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
6화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아버지, 연이는 방금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차분했다.
‘그 인간과 아버지를 착각하다니 이게 무슨 실례야!’
멍청한 착각을 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버지를 흘끗 본 난 또다시 굳었다.
방금까지 화를 내던 아버지의 눈가가 붉었다.
‘뭐, 뭐야 설마 우신 거야? 아지, 언제, 왜? ‘
할아버지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하,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힌 줄 알겠구나. 여기가 내 처소인 건 기억하느냐?”
멈칫한 아버지가 고개 숙였다.
“소자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되었다.”
할아버지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의 귓가는 부끄러운 듯 살짝 붉어진 채였다.
헛기침한 아버지가 내 등을 받친 베개와 이불을 몇 번이나 매만졌다.
“······.”
“······.”
방 안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께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 여기가······ 어디예요?”
“여긴 수백당이다. 네가 쓰러져 이리 옮겼단다.”
수백당이라고?
나는 놀란 얼굴로 방울 둘러보았다.
수백당은 할아버지의 처소 이름이었다. 내가 쓰러진 중앙당과 가장 가까운 처소긴 했으나······
‘전엔 한 번도 못 들어와 봤는데.’
방 안이 고상해 보이던 이유가 있었다.
마저 방 안을 둘러보던 난 순간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 같은 눈빛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자 할아버지가 흰 눈썹을 치켜들었다. 할아버지가 뭔가를 말할 듯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문발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4공자님, 탕약이 도착했습니다.”
“어서 들여보내 주게.”
무언가 말하려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입을 딱 다물었다.
아버지의 말에 들어온 자는 할아버지의 부관이었다. 오십 줄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은 중앙당에서도 할아버지 근방에 서 있었다.
‘이름이 장석량이었지.’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사기그릇이 담긴 쟁반을 받아 들었다.
“직접 이런 심부름을 하시다니요.”
“요 앞에서 시비에게 건네받았을 뿐입니다. 가주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요.”
찰나 나와 눈이 마주친 장석량이 자애롭게 웃었다.
‘······뭐야?’
전생의 난 백리세가에 십여 년 넘게 지내며 장석량과 말 한 번 한 적 없었다. 나와 마주친 장석량이 웃은 적도 당연히 없었다.
아버지가 쟁반을 들고 침상에 앉았다. 탕약 냄새가 확 풍겼다.
난 사기그릇 가득 담긴 검갈색 약을 보고 울상을 지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석 태의가 그리 쓰진 않을 거라 했단다.”
“석 태의요?”
석 태의는 황실에서도 일한 적 있는 아주 유명한 의원이었다.
‘저번 생에도 진찰받긴 했지만, 그땐 이보다 훨씬 늦었던 것 같은데······.’
의아한 내 시선을 어찌 해석했는지 아버지가 다정하게 말했다.
“석 태의는 할아버지가 널 위해 급하게 데려오신 의원이란다. 아주 실력이 좋단다.”
“할아버님께서요?”
“그래. 네가 정신을 잃은 동안 진찰도 마쳤단다. 석 태의가 머무는 사흘간 너도 여기 수백당에서 지내면서 치료받으라 하셨단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석 태의를 불러 주셨다고? 심지어 석 태의가 있는 수백당에서 머루르라니?
수백당은 할아버지의 처소였다.
지금껏 다른 친족이 머문 적은 없었다.
장남인 백리의묵부터 장손인 백리명조차도. 난 서둘러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콧방귀를 뀐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말했다.
“고마워할 것 없다. 아프면 아프다 해야지 미련하게 버티고 있으면 누가 알아준다더냐?”
“아버지.”
말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흘끗 본 할아버지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몸을 돌렸다.
“신경 쓰거라. 백리 세가에서 송장 치우는 꼴 안 보게.”
할아버지가 장석량과 함께 방을 떠나고 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탕약을 식히느라 수저로 느리게 휘저으며 아버지가 씁쓸하게 웃었다.
“말은 저리 하셔도 많이 살펴주셨단다.”
고개를 끄덕이던 난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버지, 아버지. 그럼 아버지도 수백당에 머무는 거예요?”
“그래. 다른 사람을 영 믿을 수가 없구나.”
아버지만 자리에 안 계셨다면 마구 손뼉을 쳤을 것이다.
‘좋아, 아주 좋아.’
일단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가 틀어지는 건 막았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께 화가 났다면 수백당에 머물도록 허락할 리 없으니 말이다.
나는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아버지가 내미는 약을 받아 쭉 들이켰다.
“우웁.”
“천천히 마시거라. 토하면 안 된다!”
* * *
약을 먹자 더부룩해진 속에 바로 누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아버지가 푹신한 등받이를 받쳐 주었다.
“연아.”
아버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 작은 손을 잡고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나와 눈을 맞췄다.
“왜 지금껏 숨겼느냐?”
“네?”
“네 몸종이, 하인들이 내가 없을 때마다 게을리 군 것 말이다.”
중앙당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들었다면 할 게 있던 아버지도 당연히 들었을 터.
아버지는 무척 괴로운 눈빛이었다.
나는 서둘러서 달래듯 말했다.
“아버지 계실 땐 괜찮았어요.”
“그래. 그들은 널 무시한 거다.”
” ······. ”
“오늘은 네가 사람들 앞에서 쓰러졌지만, 만약 네가 혼자 있다 쓰러졌다면 나는······.”
아버지가 말을 꺼낼수록 힘든지 점차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성년이 된 이후 백리세가에 보름 이상을 머문 적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가 주화입마에 빠진 이후에는 내 곁을 비운 걸 속죄하듯 달포 가량을 내내 내 곁에 계셨다.
그러다 하루, 그것도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말할수록 분이 치솟는 듯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역시 안 되겠다. 내 당장 어머님께 말씀을 올려야겠다.”
난 깜짝 놀라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의 친어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였다. 아버지가 말한 어머님은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다. 나에게 둘째 할머니가 되시는 분으로 큰 마님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둘째 할머니는 집안일 대부분을 도맡아 하셨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 둘째 할머니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런데 둘째 할머니가 다스리는 집안일에 아버지가 불만을 표한다?
‘절대 좋은 소리 못 듣지.’
감히 모친의 일에 끼어들었다며 불효자라고 혼나기나 할 것이었다.
아버진 옷자락을 부여잡은 내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어머님도 확실히 알아 두셔야 한다. 이 일이 밖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머님 체면이 어찌 되겠느냐?”
‘아! 그거 좋지. 소문났으면 더 바랄 게 없네.’
하지만 나와 달리 아버지는 진실로 둘째 할머니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아버지가 둘째 할머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걸 모를까?
아니,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소용없어요.”
“연아?”
“아버지, 할머니가 하인들을 혼낸다고 해결될까요?”
“당연히······!”
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하인들을 벌하면 겉으로는 나아질 수 있죠.”
“겉으로는,이라니?”
“네. 겉으로는 요. 그들이 과연 진심으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할까요?”
“그러도록······ 노력해야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멈칫했으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답했다.
난 곧장 질문했다.
“처소 안 하인을 처벌하면 끝인가요? 처소 밖은요?”
그들이 내가 하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걸 몰랐을까?
중앙당으로 가는 동안 마주친 자들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군거리기만 할 뿐,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도 누구도 돕거나 무슨 일이냐 묻지 않았다.
‘얽히기 싫은 거지.’
가주에게 천대받는 손녀딸 따위와.
그리고 아버지도 곧장 내 말의 숨은 뜻을 알아챘다.
아버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문제는 할아버지께서 절 받아주시기전엔 끝나지 않아요.”
“······.”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참을 침묵하던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네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우냐?”
“아뇨.”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아니에요.”
아버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골랐다.
“음······ 전 정말 괜찮아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겠거든요.”
“안다니?”
“할아버지가 제게 화가 나신 건 아버지를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이니까요.”
아버지가 설명을 요구하듯 나를 바라봤다. 난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제 존재에 화내지 않으시면 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지. 밖에서 아이 낳아 오는 게 뭐가 어때서? 손녀가 새로 생겨 좋구나, 허허허.’ 이러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아버지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날 보았다.
“넌······ 넌 여섯이다! 어찌 그런 말을······!”
난 아버지께 답삭 안겼다.
놀란 아버지가 말문이 막힌 틈을 타서 말했다.
“노력하면 할아버지도 알아주실 거예요.”
머뭇거리던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 마주 안는 온기는 따뜻했다.
소설에서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어지 생각했는지 나오진 않았다.
아버지와 내 사이처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도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하지만 난 똑똑히 기억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핏발 선 눈의 할아버지를.
그거면 충분했다. 내가 할아버지를 좋게 생각할 이유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