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 * *
천귀조와의 싸움 이후 일행은 숙소를 다시 영종문에서 객잔으로 옮겼다.
제자의 사망, 심지어 부문주가 천귀조였다는 진실에 혼란스러운 영종문에 더는 신세를 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당소용과 악중해, 마혜향까지 함께 옮기게 되자 남궁완이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그 자리에서 도망친 벽성율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검붉은 격자무늬 장식문을 열자마자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부르셨다면서요?”
악중해는 목숨을 건졌다.
응급처치한 의원의 말로는 조금만 늦었더라면 정말 위험했다고 했다.
하루 내내 정신을 잃고 있다가 간신히 깨어났다고 했다. 지금 악중해의 목소리만 들어선 다쳤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방 안 가득한 진한 약 냄새가 아니라면 정말 멀쩡하다고 믿을 지경이었다
“이리, 이리, 여기 앉아.”
활기차게 손짓하던 악중해가 나를 향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응?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어째 다친 나보다 더 안색이 안 좋은데?”
난 양 뺨을 문질렀다.
“아······. 티 나요? 잠을 좀 못잤어요.”
내 말에 악중해가 눈을 빛냈다.
“또 꿈이라도 꿨어? 무슨 꿈을 꿨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왜 기억이 안 나! 잘 떠올려 봐. 어?”
“선배, 그만하세요.”
나는 그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야율.’
그러니까 내 목을 날렸던 개자식이 나오는 악몽을.
회귀한 직후 난 꽤 오랫동안 야율 그 놈이 내 목을 날리는 꿈을 반복해 꿨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 듯 점차 나오지 않았는데······.
하필 이번에 아버지가 천귀조에게 상처를 입은 자리가 목이었다.
목덜미의 상처는 상당히 깊어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어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로 앞섶을 적신 채 돌아온 아버지를 보고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식은땀에 젖을 정도로 악몽까지 꾼 걸 보면 무척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야율에게 이번에 목이 베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난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듯 머리를 털었다.
그런 내 머리를 악중해가 쓰다듬었다.
“있지, 내가 곤륜파의 태상도사님을 알거든. 어때, 그분에게 가서 배워 보는 게?”
“네?”
뜬금없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아니면 무당파는 어때? 무당파엔 아는 분이 없지만 무림맹 호법 대사님이 무당파······”
“선배, 그만하세요. 연이가 놀라잖아요.”
“아니, 들어 봐. 선기가 있는 거라니까. 그게 아니면 어떻게 딱 알맞은 꿈을 꾸냐고?”
“연아, 중해 선배 말은 너무 귀담아듣지 마라. 장난이니까.”
“아니, 난 진심인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한번 여쭤볼게요!”
“······.”
“······선배가 알아서 해결하세요.”
“그······ 연아, 설마 의강 선배님께 정말 여쭤볼 건 아니지?”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말했다.
“왜요? 여쭤보면 안 돼요?”
“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태상도사님을 소개해주신다면서요! 만나 뵙고 싶어요!”
“그······ 혜향. 선배님은 언제 돌아오시지?”
눈을 굴리던 악중해가 말을 돌리듯 물었다.
“글쎄요. 오전에 천귀조 근거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왔으니, 오늘은 좀 늦으시지 않을까요?”
“어? 근거지를 찾았대?”
악중해가 벌떡 일어나려 들자 마혜향이 깜짝 놀라 말렸다.
“그걸 왜 말 안 했어?”
“어차피 쉬셔야 하잖아요.”
“그래도 이런 건 알려 줘야지!”
아, 드디어 발견했군.
아버지와 남궁완은 천귀조가 이 근방을 빠져나간 듯 보이자 추적을 그만두고 천귀조의 근거지를 찾는 데 집중했다.
납치된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로 사흘째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는 것에 초조했는데 오늘 찾은 모양이었다.
악중해가 턱을 문지르며 진지한 낯을 했다.
“납치된 아이들도 찾았으려나?”
“진짜 천귀조의 근거지라면 찾을 수 있겠죠.”
“그래. 다들 무사했으면 좋겠네.”
하지만 악중해의 바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살아남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 * *
오전 나절 산속을 뒤진 후 발견한 동굴 앞, 백리의강에게 딸아이의 목소리가 절로 떠올랐다.
“전 왠지 산속 동굴 같은데 있을 것 같아요!”
“천귀조가 그런 들키기 쉬운 곳에 근거지를 두겠나?”
“뻔하긴 하지만 처음엔 아무도 천귀조가 아이들을 납치했을 거라 예상 못 했으니까요! 음, 무공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갈 수 없는 동굴 같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연이 말대로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별것 없다고 여기고 지나칠 동굴에서 천귀조의 흔적을 발견했다.
당소용이 남궁완을 돌아보며 말했다.
“최소 일주일은 드나든 흔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귀조가 이리로 오진 않았단 소리로군. 흠, 그런데 그 꼬맹이 말대로 동굴을 근거지로 삼다니.”
턱을 쓰다듬던 남궁완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정말 선기가 있는 거 아닐까?”
“하하, 저도 연이의 말이 떠올라 혹시나 하여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는데······.”
“우연일세.”
당소용의 웃음기 어린 말을 백리의강이 딱 잘라냈다.
남궁완이 백리의강을 돌아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야, 당연히 우연이겠지. 그저 연이 운이 꽤 좋다는 말일 뿐일세. 두 번째지 않은가?”
“······.”
남궁완은 그를 의심스럽게 흘겨보고, 다시 당소용과 어떻게 들어갈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는 백리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걸 들으며 백리의강은 살짝 안도했다
‘······그래, 그저 우연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여도 기이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깨어난 후 딸은 완전히 변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저렇게 한 번에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죽다 살아나니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는 이야기도 꽤 들어 본 적 있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의 성격을 바꾸기엔 연이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성격과 태도가 바뀌는 이는 보통 삶에 후회를 가진 이들이 아닌가?
삶에 후회를 가지기엔 연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아니면 백리 세가에 적응하는 동안 내보이지 못한 원래 성격일수도 있었다.
자신은 딸과 같이 지낸 시간도 짧았다. 아니, 없다고 보아도 됐다. 그러니 원래 성격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왠지 그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악몽을 꾸었다며 소란을 피웠던 일. 정말로 악몽을 꾼 것이었을까?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아이가 갑자기 눈물 바람으로 응석을 피우고, 정말로 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저 우연인 걸까?
하지만 이런 의심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연이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거라면 그 원인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비였기에······.
“의강, 들어가지. 여기서 확인할 건 다 했네. 소용, 너는 입구를 지키거라.”
“예. 모두 조심하십시오.”
동굴은 처음엔 몸을 잔뜩 숙여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으나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사라지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막다른 길이 나왔다. 들어온 길 말고는 삼면 모두 단단한 돌벽으로 막혀 있었다.
몸을 숙인 백리의강이 바닥을 손가락으로 살짝 쓸었다.
남궁완이 입을 열었다.
“한참 됐어. 적어도 달포는 넘어 보이네.”
말라붙은 검붉은 색 핏자국이었다.
남궁완이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같이 주변을 살피던 백리의강이 횃불을 꽉 쥔 채 훌쩍 뛰어올랐다.
횃불의 빛이 꺼질 듯 확 줄어들어 동굴이 어둠에 잠겼다.
벽의 튀어나온 곳을 두 번 디딘 백리의강이 착지했다.
그이 움직임에 꺼졌나 싶던 횃불이 다시 타올랐다.
하지만 더는 횃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넓은 동공이 눈앞에 드리웠다.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천장 일부가 뚫려 있어 그곳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마치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아니었다.
이건 폭포소리였다.
뒤따라온 남궁완이 감탄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었으니 찾을 수가 없었지.”
무공을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올 수 없는, 숨기엔 최적인 장소였다.
잠자리로 쓴 것인지 짚더미 위엔 털가죽과 모포가 나뒹굴고 있었고, 한쪽엔 솥단지와 식기, 장작도 쌓여 있었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발견한 남궁완의 안색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무공을 익힌 자라도 무척 번거로운 출입 방식.
천귀조가 정말로 이곳에 납치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면······그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나갈 계획이 없었을 확률이 높았다.
“대체 천귀조는 왜 아이들을 납치해 온 거지?”
백리의강이 입을 뗐다.
“자네에게 알려 줄 것이 있네.”
“무엇?”
백리의강은 천귀조가 범인임을 알았을 때부터 아이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렸다.
“천귀조가 아이를 납치한 것은······.”
그 순간, 저 멀리 공동 반대편에서 심 부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