸다.
백리의강은 딸아이를 바라보며 살짝 목멘 소리로 말했다.
“행복해야 한다.”
“걱······.”
걱정하지 마시라.아버지께서도 건강하셔야 한다. 자주 뵈러 오겠다.그리울 거다.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으나 끝내 나온 것은 가느다란 한마디뿐이었다.
“네.”
돌아 나오는 길에 큰아버지를 비롯해 백리명과 백리리, 그 외의 혼례식을 축하하러 온 친지들이 덕담을 마저 한마디씩 건넸다.
어느새 붉은 천으로 만든 길이 끝나고 신랑이 신부를 꽃가마에 올라탈 수 있도록 부축했다.
예관의 인도에 따라 꽃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신랑과 신부가 폭죽 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 * *
그날 백리 세가에는 30개가 넘는 주연상이 펼쳐지고, 근방의 주루에도 한밤중이 되도록 축하연이 벌어졌다. 후한 베풂에 길거리 거지들조차 얼굴에 윤기가 흐르도록 배에 기름칠을 할 수 있었다.
내내 주연상에 붙잡혀 있던 백리의강은 자정이 넘어서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백리의강은 익숙하게 발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수록 화려하고 왁자지껄하던 주위가 점차 외지고 적막해졌다.
한참을 정처 없이 걷던 백리의강의 발이 불이 꺼진 처소 앞에 멈췄다. 백리의강과 백리연의 처소였다.
백리의강은 소가주의 처소에서 머물렀고, 백리연은 떠났으니 이제 주인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배꽃 꽃잎들이 휘영청 뜬 달 아래 하늘을 수놓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적막한 처소 마당 구석마다 먼저 날아온 꽃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백리의강이 걸음을 옮겨 처소의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눈에 띄게 비어있었다. 아직 드문드문 자리에 남은 가구도 있지만, 이 또한 모두 치워질 테고, 그러고 나면 이곳은 텅 빌 것이었다.
백리의강의 흐릿한 시선이 머나먼 과거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