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46
◈ 346. [Side Story] 새해 첫날 (2)
신전. 중앙홀 회랑.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는 여신상을 올려다보며 조금 불경할 수도 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여신이라는 분은 실재(實在)하는 건가?’
아니, 이 세계의 종교를 부정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고!(천벌 받는다! 내 사후세계!)
이곳 판타지 월드에는 실제로 신들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모양이니까.
당장 내 아버지(황제)만 해도 혼자 영계에 들어가서 다른 종족의 신- 이신(異神)들과 매일 치고받는 듯하고.
인류의 수호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이 여신님도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는지 좀 궁금했다.
어딘가에 둥둥 떠서 하계의 쌈박질을 구경하고 계시려나.
‘여신교가 너무 생활 전반에 자연스럽게 퍼져 있어서 그런가? 정작 숭배 대상인 여신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들은 적이 없네.’
여신상 옆에 선 성녀 마르헤리타가 쉰 목소리로 같은 내용의 기도를 반복해서 읊는 게 들렸다.
“이 땅의 모든 인류에게 빛을 가져다주신 여신님의 은공에 감사하며, 이곳에 모인 신도들의 신실한 마음을 모아 올해도…….”
신년기도문 같은 건가 보다. 목소리도 쉬어 있고 눈 아래도 퀭한 게, 오늘도 고생중이군.
‘마르헤리타한테 물어볼까 싶었는데 안 되겠네. 나중에 눈치 봐서 적당한 사람한테 물어보든가 해야겠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중앙홀에 들어찬 채 각자의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자, 내 파티원들도 모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
딱히 믿는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여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해 소원을 빈다는 이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감고,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누구도 죽지 않고, 앞으로의 전투들을 치러 나갈 수 있기를.’
말도 안 되는 내용임은 알아도.
그래도,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는 소원이니까.
나는 기도했다.
***
“너희는 신년 소원 뭐 빌었어?”
기도를 마치고 신전의 안뜰로 빠져나오며 파티원들에게 물었다.
“아, 물론 프라이버시니까. 대답 안 해도 돼.”
그러자 데미안이 방긋 웃으며 순수한 얼굴로 즉답했다.
“저는 올해 다들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요!”
“데미안……!”
이…… 이 천사 녀석! 왜 이렇게 착해빠진 거야! 조금 더 이기적인 소원 빌어도 좋잖아!
파티원들 모두 같은 심정인지 질린 눈으로 데미안을 보았지만, 데미안은 눈치 없이 순진하게 미소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진짜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데미안에 비하면 좀 제 뱃속만 채우는 소원 같긴 한데.”
어깨를 으쓱인 쥬니어가 자신이 빈 소원을 말했다.
“저는 멀리 떨어져 사는 동생들이 큰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내기를 빌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쥬니어는 자신의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던가.
쥬피터가 거둔 전쟁고아들. 그중 맏이인 쥬니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듯하다.
“동생들은 다들 잘 지내?”
“후후. 전하께서 급료 두둑하게 쳐주셔서 다들 잘 지내고 있대요. 아무래도 얼굴을 못 본 지 좀 되서 살짝 걱정은 되지만.”
“크로스로드가 좀 더 안전한 곳이 되면 다들 초대할 텐데…….”
“말씀만으로도 감사한걸요.”
문득 호쾌하게 웃던 늙은 전격마법사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쥬피터가 살아 있었다면, 새해를 맞아 함께 대작(對酌)이라도 했으려나.
쥬피터 몫까지 쳐서 쥬니어한테 세뱃돈 좀 넉넉하게 찔러줘야겠다. 동생들도 고기완자 스튜 든든하게 먹으라고.
“루카스, 너는?”
“저는…….”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루카스는 곧 대답했다.
“……메이슨을 추적해서 끝장내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앗.”
지난 번 특무대 침투 사건 때, 전원 사살 및 생포에 성공……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메이슨은 죽은 척한 후 탈출에 성공해 버렸다.
그리고 루카스는 메이슨을 놓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죽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아니, 상반신을 거의 두 동강 내 놓았는데, 그 상태로 살아서 도망칠 줄은 누구도 몰랐지…….
“메이슨과의 악연은 제가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끝내겠습니다.”
“그래…… 곧 끝낼 수 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신년 소원으로 이런 내용을 빌다니. 조금 소원 턴(?)이 아깝다. 더 좋은 거 빌어도 좋았을 텐데.
‘……메이슨은 페르난데스의 의사를 마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호수왕국으로 들어간다고 했지.’
그리고 그 의사란 바로, 괴수에 대한 인류의 완전한 항복.
페르난데스는 그것을 선언하기 위해 황제까지 되려 하고 있다…….
……거듭 생각해 봐도 대체 이게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황당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라면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이잖아.
‘페르난데스는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지? 무엇을 근거로, 무엇 때문에?’
결국 페르난데스를 만나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나. 아무튼 당장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우리는 마지막 파티원인 에반젤린을 보았다. 입술을 오물거리던 에반젤린은 마지못해 작게 대답했다.
“……크게 해 달라고요.”
“뭐?”
“아, 키 크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요!”
아아.
그런 건가…….
우리 모두 알겠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반젤린은 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뭐욧! 내 키에 보태준 거 있어욧?! 내 소원이 우스워욧?!”
“아니,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했어…….”
그 누구에게도 남의 소망을 비웃을 자격은 없다.
나는 에반젤린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걱정 마, 너는 나중에 훤칠해질 테니까. 황자님이 보증해요.”
오히려 이때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작고 귀여웠는데, 하고.
내 토닥임을 불만스럽게 받던 에반젤린이 루카스 쪽으로 눈짓했다.
“그럼 루카스 아저씨보다 제 키가 더 커져요?”
“어? 음…… 그건 좀 무리 아닐까……?”
그보다 저만큼 커지고 싶냐? 쟤는 너무 크잖아?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던 루카스가 피식, 비웃었고, 에반젤린은 참지 못하고 그런 루카스를 깨물기 위해 달려들었다.
얘들아. 여기 신전이에요. 조용히 다니자.
신전 안뜰로 완전히 빠져나오자, 이곳도 나름대로 붐비고 있었다.
살펴보자 올해의 운세를 추첨하는 운세점을 팔고 있었다. 사제 여럿이 열심히 소리치며 판촉 중이었다.
“자자, 오셔서 운세 쪽지를 뽑아 보시고! 올해 운을 한 번 시험해 보세요!”
헌금을 한 번 할 때마다 운세 쪽지를 하나씩 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파티원들에게 세뱃돈을 나눠 주었다. 옛다. 이걸로 까까도 사먹고 헌금도 하고 적금도 들고 그러려무나.
“좋아, 그럼 우리도 올해의 운세 한 번 뽑아 볼까?”
해서 헌금함 쪽으로 다가갔는데.
여러 통의 헌금함 중에 한 쪽이 유독 소란스러웠다. 몰려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탄식과 신음을 뱉어 냈다. 뭐야. 뭔 일인데 그래.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연애운…… ‘가망 없음’.”
촤악!
……운세 쪽지를 사뿐하게 반으로 찢고 있는 물빛 머리칼의 여인. 세레나데 발견.
세레나데는 반으로 찢은 운세 쪽지를 바닥에 휙 버리더니, 생긋 웃는 얼굴로 품에서 금화를 꺼냈다.
“하나 더 주세요.”
“네, 네에, 여, 여기…….”
그쪽 헌금함을 담당하는 사제가 사시나무 떨듯 하며 쪽지가 든 통을 앞으로 내밀었고, 세레나데는 쪽지를 하나 더 뽑아 확인했다.
“연애운…… ‘기대하지 말 것’…….”
촤악!
다시 찢어진 운세 쪽지가 바닥을 뒹굴었다.
자세히 살피자 세레나데의 발치에는 이런 식으로 찢어진 운세 쪽지들이 수북했다……. 아니,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운세 쪽지 리세마라 하고 있는 거야? 이거 괜찮은 거냐?
“연애운…… ‘짝사랑은 고통’…… 하아아.”
또다시 운세 쪽지가 안 좋은 결과와 함께 찢어졌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함께 아아-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뒤에 숨어서 이 광경을 구경하던 내가 데미안에게 눈짓했다.
“……원래 운세 쪽지에 저렇게 안 좋은 말 가득이냐?”
“아니요, 전체 비율에서 따지면 1퍼센트도 안 될 텐데…… 어떻게 세레나데 아가씨께서는 저런 것만 뽑으시는 걸까요……?”
그야…… 둘 중 하나겠지. 뽑기운이 나쁘거나, 연애운이 나쁘거나…….
“어?”
그때 머리를 쓸어 넘기던 세레나데와 내 눈이 마주쳤다.
“우, 우왓! 황자 전하?!”
기겁한 세레나데는 급히 바닥에 쌓인 운세 쪽지를 발로 밀어 치워 내더니, 빨개진 얼굴로 내 앞에 달려와 섰다.
“저, 전하께서도 여신님께 소원을 빌러 오셨나요?”
“응. 새해니까……. 세레나데 너도?”
“후후. 네.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여신님께 뻔뻔하게 제 욕심을 빌 수 있겠어요?”
그치? 소원 빌러 온 거 맞지? 운세 가챠 하러 온 거 아니지?
내가 헌금함 쪽으로 다가서자, 세레나데가 바닥에 남은 운세 쪽지를 얼른 차서 멀리 밀어내며 물었다.
“크, 크흠! 전하께서도 운세점 보시려고요?”
“음~ 헌금은 하겠지만, 운세는 안 보려고.”
품에서 금화주머니를 꺼낸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개척하는 거잖아? 나는 운세보다는 우리가 품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
그러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세레나데는,
“네, 전하의 말씀이 맞아요. 운세 따위 뭐가 중요하겠어요, 중요한 건 제 마음인걸요……!”
곧 환히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눈물을 찔끔 삼켰다.
사실 재미로 이런 거 보는 문화 좋아하는데, 지금은 세레나데를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멘트를 던졌다. 잘 먹힌 듯하니 다행이네.
헌금을 끝내고, 우리는 함께 신전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마침 잘 되었네요. 안 그래도 이따가 저택으로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신전 입구에서 방긋 웃은 세레나데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신년 선물이에요, 전하. 받아 주세요.”
“응? 이게 뭐야?”
유리로 만들어진 구(球)……였다. 안에는 흙과 찰랑이는 맑은 물이 차 있고, 그 가운데에 푸른 산호가 보였다.
“테라리움(Terrarium)이라는 거예요. 그 푸른 산호를 기르기 위한 일종의 화분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푸른 산호?”
“네. 인어족이 보물로 삼는 푸른 산호초……의 조각이에요. 이번에 운 좋게 저희 상단의 손에 하나 들어와서…….”
자그마한 테라리움 안에서 푸른 산호는 아름다웠다. 약간 흐릿하게 빛을 내뿜는 것도 같고.
“소유자에게 행운을 내려준다고 합니다. 인어족 사이에서는 출항 전에 이 산호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호오.”
“깊은 바다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며, 인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고 하네요.”
세레나데가 생긋 웃었다. 그녀의 은빛 눈이 둥글게 휘었다.
“올해 전하께서 가시는 길에 행운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고마워, 세레나데. 잘 기를게.”
조금 전에 운세를 부정했던 내가 또 행운의 부적을 덥석 받자니 약간 그림이 이상하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품에 테라리움을 받아든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쩌지? 나는 준비한 게 없는데…….”
“소녀의 선물을 잘 간직해 주신다면, 그게 소녀에게 큰 선물일 거예요.”
자신의 마차 앞에 선 세레나데가 살짝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럼 소녀는 가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하.”
“너도 많이 받아, 세레나데. 부디 올해 행복하기를.”
마차 안에서 기다리던 윈터실버 상단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단주님!’ ‘업무가 얼마나 밀렸는데!’ 같은 소리를 하며 마차를 출발시켰다.
세레나데는 창밖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끌려가버렸다.
새해 첫날부터 바쁘구나. 아니 새해 첫날이라 바쁜 걸지도.
바쁜 신전 사람들과 바쁜 상단 사람들을 번갈아 본 뒤, 나는 안 바쁜 우리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히죽 웃었다.
“자, 그럼 우리는 드러누워서 좀 더 쉬어볼까?”
원래 설날 오후에는 따뜻한 방바닥에서 선잠이나 자는 게 국룰이라고!
***
영주 저택으로 돌아오자 아직 점심 전이었다.
파티원들도 다 해산했고, 이제 오후까지 느긋하게 뒹굴면 되겠다.
‘쉬기 전에…….’
나는 품에 테라리움을 안고 에이더의 방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물어볼 게 있으니까.
“어이~ 에이더. 있냐?”
문을 열며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는 에이더가 보였다.
“헉, 영주님! 오셨습니까아!”
약간 시간차를 두고 에이더가 반응했다. 왜 이래. 버퍼링 렉이라도 걸리는 것처럼.
“여신교에 대해 묻고 싶어서 왔어.”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에이더 이놈은 스스로를 소개하기를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했었다.
전혀 믿음직하지 않지만 뭔가 초월적인 능력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럼 당연히 여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물으려는 것이었는데.
“아아, 마침 잘 오셨습니다아! 안 그래도 여신님 관련된 문제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응?”
“[가디스 블레싱]이요! [다크 이벤트]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추가해드린다고 했었잖습니까아!”
예전에 에이더가 말했던 [가디스 블레싱].
이름 그대로, 여신의 축복.
스테이지당 한 번 아군에게 버프를 걸 수 있는 기능으로, 업적점수를 소모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가.
괴수 측의 [다크 이벤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있으니, 대응 개념으로 추가해 준다고 했었는데.
에이더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더니,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번에 완성됐습니다! 이번 방어전부터 적용 가능합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