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5)
부 별채.
그윽한 다향이 가득 찬 방 안에서 나직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총사 대리는 너한테 무림맹주를 제안할 생각이었을거야.”
순간 찻잔을 들던 백리연이 멍한 낯을 했다.
“……그걸 누가 동의해? 제정신인가?”
“왜? 제안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나이를 생각해 봐.”
“하지만 넌 천마를 쓰러트렸잖아?”
“그건 그저 운이 좋아서……”
제갈화무가 재미있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이 바닥에서는 운도 실력이지.”
“아니, 일단…… 난 천하 강자도 아닌데?”
꼭 천하 강자가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마를 쓰러트렸으니 그게 천하 강자의 증명 아닌가?”
백리연은 머리를 쥐어 잡고 탁자에 엎드렸다.
옆자리의 남궁류청이 찻잔을 쥐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스승님도 계시고, 내 아버지께서도 계시는데 바로 백리 소저 차례가 되는 건 너무 건너뛴 것 아닌가?”
제갈화무는 신기한 생물을 보듯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백리 세가주와 남궁 세가주 두 분 다 거절하셨으니까.”
“거절하셨다고? 스승님과 아버지 둘 다?”
“뭐라고? 언제? 나는 전혀 몰랐어!”
“너한테만 말씀 안 하신 게 아닐까? 남궁 소가주는 알고 있었을 텐데……. 기억을 잃어버렸다더니 진짠가 보네. 와 이것 참 신기한데.”
제갈화무는 오히려 흥미를 감추지 않고 눈을 빛내며 남궁류청을 이리저리 살폈다.
남궁류청은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백리연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소가주의 믿음은 별로 중요치 않은걸. 연이가 믿느냐가 중요하지.”
백리연은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화무, 괜히 자극하지 마.”
제갈화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야, 진심으로 은인의 행복을 바라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즐거움을 억누를 필요는 없잖아?”
“좀 억눌러 봐.”
“은인의 행복?”
“아, 그쪽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남궁류청이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빛을 했다. 이어서 탁자를 짚고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려는 순간 그를 붙잡듯 손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백리연이었다.
힘이 담긴 움직임은 아니었다. 나비 날갯짓처럼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길이었거늘 그 온기만으로도 움직일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만하라니까. 그리고 류청, 화무 도발에 넘어가지마. 화무 너도 그만하고.”
제갈화무가 어깨를 으쓱하며 부채를 팔랑거렸다.
상황을 누그러트린 백리연이 다시 본 주제를 꺼냈다.
“그래서 뭐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 있어?”
침묵하며 부채를 팔랑이던 제갈 화무가 백리연이 탁자 위에 꺼내 놓은 목패를 집어 들었다.
“네가 봉인해 둔 거야?”
“응. 혹시 또 만진 사람이 이상해지면 안 되니까.”
제갈화무가 목패를 내려놓고 말했다.
“일단 하나 알아둘게, 너희가 그 목패를 찾으러 간 사이에 마교에서 다른 움직임을 보이더군. 확실 히…… 이 목패는 함정이었던 모양이야.”
백리연이 인상을찡그렸다.
“움직임을 보고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 싶었는데, 보아하니 이 목패로 너희를 붙잡아 놓고 뭔가 다른 일을 처리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
“……당했네.”
“미안. 내가 좀 더 알아볼 걸 그랬어.”
백리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내가 뭘 찾는지 알고 있으니.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함정을 파면 걸릴 수밖에 없던 거니까.”
제갈화무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내 제갈화무가 말을 돌리듯 입을 열었다.
“제갈 세가의 연구지를 보면 연이 너 말고도 과거의 일을 떠올린 이들은 몇 있었어. 아마 제갈 세가에서 찾지 못한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꽤 있지 않을까?”
“예전엔 그런 말 안했잖아?”
“당시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서. 어차피 떠올린다 하더라도 보통 꿈처럼 흐리고 쉽게 잊어버리지. 그래서 현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해. 너처럼 선명한 건 극히 드물어.”
백리연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제갈화무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떠올리고 어째서 잊어버릴까? 정말 시간을 돌린거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지 않나?”
여기까지 설명하자 백리연은 제갈화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기억을 넘 겨받았던 적이 있기에.
“기억은 혼에 저장되니, 천마가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혼에는 기억이 남아 있던 건가?”
“그래. 그리고 천마가 회귀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포기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이유도 이 때문 이 아닐까?”
“..음..”
“천기로 인한 문제가 가장 컸겠지. 하지만 선조들이 추측하기로는 혼에 쌓인 과도한 기억 때문에 연이 너처럼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연구가 있었어.”
그때 초반 시비 이후로 잠자코 있던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쪽 말대로라면 나는 혼에 새겨진 과거의 기억이란 건가?”
“ 아마도?”
남궁류청은 냉담한 눈으로 제갈 화무를 바라보았다.
제갈화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남궁류청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백리연이 물었다.
“그럼 현재의 기억이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네. 연관성 있어 보이는 건 몇 가지 있지만…… 검증이 가능할는지도 모르겠고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백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화무가 남궁류청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저쪽도 협조적인 듯한데 큰 문제는 없잖아? 어차피 같은 사람인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백리연의 눈빛에 제갈화무가 살짝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 생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돌아올 것 같아. 보통 기억 상실과 비슷하게. 혼에 새겨진 기억이란 건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더라고.”
“게다가 이렇게 강력하고 쓰기 좋은 물건이 있었으면 천마가 진작에 이걸로 함정에 빠트리려 들지 않았겠어?”
“그건 그렇지.”
손대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기억을 지워 버리고 과거의 기억으로 바꿔 버린다니.
이 수작을 천마를 쓰러트리기 전에 그녀가 당했더라면…….
“그런데 지금까지 쓰지 않고 내버려 뒀다는 건 뭔가 큰 약점이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안한 게 아니라 못했다고 봐야지. 어떠한 이유로.”
“너는 그게 쉽게 회복할 수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거고?”
“응”
제갈화무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괜찮을거라고 너라면 대충 예상하지 않았어?”
백리연은 침묵하다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무공에 대한 지식 대부분은 잃어버렸지만, 그런데도 대충 남아 있는 감각과 비슷한 것들은 꽤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느껴졌다, 남궁류청의 이 상태가 오래가지 않을거라는 것이. 그게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태연할 수 없었으리라.
제갈화무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걱정돼서 어쩔 수가 없구나? 기다리지 못하고 무림맹까지 찾아온 걸 보니.”
제갈화무와의 대화는 한 시진 넘게 이어졌다. 그러나 막연한 이야기뿐,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자마자 남궁류청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백리연은 제갈화무에게 인사하고 급하게 남궁류청의 뒤를 쫓아갔다.
“류청!”
거칠게 앞서 나가던 남궁류청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심기가 매우 비틀린 표정이었다.
“저자, 믿을 만한 사람인 거 맞아? 애초에 이 목패에 관한 정보도 저자가 가져왔다며?”
“일단…… 마교에 관해서는.”
남궁류청이 백리연을 빤히 바라 보았다.
“제갈 세가주, 지금껏 혼인도 안했다지?”
갑자기 뜬금없는 주제에 백리연 이 고개를 기울였다가 끄덕였다.
“맞아.”
남궁류청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 분명 네게 마음 있어.”
남궁류청이 냉소를 지었다.
“혼인도 한 여인한테 어처구니가 없군. 그놈은 저 자식이 저러는 걸 내버려 뒀어?”
그놈이 회귀 후의 남궁류청을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혼인 후에 화무 얼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입가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던 백리연이 남궁류청을 보았다.
“그리고 화무가 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왜 네가 화를 내? 어차피 너는 나 싫어하잖아?”
백리연의 말과 어조에는 그저 있는 사실을 늘어놓는 듯 전혀 감정 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남궁류청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던 백리연은 됐다는 듯이 어깨를 살짝 치고 앞서 나갔다.
“……너는.”
뒤늦게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백리연은 남궁류청이 아니라 중앙부로 들어오는 중문 방향을 바라보았다. 남궁류청도 약간의 소란을 느꼈다. 누군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내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고 백리연이 반가운 낯을 했다.
“서……!”
백리연이 입을 열려는 순간, 집게 손가락을 입술에 댄 서하령이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 건물 뒤로 사라졌다.
“뭐야?”
남궁류청도 사라진 서하령을 보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가 백리연을 보았다. 백리연도 상황을 몰라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