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20)
외전14화
그가 아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수신인을 알 수 없는 서신을 받고 나서였다.
유모라는 자는 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연락한다며 서신을 적어 보냈다.
서신은 달포 전에 왔다고 했다.
서신이 여기 당도하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벌써 두 달넘게 지난 일이었다. 백리의강은 황급히 가문을 나섰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는지 이미 서신이 가르쳐 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살림살이 하나 남아있지 않은 빈집을 빠져나와 주변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아이를 찾은 곳은 근방 현의 시장 거리에서였다.
“이놈의 거지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리가 꽤 소란스러웠다.
엎드린 어린 거지에게 성인 사내가 마구잡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백리의강이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사내가 버럭 화를 내려다가 백리의강의 준수한 외모와 자태를 보곤 주춤 뒤로 물러났다.
“다, 당신 뭐야?”
“아직 어린 듯한데,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사내는 눈알을 굴리며 입을 뻐끔거리다가 바닥을 향해 침을 탁 뱉었다.
“퉤! 운 좋은 줄 알아!”
백리의강의 종복인 언두가 말고삐를 잡은 채 흩어지는 구경꾼들을 헤치고 다가왔다.
언두는 할 말이 매우 많은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다. 지금 이런 일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한시라도 빨리 그 아이를 찾아야 하는 건 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백리의강이 아이를 향해 말했다.
“괜찮으냐?”
“······.”
“네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다.”
머리를 감싸 쥔 아이는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지켜보던 백리의강은 언두에게 자리를 맡기고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다.
찐빵 냄새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이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치료를 해 주고 혹시나 알까 하여, 최근 이곳에 나타난 부모 없는 아이가 없는지 질문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네 이름이 연이라고?”
벌써 다섯 번째의 질문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신이 찾아온 그 아이였다. 그의 딸.
최근 사망한 보호자, 살던 곳, 이름, 서신에 적힌 아이의 특징······. 여러 질문을 통해 이 아이가 서신에서 말하던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화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백리의강은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정말 자신과 그녀의 딸이라고? 서신의 내용을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서신 속 이야기는 그럴듯했지만, 믿을 만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서 자신과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전혀 알 수 없었다.
반신반의한 채, 백리의강은 의무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아······.”
그러나 끝까지 말할 수가 없었다.
과연 자신이 아비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이제껏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말한다면 아비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고 있거늘.
그때 아이의 삐쩍 마른 손목이 보였다
아이는 작고 허약했다. 고단한 길거리 생활에 온몸에 상처투성이기도 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백리의강이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 오겠느냐?”
그러자 아이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백리의강은 최대한 위협적인 기세를 낮추고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를 향해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지었는지 알수 없었다.
실패했는지 아이는 오히려 더 겁을 집어먹은 듯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
가족이 되긴 힘들지라도 아이가 자랄 때까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줄 수는 있겠지.
친모의 신분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백리 세가가 가장 보호하기에 좋았다.
만약 따라오지 않겠다고, 싫다고 거절한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러나 그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꼼지락거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바라보니 조그마한 손이 그의 손가락을 살그머니 쥐고 있었다.
“······그래. 가자꾸나.”
그를 향할 오욕과 비난은 두렵지 않았다. 그저 자신같은 사람이 이 아이와 잘 지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고민이 무색했다.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느새 조그마한 몸짓 하나에 울고 웃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마른 땅에 이슬비가 스며드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세상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손가락을 부여잡던 조그마하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어른이 되었고,그의 품을 떠났다.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다.
* * *
백리연과 남궁류청의 떠들썩한 혼례 후, 1년.
남궁 세가주였던 남궁무철은 남궁완에게 가주직을 넘기고 태상가주로 현업에서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남궁류청은 소가주가 되었다.
남궁류청은 그전에도 친부의 일을 조금씩 돕긴 했지만, 정식으로 소가주가 되자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일이 몰려와 며칠간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인수인계가 거의 끝나 겨우 여유가 생겨 아내의 얼굴을 보러 온 참이었다.
문밖에서 그를 알아본 시비가 인사하려는 순간 남궁류청이 먼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얼마나 되었지?”
“반 시진 정도 되었습니다.”
남궁류청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발을 걷으며 처소로 들어갔다.
백리연은 우측 창가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읽다가 잠들었는지 서신을 손에 꼭 쥔 채였다.
옆에는 결이란 이름의 고양이도 함께였다. 보통 제멋대로 돌아다니느라 밥시간 말고는 얼굴도 보기 힘든 녀석이었다. 하나 근래 들어서는 기이하게 연이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비가 얼음 그릇 앞에서 부채를 부치다 뒤늦게 남궁류청을 발견하고 공손히 인사했다.
남궁류청은 시비에게서 부채를 뺏어 들고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기척을 죽인 시비가 소리없이 방을 나가고 남궁류청이 평상에 걸터앉자, 결이가 꼬리를 세우며 일어나더니 평상 위에서 뛰어내렸다.
남궁류청은 결이를 바라보지도않고 나직이 불렀다.
“연아.”
그가 장인어른에게 듣기로는 어릴 적부터 잠이 얕아 조그마한 기척에도 깨어났다고 했다
처음엔 정말 말 그대로 그의 조그마한 기척에도 잠에서 깨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기척에는 확실히 익숙해진 듯 보였다. 은근히 그것이 흡족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 근래에는 시비의 기척도 잘 느끼지 못하는 듯한 점은 약간 불만이었다.
‘그래도 자꾸 깨는 것보단 잘 자는 게 낫지.’
남궁류청은 배리연이 쥐고 있던 서신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필체를 보아하니 그의 장인어른이 보낸 서신이었다.
남궁류청은 서신을 창틀로 치우고 숨을 쌕쌕 내쉬는 백리연을 바라보았다. 벌써 1년이 지났거늘 아직도 가끔은 허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남궁류청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어깨아 다리 아래 손을 넣어 안아 들려 할 때였다.
백리연이 살짝 찡그리며 눈을 떴다.
“······청?”
이를 본 남궁류청이 고개를 숙여 입맞춤을 했다.
본래는 가볍게 할 생각이었지만 점차 깊어지며 반쯤 일으켜져 있던 백리연이 다시 뒤로 넘어갔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가슴팍을 밀치는 힘이 느껴졌다. 남궁류청이 살짝 입술을 떼고 물었다.
“깼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한 눈망울에 살짝 원망이 서렸다.
“당연히 깨지······.”
물에 잠긴 듯한 목소리에 남궁류청은 밝은 창문을 보고 아쉬워 하며 몸을 일으켰다.
“요새 잠이 좀 많아졌네.”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이상하게 졸리네.”
백리연이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이 주변을 살폈다.
남궁류청이 창가를 가리켰다.
곱게 접힌 서신이 놓여있었다.
“아, 저기 있구나. 혹시 읽어 봤어?”
“아니.”
백리연이 눈가에 웃음기가 어렸다.
남궁류청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길래?”
“백리리의 혼례 상대가 정해졌대. 아, 이게 재미있어서 웃은 건 아니고 아버지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시더라고.”
“이상한 꿈”
백리연이 탁자 위의 자두가 든 바구니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응. 아, 어머님께서 자두가 들어왔다고 한 바구니주셨는데. 먹을래?”
“아니.”
“내가 웬 노인하고 복숭아 꽃나무 아래서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연거푸 져서 빚을 엄청나게 졌다는 거야. 옆에서 아버지가 말려도 소용없이, 아버지 재산까지 전부 걸고 마지막 바둑을 둬서 결국 이겼대. 그러니까 노인이 벌컥 성을 내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남궁류청의 얼굴은 그야말로 눈과 입을 작대기로 죽죽 그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남궁류청은 상대가 장인어른이었기에 개꿈이라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백리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니, 꿈이 재밌다는 게 아니라.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그냥 보내시면 되지 꼭 이렇게 이상한 얘기를 꾸역꾸역 쓰실 필요가 있냐고.”
남궁류청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기분 좋아 보이는 백리연의 모습을 보면서 왜 장인어른이 이상한 말이라도 잔뜩 적어서 보내는지 이해했다.
잠시 후, 무복으로 갈아입고 처소를 나서려는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어머님.”
“어머니.”
백리연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백리연이 소부인이 되었고, 본디 소부인이었던 양소옥은 대부인이라고 불렸다.
“둘이 수련하러 가는 거니?”
“예.”
“그럼 나중에 연이 너는 잠시 안채로 오너라. 사돈댁에 경사가 있다고 들었다. 축하 선물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연이가 골라 줬으면 싶구나.”
“네, 알겠습니다.”
대부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떠날 것처럼 몸을 틀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네게 준 자두 말이다. 그거 먹지 말고 돌려 보내거라.”
“아······ 벌써 다 먹었는걸요?”
“어머, 시었을 텐데.”
“전혀요. 달고 맛있었는걸요?”
내내 조용하던 남궁류청이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엄청 시었는데.”
“넌 먹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
남궁류청은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고, 백리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살짝 붉어졌다.
대부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뒤늦게 뒤따르던 시비를 향해 말했다.
“가서 허 의원을 불러오너라.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