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 * *
야율이 매우 진지한 얼굴로 붓을 들고 있었다.
종이 한 장을 다 채운 야율이 내게 보여 주었다.
” 잘 썼네.
음 음······ 어, 여기 획 빠졌다.”
다시 붓을 집어 든 야율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이제 좀 쉬자.”
고개를 끄덕인 야율이 붓을 내려놓았다. 나는 야율의 피로해 보이는 얼굴을 보다가 말을 꺼냈다.
“이제 슬슬 밤새 안 지켜도 되지 않아? 언제까지 시비랑 번갈아 가면서 지키려고?”
“안 돼.”
“음, 불안하면 적당히 못 움직이게 손목을 묶어 놓고 자면 되지 않나?”
변태 같은 소리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며칠째 야율과 시비가 번갈아 가면서 밤새 내가 자는 걸 지키고 있었다 낮에 쉰다지만 밤에 쉬는 것만 못할 터였다.
야율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잠버릇이 꽤······ 심해.”
“그래? 얼마나 심하기에?”
“······한 바퀴 돌아······.”
“에이 거짓말.”
“······.”
“진짜?”
야율의 침묵을 보아 진짜인 모양이었다.
‘내가, 내 잠버릇이 그렇게 심했다고?’
살짝 충격에 빠졌다.
지금껏 얌전히 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거기다 그걸 시비와 야율이 매일 밤 지켜보고 있었다니!
몰려오는 수치에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때 문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문이 열리고 남궁류청이 푸른색 의복을 펄럭이며 들어왔다.
결국, 나는 남궁류청을 쫓아내는 것에 실패했다. 대신 적당히 타협했다. 낮에 잠시 남궁류청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야율과 시비는 쉬러 갔다.
둘은 번갈아 가며 밤새 내 곁을 지켰다.
하루 이틀이야 어떻개든 버틴다해도 매일같이 그럴 순 없었다.
낮에 조금이라도 쉬어 둬야 했고 그 시간을 남궁류청이 맡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그냥 시비를 더 쓰고 싶지만······.’
어쩌다가 이리 됐을까?
나는 남궁류청을 물끄러미 보다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찍 왔네.”
평소보다 한 시진 정도 (2시간) 일찍 왔다.
“오늘 수업이 저녁으로 밀렸어.”
“아, 그래서 일찍 왔다 가려고?”
“응.”
“뭐, 그래. 나는 상관없는데, 야율 너는?”
“괜찮아.”
야율은 남궁류청이 왔다는 시비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주섬주섬 주변을 치우고 있었다.
탁상 주변을 모두 정리한 야율이 일어났다.
“가 볼게.”
“응, 쉬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야율은 내게 사과한 날 이후로 남궁류청을 향해 시비를 걸거나 약 올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남궁류청은 야율에게 관심을 완전히 꺼 버렸다.
남궁류청이 바닥 한쪽으로 치운 벼루와 붓 등을 훑어보곤 물었다.
“대필할 거 있어?”
내가 악필이긴 했지만, 오른손을 다쳤으니 그나마도 쓸 수 없었다.
“아, 있긴 한데, 오늘 한 건 그게 아냐.”
“그럼?”
“야율이 글을 모른대서 좀 가르쳐 주고 있었어.”
꽤 좋은 정파 가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저 나이까지 글을 전혀 몰랐다.
며칠 전 백리 세가를 떠올렸을 때 석가약이 남궁 세가에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는 서한을보내달라고 한 걸 떠올리고 야율에게 대필을 시키려다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동안 나는 서하령과 외출할 때 심심하면 읽으라고 서책도 몇 권 주곤 했다.
정말 무신경한 배려였다.
“글을 가르친다고? 쟤가 뭐기에?”
“응?”
그간 야율에게 관심도 없더니만?
남궁류청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하인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아니라기엔 종일 네 옆에 붙어 있기만 하고.”
“음······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내 말에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떴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하지만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야율이 천귀조 사건과 얽혀 있고 아버지가 구해서 데려왔고······ 이런 걸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야율의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남궁류청이 고갯짓했다.
“대필하려는 건 뭔데? 내가 할게.”
“아냐! 너는 대필 말고 오늘 나랑 갈 곳이 있어!”
“갈 곳? 그냥 처소에서 쉬지.”
나는 무시하면서 일어났다.
“내가 손을 다쳤지 다리를 다친 건 아니잖아. 뭐, 싫으면 넌 그냥 돌아가도 상관······.”
“아, 니, 야. 내가, 언제, 싫대?”
남궁류청이 이를 아득 물면서 말했다.
성질을 꾹 눌러 참는 얼굴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남궁류청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남궁류청은 놀리는 게 재미있지?
여기서 더 장난치면 안 되겠다싶어 말했다.
“헤헤, 사실 너 아니면 같이 가자고 할 수 없어서 그래.”
그러자 남궁류청의 표정이 좀 풀렸다.
“어딘데?”
“장서각!”
* * *
남궁 세가의 장서각.
남궁 세가 내에서도 꽤 중요한 곳인 만큼 그 앞을 지키는 무사도 꽤 실력자였다. 물론 내공이 무공 실력의 전부는 아니었다.
남궁류청을 보고 고개를 정중히 숙인 무사가 물었다.
“이 소저는······?”
“같이 들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남궁류청을 앞세워 통과할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난 오는 내내 쓰고 있던 가리개를 내렸다.
선반 위에 책들과 두루마리, 죽간등이 가득했다. 오래된 남궁 세가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서각을 둘러보고 있을 때 남궁류청이 말했다.
“여기 오고 싶었다면 아버님께 출입패를 달라고 하면 됐잖아?”
“뭐, 그래도 되긴 했지.”
장서각은 일반적인 서재라기보다는 문서 자료관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지금은 찾기 힘든 귀한 서책들과 남궁 세가의 관련문건이 함께 있는 중요 창고라고 보면 됐다. 당연히 남궁 세가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만약 장서각에 손님이 찾는 책이 있다면 보통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 제목을 말하면 가져다주었다.
솔직히 출입패도 믿음직한 가까운 지인에게나 내줄까 말까 했다.
“와 보고 싶긴 했는데, 그동안은 서 소저가 매일 찾아와서 바쁘기도 했고.”
그런데 남궁류청이 내 처소에 반나절 정도 머물기 시작하자 발걸음을 줄였다.
정확히는 낮에 오는 걸 멈추고 남궁류청이 돌아간 저녁 시간에 와서 같이 밥을 먹고 놀다 가는 것이다.
남궁류청을 피하는 것이 노골적이라웃길 정도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래서 장서각에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
여기 글은 어렵고 배우는 데 아주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남궁완은 내가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글의 기초만 겨우 뗀 아이가 중요 문건들이 가득한 장서각에 간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차마 말을 못 하고 있었던 건데.’
하지만 남궁류청이랑 같이 간다면 남궁류청이 대신 읽어 줬겠거니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남궁류청을 대동한 이유였다.
남궁류청이 물었다.
“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됐다고?”
“응. 한두 달 좀 넘게 배웠나?”
남궁류청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났다.
‘뭐, 세가 자식이 여섯이 되도록 글을 안 배웠다는 게 이상하겠지.’
하지만 귀엽게도 이유를 묻진 않았다.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남궁류청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책 읽어 달라는 거야? 무슨 책을 찾는데?”
“아냐, 도와줄 필요 없어.”
“······?”
“이건 비밀인데······.”
나는 남궁류청을 보며 매우 진지한 낯을 했다.
남궁류청의 낯도 더달아 진지해졌다.
“사실은 내가 천재야. 그래서 글을 안 배우고도 다 알아.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하니까 비밀로 해야 했지!”
남궁류청이 미친 사람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하.”
배를 부여잡고 한참 웃은 나는 남궁류청이 화내기 전에 서둘러 말을 돌렸다.
“나 저 책 꺼내 줘. 그 아래 것도.”
나는 손만 까딱이며 남궁류청을 부려 먹었다.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자고 앉았다.
곧이어 남궁류청이 서책을 들고 내 옆으로 왔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참고로 나 글 잘 안다는 건 정말 비밀이야.”
“네 말이 다 진실이라 치더라도.”
거칠게 책을 내려놓는 남궁류청의 눈은 전혀 믿지 않고 있었다.
“뭘 믿고 내가 비밀을 지켜 줄거라 생각하는 거지?”
“그럼, 말할 거야?”
“······아니.”
“봐 봐.”
그것 보라는 듯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남궁 공자가 인망은 별로일지라도 신의가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
남궁류청을 입막음한 나는 가져온 책들을 뒤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