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
44화
* * *
만신의에게 가는 길은 험난했다.
폭우가 쏟아졌다가 그치길 반복했고, 진창으로 변한 길에 마차 바퀴가 몇 번이나 빠졌다.
덜컹.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남궁완이 말했다.
“내리거라.”
“네.”
문틀을 잡고 조심스레 마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남궁완이 내 뒷덜미를 확잡아챘다.
“으헉.”
그러곤 그대로 옆구리에 안아 들어 달랑이며 걸어갔다.
그 행동이 너무나 당연해 순간 내가 사람인지 고양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기서부터 말을 타고 저곳에 가 쉴 것이다.”
남궁완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드디어 풀 쉴 수 있는 곳이 나왔다.
비를 맞으며 말을 타고 밤새워 불침번까지 번갈아 서야 했던 아버지와 남궁완, 그리고 호위무사들도 슬슬 체력이 부칠 때였다.
남궁완이 물었다.
“말은 탈 줄 아느냐?”
“아뇨.”
탈 줄 알았지만 지금은 전혀 배운 적 없으니 아는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럼 너는······.”
아버지를 향해 가는 남궁완의 옷자락을 붙들고 말했다.
“전 남궁완 아저씨랑 같이 탈래요!”
“나랑?”
“네!”
야율의 몸에 내공이 있는 것을 눈치챌 수도 있기에 야율은 최대한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게 좋았다.
그러니 아버지가 야율과 함께 있는 편이 낫다.
때마침 야율과 눈이 마주쳤다.
야율이 내 의도를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궁완이 나를 태우고 턱을 치켜든 채 아버지께 말했다.
“쯧쯧, 그러게 누가 딸을 두고 한눈 팔랬나? 연이는 내가 데려가마.”
“······.”
아버지는 침묵했으나 내가 대신 발끈했다.
“아버지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뭐야, 싫으면 내려.”
“으앙.”
투닥거리며 반 시진이 지나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산중 마을이었다.
멀리서 보였던 연기는 가정집에서 불을 때는 연기였다.
마을에 다가가자 우리 일행을 처음 발견한 아낙네가 바구니를 들고는 황급히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잠시 후 마을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처음 보는 사내들인데.
이 산골짜기에 무슨 일이지?”
“왜, 며칠 전에 온 사내랑 분위기가 좀 비슷하지 않나?”
“촌장님은?”
“제일 앞의 말 탄 사내말이야.
캬, 내 평생 저리 잘생긴 사람은 처음 보는구먼.”
“뒤의 사내는 어떻고!”
“흥, 곱상하게 생긴 게 순 계집애 같구먼 뭐가 좋나?”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 수군거리거나 겁에 질려 도망가거나 숨어서 기웃거렸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해······.”
남궁완의 부하가 나타나질 않았다.
원래 이쯤에서 이 마을에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남궁완의 부하와 조우했다.
그 후 여기에 짐을 풀고 하루 푹 쉰 후에 더 안쪽의 만신의가 있는 촌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 촌락은 정말 작은 곳이었기에 이 정도의 인원이 묵을 곳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구경 나온 판에 남궁완의 부하가 우리가 온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땅딸막한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노인이 물었다.
“이 촌마을에 오실 분들은 아닌걸로 보이외다. 무슨 일로 오셨소?”
심 부관이 나서서 물었다.
“어르신, 혹시 이 마을에 일주일 정도 먼저 온 서른 중반의 사내가 있지 않습니까?”
“있소만, 그자는 왜 찾소?”
“저희의 일행입니다. 혹시 보지 못하셨는지요?”
“아~ 자네들이 그럼 그 언덕 큰 댁의 집을 빌린 그자들이오?”
“아마도 맞을 겁니다.”
“어허, 그런데 참 으흠······.”
노인이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이더니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큰 언덕댁을 불러올 테니.”
노인이 손짓으로 아이 한 명을 지목해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가 까무잡잡한 아낙네를 데려왔다.
우리를 본 아낙네는 살짝 겁에 질린 기색이었다.
“그 분이 제 집을 빌린 건 맞습니다만······.”
“그런데요?”
“이틀 전부터 안 보이십니다.”
“안 보인다고요?”
“예에. 그, 짐도 다 그대로 놓아둔 채 사라지셨어요.”
다시 촌장이 나서며 말했다.
“하여 우리도 사람을 풀어 찾아보았소만, 못 찾았소. 다급히 저 쪽 촌락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걸 보았다는 아이가 있긴 하오.”
남궁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남궁완 품에서 살짝 고개를 빼자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가파른 산길에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걷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것이었다.
하지만 경공술을 펼치는 이들의 속도엔 주저가 없었다.
고개를 최대한틀어 앞을 보자 저만치 앞서 나가는 아버지의 뒷 모습이 보였다.
“머리 다시 넣어라.”
“넵.”
남궁완의 딱딱한 목소리에 움츠리며 다시 얌전히 붙들고 매달렸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라도 지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달린 후, 멈춰 섰다.
‘도착한 건가?’
나는 남궁완 아저씨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곤 망연한 얼굴을 했다.
주변을 가득 채운 매캐한 탄내.
새카맣게 탄 서까래는 무너져 바닥에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그 서까래를 타고 아직 마르지 못한 빛물이 재와 흙이 뒤섞인 웅덩이로 뚝뚝 떨어졌다.
이곳은 팔괘촌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불 타 버린 팔괘촌.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담담해진다고들 하지 않나?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오면서 남궁완이 각패를 내어도 만신의가 치료를 거부하면 어쩌나, 야율의 치료는 어찌 부탁해야 하나, 정말 치료가 가능할까, 등등 많은 상상을 하였으나 그중에 촌락이 통째로 불탄 건 없었다.
“다 찾았나?”
“예. 근방은 일단 다 찾아보았습니다. 이자들이 전부입니다.”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조사한 무사들은 모든 시신을 모아 왔다.
총 13구.
그렇지 않아도 굳어 있던 남궁완과 아버지의 얼굴은 더 딱딱해졌다.
‘모든 시신에 자상이 있었다.’
비가 와 다 타지 못한 시신의 상처는 더욱 확실했다. 단번에 숨통을 관통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연아, 조금 떨어지거라.”
“네.”
아버지는 마음 같아선 나를 시신과 멀리 떨어트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너무 멀리 떨어트릴 수도 없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나는 내곁의 야율을 살짝 살폈다.
‘야율은······ 괜찮네.’
보통 아이라면 이 상황과 시신에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야율은 역시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무심한 얼굴의 야율은 시신에도 이 상황에도 전혀 관심없어 보였다.
너무 오래 보고 있었는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살피고 돌아온 심 부관이 남궁완을 향해 말했다.
“팔괘촌 주변은 안전합니다. 수색 범위를 좀 더 늘릴까요?”
“그래. 조금 더 늘리지. 조충은?”
“찾지 못했습니다.”
조충은 팔괘촌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남궁완 부하의 이름이었다.
“다만 전투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조충인가?”
“비가 와 흔적이 너무 옅어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시신을 살폈다.
‘둘, 넷, 여섯······ 열 셋. 아이 다섯에 어른 여덟. 모자라.’
어른과 아이 각각 시신 한 구가 부족했다.
원래도 작았던 팔괘촌은 한차례 산사태로 많은 사람이 죽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부분 떠났다.
남은 이들은 모두 합쳐야 채 스무 명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난 예전에 이곳에서 열흘이 넘게 머물렀다. 몇 명이 살고 있는지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남궁완이 심부관을 향해 물었다.
“이 촌란 사람들이 몇 명인지 아나?”
“스무 명 안팎으로 압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예상 못하여서 정확한 수는 묻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쯧, 조충은 대체 어디 간 거지? 팔괘촌에 관해선 조충이 알고 있었을 텐데.”
“열다섯 명이요!”
나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남궁완이 의아하게 나를 보았다.
“네가 그걸 어지 아느냐?”
“여기 오기 전 들른 마을에서 물어봤어요!”
“그래?”
남궁완이 고개를 기울였으나 마을에서 내 곁에 계속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마을에서 내내 내 곁에 붙어 있었던 야율은 의아하게 나를 보았다.
심 부관이 말했다.
“아기씨의 말이 맞는다면 두 사람이 부족합니다.”
“생존자나 못 찾은 시신이······.”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 나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아버지, 저 이제 돌아다녀도 돼요?”
“그래. 하지만 멀리 가선 안 된다.”
“네!”
발을 떼는 내 뒤를 야율이 따랐다.
나는 발 닿는 방향으로 가는 척 먼저 만신의가 머물던 집으로, 아니 집이었던 곳으로 향했다.
화마가 한참 집을 삼킬 때 비가 쏟아졌는지 무너진 건물 안쪽은 일부 타다 만 것들이 있었다.
불에 타다 만 책은 흠뻑 젖어 이미 내용물을 전혀알아볼 수 없었고, 일부 남아 있는 약재들 또한 재와 흙탕물 속을 뒹굴고 있었다.
‘어른 한 명에 아이 한 명.’
왠지 모르게 만신의가 살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신의의 곁에는 시중을 들던 꼬마애 하나가 있었다.
산사태로 친지를 모두 잃고 실어증에 걸린 아이였는데, 크게 다쳐 죽을 뻔한 아이를 만신의가 살려 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아이는 만신의를 따르는 감정이 유독 남달랐다.
만신의가 내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이 촌락을 빠져나갈 때 우리를 붙잡고 시간을 벌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만신의가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기꺼이 우리를 속여 넘겼다.
‘그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나는 그 아이가 우리를 속이고 하루 내 숨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이 나무였던 것 같은데······.’
만약 그 아이가 무사히 숨었다면 같은 곳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내가 직접 찾아낸 것이 아니었기에 대충 전해 들은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한차례 커다란 나무를 돌았을 때였다.
야율이 나무뿌리를 가리켰다.
“이거 찾아?”
“어?”
무심코 지나칠 만한 작은 틈새가 나무뿌리에 있었다.
‘설마 이 조그만 틈에?’
살피는 것도 힘든 작은 구멍 안을 어찌어찌 들여다보자 작은 아이 한 명이 쭈그린 채 있었다.
‘여길 어떻게 들어간 거야? 이러니까 쉽게 못 찾······아니, 그보다······.’
우리의 기척을 느꼈음에도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내가 코 아래 손가락을 대 보자 미약한 숨과 열기가 느껴졌다.
살짝 안도한 내가 아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얘 , 일어나 봐!”
그 순간 아이의 머리가 툭 쓰러졌다. 이마에 손을 올리자 델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