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지만,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반복됐다.
‘설마! 아버지가 날 찾고 있는건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게 아니면 누가 이런 벽을 두드리고 다니겠어?
벌떡 일어난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선반이 가로막았다.
아까 내가 살펴본 환약들이 잔뜩 들어 있던 선반이었다.
한참을 살피자 선반 아래 먼지가 한방향으로 쓸려간 듯한 자리가 보였다.
‘어떻게 여는 것 같은데?’
선반을 밀고 당기고 한참, 별 생각없이 도자기를 들자 덜컹 소리와 함께 벽과 선반이 옆으로 주욱 미끄러졌다.
‘열렸······ 피 냄새?’
역한 냄새에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안으로 발을 디뎠다.
더듬더듬 계단을 올라가자 석실이 나타났다.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창고 같은 곳에 비하면 천장도 낮고 훨씬 작았다.
석실 안 돌로 만든 탁자 위엔 무언가 물품들이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가 착각한 것을 깨달았다. 그건 탁자가 아니라 관이었다!
석관에 다가가던 난 신발 바닥이 들러붙는 듯한 느낌에 무심코 바닥을 보았다가 숨을 헉 들이켰다.
반쯤 말라붙은 핏자국. 아니, 이 정도면 피 웅덩이였다. 피 웅덩이는 관을 타고 고여 있었다.
피 웅덩이를 따라 조심스럽게 석관 뒤로 향한 난 우뚝 멈춰 섰다.
“······!”
사람이 있었다.
석관에 기대어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미동도 없었다.
재빨리 맥을 짚으려 피부에 손을 대는 순간, 맥을 따질 필요도 없이 싸늘한 기운이 먼저 죽음을 알렸다.
‘죽은 지 꽤 됐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미 굳어 버린 시신은 손에 검을 꽉 쥔 채였다.
그 검을 자세히 살피려던 때였다.
“이, 쪽이다.”
“······!”
“놀, 랄 것 없다. 내가······ 너를 불렀으니.”
당장이라도 숨이 꺼질 듯한 목소리였다.
석관 맞은편 벽, 반쯤 어둠에 잠긴 곳에서 들려왔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하얀 머리칼과 수염으로 그가 나이 지긋한 노인인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경계를 감추지 않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께서 저를 부르셨다고요?”
노인이 말없이 손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탁, 탁, 탁.
내가 들은 두드리는 소리는 이 노인이 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백리연이로구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쿨럭 기침을 토한 노인이 이어 말했다.
“흐흐, 왜 그러느냐? 나를 찾지 않았느냐?”
“제가 어르신을 찾았다고요?”
내가 찾다니 누굴? 이라는 의문과 함께 바로 떠올랐다.
“설마······만신의?”
“흐흐. 그래.”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살아 있었어······!’
나는 황급히 만신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자 만신의의 상태도 상당히 나빠 보였다.
“괜찮으세요?”
나는 부축을 위해 만신의의 어깨를 짚었다가 화다닥 놀라며 손을 뗐다. 손바닥에 피가 한가득 묻어났다.
“치료를······ 약을 가져올게요!”
만신의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되었어. 이미, 콜록, 콜록, 이미 난 글렀어. 척추가 부러졌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흐흐, 웃은 만신의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내공 폐인이군.”
“네? 그걸 어떻게······? 그러고보니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만신의의 시선이 내 등 뒤의 시신을 향했다.
“저자, 남궁 세가의 무사일세.”
“설마, 조충이란 무산가요?”
팔괘촌으로 갔다가 사라진 남궁세가의 무사.
“크큭, 글쎄. 이름을, 들을 시간이 없었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 세가의 무사라면 실력도 상당할 텐데 대체 누가······?’
“어르신, 어떤 자들이 습격했는지 아시나요?”
회귀 전엔 분명 이런 일 따위 없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뭐가 어디서 달라진 것인지 알아야 했다.
내 질문에 만신의는 질문으로 답했다.
“위는, 마을은 어찌 됐나?”
“어······.”
알려 주어도 괜찮을까?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 충격을 받아 더 나빠질까걱정되었다.
만신의가 담담히 말했다.
“사실대로 알려 주게.”
“······모두 죽었어요. 그리고 다 불탔어요.”
“······그래.”
내 반응으로 이미 예상하였던 듯 만신의는 담담히 말했다.
“아! 맞아, 한 명은 살았어요.”
“살았다고? 누가 살았느냐?”
“그 소······.”
아차, 무심코 이름을 말할 뻔했다.
“말을 못 하는 아이였어요.”
“그래? 그렇군. 다행이야, 다행. 그 아이의 이름은 소녹일세. 나는, 녹아라고 불렀지.”
“나무뿌리에 숨어 있던 걸 찾았어요. 그런데 산사태가 일어나서 아버지가 그 아이, 소녹을 붙잡은 걸 보긴 했는데 제가 휩쓸려서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산사태라. 소리는 들었다. 네 아버지라면······ 백리의강?”
“네.”
“그의 인품과 실력은 나도 들어봤지. 그게 사실, 이라면 말이야.”
“사실이에요!”
나는 발끈하여 소리쳤다.
흐흐, 웃은 만신의가 피를 대충 뱉어 내고 물었다.
“그리 잘난 이가 왜 너를 두고 녹아를 구했느냐?”
“그건······!”
설명하려고 하니 이를 어떤 식으로 조리있게 말할 수 있을지 애매했다.
“그건 아버지 실력 때문이 아니에요.”
나는 천천히당시 벌어진 일들을 떠올렸다.
산사태인 걸 안 순간 난 아이와 야율을 붙잡고 뛰었다.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하지만 토사는 순식간에 밀려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이 셋을 안아들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보면 선녀는 아이 셋을 안고는 하늘을 날 수 없어 돌아가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아이와 야율을 있는 힘껏 앞으로 밀었다.
둘을 아버지 품에 안긴 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내 설명을 들은 만신의가 기묘한 낯을 했다.
“그러니까 네가 두 아이를 구하려고 아버지에게 떠밀고 넌 산사태에 휩쓸렸다는 것이냐?”
“구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아버지 팔은 두 개니까요.”
“그게 그것이지 않으냐?”
“하지만 제가 그 애들을 아버지께 밀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저를 안고 남은 둘 중의 한 명을 선택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시게 해요?”
인상을 잔뜩 찡그린 만신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죽는 것은 괜찮단······크흑 콜록, 콜록, 콜록!”
하지만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격렬한 기침을 했다.
피를 토한 만신의의 몸이 벽에 기대로 있는 것조차 힘겨운지 점차 기울어졌다.
만신의를 황급히 받쳐 든 난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서늘한 체온에 깜짝 놀랐다.
정말 끝이 다가오는 것처럼 만신의의 눈빛이 점차 혼탁해졌다.
나는 만신의에게 다급히 물었다.
“어르신,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죠?”
“······.”
“어르신!”
안 돼! 일어나! 나가는 방법은 가르쳐 주셔야죠!
내 외침에 만신의가 간신히 눈을 떴다.
하지만 내가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만신의가 홀로 중얼거렸다.
“······정파라는 것······ 그들의 표리부동함이······ 그런데 결국······.”
뭐라는 거지?
바로 앞인데도 말이 드문드문 들릴 정도라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뭔가 원망을 쏟아 내는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만신의가 내 어깨를 틀어쥐었다.
“어르······윽!”
어디서 이런 힘이 났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단전을 고치고 싶다 하였지?”
착각인 걸까?
무심코 바라본 만산의의 눈동자가 순간 금빛으로 보였다.
“시간이 없으니, 내 대신, 이걸 주마.”
만신의의 눈동자를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갑자기 피에 젖은 손이 내 두 눈을 꽉 덮었다.
“!”
만신의가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눈을 뒤덮은 손 때문에 깜깜한 시야임에도 어디선가 강렬한 빛이 느껴졌다.
마지막, 정신을 잃기 전 만신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를 어찌 쓸지는, 네 의지에 달렸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