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 * *
소부인은 남궁류청을 내보내고, 내게 사과했다.
“네게 정말 못난 꼴을 보였다.
의미없는 말일 뿐이지만, 정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단다.”
입술을 깨문 소부인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오늘 오전에 기별도 없이 장 부인이 장철과 장오를 데리고 왔단다.”
소부인은 아마도 장 부인이 일이 더 커지기 전, 그러니까 장가장주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사과해 무마하고 싶어서 였을 거라고 말했다.
“장가장의 일이지만 장철이 친부인 장주에게 그다지 인정받고 있지 못하단다.”
여기 오기 전 수향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말과 같았다. 장철이 친부에세 냉대받는 건 이 근방에서 유명한 일인 모양이었다.
‘왠지 좀······ 비슷하네.’
장가장주에게 냉대받던 장철.
백리 세가주에게 냉대받던 나.
‘나는 할아버지고 장철은 친부지만······
하, 그러고 보니 심지어 둘 다 악역 조연이잖아?’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가슴이 답답한 것이, 장철이 어떤 심정일지······ 나는 알 수밖에 없었다.
“너도 보았다시피 장 부인이 몸이 좋지 않아 집밖에도 겨우 나설 수 있었을 텐데······.”
장 부인의 처지가 안쓰러운지 탁자를 매만지는 소부인의 낯이 살짝 가라앉았다.
“기별도 없이 여기까지 직접 와서 사과한다 하는데, 내가 거절하기가 어렵더구나.”
소부인의 행동에 흠잡을 곳은 없었다.
나는 남궁 세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고작해야 남궁 세가에 머무는 손님일 뿐.
그런데 남궁 세가에서 손님이 다른 손님을 만나지도 못하게 일방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사과하겠다고 온 것이었다면.
“거기다 류청이 장철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서······”
소부인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나는 재빨리 물었다.
“류청이 장철에게 무슨 일을 했는데요?”
주저하던 소부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장철이 잠시 남궁 세가에 머물렀던 적이 있단다. 그때 장철과 류청이 대련을 하였는데······.”
소부인이 탁자에 시선을 두며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었다.
“류청이 장철을 일방적으로 때리다가 팔을 부러트렸단다.”
나는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소부인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낯이었다.
‘아니, 왠지······ 저잣거리에서 남궁류청을 마주쳤을 때 장철만 반응이 남다르더라니.’
다른 애들은 남궁 공자가 잘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진짜 실력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패기 넘치는 연령답게 네가 잘나 봤자······ 이런 반응이었는데, 유달리 장철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오늘 알 수 있었다.
남궁류청에게 두들겨 맞아 팔이 부러졌다니!
그러지 않아도 삐뚤어진 아이가 증오심을 간직하고 사사건건 남궁류청의 발목을 잡는 악역이 되기에 딱 좋은 계기 아닌가!
소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일은 비밀로 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물론이죠.”
소부인이 흐리게 웃고 말을 이었다.
“장철이 원라 이 정도는 아니었단다. 류청과의 대련에서 충격이 컸는지······ 이후로 더 질이 안좋은 아이들과 어울린다고 하더구나.”
“······그게 류청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원인이야 될 수 있더라도 결국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방식으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채우는 걸 택한 건 본인이었다.
가령 서하령 같은 경우는 팔이 부러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궁류청의 막말에 입은 마음의 상처를 목각 인형을 두들겨 패는 수련을 하며, 복수할 수 있도록 강해지겠다는 원동력으로 삼지 않았는가?
그리고 천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내 입장에서는 ‘알 바냐?’ 가 되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지. 저런 차이가 악역과 선역을 가르는 점일지도.’
“네 말이 옮다. 류청 탓은 아니지. 하지만······ 그래도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소부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이렇게 너와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게 하여 미안하구나.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마.”
이번에 장철이 소란을 피웠으니, 이제 장 부인이 나를 만나지 못하게 남궁 세가에서 막더라도 장가장에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소부인이 거듭 사과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류청의 말도 틀린 건 없지.”
“전 정말 괜찮아요.”
솔직히 나는 장철의 사과에 별 생각 없었다
괜히 악역과 원한을 쌓아 뭐하겠나? 적당히 사과를 받아 주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남궁류청이 거기서 그런 사회생활 결격 수준의 말로 치고 나갈 줄이야.
‘아니, 남궁류청 진짜 저렇게 원한 쌓고 살다가 어느 날 칼 맞는 거 아니야?’
걱정도 잠시, 금방 깨달았다.
하긴 잘난 실력 탓에 쉽게 맞진 않겠구나. 누가 누굴 걱정해?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남궁 공자의 말이 틀린 건 없다지만······ 그래도 서로 체면이 있는데 가문 간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딱 자르겠어요?”
내 말이 어디를 자극했는지 소부인이 갑자기 울컥한 낯으로 입술을 깨물더니 눈가마저 붉어졌다.
‘뭐야? 뭐야! 소부인 우시는 거야?’
아니, 나 오늘 몇 명을 울리는 거야?
다행히 서하령보다 훨신 어른인 소부인이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다.
무사히 감정을 조절해 낸 소부인이 면구하다는 듯 말했다.
“내 주책을 피웠구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끔 이리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단다.”
“하, 나이요?”
내가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내보인 듯했다.
약간 놀란 듯이 바라보는 소부인의 모습에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소부인이 저와 길에 나가시면 사람들은 제 언니로 착각할 텐데요?”
나는 정말 모르겠다는 것 처럼 고개까지 기울였다.
“어머, 얘도 참. 하하하.”
입을 가린 소부인이 화사하게 웃었다. 좀 전의 우울함은 모두 날려 버린 듯한 모습에 내 아부에 뿌듯함을 느꼈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이를 우었다고 여기지 못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우시니까.
소부인을 보면 남궁류청의 빼어난 외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주인공 버프가 아니라······ 어머니가 저리 아름다우신데 자식의 외모가 잘나지 않았다면 그건 중죄였다.
“너 같은 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도 소부인 같은 어머니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내게 오겠느냐?”
“······네?”
소부인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은구슬이 굴러가는 것만 같은 웃음소리였다.
웃음기 남은 목소리로 소부인이 말을 이었다.
“천암사라고, 내 자주 시주하러 가는 절이 있다. 거리도 가깝고, 가는 길도 편하고 풍광도 좋단다.”
“천암사, 들어 봤어요! 복숭아꽃이 예쁜 절이죠?”
“그래. 아쉽게도 복숭아꽃을 볼 수있는 철은 아니다만······
그래도 함께 가지 않겠느냐?”
“저는 좋아요!
아, 남궁 공자도 함께 가나요?”
“원래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소부인이 말을 흐리며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됐다. 그런 못난 놈. 어차피 수련이나 한다 하겠지. 우리 둘이 가자꾸나.”
* * *
그 뒤로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소부인은 장 부인을 뵈러 가고 나 또한 방을 나섰다.
소부인 처소에서 나가기 위해 내원을 지나칠 때였다. 다급한 목소히가 날 불러 세웠다.
“백리 소저!”
“······장 2공자?”
장오가 손님방 방향의 회랑 기둥 사이에 서 있었다.
내가 그쪽에 손님방이 있는걸 어찌 아냐 하면, 장 부인이 시비의 부축을 받으며 그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장 부인은 괜찮으셔?”
“어? 아······ 괜찮으시겠지.”
······괜찮으시겠지?
반응이 미묘했다.
걱정하는 마음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장오가 그보다 급하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남궁 공자 못 봤어?”
“모르겠는데.”
“같이 있던 거 아니야?”
“난 소부인이랑 있다가 나온 차라. 남궁 공자는 먼저 떠났어.”
“아······ 알겠어.”
장오는 그걸로 볼일이 끝났다는 듯 몸을 도렸다.
‘······뭐야?’
다급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장오를 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발을 내딛다가 깨달았다.
“씁, 어디로 나가는 거지?”
올 때는 남궁류청만 졸졸 따라오느라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질 않았다.
‘뭐어······ 일단 나가 보다가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겠지.’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혹은 내 기억력이 일했는지 단번에 전각을 빠져나가는 방향을 찾았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였다.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닌, 복도 왼쪽으로 꺾은 벽 너머 빛 무리가 살짝 보였다.
어차피 도움이 필요한 시기는 지나 이대로 나가면 됐기에, 무심히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갑자기 멈춰서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금안에 시력을 집중해 빛무리를 살폈다.
‘남궁류청이잖아? 수련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여기 있지?’
그 다음에 남궁류청 맞은편에 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무공을 배운 남궁류청 또래 아이.
‘지금 여기 있는 아이라면 장철?
아니면 장오?’
둘은 체격부터 내공의 양까지 비슷했기에 금안으로는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아, 장오겠네.’
장철이었다면 지금쯤 저렇게 평온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치고받고 있었을 테니까.
아까 남궁류청을 찾더니만 용케 찾은 모양이었다.
어쩔까?
무슨 이유로 찾았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고, 들어서 뭐 하냐는 마음도 들었다.
그때 장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그 이유도 있지만······.”
보통 말끝을 저런 식으로 말을 흐리면 보통은 하던말을 끝까지 듣고 싶어서 채근하듯 되묻는다.
‘있지만 뭐?’혹은 ‘그래서?’라는 식으로.
남궁류청은······.
“할말 다 한거면 비켜.”
“어?”
“비키라고.”
여전히 예의는 밥 말아 먹은 듯한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