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
5화
” ······.”
” ······.”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 없군.”
“하지만 천명금혼단이 아니오?”
아무도 들어 본 적 없는 일이니까.
의견이 분분했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의 할아버지와 가라앉은 낯빛의 아버지를 봐서는 두 분도 고민해 본 게 분명했다.
천명금혼단의 명성, 그 대단함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죽어 가던 자를 살리는 것과 부서진 단전을 회복시키는 건 다른 이야기지.’
단전이 없는 난 평생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죽을 병을 앓는 건가?
아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모두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천명금혼단의 명성이 사람을 현혹했다.
그리고······.
‘참, 희망이란 게 뭔지.’
알면서도 티끌만 한 확률이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약은 제각기 효능에 맞게 써야 한다고 알아요. 제겐 필요 없어요.”
과거, 아버지는 결국 할아버지에게 천명금혼단을 얻어 냈다.
그리고 당연히 나한테 그 약을 먹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단전은 회복되지 않았다.
‘물론 약이 효능이 없었던 건 아니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입은 내상은 모두 나았으니까.
병치레도 싹 사라졌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서진 단전이 그대로였을 뿐.
‘무림인 시점으론 병약한 쓰레기가 건강한 쓰레기가 된 것뿐이지.’
나라고 왜 탐이 안 나겠나?
치료 가능했다면 저걸 가장 원하는 게 나였다. 하지만 불가능한 걸 뻔히 알면서 귀한 약을 먹어 미움받을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저 약은 나중에 이 소설의 주인공이 꼭 필요로 하는 약이었다.
‘이번엔 안 먹었으니 욕먹을 이유도 하나 줄겠지.’
난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
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로들과 부관들 또한 감동하여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를 압박하던 기운도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느리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할아버지 또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후······ 이제 끝인가?’
안도감에 순간 기침이 터지려는 걸 분위기 깨지 않기 위해 틀어막았다.
이내 고민을 마쳤는지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의강, 연이가 저리 말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눈동자가 흔들리던 아버지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내가 붙잡은 손을 바라본 아버지가 나한테 미소 지었다. 마치 미안하다는 것 같았다.
‘설마?’
순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의 의견은 변함없습니다. 미약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아비 된 자로서 어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버지!’
이 고집불통!
그야말로 자리에서 펄쩍 뛰고 싶었다. 뒤이어 날아올 할아버지의 호통에 나도 모르게 먼저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조용했다.
눈치 보던 난 조심스럽게 할아버지를 살폈다.
할아버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화가 나신 것 같진 않았다.
“벽창호 같으니라고.”
혀를 차며 오히려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느낌이었다.
“둘 다 일어나거라.”
“······.”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천명금혼단을 내준다 말할 때까지 무릎 꿇고 있을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하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났다.
뒤이어 나를 천천히 일으켜 주었다.
그런데 오래 무릎을 꿇고 있어서였을까?
“어?”
일어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하니 시야가 돌았다.
난 아버지의 옷자락을 반사적으로 꽉 붙잡았다.
“연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막이 씌워진 것처럼 멀게 들렸다. 괜찮다고 답하려 했으나 가쁜 숨만 나올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다.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손을 내리던 난 경악했다.
‘······피?’
바들바들 떨리는 손등이 선홍빛이었다. 피를 보자 현기증이 순식간에 심해졌다.
누군가 벌떡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젠 고개를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흐림 시선에 융단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핏자국이 보였다.
이를 기막혀하던 난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연아!”
* * *
“네 이름이 연, 외자로 연이 맞느냐?”
상앗빛 도포에 패검을 찬 사내.
장식이라곤 패검에 달린 옥장식뿐이지만 태에서 부귀함이 드러났다.
거리를 떠돌며 쓰레기를 주워 먹고사는 처지에도 알았다.
저 사내는 이런 저잣거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자이며, 내게 하등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란걸.
“······누구세요?”
겁에 질린 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 내 앞에 사내가 몸을 숙여 앉았다. 사내는 무언가를 꽉 억누르는 듯한 표정의 내게 손을 뻗었다.
“널 데리러 왔다. 네······ 아버지란다.”
굳은살 가득한 커다란 손.
그 손을 잡은 난 처음엔 겁이 났고, 도중엔 꿈일까 두려웠고, 마지막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화려하고 거대한 대문을 넘을 때 내 기분은 가히 최고였다.
이제 내게도 가족이, 집이 생긴다. 내게도 드디어 볕들 날이 온다.
그렇게 설렘을 가득 안고 대문을 넘는 순간, 담배에 누렇게 찌든 벽지와 여러 색 빛이 일렁이는 낡은 소파가 나를 반겼다.
낡은 집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쿵,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가, 내가 왜 여기 있지?’
짝! 그 순간 화끈한 느낌과 함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어딜 감히!”
멱살을 잡은 자가 나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코를 찌르는 진한 술 냄새. 바닥을 나뒹구는 초록색 병들. 그 사이에 집어던져진 내가 초록색 병들과 함께 나뒹굴었다.
“지금껏 키워 준 게 얼만데! 어?”
곧바로 여기가 어딘지, 누군지 깨달았다.
“아, 아버지. 왜, 왜, 내가 여기, 아니, 제가, 제가 다 잘못했어요.”
겁에 질린 난 숨을 헐떡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바닥을 뒹굴던 병을 밟고 철퍼덕 넘어졌다.
“배은망덕한 년이 감히 어딜 애비를 버리려고······!”
맞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어 최대한 웅크렸다. 피할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날 덮치는 순간······
“헉!”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번쩍 떴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 지끈거렸다. 온몸이 기분 나쁜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뭐야, 완전 개꿈.’
목이 잘려 죽은 이후론 한 번도 떠올린 적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그런 꿈을 꿨는지 알 수 없었다.
난 낯선 천장을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치료받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중앙당에 가니까 할아버지가······ 아.’
중앙당에서 코피를 흘리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대로 기절한 모양이었다.
‘그럼 여긴 어디지?’
방금까지 누군가 날 돌보다 나갔는지 침상 근처의 대야에 물수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방 자체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꿈속 선명하던 전생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됐다.
‘방 좋네.’
내가 머무는 처소도 좋긴 좋았다. 아무렴 백리 세가인데.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백리세가의 직계들이 머무는 처소 중 가장 수수할 거라는 거였다.
그리고 이 방은 고아하며 수준 높은 처소 주인의 취향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때 문 뒤쪽에서 대화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언제쯤······ 다행······ 석 태의께서 ······립니다.”
“가주님······ 신······ 4공자······ 니······.”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부관의 목소리였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힘을 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누군가 문발을 거칠게 걷으며 들어왔다.
“연아!”
아버지는 침상까지 단숨에 달려와 곧바로 내 등을 받쳤다.
“아버지, 여긴 어디······ ?”
“움직이지 마라! 몸은 어떠냐?”
“괜찮아요. 어······ 조금 머리가 지끈거릴 뿐이에요.”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했다가 믿지 않을 것 같아 머리가 아프다 덧붙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
긴 침묵에 아버지 눈치를 힐끔 본 순간.
“대체, 대체!”
아버지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느냐?”
“아, 아버지?”
“내가,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아버지가 이렇게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이었다.
놀란 난 덜컥 겁에 질렸다.
눈앞이 흐려지고 숨이 막히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무,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말했다.
“자, 잘못, 잘못했어요.”
그때였다.
“네가 무얼 잘못했지?”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무심코 돌아본 난 뻣뻣이 굳었다.
‘할아버지!’
누군가 머리에 찬물이라도 뿌린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형한 눈빛이 날 파헤치듯 쏘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