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
45화
* * *
간신히 건물 밑동이 타지않고 남아 있는 곳에 발갛게 열꽃이 오른 아이가 누워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어때요?”
“열이 심하다. 탈수 증상도 있고. 하루 이상은 방치된 듯한데, 이대로라면······.”
아버지가 아이의 목과 오금을 받쳐 들었다.
“어서 마을로 가야겠다.”
“아니요. 가도 소용없어요.”
나는 그런 아버지를 붙잡으며 말했다.
“가까운 마을엔 의원이 없잖아요.”
“아, 그랬지.”
처음 남궁완이 만신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 얘기한 적 있었다.
팔괘촌에서 사흘 넘게 떨어져 있는 마을에야 의원이 있다고
“그렇다고 큰 마을까지 데려가기엔 이 아이가 버틸 수 있을지······.”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이 아이가 깨어나야 만신의에 대한 걸, 이 마을을 습격한 자들에 대한 걸 물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말도 할 줄 모르고 글도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건 아주 간단한 것뿐일 테지만 그조차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나는 문득 떠오른 걸 서둘러 꺼냈다. 마노 장식의 작은 함이었다.
“아버지 일단 이거 한번 먹여 봐요.”
“그건?”
“석 태의가 제게 준 약이에요. 기력이 떨어지면 먹으라고 했는데, 음,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뭐든 먹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가 먹으라고 준 것이었지만 난 마차만 타면 토해서 못 먹었다.
“그리고 아까 보니 불타다 만 집에 약초가 좀 남아 있었어요. 쓸만한 약초가 있는지 찾아볼게요!”
“약재를 골라낼 수 있겠느냐?”
“당연하죠! 아버지가 제게 지금껏 먹이신 약만 합쳐도 의원도 열 수 있을걸요.”
그만큼 옆에서 본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방에만 들어가면 온갖 치료와 관련한 서적과 약재로 가득했으니.
‘거기다 회귀 전에 공부한 것들도 있고.’
어떻게든 낫고 싶어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 부탁한다. 나는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내공을 넣어 보마.”
“네! 그럼 저 가 볼게요!”
나는 나를 따라오려는 야율에게 아이의 머리에 올려 놓을 만한 수건과 물을 가져오라 부탁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약초를 싹 쓸어 돌아오니 아버지는 자리를 비우셨고 야율만 있었다.
야율은 아이의 머리와 목, 팔다리를 찬물로 닦아주고 있었는데그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아버지는?”
“찾아올 짐이 있으시대.”
“그래?”
“······.”
“······.”
‘어색해······!’
침묵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괜히 목덜미를 긁적이며 야율을 흘끗 보았다.
나는 아직도 야율을 어찌 대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과거는 잊고 잘 대해 줘야지 하고 마음을 먹다가도 저 얼굴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야율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익숙해 보이네?”
“어머니가 자주 아프셨거든.”
“어머니가 계셔?”
“······?”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나? 하긴 어머니 없이 태어난 아이가 있을리가.
난 어색하게 넘겼다.
“아, 난 안 계셔서.”
“안 계신다고?”
“응. 우리 엄마는 내가 기억도 하기 전부터 안 계셨어.”
아니 내가 왜 얘랑 이런 얘기를 하는거지?
“대신 아버지가 계시잖아.”
“그렇지.”
절로 미소가 나왔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떤가? 이런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최고의 행운을 얻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절대로 이번엔 잃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프셨다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흑막의 과거가 흥미를 일으켰다.
“그럼 지금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돌아가셨구나······”
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누워있던 아이의 눈꺼풀이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일어나려나 봐. 정신이 들어?”
이마를 짚어보자 그새 열도 꽤 내려있었다.
‘와, 그 약 효과 하나는 좋은데.’
초점이 흐린 아이의 눈이 허공을 떠돌다 나를 보곤 크게 눈을 떴다.
나는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설명했다.
“네가 고목 뿌리 안에 쓰러져 있던 걸 발견했어. 우리는······.”
그때였다.
쿠르릉. 갑자기 땅이 울리면서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무슨 소리지?”
그때 누워있던 아이가 내 팔을 꽉 붙들어 잡았다. 방금까지 쓰러져 있던 아이의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아이는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그때 또다시 굉음이 들렸다.
쿠르르르릉.
이번엔 매우 가까웠다.
아이에게 붙들려 있던 난 아이와 함께 휘청 넘어질 뻔했다.
이러다 같이 넘어질 것 같아 아이를 보았지만 비틀거린 건 아이가 아니었다.
쭈뼛 모골이 송연한 느낌에 고개를 번쩍 든 난 볼 수 있었다.
산 중턱 비탈의 나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졌다. 바닥이 흔들거렸다. 산사태였다.
* * *
토톡, 톡, 토톡, 톡.
반복되는 소리가 천천히 정신을 깨웠다.
아프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 깨달았다.
‘나······ 살았네?’
거기에 돌바닥 같은 곳에 엎드려 있다는 것 또한.
토사에 휩쓸릴 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애들은 아버지가 무사히 잡았으려나?
“윽.”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난 바닥을 짚은 팔에서 찌르르 올라오는 통증에 신음했다.
“부러진 건 아닌 것 같고, 금이 갔나?”
뭐, 목숨을 건진 게 어디냐마는.
주변을 살피던 난 인상을 찡그렸다.
“여긴······ 뭐지?”
평평한 돌바닥과 벽을 보아 인공으로 만든 곳이었다.
심지어 어디선가 들어온 희미한 빛으로 미약하게 사물을 분간할 정도는 되었다.
“아. 아. 목소리가 울리는 걸 봐서는 동굴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 난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산사태로 무너진 듯한 벽에 커다란 돌들이 얽혀 있었다. 이곳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저 돌에 깔려서······.
“으.”
뒤늦게 다시 팔의 통증에 신음했다.
몇 걸음 걸어가던 난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저번엔 분명 산사태 같은 건 없었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던 난 품속을 뒤적거렸다. 다행히도 약함이 만져졌다.
잠금쇠 부분이 망가졌는지 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약을 대충 씹어 삼킨 지 조금 지나자 통증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확실히 약이 효과가 좋네.”
이를 악문 난 벽을 짚고 일어났다.
조금 걷자 희미한 빛의 정체를 알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벽에 박혀 있는 야명주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돌무더기를 조금 벗어나자 퀴퀴한 오래된 먼지 냄새만 났다.
이런 지하에 곰팡내가 없다니.
‘환기가 잘되고 있다는 뜻인데······.’
더군다나 걸을수록 질리게 맡았던 향이 느껴졌다.
약재 향.
‘이런 곳에 약재 향이라고?’
나는 의심스럽게 향이 짙어지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곧이어 반쯤 열린 석문이 보였다.
그 안은 미약한 빛만 있는 복도에 비하면 훨씬 밝았다.
온몸으로 석문을 밀어 비집고 들어간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 한가득 온통 선반뿐이었다.
‘서고······ 아니, 창고인가?’
선반엔 온갖 물건들이 있었다.
책, 죽간,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나무함부터 칸칸이 채워진 손가락만 한 수십 개의 자기병들.
한쪽 벽의 서랍엔 온갖 약초들이 가득했는데, 무슨 약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내 키로는 위쪽의 선반은 확인조차 할 수 없었고.
지하에 이런 곳을 두었다니.
‘설마 여기 만신의의 창고인 건가?’
그게 가장 유력했다.
자기병 하나를 꺼내 낑낑거리며 열자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질겁한 나는 다시 닫아 원래 자리에 두었다.
그 옆의 육각함을 열자 이번엔 웬 단약이 나왔다. 그리고 여는 족족 상자마다 온갖 약들이 나왔다.
몇몇 상자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귀하기로 유명한 비약이었다.
‘이게 태청환이라고? 이런 것도 가지고 있다니. 대단한데?’
내공을 정순하게 하고 혈도를 맑게 해 주는 약이었지만 재료를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 아주 소수만 만들어지는 약이었다.
‘아버지한테 드리고 싶다······.’
한참 구경하던 난 아무 상자에나 걸터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나가는 길 어딨어!’
약발도 떨어져 가는지 어지럽고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탁탁.
어딘가 희미하게 벽 같은 걸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