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
40화
* * *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떠 올린 것은 거의 한 식경가량 떠들고 난 후였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아, 맞아.”
마구잡이로 일어나려는 악중해를 마혜향이 부축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로 앉은 악중해가 내게 머리를 숙였다.
접시의 땅콩을 막 입에 집어넣던 내가 놀라 굳었다.
“고마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불렀어. 내가 찾아가는 게 맞겠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없어서.”
“······제가 구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구하신 거죠.”
“다 들었어. 네가 꿈 때문에 의강 선배님을 보내고 그러고도 안심이 안 돼서 의원을 데려온 거라며? 아 맞아, 선배님께 많이 혼났어?”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혼났어요.”
“그래? 선배님이 그냥 넘어가셨다고?”
“네.”
의원을 데리고 아버지를 뒤따라 가기위해서 난 심 부관에게 아버지가 의원을 데리고 오라 했다며 거짓으로 속였다.
사안이 급박했고 어린아이가 이런 대담한 거짓말을 할 거라 생각지 못한 심 부관과 다른 무인들은 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양파를 눈에 문질러 울고불고 난리까지 쳤는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일단 혼나더라도 먼저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악중해가 의외라고 반응한 것처럼 난 혼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선배님께서 의원을 납치한 것에 별말씁을 안 하시다니.”
“그러게요······ 가 아니라, 납치라뇨!”
“응? 납치한 거 아니었어?”
“아니에요!”
난 의원에게 제대로 동의를 받았다고!
비록 내가 늦은 시간 의원네에 마구잡이로 들어갔고 새벽에 갑자기 나타난 누가봐도 무인으로 보이는 자들의 동행 요청에 의원이 많이 겁먹은 것 같기는 했지만······.
“하하하, 장난이야. 표정 봐.”
손을 뻗은 악중해가 볼을 조몰락거렸다. 난 그 손을 밀치고 앉은 의자에서 깡충 뛰어내려 공손히 인사했다.
“그럼 말씀 다 하신 듯하니, 전 이만 갈게요.”
“뭐, 벌써?”
“네! 더 하실 말 있으세요?”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감사인사는 핑계이고 누워만 있기 심심해서 나를 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때 객잔의 종업원 한 명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공자님, 여기 부탁하신 것 가져왔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이번에 그 납치범이 드디어 잡히지 않았습니까? 거리고 가게고 사람들이 다 나와 바글바글합니다.”
잡힌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이지만, 소문이 그리 난 듯했다.
종업원이 내 곁을 지나가는 순간 달달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나도 모르게 내 고개가 하인을 따라 움직였다.
이를 본 악중해와 마혜향이 작게 웃었다.
“그게 뭐예요?”
“용수당.”
용수당은 엿당 반죽을 늘여 실처럼 만들어 마구 감은 약간 실타래처럼 생긴 단 과자였다.
악중해가 악동처럼 웃으며 말했다.
“여기 과자점이 용수당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 너 먹으라고 사 오라고 한 건데······ 간다면 어쩔 수 없지. 어휴, 그런데 난 단건 별로라 이걸 어쩌나?”
나는 언제 나가려 했냐는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조금 뒤에 가도 될 것 같아요.”
마혜향과 악중해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막 용수당을 입에 넣으려 할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잠시 후 우리와 협조 중인 영조문의 제자가 소식을 알려 왔다.
“백리 대협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가요?”
난 벌떡 일어나 문지방을 넘어 달음박질쳤다.
객잔 계단을 거의 구르듯 내려가 걸어 들어오는 아버지께달려갔다.
“아버지 오셨어요!”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달려드는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내 뒤를 따라온 마혜향이 말했다.
“선배님, 일찍 오셨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마혜향이 그런 질문을 한 이유가 있었다. 남궁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함께 나갔던 당소용과 다른 남궁 세가의 무사들도 없었고 심부관만 아버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심 부관 옆을 본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가 옆을 눈짓하며 말했다.
“이 아이때문에 나 먼저 내려왔네.”
마혜향이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생존자입니까?”
당연히 아니지, 라고 생각하던 난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생존자라고? 분명 그땐 아무도 없었는데?’
아이는 그간의 고생이 절로 느껴지는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핏줄이 비칠만큼 창백하고 여윈 몸에 여기저기 찢어지고 크기도 맞지 않은 옷은 아이의 가녀린 몸을 더 부각시켰다.
머리칼도 엉망으로 자라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런 더러운 행색임에도 눈에 띄는 이목구비는 숨길 수 없었다.
그때 아이의 유리알 같은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심장이 거북할 정도로 쿵쿵 뛰었다.
아이를 살피던 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납치 피해자라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아이는 납치 피해자로 보기에 기이할 정도로 담담했다.
정확히는 아무 표정도 없다고 할까.
이 상황이 겁나고 당혹스러워야 정상 아닌가?
그때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연이 넌 뭘 쥐고 있는 것이냐?”
“아, 이거 중해 오라버니께서 사 주신 간식이에요. 같이 먹으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오셨어요. 드실래요?”
포장지를 열자마자 풍기는 단내에 아버지가 미간에 세로줄을 세웠다.
“······나는 됐다.”
헤헤, 웃은 나는 이번엔 아이를 향해 과자를 내밀었다.
“안녕, 너도 먹을래?”
“······.”
아이는 과자를 받지않고 멀거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 유명한 곳의 간식이래. 너도 한번 먹어 봐.”
“······.”
긍정도 부정도 않는 아이의 손에 과자를 반강제로 넘겼다.
“난 백리연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
아이가 아버지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사리 말 걸 수 없는 분위기란 뜻이었다.
아이가 느리게 입을 달싹였다.
그 순간 아이의 왼쪽 눈 아래 위치한, 눈물점이 보였다.
‘······어?’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이 아이를 어디서 보았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목이 떨어지던 그 순간 삐뚜름하게 올라가던 입꼬리와 가늘게 휘던 눈매.
아직도 내 목이 잘리던 순간이 선명했다.
그리고 내 예상에 도장을 찍듯 작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내 귓가를 찍어 내렸다.
“······야율.”
힘이 빠진 손에서 과자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야율.
이 소설 속 흑막인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야기 속에선 한참 뒤였다.
심지어 처음에는 흑막인 줄도 알지 못했다. 그저 악명을 떨치는 마교의 천살단 단장으로 강하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조차 없었다.
그렇게 정체를 감추던 흑막, 야율이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직접 죽였던 이유를 난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야율의 정체는 소설 중반이 넘어서야 조금씩 밝혀졌다.
그는 원래 무림 정파 가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종의 죄로 어린 나이에 악인곡이라는 곳에 떨어진다.
악인곡.
무림맹에서 죄질이 무거운 악인들을 가두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감시인도 필요 없었다.
그곳에 떨어진 자는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만큼 악명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야율은 어찌 된 일인지 그곳에서 나와······ 무림맹에 대한 증오를 불태운다.
대체 무슨 죄를 짓고 그곳에 갇히게 된 건지 남궁류청이 야율에 대해 알아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더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야율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는 자들은 이미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가 했는지는 따져 물을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악인곡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거기다 분명 저번에는 생존자가 없었는데?
충격에 빠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방에 돌아와 손에 찻잔까지 얌전히 들고 있었다.
‘아버지랑 얘기해 봐야겠어.’
나는 아버지가 묵고 계시는 바로 옆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종업원을 붙잡아 물었다.
“혹시 제 아버지 못 보셨어요?”
“아, 그 공자님은 좀 전에 객잔 밖으로 나가시던데요.”
뭐라고? 또 나가셨다고? 폭탄을 던져 놓고 나가시다니!
“감사합니다.”
종업원을 향해 인사한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