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15
◈ 115. [자유탐사] 패자(霸者)의 길
파티원들은 도서관이냐, 법정이냐로 열렬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답은, 셋 다 아니다.”
나는 세 루트 전부 다 X 표시를 그었다.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
“정석적인 클리어 루트라면 세 곳 중 하나를 공략해야겠지. 하지만 나는 이 던전에 대해 잘 알고 있거든.”
그래. 지나치게 잘 알고 있지.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루트를 그려서, 도서관-대공원-법정으로 이어지는 4구역을 지나쳐 버렸다.
이 세 곳도 나중에 가긴 할 건데. 오늘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비밀통로를 따라서, 4구역을 스킵. 바로 5구역으로 간다.”
내 분필은 그 뒤쪽에 멈췄다.
“이번 목적지는 5구역, ‘콜로세움’.”
그리고 콜로세움이라는 글씨를 크게 쓴 뒤, 점을 쿵 찍었다.
“이곳을 공략한다.”
“…….”
잠깐 침묵이 흘렀다.
더듬거리던 에반젤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만요. 5구역이면 4구역보다 더 어렵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클리어할 수 있는 곳이에요?”
“당연하지.”
사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쉽게 클리어 가능한 곳이 여기다.
“그도 그럴 게 꼼수가 있거든.”
던전 기믹도 그렇고. 보스 몬스터도 그렇고.
꼼수 부리기 최적화된 던전이다. 사실 베이스 캠프 열리자마자 바로 여기부터 털 생각이었다.
“클리어는 걱정하지 마. 내게 방법이 다 마련되어 있다.”
자신 있게 말하면서 나는 베이스캠프와 콜로세움 사이의 길을 손으로 훑었다.
“다만, 보다시피 거리가 꽤 된다.”
베이스캠프의 심도는 3.
여기서 심도 5인 콜로세움까지 들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한참 기어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꽤 멀어. 어쩔 수 없이 1박2일 확정이다.”
“과연…….”
“꼼수에 대해서는 가면서 설명해 주겠다. 어차피 거리도 멀어서, 가는 동안 이야기 말고는 할 것도 없을 거다.”
분필을 내려 둔 나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아 냈다.
“이상이다. 질문……도 가면서 받도록 하지.”
뭔가 궁금증이 많아 보이던 에반젤린과 쥬니어가 아쉬워하며 손을 내렸다. 나는 씩 웃었다.
“2박3일 하기 싫으면 슬슬 출발하자. 너희 채비하느라 시간 너무 썼다.”
***
[Now Loading……텔레포트 중입니다.] [Tip – 베이스캠프에는 호수왕국 던전의 다양한 장소로 통하는 길이 많습니다. 자유롭게 여러 곳을 탐험해 보세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과해서, 베이스캠프에 도착.
이번에는 대장장이 켈리베이가 보이질 않았다. 공간술사인 코코 할멈만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히히, 우리 아가들! 또 놀러왔니?”
아니, 놀러온 건 아닌데요. 나름대로 목숨 걸고 탐사하고 있습니다만.
“어쩜, 저번보다 더 살이 빠진 거 같대니? 기다려봐. 이 아줌마가 맛있는 것 좀 줄게.”
“아…… 죄송해요, 코코 할머니. 저희가 지금 진짜 무지 바빠서.”
코코 할멈이 또 자기 공방에서 무언가의 젤리들을 꺼내려 했지만 제지하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켈리베이는요?”
“그 드워프 영감? 글쎄다. 무슨 재료 구한다고 던전 안으로 가 버린 것 같은데.”
“흠…….”
켈리베이는 항상 여기를 지키는 개근 NPC인데.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 건가.
뭐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켈리베이도 지금 시점의 우리보다는 레벨도 높고 강하다. 비명횡사는 안 할 거야.
“그럼 코코 할머니, 다른 부탁 하나만…….”
나는 코코 할멈을 데리고 베이스캠프 중앙으로 왔다.
베이스캠프 중앙에는 웬 맨홀 뚜껑 같은 것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봉인 좀 떼 주세요.”
“우히히, 괜찮겠어? 이 아래의 통로는 그 악명 높은 패자(霸者)의 길이야.”
코코 할멈이 거구를 숙이고 웃음을 참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지나는 동안 마음이 꺾일 수도 있어.”
“괜찮아요. 꺾이지 않습니다.”
“그 끝의 격전장을 제패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못해. 일방통행이 되어 버린다고. 정말 괜찮아?”
“괜찮아요. 제패할 테니까.”
“우힛, 우히히히! 켈리베이가 이번 신삥은 꽤 괜찮다더니, 과연!”
배를 잡고 웃던 코코 할멈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덜컹!
그러자 맨홀 뚜껑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위로 가볍게 열렸다.
“좋아, 다녀와! 너희의 무용담을 내 기다리고 있으마.”
“감사합니다. 할머니.”
코코 할멈은 뒷짐을 지고 물러섰다. 나는 맨홀 아래를 발끝으로 가리키며 파티원들에게 눈짓했다.
“좋아, 가 볼까?”
맨홀 안쪽은 시커멨다. 던전 특유의 입체감 있는 어둠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두운 이 동네에서도 지하로 통하는 길이다 보니, 더더욱 어두웠다.
가까이 다가가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패자(霸者)의 길]– 이 통로를 지나는 동안은 모든 스킬이 봉인됩니다.
– 해당 섹터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이 길은 폐쇄됩니다.
– 오직 진실로 용기 있는 자만이 도전하십시오.
사그락, 사그락…….
이곳의 어둠이 내는, 특유의 벌레 갉아먹는 소리가 통로 안에서 거세게 울렸다.
“…….”
“…….”
다들 안 내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루카스마저도.
그야 그럴 수밖에. 이건 생리적인 문제니까.
“먼저 가마.”
그러면 내가 앞장서야지, 뭐.
“예? 주군, 잠시만-”
루카스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푸른 불꽃 횃불’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보상으로 얻은, 절대 꺼지지 않는 횃불이다.
나는 그것을 먼저 통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횃불은 주위를 파랗게 밝히며 안으로 떨어졌다. 기다란 수직 원형 통로에는 촘촘하게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퉁-!
그리 오래 떨어지지 않고 불꽃은 바닥에 튕겼다.
“별로 안 깊지?”
씩 웃어 보인 나는 먼저 통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다른 파티원들 모두 하나씩 결심을 굳힌 얼굴을 하고, 그런 나를 뒤따랐다.
***
어둠에 의지가 있다면, 놈은 무엇을 하려 할까.
수직 통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그락, 사그락…….
벌레 갉아먹는 소리가 끊임없이 귓가에서 울렸다.
놈들이 내 귀를 갉아먹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둑한 시야 끄트머리에서 자꾸 무언가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야를 돌려보면 무엇도 없었다.
사그락, 사그락…….
어둠이 무언가 속삭이는 듯하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벌레 소리는 언어의 형상을 이루었다. 귓가에서 또렷해졌다.
죽어.
망해.
터져.
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죽어망해터져.
“…….”
무섭다.
솔직히 겁나 무섭다.
하지만.
‘게임 오버보다는 덜 무섭다.’
이곳을 지나야 콜로세움에 갈 수 있고, 콜로세움에 가야 어둠의 결정을 구할 수 있고, 어둠의 결정을 구해야 흡혈귀의 왕을 상대할 방도가 생긴다.
그렇다면 움직여야지.
그것이 클리어를 향한 단 하나의 길이라면. 어둠 속이든 용암 속이든 뛰어들 수밖에.
탁.
억겁 같은 수직 통로 답파가 끝나고, 내 발끝이 땅에 닿았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벌레 갉아먹는 소리도, 저주의 말들도, 시야의 끝을 어지럽히던 희끄무레한 무언가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푸른 불꽃 횃불을 집어 들어 위로 치켜세웠다.
직선으로 정갈하게 깎인 하얀 대리석 통로가 앞에 펼쳐져 있었다.
‘패자의 길.’
뭐 말은 멋있긴 한데, 그냥 비밀통로다.
최단시간 클리어를 목표로 하는 스피드러너들은 다 이 길 통해서 콜로세움부터 깨곤 했다.
RPG인데 웬 스피드런인가 싶긴 하지만. 업적명이 그거였어…….
탓-!
그때 루카스가 내 뒤의 통로로 날렵하게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런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좀 내려올 만했냐, 루카스?”
“…….”
루카스는 식은땀 범벅인 창백한 얼굴로 나를 마주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 쉬고 가도 되겠습니까, 주군?”
“물론. 다들 내려올 때까지 대기하자.”
말이 끝나자마자 루카스는 무너지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굳이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나는 루카스의 옆에 서서,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루카스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다행이다.
‘이곳 패자의 길에서는 모든 스킬이 봉인된다.’
내 패시브 스킬인 [불굴의 지휘관]도 봉인당했다는 뜻.
파티원들의 정신이상 상태방어를 해 줄 수가 없다. 각자 이 시련을 잘 이겨 내기를 바랄 뿐.
우당탕!
두번째로 내려온 것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거의 굴러 떨어지듯이 통로를 내려온 뒤, 몸을 덜덜 떨며 구석에 웅크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흐윽, 때리지 마…….”
“데미안.”
“미안해, 반. 내가 미안해. 살아서 미안해. 잘못했어. 그러니까…….”
“데미안!”
데미안의 양 어깨를 틀어쥔 나는 데미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있잖아.”
“하아, 하아, 하아…….”
“위에 뭐가 있었든 간에, 이제 끝났어. 그리고 다시는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떨리는 눈으로 나를 살피던 데미안은 푹 꺼진 목소리로 웅얼댔다.
“황자님. 제 손 좀 잡아 주세요…….”
“그래.”
“루카스 경도요. 제발.”
“그러지.”
나와 루카스는 데미안의 손을 하나씩 잡아 주었다. 데미안은 두 눈을 꽉 감고 덜덜 떨었다.
탓-
다음은 쥬니어가 내려왔다.
“흠.”
흥미롭다는 눈으로 통로를 올려다본 쥬니어가 자신의 큰 모자를 눌러 썼다.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저주라…… 재밌네요.”
“재밌어?”
“오백 년 전 방식이라 조금 고리타분하긴 한데, 흥미로워요.”
나는 쥬니어의 다리를 향해 눈짓했다.
“다리 떨리고 있는데.”
“아니, 이건, 그……마법사는 몸 쓰는 일에 약해요.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래 뭐, 그런 걸로 해 두자.”
그때 이쪽을 본 쥬니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셋이서 지금 뭐해요?”
“너도 이리와. 데미안 손 좀 잡아 줘.”
“네?”
“빨리. 애 떠는 거 안 보여?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고.”
머뭇거리며 다가온 쥬니어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데미안의 손 위에 포갰다.
쿵-!
마지막으로 내려온 것은 에반젤린이었다. 방패를 아래로 내리고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캡틴 크로스로드세요?
“와!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에요.”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긴 에반젤린이 구시렁댔다.
“샤워 왜 하고 왔지?”
내가 물을 말이다, 이 꼬맹아.
그리고 이쪽을 본 에반젤린은 쥬니어와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 넷이서 뭐하는 거예요?”
“뭐…… 강강수월래?”
“…….”
어째 쀼루퉁한 시선으로 이쪽을 보더니, 에반젤린은 손을 내밀고 도도도도 달려왔다.
“나도 할래요.”
“그러든가.”
포옥.
에반젤린의 쬐끄만한 손까지 데미안의 손 위에 덮였다.
“……저, 그게.”
그러고 있기를 잠시.
데미안은 커다란 갈색 눈을 굴려 우리를 힐끔힐끔 살폈다.
“저…… 이제 괜찮은데…….”
“응? 아냐아냐. 아직 떨리는걸.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그, 좀…… 부끄러운…….”
“아니, 괜찮아! 저런 저주를 무서워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결코 아니야! 힘내, 데미안!”
“힘내!”
“힘내요!”
“힘냅시다~!”
“우으으으.”
데미안은 목과 귀가 새빨개져서는 얼굴을 아래로 푹 박았다.
우리는 그런 데미안을 내려다보며 하하호호 웃었다. 놀리는 거 재밌네.
데미안이 어떤 끔찍한 과거를 겪었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는 파티원들이 함께 있으니까.
함께 괴물을 사냥하듯이, 아픈 기억들도 물리치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