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
4화
* * *
‘태산 같다.’
처음 할아버지를 봤을 때의 심경이었다.
할아버지는 광택 있는 흰 비단옷에 보옥 장식을 하고 호랑이 가죽위에 앉아 있었다.
완고한 입매에 절로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형형한 눈빛에 연륜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치켜 올라간 눈썹은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도무지 일흔의 나이라고 볼 수 없는 외견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양옆으로는 가문 장로들과 할아버지의 오랜 수하들이 있었다.
큰아버지인 백리의묵,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장손인 백리명도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나는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는 방의 정중앙에 무릎 꿇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이런 모습일 줄은······.’
밖에서 들은 것보다, 상상하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버지는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당장 달려가 아버지께 이럴 필요 없다고 일으키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의란,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할아버지의 노기등등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모가 마른침을 삼키며 웃었다.
“아이참, 아버님 돌아오셨으니 딸로서 당연히 인사드리러 왔지요.”
“인사?”
“예. 연아, 어서 인사드리자꾸나.”
고모가 갑자기 나를 잡아끌었다.
할아버지의 시선을 돌리려는 생각이 뻔히 보였다.
일단 얌전히 고모와 함께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고모가 자연스럽게 큰아버지 곁으로 향했다.
그러나 두 걸음도 떼기 전 할아버지가 말했다.
“얼굴 봤으니 나가 보아라.”
“예. 예?”
고모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못 들었느냐?”
“아, 아뇨. 아버지 왜 그러세요······ ?”
“왜?”
코웃음 친 할아버지가 눈 깜짝하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이 방에 들어올 자격이 있느냐?”
“아, 아버지.”
“네 그 태도가 백리 성을 지닌 자의 자세란 말이냐!”
벼락같은 호통에 화들짝 놀란 고모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싸늘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고모의 낯빛이 점차 창백해졌다.
할아버지는 두 번 말하는 걸 무척 싫어했다. 아주 유명했다.
‘백리패혁의 두 번째 말은 칼이다.’로.
이건 가족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고모가 도움을 요청하는 얼굴로 할아버지 근처의 큰아버지를 보았다.
친동생의 애절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었는지 큰아버지가 나섰다.
“아버지, 이쯤 하면 의란도 잘못을 깨달았을 겁니다.”
“맞아요. 아버지 제가 잘못······”
“입 다물거라!”
하지만 나서지 않는 것만 못했다.
결국, 고모가 입술을 깨물며 일어났다.
“······물러가겠습니다.”
“······.”
“······.”
방 안의 분위기는 전보다 더 무겁고 싸늘해졌다.
할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에 솔직히 나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나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저 꼴과 똑같을 것을.
나는 지금 살얼음 위에 서 있었다.
그때 사촌 오라버니인 백리명이 분위기를 풀자는 듯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 이리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좋아졌어요.”
큰아버지와 사촌 오라버니는 평판이 매우 좋았다.
큰아버지 백리의묵은 어진 성품에 일 처리가 공정하다며 인정받았고, 사촌 오라버니이자 장손인 백리명 또한 큰아버지를 똑 닮았다는 평을 들었다.
큰아버지가 상냥하게 말했다.
“연아, 이리 오너라.”
난 몰려오는 피로에 잘 움직이지 않는 발을 뗐다.
아버지가 걱정되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큰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곁이었다.
모두 의아하게 날 보았다.
아버지 곁에 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 !”
큰 아버지와 사촌 오라버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반면에 할아버지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내가 멋모르고 큰아버지 곁에 갔다면 할아버지께 호통을 들었을 것이다.
‘고모처럼 바로 쫓겨났겠지.’
그게 큰아버지와 백리명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인자한 척 사람 좋은 얼굴을 하지만, 저들의 속은 고모랑 같았다.
“연아, 이 무슨······ 어서 일어나거라.”
놀란 아버지가 비틀거리는 날 붙잡았다. 안 그래도 허약한 몸. 심지어 어리기까지 한 몸으론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거 빨리 끝내야겠는데?’
거기다 바닥이 너무 찼다.
얇은 융단이 깔려 있다 하나 돌바닥.
올라오는 한기가 상당했다.
이를 잘 아는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서 일어나! 아버지, 연이는 아직 몸이······”
“시끄럽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말을 잘랐다.
난 괜찮다는 듯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백리연, 의강이 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 아느냐?”
“몰라요.”
“모른다? 그런데 왜 꿇었느냐?”
눈을 내리깐 난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있기 전엔 할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린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아마 이번 일도 제 탓이겠지요.”
실제 그런 말을 한 적 있던 방 안의 몇몇이 “큼.” “크흠.” 헛기침하며 면목 없어 했다.
더군다나 여섯 살 마르고 작은 아이였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아이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에 방 안 사람들은 더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할아버지껜 씨알도 안 먹힌 듯했지만.
“하, 말은 잘하는구나. 그래, 이리 왔으니 네게 직접 물어보마.”
할아버지가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뒤쪽에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종복이 작은 함을 들고 왔다.
‘저거였군.’
저 작은 함이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이었다.
할아버지 앞에 선 종복이 상자를 열었다. 영롱한 빛깔의 금색 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들렸다.
“······저것이!”
할아버지가 말했다.
“천명금혼단이다.”
그때 백리명이 나섰다.
“할아버님, 연이는 가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천명금혼단이 뭔지 모를 겁니다. 제가 천명금혼단에 대해 알려 주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답하기 전 내가 먼저 재빠르게 답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하지만 괜찮아요. 들어 봤어요. 먹으면 죽은 사람도 살아난다는 약, 맞지요?”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할아버지를 본 백리명이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
“······잘 아는구나.”
할아버지가 물러나라며 백리명에게 손짓하고 말했다.
“그래. 맞았다. 죽어가던 사람도 이 환 하나면 살아 돌아온다는 명약이다. 이젠 제조법도 사라져 세상에 몇 개 남지도 않았지. 천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약이다.”
작은 함이 다시 닫히고 할아버지가 길게 눈을 감았다.
“천운이 따랐지.”
잠시 후, 다시 뜬 눈은 날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의강이 이 약을 달라 하더군. 널 치료하겠다며!”
그렇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저 귀하디귀한 약을 달라고 부탁했다. 오로지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릎 꿇고 모욕 받으며······.
‘바보 같아.’
내가 대체 뭐라고.
그런 내 생각을 읽어 내기라도 한 듯 할아버지가 호통쳤다.
“네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보느냐!”
작정하고 내뿜는 위협적인 기색은 마주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흉흉했다. 보통 아이라면 분명 겁먹고 눈물을 터트릴 정도였다.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아버지가 당장 내 앞을 막아설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다시 소리쳤다.
“네가 이 천명금혼단만 한 가치가 있냔 말이다!”
아버지의 팔을 꽉 잡아 누르며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 봤다.
“네.”
“······.”
주변에 다시 기가 찬 듯한 탄식이 터졌다.
백리명의 입가엔 조소가 맺혔다.
내 단호한 대답에 아버지 또한 약간 당황한 눈빛이었다.
두 번이나 죽고 얻은 교훈이 있었다.
‘스스로 깎아내려 봤자 소용없어.’
본인이 깎아내리면 남들도 나를 낯줘 볼 뿐이었다.
‘나를 깎아내리면 아버지를 깎아내리는 거나 다름없고.’
그러면 아버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전에는 그걸 몰랐다.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친 않아요.”
“뭐라?”
“할아버지, 여기 계신 분들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하거라.”
허락을 받은 내가 그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천명금혼단으로 제 단전을 낫게 해 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