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더는 소리도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악중해가 들고 있던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주저앉았다.
“중해 선배?”
마혜향이 악중해에게 다가가자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마혜향의 얼굴이 굳었다.
허리춤의 상처를 감싼 악중해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울컥 스며 나왔다.
놀란 마혜향이 악중해의 손을 치우고 옷자락을 들쳤다.
“무슨······!”
상처가 상당히 깊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악중해의 옷도 짙은 색이었기에 이렇게 심각한 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혜향이 재빨리 혈 자리를 짚었다. 하지만 출혈이 아주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악중해가 마혜향의 손목을 붙잡았다.
“······괜찮아.”
“상처가 이 지경인데······ 말을 하셨어야죠!”
“말하면, 어쩌게? 뭐, 의강, 선배님 혼자 싸우시게 두게? 완 선배님부터 해독, 하는 게 맞아.”
마혜향이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지혈하듯 꽉 눌렀다. 옷자락이 순식간에 붉게 젖어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마혜향이 초조한 얼굴로 당소용과 남궁완을 보았다.
이대로 지체한다면······.
하지만 당소용과 남궁완을 두고 자리를 뜰 순 없었다.
“성율이 사람, 데려, 오, 겠지.”
마혜향이 피에 젖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벽성율만 아니었더라도 악중해가 이리 다칠 일도 없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뺀 벽성율이 과연 다시 돌아올까?
하릴없이 시간만 초조하게 흘러갔다.
당소용이 최대 한 식경(약 30분)정도 걸릴 거라 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수는 여럿.
마혜향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검을 들고 섰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척이 파악됐다. 무공을 익힌 세 사람과 일반인 한 사람. 아니, 두 사람.
그리고 그들 중 벽성율의 기척은 없었다.
영종문의 제자들도 아니었다.
무게 있는 걸음. 조금 더 나이가 있고 무공 수준이 높았다.
“제길.”
마혜향은 검을 틀어쥐고 자세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수풀의 흔들림이 가까워졌다. 긴장에 마혜향의 손등엔 솜털까지 바짝 섰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저깄다! 빨리, 빨리요.”
마혜향이 눈을 부릅뜨는 것과 동시에 수풀을 가르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남궁완의 부관인 심지평이었다.
심지평이 마혜향의 검을 보고 눈초리를 치켜 올렸다.
“저에게 겨누신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마혜향이 황급히 검을 거뒀다.
쓱 공터를 둘러보던 심지평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소가주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혜향이 남궁완에게 향하는 심지평을 붙잡았다.
“심 부관님, 의원을 데려와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예?”
“의원이요! 중해 선배가 지금 위독합니다!”
“위독하다니요? 어저다가요?”
“심 부관님 이럴 시간이 없어요!”
“잠시, 잠시만 진정하십시오. 의원 지금 오고 있습니다.”
“네?”
“아마, 지금쯤······. 아! 저기 왔네요.”
수풀을 가르고 남궁 세가의 무사들과······ 한 아이가 나타났다.
“백리연?”
마혜향이 두 눈을 의심했다.
뒤이어 나타난 다른 무사의 등에는 끙끙 신음을 토하는 노인이 업혀 있었다.
* * *
달빛조차 거의 닿지 못하는 나무 아래 서로 다른 색을 머금은 희미한 빛들이 충돌하길 반복했다.
스겅!
빛이 지나간 자리의 나뭇가지가 잘렸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나뭇가지를 천귀조가 걷어찼다.
아이 몸통만 한 굵기의 나뭇가지가 맹렬히 날아오는 것을 백리의강이 두동강냈다.
그 사이 천귀조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벽성률, 그 형산의 머저리한테 재미있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로 목소리가 웅웅 울려 퍼지듯 들려와 천귀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네 딸이 아픈 게 병신이라서라며?”
“······.”
“무가에서 단전 폐인이라! 하하하하하!”
천귀조의 웃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백리의강이 검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내는 것과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이를 쫓던 백리의강이 갑자기 훅 꺼지는 바닥에 자신이 베어낸 나무를 걷어차듯 밟으며 몸을 뒤로 뺐다.
그 틈을 탄 천귀조의 공격이 백리의강의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콰드득!
괜한 나무만 한 번 더 부러지며 비탈을 굴러갔다.
“네 놈이 고상한 척 저지른 짓으로 쌓인 원한이 한둘이 아닐 텐데!”
카강!
다시 천귀조의 손과 백리의강의 검이 맞부딪쳤다.
“무공도 못 쓰는 폐인이라니! 하하하하! 네 딸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그 순간 천귀조의 공격을 막은 백리의강의 검 끝이 흔들리며, 검을 두른 푸른빛이 흐려졌다.
“······!”
뻔하다면 아주 뻔한 도발이었다.
그런 도발이 통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천귀조가 놀랄 정도였다.
천귀조는 그 틈을 놓치지않고 백리의강을 향해 내공을 듬뿍 머금은 손을 휘둘렀다.
“죽엇!”
백리의강이 몸을 빼며 고개를 비틀고,
스각!
천귀조의 손이 백리의강의 목덜미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찢긴 목덜미에서 흐르는 피가 백리의강의 상의를 적셔 들어갔다.
천귀조가 아쉬움에 입술을 훑었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그대로 목을 부러트릴 수 있었을 텐데.
천귀조가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 나가는 찰나, 몸 왼쪽에 솜털이 바짝 솟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재빨리 몸을 틀었다.
간발의 차로 검이 옆구리를 비껴 나갔다.
“남궁완! 어떻게 벌써······!”
그 순간 화끈한 느낌과 함께 고통이 퍼졌다.
남궁완의 공격을 피하느라 저도 모르게 시선을 뗀 백리의강의 검이었다.
천귀조가 이를 악물며 재빨리 몸을 뺐다.
남궁완이 바짝 다가왔다.
“의강! 괜찮나?”
“······천귀조를 쫓게.”
백리의강이 목덜미 혈을 누르며 말했다.
백리의강을 힐끗 본 남궁완이 지체하지 않고 천귀조를 쫓았다.
잠시 뒤 숲 저편의 소란에 놀란 새들이 파다닥 날아갔다.
쾅! 콰쾅! 쾅!
별들이 늘어선 밤하늘 아래 남궁 세가의 검법이 존재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 소리가 점차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잠시 뒤 남궁완이 다시 백리의강 앞에 나타났다.
“천귀조는?”
“쯧, 놓쳤네.”
“상처를 입었으니 오래 도망치지 못할 걸세. 계속 쫓아야······.”
나서려는 백리의강을 남궁완이 막았다.
“······?”
“자네 몸은 괜찮나?”
백리의강이 완전히 빛이 사라진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백리의강의 검이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신경쓰이게 했군. 그래, 이만 돌아가지. 너무 멀어지면 안 되니.”
이 근방은 천귀조에게 익숙했다.
그가 마음먹고 도주하기 시작하면 두 사람만으로는 쫓기 힘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완이 검을 휘둘러서 맺힌 피를 털어 냈다.
“천귀조의 실력이 상당해. 10년전 자네한테 패배한 주제에······.”
남궁완은 급하게 오느라 해독이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로 본 실력의 7할 정도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천귀조는 부상을 입었다. 그걸 생각했을 땐, 이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10년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지?”
“······.”
백리의강이 그늘진 낯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몇 번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던 백리의강이 말했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이를 부탁하네.”
“웬 재수 없는 소리?”
질색한 남궁완이 손사래 치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어떻게 이리 때맞춰 왔나? 부문주가 천귀조인 걸 알고 온 건가?”
백리의강이 고개를 저었다.
“영종문 부문주가 천귀조인 건 몰랐네. 하나······.”
남궁완이 설명을 요구하듯 백리의강을 봤다.
백리의강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끌었다.
“하나?”
“······연이가.”
“연이가 뭐?”
“연이가······.”
“연이가 뭐! 자네 날 답답하게 만들어 죽일 생각인가?”
살짝 미간을 찡그린 백리의강이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자네들이 죽는 꿈을 꾸었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기에 온 거였다네.”
남궁완이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장난치지 말고. 자네 아까부터 왜 자꾸 헛소리하는 겐가?”
“······.”
“······.”
“······.”
“아니, 자네 정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