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37)
는 어때?”
“최악이야.”
백리연은 걱정스럽게 남궁류청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남궁류청은 그간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목패를 집은 순간부터 기억이 모두 날아가 있었다.
“의원을 불러올까?”
“아니. 몸은 멀쩡해. 다만……”
“ 다만?”
“다른 놈이 내 몸을 쓰고 간 느낌이야. 더럽고 찝찝하군.”
남궁류청은 당연히 백리연이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돌아와서 다행이야.”
“괜한 걱정을 끼쳤네.”
백리연의 묘한 반응에 다시 기억을 떠올려 보려던 남궁류청은 두통만 심해지는 걸 느끼고 포기하고 물었다.
“그놈이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지?”
“응. 별일 없었어. 그래도 성품은 똑같으니까. 그 점은 믿어 봐.”
“나니까 못 믿는 거야.”
“뭐라고?”
“아니야.”
기억은 나지 않지만 희미하게 남은 생각의 편린, 감정의 조각들이 있었다.
뭐? 과거에 자신은 그녀를 싫어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싫어한다는 사람이 이런 감정을 가지나?’
하지만 그 사실을 백리연에게 알려 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한 남궁류청과 백리연이 방에서 나오자 전각의 뒤 뜰에서 남궁희를 품에 안은 제갈화무가 보였다.
백리의강과 아이들을 무한으로 부른 것이 바로 제갈화무였다. 남궁류청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얘기는 다 끝났어?”
“그래.”
그리고 남궁희를 품에 안은 제갈화무의 모습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아이랑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라고 여겼는데 꽤 괜찮은 그림이었다.
남궁류청이 물었다.
“화아는 어디 갔지?”
“정원을 둘러보고 싶대서 보모가 데려갔고 백리 세가주는 손님이 찾아와서 그분을 따라가셨어.”
제갈화무가 무르팍에 올라와 있던 남궁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모가 아이를 이끌자 남궁희는 눈치껏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는 걸 알고 아쉬운 표정으로 보모를 따라갔다.
백리연이 말했다.
“희아가 얌전히 있을 애가 아닌 데 무슨 얘길 한 거야?”
“제갈 세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더라고.”
“이상한 질문은 안했길 바랄 게……
“아니야. 귀여웠어.”
“그럼 다행이고.”
제갈화무가 멀어지는 남궁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궁희가 폴짝폴짝 뛰면서 마주 흔들다가 넘어질 뻔하고 보모에게 안겼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이제 슬슬 혼인하려고.”
“••••••뭐?”
“별일 없으면 같이 와.”
그러고는 붉은색의 명첩을 내밀었다. 청첩장이었다. 그 말은 혼인이 결정된 건 한참 전부터란 얘기였다.
백리연은 제갈화무의 표정을 보았다. 미소 짓는 표정에는 아무런 미련도, 그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또한 어떠한 답을 얻은 것이다.
백리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타박했다.
“별일 있어도 가야지. 아니, 왜 이걸 이제 말해?”
남궁류청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잘됐군. 썩 혼인해 버려.”
과거에 안주해서는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없다. 비록 여기까지 도달하는 길이 힘겨웠을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똑같이 힘들지언정 그래도 펼쳐질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외전 3 마침〉
외전 4. 생에 후회가 남는다면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날이었다.
“커윽.”
“아아악!”
그들의 마지막은 빗소리에 묻혔다. 붉은 핏물이 빗물에 섞여 들어 갔다.
털썩. 마지막 생존자인 무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사, 살려 주시오.”
고작 한 명에게 무공을 익힌 무사들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몰살당했다.
전신을 옥죄는 공포 속에서 무사가 중얼거렸다.
“우, 우리가 어디 사람인지 아시오? 만약 이 일이 알려진다면 분명, 분명 가만히 있지……”
“백리 세가.”
“헉!”
철벅, 철벅.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어두운 그림자가 사신처럼 다가왔다. 드러난 얼굴을 확인한 무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너, 너는……! 아니, 왜 그쪽 이……?”
눈꼬리에 눈물점을 매단 시선이 벌레를 보듯 내려다보았다. 핏물처럼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서 백리연은 찾았나?”
무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걸, 그걸 어떻게……?”
“왜?”
“예?”
“백리연을 왜 찾았지?”
“그, 그야 가주님의 손녀이니.”
섬광이 반짝이고 뒤늦게 손목 아래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무사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 쳤다.
“저, 정말이라고! 가주께서 4공자님도 그리 보냈는데 4공자님의 딸 마저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빌어먹을! 그딴 폐인이 대체 뭐라고, 죽은 듯이 살 것이지. 왜 이 고생을하게 만들어!”
소리칠수록 억울함과 자신을 이 상황에 처하게 만든 이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목덜미에 닿는 서늘한 날붙이에 분노는 순식간에 조절되었다.
정신이 돌아온 무사가 겁에 질려 상대를 보았다. 그러나 얼굴에 줄줄 흐르는 빗물에 새빨간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가는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찾았나?”
무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사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온 것이었다. 마교의 고위직이 왜 백리연을 찾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무사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차, 찾았소. 알려 준다면 사, 살려 주는 것이오? 오,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이 자리를 벗어나면 쥐죽은 듯이 살겠소.”
“그래.”
“천주의 무양표국에……”
말을 이어 가던 순간이었다.
툭. 몸을 잃은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물웅덩이를 나뒹구는 머리가 어째서냐고 이유를 갈구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수십 수백을 죽이는 동안 본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표정.
백리연 또한 똑같았기에 뒤돌아 선 순간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그 때의 그 표정을 기억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덜컹, 쿵, 쿵, 쿠쿠쿠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거운 것이 밀리는 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돌바닥을 내려치는 소리와 불규칙한 발소리가 이어지고 어둠 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빛이 꺼진 눈과 표정이 없는 얼굴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혈성군이 손짓하자 석문 쪽부터 안쪽 방향으로 벽에 걸린 횃대에 차례로 불이 붙었다.
어둠에 잠겨 있던 성지가 환하게 밝혀졌다. 그러자 제단 위에 있는 이의 창백한 안색에 미약하게 생기가 돌았다.
혈성군은 지팡이를 매만지며 불만을 삼켰다. 이 반쪽짜리 천마는 웃기지도 않게 어둠을 싫어했다. 그건 천마의 그릇이 될 몸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좀 더 수행을 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역시나 그릇으로는 천마의 혈육이 더 완벽한데.’
백리연. 반쪽짜리 천마가 집착하는 그 여자가 이자보다 훨씬 더 완벽한 천마의 그릇이었다.
지금은 어려우니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혈성군이 아쉬움에 입술을 훑고 말했다.
“감축드립니다.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쪽도 나쁘지만은 않은 그릇이었다.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만 같던 천마의 기운이 이젠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은 역대 천마들이 주기적으로 머물던 성지로, 폭주하려는 힘을 안정시키던 곳이었다. 반쪽짜리 천마가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같았다. 그리고 이제야 드디어 제대로 안정된 것이다. 천마의 힘이. 존재 가.
혈성군의 눈짓에 뒤따라온 무사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제단에 올라갔다.
제단 중앙에는 검붉은 색의 께름칙한 무언가가 고여있는 욕탕이 있었다. 무사가 그 안에서 일어난 이의 어깨에 옷을 걸쳤다. 시중을 받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무심한 눈길은 이 모든 일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나, 혈성군은 그가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일거라는 걸 장담했다.
“드디어 마지막 조각을 찾았나이다. 다시 한번 무뢰한 이들에게 마도 천하를.”
혈성군은 목발을 짚은 채 다리를 꿇고 목패를 두 손으로 받들어을렸다. 역시나 반쪽짜리 천마가 반응했다.
기척조차 느낄 새없이 다가온 그림자가 그 앞에 섰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천마가 목패를 집어 든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성지를 감쌌다.
짙고 탁한 기운이 목패에서 뻗어 나와 팔을 타고 천마의 몸을 스멀스멀 기어올라 갔다. 바람 한 점 없음에도 천마의 긴 머리카락이 출렁이듯 흩날렸다.
혈성군은 빛이 천마의 몸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드디어……”
천마의 힘을 흡수하여 죽어가던 야율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성지로 데려온 것은 혈성군이었다. 그 와중에 다리 한쪽을 잃기는 했지만 이건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언젠가 이룩할 천마의 마도천하를 위해서.
그에게 천마는 신이었고 마도천하는 신앙의 실현이었다. 그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 반쪽짜리 천마가 제게 협조하려 들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방해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무양표국을 이용하여 천마의 성물을 빼돌려 소멸시켰고, 무림맹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위지백을 필두로 한 사파 연맹 계획을 망가트리기까지 했다.
고작해야 친모의 복수라는 하찮은 이유로 대업을 어그러트렸을 때는 정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천마의 혼을 가진 큰 조각이 아니었다면 제가 나서서 찢어 죽였을 터다.
하나 하찮은 이유에 집착하는 반 쪽짜리라 목줄을 매는 것 또한 손 쉬웠다.
불길한 기운이 모두 흡수되듯 사라지고, 혈성군이 읍하며 고했다.
“역행의 때가 왔습니다. 간악한 배교자가 사그라트린 성물을 되찾으소서. 그리하면 온전한 힘을 회복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번 시간 선은 실패였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하면 되니까.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간악한 배교자를 다시 천마의 품 안에 품어 교화를.”
백리연. 시간을 되돌려, 그 여인을 다시 손에 넣을 기회를 준 것이다!
그 여자에게 집착하는 반쪽짜리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어차피 그 여자는 대업의 큰 방해물. 시간을 되돌리면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 여자만 먼저 치워 버릴 수 있다면 손해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 컥.”
숨통이 틀어 막히고 우드득 부러지는 소리가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듯 들려왔다.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으니 손 쓸 틈도 없었다. 목이 붙들린 혈성군의 하나만 남은 발이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이미 마비된 몸뚱어리는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제 안의 모든 기운 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천마에게 진기를 홉수당하여 죽는 것은 그냥 죽음이 아니었다.
천마에게 혼백이 흡수당하여 회귀하더라도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그야말로 영원한 소멸이었다.
혈성군은 부릅뜬 눈으로 눈동자를 굴려 상대를 보았다.
‘ 어째서……!’
반쪽짜리 천마가 설핏 조소했다.
“궁금한가 보군.”
당연하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천마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며 몇 번이나 회귀하였을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마도천하를 이룩하기 위한 신실한 종이자 선택받은 충복이었다.
간악한 배교자인 백리연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뛰어난 군사인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텐데! 대체 왜!
“시간을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