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0)
90화
* * *
한동안 서하령은 내가 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시키는 대로 목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온 걸 알았다.
그 이후로 엄청나게 산만해져 몇 번을 사저에게 집중하라고 혼나고, 결국에 이른 쉬는 시간을 받아 냈다.
서하령이 땀도 닦지 않은 채 곧장 나를 향해 뛰어 왔다.
“연아! 웬일이야? 네가 온 거 처음이야!”
“응? 나 저번에 여기 와 본적 있는데.”
“내가 데려온 거잖아! 내가 나가자고 하는 거 아니면 안 나가니까! 맨날 나만 너 보러 찾아 가고!”
“······그랬나?”
“그랬냐니! 맨날 네 그 어두컴컴하니 우중충한 처소에만 틀어 박혀 있었으면서!”
서하령의 말에 짧게 떠올려 보니 정말 남궁류청과 서하령의 대련 준비를 할 때 말고는 한 번도 먼저 찾아간 적이 없었다.
금안의 능력을 다루는 수련에 골몰하느라 바빴다.
아니, 그런데 우중충한 처소라니?
잠이 잘 올 것 같은 곳이라더니 저 말이 본심이었어?
일단 내가 너무한 건 맞았기에 살짝 변명했다.
“여긴 너말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잖아.”
곧장 서하령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린 신경쓰지말고 오세요!”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수향문 문하생들이 한마디씩 소리쳤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백리 소저!”
“소저 오랜만이에요!”
“소저 저 기억하세요? 저번에 인사했는데.”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소저, 소저가 장 공자 쌍코피 터트렸다면서요?”
“싸, 쌍코피를 터트렸다니요.”
내가 엄청 폭력적인 것처럼 들리잖아!
대체 서하령이 어떻게 설명한 거야?
“걷어차니까 장 공자가 이만큼 날아갔다면서요!”
“한번 보여 줘요!”
아니, 뭘 보여 달란 거야?
점차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여간 내가 언제고 그럴 줄 알았다.
아 꼬시다.”
“저희 모두 어제 사제에게 얘기 듣고 얼마나 웃기던지.”
“천 공자가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도망갔다던데.”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수향문의 다른 이들도 그동안 쌓인 원한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흥, 장 공자가 그런 식으로 구니까 장가장주가 제 아들을 싫어하지.”
그때 귀에 들어온 말이었다.
“장 공자가 장가장주에게 미움을 받는다니요?”
아무래도 계속해서 남주인공인 남궁류청을 괴롭히는 조연이기에 관심이 갔다.
“아······ 유명한 얘기예요.”
“하긴, 소저는 모르시겠지.”
“연이 무시하지 마!”
서하령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소년이 얼굴이 벌게져 당황했다.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
소저, 저 무시한 거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아휴, 못된 놈. 백리 소저를 무시하고.
원천이가 백리 소저 무시한다!”
“아니라고!”
무시한다!
외치는 소년이 도망치고 이를 얼굴이 시뻘게진 소년이 쫓아갔다.
왁자지껄 웃은 뒤 가장 나이 든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유명해요. 장가장주가 장 공자 동생인 서출 2공자를 더 아낀다는 거. 어디 갈 때 장 공자 대신 2공자를 데리고 다녀서요.”
사고 치는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 안에서 단속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바깥에 대놓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얘도 가정 환경이 개판이군.’
애가 삐뚤어진 이유가 있었다.
서하령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아, 맞아, 연아 너,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아.”
나는 주변이 모인 수향문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눈을 빛내는 것이 관심이 아주 많아 보였다.
무척 부담스러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다른 조용한 곳으로 좀 갈까?”
“응? 왜? 나 수련 안 끝나서 멀리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대사저를 흘끔거렸다.
은근히 가도 된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서하령의 대사저가 방긋 웃고말했다.
“헛소리 마. 너 어제 종일 나가서 놀았잖아.
오늘은 안 돼.”
그리고 나를 보고 정중히 포권했다.
“미안합니다, 소저.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에요. 저도 잠깐 줄 물건이 있어서 온 것뿐이어서요.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놀고 싶다고 내 핑계 대지 마라!
서하령이 어깨가 축 처져서 말했다.
“치, 알겠어. 그래서 줄 게 뭔데?
들고 있는 그거야?”
나는 머뭇거렸다.
다들 보는 데서 말하기는 조금······.
주변의 호기심 어린 눈이 모두 내가 들고 있는 상자에 모였다.
마치 상자를 뚫어 버릴 것 같은 시선에 마음을 비웠다.
‘그래······. 뭐 어때? 많이 보면 좋지.”
어차피 수향문의 호감을 얻으려 온 것이었으니까.
미래에 있을 마교와의 전쟁.
그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조금이라도 내 힘이 되어 줄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뭐,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게 제일 좋지만.’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아직 시간이 남았을 때, 한 사람이라도 진짜 내 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내가 이 영약을 달라고 한 목적이었다.
미래의 수향문 후계자에게 영약을 주어 수향문의 호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후일 마교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궁류청 옆에서 함께 싸울 서하령이 강해지면 남궁류청에게도 좋을 테니까.
‘음, 그런데 남궁류청 옆에서 싸우긴 하려나······?’
계획이 약간 틀어진 것 같지만······.
나는 서하령을 향해 상자를 내밀었다.
“영약인 백일단이야. 여기, 주씨 약문 보증서도 있어.”
“······어? 어?”
얼떨떨하게 상자를 받은 서하령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
갈색에 가까운 주홍빛으로, 호두보다 작은 크기의 단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하령 옆의 소녀가 황급히 보증서를 펼쳤다.
“헉! 이거 진짜야?”
“여기 쓰여 있어! 주씨 약문의 백일단이라고!”
“그거 좋은 거 아냐?”
“맞아! 상품 영약이라고!”
역시 수향문의 문하생답게 무슨 영약이지 바로 알아보았다.
서하령이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걸······ 왜······ 나한테?”
“응? 그냥······.”
원래는 주면서 제대로 생색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하기는······ 내 모든 뻔뻔함을 긁어모아도 미달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얻게 됐는데.
나는 소용없으니까.”
쿨하게, 멋있게, 최대한 별거 아닌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어······ 어······ 이, 이거 나 진짜 주는거야?”
“그렇다니까.”
서하령의 눈이 바쁘게 나와 영약을 번갈아 보다,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왜, 왜 울어?”
“어떡해······ 어떡해······ 너무 좋아서······.”
서하령이 영약 상자를 품에 꼭 안고 말했다
“허어엉, 연아, 정말 고마워.”
“어? 어, 어. 괘, 괜찮아. 울지말고.”
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
어깨를 토닥이던 난 황급히 아버지의 당부를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꼭 수향문 돌아가서 문주님께 여쭤보고 먹어.”
서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악, 부러워!”
“하령아! 안 먹을 거면 나 줘!”
“저리 안 가!”
물론 서하령이 진지하게 우는 건 얼마가지 못했다.
“나도······ 나도 백리 소저랑 친구 될래!”
“저리 가! 연이는 내 거야!”
“하하.”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참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을 적당히 상대해 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쪽 귀퉁이부터 조용해졌다.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수향문 제자들이 당혹스런 낯으로 갈라지며 새긴 통로 끝에 냉랭한 낯의 소년이 서 있었다.
“남궁 공자?”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들고 말했다.
“너 여기서 뭐 하는거야?”
“응?”
싸늘한 낯의 남궁류청이 수향문 사람들을 슥 둘러보고, 눈을 내리떴다가 공손히 인사했다. 수향문 사람들도 어색하게 마주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친 남궁류청이 곧장 나를 향해 말했다.
“소저, 어머님께서 잠시 보자고 하셔.”
“소부인께서?”
오늘따라 나를 찾는 사람이 벌써 둘이었다.
“따라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향문 사람들에게 작별한 남궁류청이 몸을 홱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서하령이 아쉽다는 듯 붙잡았다.
“벌써 가?”
“응. 너도 어차피 마저 수련해야지. 줄 것도 줬으니까 난 이제 방해 그만하고 갈게.”
나는 서하령과 수향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궁류청 뒤를 황급히 따랐다.
남궁류청은 연무장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보곤 바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뛰어 남궁류청과 보폭을 맞추곤 물었다.
“소부인께서 나를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거야?”
“가면 알아.”
나는 입을 삐죽였다.
“가면 당연히 알겠지. 미리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잖아.”
그런데 남궁류청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홱 돌아보았다.
짙은 눈썹이 잔뜩 치켜 올라가있었다.
‘뭐야? 왜 저렇게 화가 났지?’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