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
81화
* * *
균일하게 깔린 회백색 포석과 석고 거치대에 걸려 있는 품질이 뛰어나 보이는 여러 종류의 병장기들.
이곳은 남궁완의 개인 연무장이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수련하는 남궁온의 몸에선 뿌연 김이 피어올랐다.
오전 내 수련에 집중하던 그의 기감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궁완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 수련을 이어갔다. 하지만 1각 정도 지났음에도 계속 떠나지 않고 머무는 기척에 결국 검을 멈추었다.
남궁완이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연무장 출입문 너머에서 답이 들렸다.
“소부인께서 오셨습니다.”
“······부인이?”
남궁완이 거치대에 검을 고이 걸었다.
그리고 대충 걸어 놓은 장포를 걸치며 연무장을 나섰다.
연무장 밖에서 기다리던 소부인이 남궁완을 보곤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머, 땀은 닦고 나오시지요.”
“됐소. 다시 들어갈 것이오.
무슨 일이오?”
남궁완은 수건을 공손히 내미는 하인에게 물러가라 손짓했다.
“후우, 이럴 줄 알았습니다.”
소부인의 한숨에 남궁완이 미간을 좁혔다.
소부인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가족끼리 점심을 함께 하는 날이지 않습니까? 제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또 수련한다고 잊어버리셨겠지요.”
한 달에 두 번 남궁완과 소부인, 남궁류청 이렇게 셋이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조 돼 있었다.
각자 일에 바빠 모두 모이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소부인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약조는 매번 이렇게 어겨지기 일쑤였다.
“크흠.”
헛기침한 남궁완은 하인이 다시 건네는 수건을 재빨리 받아 들었다.
“가지.”
소부인이 남궁완을 흘기며 몸을 돌릴 때였다. 소부인의 시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부인, 구사가 찾아왔습니다.”
구사는 남궁류청의 몸종이었다.
남궁완과 소부인의 낯빛이 굳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소부인이 앞서 나갔다.
구사는 연무장을 둘러싼 담 밖에 서 있다가 걸어 나오는 소부인을 보곤 깊게 고개 숙였다.
“마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더냐? 류청이 또 따로 식사하겠다더냐?”
소부인의 첫마디는 차분했으나 끝으로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구사가 눈치를 보며 답했다.
“예에. 그런데······.”
“또 소란이로군. 또!”
뒤따라온 남궁완이 끼어들어 성냈다. 구사가 당황하여 말했다.
“소가주님,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뭐가 아니더냐! 주인이라 편들 필요 없다! 그 녀석은 어찌 이리 제 어미 속을 썩이는 것이야! 류청 그 녀석 어딨느냐? 썩 안내하거라!”
구사가 크게 놀라며 답했다.
“아이고, 그게 아닙니다. 소가주님, 일단 고정하십시오. 제가 드릴 말씀이······”
“안내하라니까!”
옅은 한숨과 함께 남궁완의 팔을 흰 손이 붙잡았다.
“되었습니다. 요새 류청이 고민이 깊지 않습니까. 홀로 두지요. 구사, 너도 가거라. 가서 류청 식사라도 꼭 챙기거라.”
구사는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몇 번의 소란 후.
구사는 겨우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도련님께서 백리 소저, 서 소저와 함께 외출하시겠다며 허락해 주십사 저를 보내셨습니다.”
구사의 말을 들은 남궁완과 소부인은 충격에 빠진 얼굴을 했다.
남궁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뭐라고? 류청이 외출을?”
소부인도 멍하니 중얼거렸다.
“류청이 스스로 외출하겠다 한 적은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이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남궁완의 중얼거림에 번뜩 정신을 차린 소부인이 구사를 향해 말했다.
“물론 허락한다고 전하렴. 언제 간다더냐? 어서 준비해야겠구나. 외출복이랑, 용돈이랑 아, 그래 함께 가는 서 소저랑 백리 소저에게도 용돈을 조금······.”
소부인이 눈을 빛내며 계획을 줄줄이 말할 때였다.
구사는 어쩔 줄 모르며 눈을 굴리다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으, 마님.”
“왜 그러느냐?”
“······이미 출발하셨습니다······.”
“뭐, 뭐라?”
남궁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쳤다.
“허락받으러 왔다며? 왜 허락이 사후 통보야! 세상에 이런 허락이 어딨느냐!”
“어······ 가서 돌아오시라 전할까요?”
소부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애수에 찬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천천히 갈 것이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구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소부인이 구사에게 물러가라는 듯 손짓하고 남궁완을돌아보았다.
“그래도 정말 잘됐습니다. 류청이 외출을 할 생각도 다 하고.”
인상을 잔뜩 찡그린 남궁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부인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하나 여쭤보려던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전에 백리 대협께 류청의 스승을 부탁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건 어찌 되었지요?”
“······그건 곤란하게 됐소.”
원래 만신의의 각패를 연이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고,그 보답으로 남궁류청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보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연이가 죽을 뻔하고 만신의도 죽어 버렸다.
남궁완은 저절로 그때의 암담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굉음이 들리고 흙더미가 폐허가 된 마을로 쏟아져 내리는 걸 보면서 손쓸 틈조차 없었던······.
남궁완은 기억을 털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연이에게 너무 귀한 걸 받았소. 의강에게 류청까지 부탁하는 건 염치 없는 사람이지.”
“귀한 것이요?”
“······.”
남궁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부인은 더 묻지않고 말을 돌렸다.
“그런데 꼭 스승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
“대협께서 꼭 스승이 아니더라도 계속 남궁 세가에 머무르시는 게 어떤가 하여서요.”
“의강이 자신의 집이 없는 이도 아니고 무림맹에도 거처가 있는데, 백리 세가를 두고 왜 남궁 세가에 남겠소?”
“그래도 말이라도 한번 꺼내 보세요.”
소부인이 잠시 허공을 바라보곤 말했다.
“제게도 들리는 말이 있답니다.
대협께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터예요.”
그 말에 남궁완도 떠오르는 바가 있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말은 꺼내 보지요. 하지만 확언할 순 없소.”
소부인이 충분하다는 듯 웃었다.
소부인과 남궁완이 연무장에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내일 사찰에 가 부처님께 백리소저의 복을 빌어야겠어요.”
“······저번에도 빌어 주지 않았소?”
“자주 빌수록 부처님께 제 기원도 많이 닿겠지요.”
“마음대로 하시오.”
“아, 그래. 백리 소저도 함께 데려가야겠습니다. 사찰도 구경하고 바람도 쐬게요.”
“괜찮군.”
남궁완의 시야에 멀어지는 구사가 닿았다.
남궁완이 걸음을 멈췄다.
“나도 잠시 외출하겠소.”
“예?”
“식사는 미안하오.”
남궁완은 소부인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급히 향했다.
잠시 후.
남궁완은 삿갓을 깊게 눌러쓴 채 남궁 세가 대문으로 향했다.
그를 확인한 남궁 세가 무사들이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매우 급한 일이 있는 듯 발걸음이 빨랐다. 경공을 펼치지 않은 것이 마지막 체면이었다.
그런 남궁완이 앞선 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그 기척을 느낀 자도 뒤를 돌아보았다.
둘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었다.
“팔불출.”
“······자네는 어디 가나?”
“······.”
“같이 가지.”
남궁완과 백리의강이 함께 수문 무사의 배웅을 받으며 남궁 세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