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13
◈ 113. [Side Story] 노병(老兵) (3)
“친손녀가 아니었군.”
쥬피터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쥬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입니다.”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아서…… 영락없이 피가 섞인 줄 알았어.”
“하하하. 닮았다니 그건 기쁩니다만.”
쥬피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친손녀도 아닐 뿐더러…… 제가 진짜 할머니 역할을 해 줬는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그 아이들을 키웠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아이들에게 저는 철천지원수입니다.”
담담히 말하는 쥬피터의 목소리에서는 피냄새가 나는 듯했다.
“고향을 불태우고, 가족과 친지를 몰살시켰어요.”
“…….”
“말은 안 해도…… 저를 미워하고 있을 겁니다.”
쓰게 웃은 쥬피터는 술잔을 입에 머금었다.
“용서받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요. 다만.”
“다만?”
“그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죄하고 싶었는데, 그걸…… 제대로 해내질 못한 거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쥬피터의 하나뿐인 눈에 아쉬움이 일렁였다.
“쥬니어는 재능이 대단한 아이입니다. 재능만으로 치면 저를 아득히 뛰어넘죠.”
확실히 그렇다. SSR등급은 평범한 재능을 초월한 천재들에게 붙는 것이니.
“하지만 어릴 때, 제 벼락에 휩쓸린 탓에…… 몸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마법의 노심(爐心)이라 할 수 있는 심장부가 약해져서, 마법을 쓸 때마다 제 수명을 갉아먹고 있어요.”
마법을 쓸 때마다 진통 효과가 있는 약초를 태우고, 코피를 흘리고 각혈을 하던 쥬니어를 떠올렸다.
그게 어릴 적에 다친 것 때문이었다니.
“그래서 마법을 쓰는 걸 금지시켰지요. 그 정도가 아니라 마법을 배우지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잘 해?”
“제가 막는다고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쥬피터는 클클 웃었다.
“어린아이의 재능과 열의 앞에서 어른들의 반대는 사소한 장애에 불과하지요.”
“…….”
“혼자서 깨우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동년배의 기량을 뛰어넘었고, 이제는 저보다 강하더군요.”
며칠 전의 대련에서, 쥬피터는 쥬니어에게 패배했다.
비록 쥬피터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낀 것이리라. 양측 다 전력이라면, 자신이 패배한다고.
“제가 저지른 일만 아니었다면, 쥬니어는 세계 역사에 남을 대마법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 잔을 채우며 쥬피터가 중얼거렸다.
“혹은 그 작은 마을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고요.”
“…….”
“15년 전 그날, 저는 그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불태워버렸습니다.”
쥬피터는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15년 전 그날 자신이 잃은 왼눈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15년 전 그날 자신이 잃게 만든 나머지 모든 것을 보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뿐.
“하지만 제가…… 어떻게 사죄해야 하겠습니까?”
쥬피터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엎드려 빈다고 망가진 그 아이의 인생이 복구가 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했겠지요. 하지만…… 돌이킬 방법 따위 없는 걸요.”
“…….”
“저는 그 아이가 가진 마법사로서의 꿈을 돕기는커녕 막았습니다. 그 아이에게 주어진 짧은 생을 마법으로 불태우지 않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꿈을 방해한 것과 다를 게 없었지요.”
쥬피터는 채운 잔을 다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다고 제가 그 아이에게 평범한 행복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도, 고향도, 제가 다 태워 버렸으니.”
“…….”
“빼앗은 것 중 무엇도…… 보상할 수 없었습니다.”
탁!
잔을 내려 둔 쥬피터가 클클 웃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솔직히 그 아이가 무섭습니다.”
“무섭다?”
“내어 놓을 게 이제 이 늙은 목숨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 이상 내놓을 밑천조차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제게 ‘당신이 빼앗은 것을 돌려 달라’고 말한다면. 저는 무엇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쥬피터는 잃어버린 왼눈 위를 손으로 덮은 채 멀쩡한 오른쪽 눈은 그냥 감았다.
“그 아이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그게 너무 무서워서…… 쥐구멍으로 숨고 싶습니다.”
“……”
“사죄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제3자인 내가 끼어들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기에. 감히 해법을 짐작조차 못하겠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므로.
잠시 나와 쥬피터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가득 차 있던 술병이 어느새 다 비었다.
내 잔에 마지막 술을 따르며 쥬피터가 말했다.
“전하. 저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복무했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황실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었던 세월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동시에, 저는 제가 저지른 일들을 혐오합니다.”
쥬피터의 군복 가슴팍에는 여전히 훈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쥬피터는 쓰라린 시선으로 그 훈장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자성 없이 학살과 파괴를 이어 갔던…… 우둔한 스스로를 증오합니다.”
“…….”
“군인이라는 역할에 취해, 마법병단 2번대장이라는 역할에 취해, 스스로를 버리고 군의 부품으로 살아갔던 어리석은 자신을…… 증오합니다.”
벌컥-
마지막 술을 깨끗하게 비운 쥬피터가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전하께서는 부디 역할에 집어삼켜지지 마십시오.”
“역할에…… 삼켜지지 말라. 고?”
“3황자라는 역할에. 지휘관이라는 역할에. 영주라는 역할에. 집어삼켜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결코 전하의 본질이 아닙니다.”
쥬피터의 말을 들으며 나도 마지막 술을 목 뒤로 넘겼다.
“오직 전하 자신으로. 애쉬 ‘본헤이터’ 에버블랙으로서, 살아가십시오.”
“…….”
“이 못난 늙은이가 아직 젊으신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꼰대 같은 충고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식도를 화끈하게 훑으며 내려가는 독주처럼, 쥬피터의 충고는 내게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결국 무엇인가.
3황자. 지휘관. 영주. 애쉬인가.
아니면 플레이어. 고전덕후인가.
어느 쪽이든, 나는 나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넋두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그래도 털어놓으니 좀 낫군요.”
쥬피터는 낄낄 웃으며 빈 술병을 치웠다.
앉은 자리에서 둘이서 몇 병이나 해치운 건지 모르겠군. 으윽. 뒤늦게 취기가 올라온다.
“쥬니어와는……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길드 바깥으로 나서는 나를 배웅하며 쥬피터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제 손녀 아닙니까. 제 이름을 물려받은, 제 손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실마리가 보일 겁니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루카스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차 좌석에 몸을 싣는 내게 쥬피터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했다.
“그렇게 믿고 싶네요.”
나도 그러길 빈다. 진심으로.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오며, 저 멀리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쥬피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든……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고.
***
며칠 뒤.
대장간에서 은제 무기가 도착했다. 수량 전체는 아니고, 발주한 것 중 일부가 견본으로 왔다.
[은제 장검(R) Lv.30]– 분류 : 장검
– 공격력 : 20-40
– 내구도 : 3/3
– 모든 부정한 적을 상대할 때 100퍼센트의 추가 대미지를 가합니다.
내구도 허접한 것 좀 보소.
하지만 옵션이 정말 좋다.
‘이 100퍼 추가댐이 단순히 무기 평타 공격력뿐만 아니라, 스킬에도 보너스로 들어간다.’
소수의 적만을 상대하는 장비이긴 하지만, 대신 그 소수 상대로는 확실한 카운터다.
부웅-!
장검을 루카스에게 주었다. 루카스는 뽑아서 가볍게 휘두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밸런스가 잘 잡혀 있군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좋아, 좋아. 이대로만 만들라고 해야겠군.”
이번에 온 것은 은제 장검, 단검, 창 두 자루씩. 그리고 화살 세 통이다.
루카스에게 장검 두 자루, 에반젤린에게 창 두 자루를 모두 주었다.
“소모품이라 생각하고 펑펑 터뜨리면서 쓰면 돼.”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요……?”
조심스레 은제 장창을 받아든 에반젤린은 이윽고 능숙하게 창을 휘둘러 보였다.
부웅-!
휘리릭!
에반젤린은 주로 기병창, 랜스(Lance) 형태의 무기를 사용해 왔는데, 이번에 온 일반 창, 스피어(Spear)도 곧잘 다뤘다.
빙글빙글 휙휙 돌리다가 얍! 소리와 함께 앞으로 붕 내찔렀다. 잘 하는데?
지켜보던 나와 루카스가 오오- 하며 박수를 치자 에반젤린은 얼굴을 붉혔다.
“아이, 일일이 리액션 해주지 마세요, 진짜! 부끄럽게.”
아니, 우리 리액션에 대한 네 리액션이 재밌는걸.
리액션 혜자 맛집은 바로 너다. 이 집 잘하네!
“기병창이 아닌데도 되게 잘 다루네?”
“그야 당연하죠. 기본 원리는 같으니까요.”
하긴 창 계열은 숙련도 카테고리 공유하지. 그렇게 이해하니까 납득이 가는군.
‘……아니 잠깐, 나 너무 겜돌이식 사고하는 거 같은데?’
잠시 스스로의 세상 모든 것을 겜으로 치환해 보는 막장성에 대해 고찰하는데, 에반젤린이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것도 있고, 아카데미에서 모든 무기군 적성 테스트 A+였다고요. 장검도 주시면 저 아저씨만큼 다룰 자신 있어요.”
“호오. 나만큼?”
루카스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에반젤린은 헤엥-? 하면서 뾰족한 두 눈을 건방지게 떴다. 이놈들 또 이러네.
“대련은 니들끼리 나중에 알아서 하고, 일단은 장비 챙겨. 갑옷하고, 방패도.”
내 말에 두 기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그 말씀은?”
“그래.”
은제 단검을 챙겨 허리춤에 꽂으며 나는 씩 웃었다.
“던전의 다음 구역으로 떠날 시간이다.”
오래 기다렸다.
기다리던 은제 장비도 왔겠다, 마침내 던전 자유탐사의 진도를 뺄 시간이 왔다.
***
이번 자유탐사는 메인 파티만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일단 이번에 갈 지역은 디온 용병단을 데려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메인 파티도 위태로운 순간이 올 텐데, 뉴비 녀석들까지 챙기기에는 지나치게 빡세다.
그림자 부대는 전투력 자체는 괜찮지만, 이번에는 편성이 발목을 잡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조합이다.’
마법사 둘, 궁수 셋.
다른 지역을 탐사할 때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오늘 갈 곳은 좁은 던전이라.
원거리 공격에 편향된 그림자 부대는 위험하다. 그래서 제외.
소규모 1개 파티로, 천천히 안정적으로 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사실 다 변명이고.’
메인 파티에게 경험치를 몰아 먹여서, 레벨링을 가속하려는 게 더 컸다.
셀렌디온 레이드 때, 셀렌디온과 맞상대를 해야 할 인원이 바로 메인 파티니까.
‘레벨업을 확 당겨 와서, 궁극기까지 배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각 캐릭터를 완성시켜 주는 최종 스킬. 궁극기.
궁극기를 배운 캐릭터와 안 배운 캐릭터의 성능은 좀 오버해서 두 배는 차이가 난다.
셀렌디온 레이드 때 궁극기를 배운 캐릭터가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기는 50레벨에 3차 전직을 하면서 개방된다.
내 영웅 캐릭터 중 가장 높은 편인 루카스와 에반젤린이 현재 30레벨대 후반. 아직 한참 멀었다.
‘정상 레벨링 속도라면 스테이지10은 가야 궁극기가 개방되려나.’
그나마 다음 스킬 개방을 노려볼만 한 건 나와 데미안 정도.
현재 나는 24레벨, 데미안은 33레벨이다.
35레벨에 2차 전직을 하고 2스킬을 배우니까, 이걸 노려볼만 하다.
‘……아니, 11레벨 폭렙해야 하는 걸 할 만하다 하는 건 약간 양심이 없나?’
하지만 잘 비틀면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나는 아랫입술을 혀로 핥으며 머릿속에서 폭렙 계획을 굴려 보았다.
‘경험치 내놔라, 망할 게임아!’
다음 스킬 내놔! 그것도 개사기로! 겜 그냥 터뜨릴 수 있는 걸로!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