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3)
반쯤 열린 비단 주머니에서 낡은 목패가 반쯤 빠져나왔다.
“제기랄.”
수틀린 걸 깨달은 다른 일행이 백리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타타닥!
그러나 백리연은 도둑질하던 남자를 붙잡은 손을 푸는 것과 동시에 점혈하며, 그녀를 향해 덤벼오는 다른 상대 또한 한 손으로 막고 혈도를 짚었다. 간단히 손짓몇 번으로 제압당한 사내가 경악한 낯으로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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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 들어왔을 땐 벌써 밤이었다. 정리는 그 전에 되었지만, 식사 자리의 뒤처리를 하느라 상당히 시간을 소모해 버렸다.
백리연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중얼거렸다.
“마교 놈들이 아니었다니.”
목패를 가져가길래 옳다구나 싶었는데, 그냥 좀도둑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돈주머니를 훔치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하필 걸린 것이 목패가 든 주머니였던 것이었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목패가 든 주머니는 본래 남궁류청의 것이었다.
못생긴 모란꽃이 눈에 띄는 향낭. 과거 남궁류청과 그녀가 함께 수를 놓았던 것으로 그가 아끼던 것이었다. 오래되어 더는 향낭으로 쓰지 않고 주머니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혼란이 오면서 그녀가 스리슬쩍 챙겼다.
하지만 남궁류청은 자신이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중요한 증거품을 여기다 보관하는 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참 침묵하던 백리연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늦네.”
백리연은 금안으로 건물 안에 있는 남궁류청의 기운을 확인했다. 남궁류청은 한 방에 두 개의 욕조를 마련할 수 없어 따로 씻으러 간 참이었다.
침상 머리맡에 몸을 기대고 기다리던 백리연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객실 문이 열리고 남궁류청이 침실에 들어오다 멈칫했다. 곧이어 기척을 죽인 남궁류청이 침상으로 다가와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백리연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태평하게 잠들어 있다니.
고민하다 들어온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등불의 흔들림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같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자니, 백리연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깨어날 듯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어서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뭘…… 그렇게 봐? 얼굴 뚫어지 겠네……”
“어이가 없어서.”
“음, 그러게. 언제 잠들었지?”
이 상황에 잠이 오냐는 빈정거림이었지만 백리연은 태연하게 하품을 하며 넘겼다.
백리연은 몸을 일으키더니 졸음에 겨운 눈을 한 채 말했다.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지? 잠도 못 자게 빤히 쳐다본 걸 보면 있어 보이던데.”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남궁류청에게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어쩌다 혼인한 거지?”
백리연은 살짝 당황했다. 마교나 천마에 관한 얘기를 물어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혼인에 관한 질문이라니.
이 부분은 이미 다 얘기 끝난 거 아니었나?
“네가 물어보라더니 왜 말이 없어?”
“아, 천마를 쓰러트린 방법에 대해 물어볼 줄 알았거든.”
“물어보면 답해줄 건가?”
“아니 ?”
“장난해?”
“미안, 놀리려던 건 아니었어.”
남궁류청도 곧장 표정을 풀었다.
“네가 굳이 그 부분만 말하지 않으려는데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네 말을 믿을 수도 없고.”
백리연의 표정을 본 남궁류청이 말을 돌리듯 말했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
“뭘 그렇게 고민하지?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백리연은 입가를 매만지다 포기하듯이 내뱉었다.
“내가 혼인하자고 했고 네가 좋다고 했어.”
남궁류청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그게 끝이야? 설명이 너무 건성인 거 아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떤 상황에서 어쩌다 이렇게 관계가 발전하게 됐는지 알려 줘야지. 그래야 나도 무언가 단서라도 잡을 거 아냐? 너는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
눈을 내리뜬 백리연은 고민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남궁류청은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내 백리연이 입을 열었다.
“맨 처음 고백은 네가 했어.”
“내가? 말도 안 돼.”
백리연이 픽 웃으며 말했다.
“봐. 네가 그런 반응 보일 줄 알았어.”
“……일단 계속 말해 봐.”
백리연이 입을 살짝 비죽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과거에 네가 날 안 좋아했던 거 알았으니까 거절했지.”
“뭐?”
“왜?”
“아냐, 계속 말해봐.”
“자기가 끊어놓고는….하여튼 천마가 살아 있어서 당시 상황이 안 좋기도 했고. 그런데 네가 거절에도 상관없이 좋다고 그랬지.”
“잠깐. 잠깐만.”
남궁류청이 손을 들며 말을 막았다. 그러고는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때 백리연이 몸을 일으키며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궁류청은 바로 손을 뻗어 침대 맡의 탁자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었다. 백리연은 단번에 찻잔을 비웠고 남궁류청은 다시 잔을 채워 주었다.
그렇게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백리연의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류청은 이내 이상함을 깨달았다.
‘내가 백리연이 물 마시고 싶어 하는 건 어찌 알고 준 거지?’
그는 찻주전자를 든 손을 내려다 보았다. 곧이어 꽉 쥔 주먹에 바짝 힘줄이 섰다.
남궁류청이 찻잔을 비운 백리연을 향해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응?”
백리연은 얼떨떨하게 시키는 대로 안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남궁류청이 침상에 올라갔다.
백리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남궁류청이 태연히 말했다.
“뭐긴 뭐야? 나도 자야지.”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아니 그리고 잘 건데 왜 여기 올라와?”
“그럼 어디서 자라고? 침상이 하나뿐인데.”
뻔뻔하기 그지없는 답에 백리연이 당황해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잠깐만……!”
그리고 남궁류청은 그 당황한 표정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남궁류청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같은 방 쓸 때부터 예상하던 거 아니었어? 그래서 꺼린 거 아냐?”
“아니, 아니거든!”
“뭐가 문젠데?”
백리연이 입술을 달싹였으나 나오는 말은 없었다.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너한테는 똑같은 사람 아냐? 그 저 현재 기억을 잃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거라며?”
남궁류청은 상대를 안심시키고자 말했다.
“손 하나 까딱 안 할 테니까 쓸데 없는 소리로 진 빼지 말고 그냥 누워. 손댈 생각도 없고 손대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까.”
백리연은 처음에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중에는 살짝 화가 난 듯 싶었다.
“너, 나중에 다른 말하기 없기다? 어? 네가 괜찮다고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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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연은 처음에는 받아들이는가 싶다가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한참 소란을 피우다 결국 포기하고 누웠다. 그리고 막상 눕자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반대로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던 남궁류청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고 한참 억지로 잠을 청해 보던 남궁류청은 옆자리에서 새근새근 들리는 평온한 숨소리에 혀를 찼다.
‘정말 부부가 맞나?’
어쩜 이렇게 태평하지?
남편이 지금 기억을 잃은 것, 또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이렇게 잠이 온단 말인가? 대단한 신경이었다.
물론 그가 백리연에게 어차피 똑같은 사람이 아니냐고 주장하긴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회귀 후의 자신은 전혀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백리연을 적당히 속여 넘기기 위해 한 말이었다.
‘만약 회귀 후의 그놈이 이 일을 기억한다면 꽤 화가 나겠지만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회귀 후의 그놈은 그가 아니었으니.
남궁류청이 몸을 돌리자 세상모르고 잠든 백리연의 얼굴이 보였다.
‘잘 땐 이런 모습이었군.’
그러고 보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니 다름없었다. 반듯한 콧날과 닫힌 눈꺼풀은 그늘없이 평온했다. 이렇게 보면 거푸집에서 찍어 냈다고 해도 될 만큼 제 스승을 닮은 얼굴이었다.
다만 표정이 풍부한 백리연과 진중한 눈빛에 언사 하나도 무거운 스승이기에 깨어 있을 때는 닮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닮은 건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간 그는 백리연을 바라볼 때마다 죄책감에 오래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눈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거기에 그녀는 늘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애정을 갈구하는 태도로 그의 주변을 계속해 맴돌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답답한 감정과 초조함, 미약한 짜증이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의 백리연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좀도둑을 잡을 때 보였던 금나수, 분명 천산염제의 무공이었지.’
그는 좀도둑이 그들을 노리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거기다 천산염제의 금나수 뿐만이 아니었다. 마교도의 습격 시에 보였던 무공 수위.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기감을 의심하고 두 눈으로 본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딱히 내공 수위나 기세를 죽이고 있는 것도 아니거늘, 느껴지는 수준에 비해 훨씬 더 고강했다.
‘하지만 천마를 정말 백리연이 쓰러트렸다고?’
전혀 믿기지 않았다.
왜 말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말했다고 한들 믿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지금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등을 맞댄 몸은 익숙했고 손발의 호흡은 몇 년을 함께 맞춘 듯이 완벽했다.
이렇게 누군가 제 속을 읽어 준 것처럼 딱딱 맞는 검을 펼쳐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나쁘지 않았다. 정말.
그때 백리연이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무언가 찾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내 더듬던 손이 그의 팔뚝에 가볍게 올라왔다. 닿은 부분에 순간 열기가 치솟는 느낌이었다.
당황한 남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