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네! 이 책들이 다 만신의 연단실에서 나온 거잖아요. 대부분 의술에 대한 책 아니에요?”
“맞다.”
대답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
잠시 멈칫한 내가 물었다.
“혹시 아버지, 다 읽어 보셨어요?”
아버지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섭 총간이 설명을 덧붙였다.
“의강 님께서 서책 분류 작업을 도와주셨지요.”
그럼 그렇지.
내 단전을 치료하는 데 누구보다 열정적인 분이신데, 만신의의 의술서를 읽어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알았듯이 딱히 내 단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었다.
나는 말을 이어 갔다.
“이 책들이 있으면 백리가에서 누군가 아픈일이 생겼을 때 낫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픈일?”
“네! 혹시 또 제가 겪은 것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저처럼 되지 않도록요.”
“······.”
“······.”
대충 아무렇게나 주워섬긴 말에 다들 반응이 묘했지만 뭐, 책을 받아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나는 책 말고도 몇 가지를 더 챙겼다. 만신의가 직접 제조한 것으로 보이는 금창약. 내상을 다스리는 환약 몇 개와 내공을 정순하게 해 준다는 태청환도 받아 아버지께 드렸다.
그리고 내공 증진 효과가 있는 영약도 한 개 챙겼다. 백일단이라고, 강호에서 인정받는 주씨 약문의 영약이었다.
웬만한 내공 심법과 모두 어우러지는 무난한 성질로 중품이라고 하기엔 좋고 상품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런 영약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는 나를 배웅해 주기 위해 나왔다.
“연아.”
내가 돌아보자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는 영약을 먹으면 안 되는 것 알고 있지?”
“네? 네.”
나는 어리둥절한 채 답했다.
당연한 사실을 왜 또 말씀하시는 거지?
내공 폐인이 되어 단전도 부서진 상태에 영약을 먹었다간 주화입마 2에 걸려 이번에야말로 진짜 황천행일 터였다.
“그런데 영약은 왜 달라 한 것이야?”
“아! 이거 하령이 주려고요!”
영약 싫어하는 무인이 어디 있나?
백일단이 상품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영약일지라도 그런말은 남궁 세가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것이었다.
수향문이 작은 문파는 아니지만, 남궁 세가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또한 영약이란 건 원체 귀했기에 유명 약문에서 효능을 보증하는 백일단 정도면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영약 중 하나였다.
남궁 세가에서는 부하들에게 상으로 내리는 데나 쓸 영약이지만, 수향문에서는 상품 영약 취급을 받을 것이었다.
남궁 세가가 내게 친절하고 잘 해 주었지만, 서하령도 내게 잘 해 준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기왕이면 나랑 더 친한 사람에게 가는 게 더 좋으니까!’
어차피 이것 말고 다른 영약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더 좋은 효능의 영약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서하령이 익혔을 수향문의 내공 심법과 맞는지 알 수 없어 깔끔하게 포기했다.
“······서 소저에게 주려고?”
“네!”
순간 아버지는 안도한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아버질 바라봤다. 그리고 알아챘다.
‘설마, 내가 먹으려고 달라고 한 건 줄 아신 거야?’
왜 그렇게 조심스러웠는지도 연이어 눈치챘다.
대놓고 내공 폐인인 네가 왜 영약을 달라고 했느냐 질문하면 내가 상처 받을까 봐 걱정스러워 저렇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신 거고?
‘아, 정말. 그냥 대놓고 물어봐도 되는데.’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볼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나는 옆을 걷던 아버지의 허리를 갑자기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살짝 놀란 듯 내 어깨를 짚었다.
“연아?”
“그냥요.”
작게 웃은 아버지가 날 안아 올렸다.
“정말 많이 컸구나. 조금 더 지나면 이제 이렇게 안아 주는 것도 힘들겠어.”
나는 아버지 목덜미를 꽉 끌어 안았다.
“전 안 컸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의아하다는 눈길로 나를 보았다.
“특이하구나. 나는 네 나이 땐 하루라도 빨리 자랐으면 하고 바랐는데 말이다. 보통 다른 아이들도 그리 말하던데.”
“전 지금이 좋아요.”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크면 책임져야 할 일만 늘어나잖아요.
에효.”
아버지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것이야?”
“저는 그냥 평생 아버지랑 놀고 먹으면서 살고 싶어요.”
“······나는 게으른 삶은 별로구나.”
“아버지, 여기서 중요한 건 ‘평생 아버지와’ 라고요.”
“때가 되면 사람은 부모의 품에서 독립해야 한단다.”
“······.”
들리나?
와장창 감동 깨지는 소리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이럴 때 갑자기 뒷골이 당기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아버지 어깨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내려 주세요.”
“음?”
“지금 독립할래요.”
아버지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가끔만 들을 수 있는 귀한 음성이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감동적이진 않았다.
“하하, 화났느냐?”
“안 났어요!”
아버지가 나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나는 옷자락을 탁탁 털어 정리하며 말했다.
“하령이한테 갈래요.”
“지금?”
“네.”
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진지하게 조언했다.
“서 소저에게 주더라도 지금 섭취하진 말라고 하려무나. 서 소저는 나이가 어리니 영약의 기운을 이끌 보호자와 호법을 설 이도 함께 해야 한다. 건네주되, 수향문에 돌아가서 먹으라고 당부하거라.”
“네!”
한참 서하령의 처소 방향으로 걷던 나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 보았다.
아버지가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배에 힘을 단단히 줬다.
“나는! 평생 독립 안 할 거야!”
그리고 아버지가 뭐라고 하기 전 후다닥 달려 나갔다.
* * *
도망치듯 떠나 서하령의 처소로 발을 재게 놀리던 나는 문득 떠오른 사실에 멈춰 섰다.
‘아, 맞다! 아버지한테 야율에 관해서 말하는 거 깜박했다.’
음······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가기는 좀······.
“소저?”
서하령 처소로 안내해 주던 시비가 내가 뒤따라오지 않자 돌아 보았다.
“아, 아니야. 가자.”
그냥 일단 서하령에게 가야겠다.
시비를 따라 1각 정도 걷자 서하령의 처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서하령은 처소에 없었다.
“아 맞다······”
수련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를 맞이한 하인이 빗자루를 든 채로 말했다.
“서 소저는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나오는 연무장에 계십니다. 한번 가 보시죠.
백리 소저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면 수향문 분들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음······.”
나는 날짜를 셈해 보았다.
다행히 오늘은 남궁 세가와 수향문 사람들이 합동 수련을 하는 날이 아니었다.
“일단 한번 물어보고, 안 된다고 하면 돌아가지, 뭐.”
수련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주고 가고 싶었다.
시비를 통해서도 줄 수 있지만 웬만하면 직접 주고싶었다.
‘생색내고 싶다고!’
예전에도 서하령의 손에 이끌려 수향문 문하생들이 수련하는 연무장에 가 보 적이 있었다.
연무장은 처소 가까이에 있었다.
하인이 앞장서서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잠시 입구에서 기다리자 하인이 다시 나와 말했다.
“들어오셔도 된답니다.”
넓은 연무장엔 열 명 정도의 소년 소녀들이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물론 서하령도 함께 였다.
수향문 문하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서하령의 대사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내게 조용히 눈인사했다.
나도 마주 눈인사를 하고 연무장 한쪽으로 향해 가만히 지켜봤다.
‘······모두 열심이네.’
내공이 실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공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기보적으로 유리했다.
대부분의 명문 대파의 제자들은 엇비슷하게 어린 나이부터 심법을 배워 매일 똑같은 수련을 반복한다. 내공의 깊이가 세월에 비례한다는 뜻이었다.
웬만큼 큰 기연, 공청석유 같은 그런 기연이 아니라면 대충 10대가 쌓을 수 있는 내공의 양과 30대가 쌓은 양, 60대가 쌓은 양은 예상 가능했다. 다들 영약에 미치는 이유였다.
수향문 문하생들의 장전에 쌓인 내공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하령은 제 또래로 따지면 많은 편이다.
영약을 조금 먹은 듯 싶지만, 그렇다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을 압도적으로 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수향문 문하생들과 서하령을 함께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백일단이 꽤 도움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