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코리안 초커
진격의 연두부.
그렇게 칭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컸다.
설마 위로 살짝 삐져나온 게 연두부의 머리 꼭대기였다니.
동시에 드는 생각.
‘초심자였구나.’
알다시피 연두부의 생김새는 간단했다.
네모난 몸체에 찍 그은 눈과 코인지 입인지 쉽사리 분간이 안 가는 하관.
그게 전부였다.
따라서 연두부를 넣어달라는 건 에피타이저로 활용해 달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연두부를 메인으로 잡고 크기에 집중했다는 건.
‘자신이 없었단 거지.’
다른 걸 만들 자신이 없다는 뜻과 같았다.
생각해 보면 랜덤으로 뽑았는데 전부 고인물인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초심자도 나와줘야지.
이것도 나름대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고.
“푸흣.”
퀄리티를 떠나서 압도적인 크기는 웃음포인트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채팅창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와, 진짜 크다…
-고인물 아니었네 ㅋㅋㅋ
-아니, 근데 나만 이 참가자 귀엽냐 ㅋㅋ 이건 순전 노가다잖아.
-ㄹㅇ ㅋㅋ
-한 시간 동안 이것만 일정하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귀엽네 ㅋㅋㅋㅋ
-날지도 못하는 애치고는 잘 만듦.
-최선이었다. ㅇㅈ.
그 말대로였다.
이게 최선의 결과물이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줍은 듯 서 있는 참가자의 캐릭터.
AngelYeundo0818 : 뒷면도 봐주세요!
그 말에 우리는 거대 연두부의 뒤로 이동했다.
“푸흣.”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뒷면은 흰색이 아니었다.
잔디 블록을 활용해서 온통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다.
연두성분이 가득 찬 버전을 표현한 건가.
“우아.. 연두색으로 꽉 차 있어요, 아빠…”
“그러네.”
“헤헤, 귀엽다…”
시은이와 레나도 동의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물론 예능의 관점에서.
“네, 잘 봤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이걸 만든 참가자는 나이가 어떻게 될까.
나이가 많다면 그건 그거대로 반전일 거 같은데.
‘그럴 확률도 높지.’
의외로 마이크래프트는 이미지와 달리 중년 아저씨들이 많이 플레이하는 게임이라 들었다.
고래에게 들은 말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
여하튼 궁금해진 나는 물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진격의 연두부 만드신 분.”
나도 모르게 ‘진격의 연두부’라고 칭하고 있다.
곧바로 채팅이 올라왔다.
AngelYeundo0818 : 15살입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어.
귀여움이 묻어나는 두 번째 참가자였다.
***
점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건축물을 감상해야 하는지.
고래의 리드도 유효하게 작용했고.
‘처음이 레전드인 줄 알았는데.’
줄줄이 튀어나왔다.
고인물의 손길과 아이디어가 결합된 감탄을 자아내는 건축물들이.
우선 얼음으로 만든 이글루와 미니 연두부가 등장했다.
색깔 때문인지 미니 연두부는 얼음과 찰떡궁합이었다.
마치 얼음왕국의 올라프처럼.
“진짜 귀엽다…”
레나를 녹아내리게 만들었지.
다음으로 등장한 건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였다.
무척 잘 만들었다.
처음과 소재가 다소 겹쳐서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apple213 : 조졌네 ㅠㅠ 처음 분이랑 겹쳐서 망해쓰요…
보기도 전에 운명을 직감한 듯 웃픈 장면을 연출했지.
고래가 말했다.
“사과님도 잘 만드셨는데요? 근데 이게 또 건콘의 묘미거든요. 똑같은 거 나오면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거, 크하하!”
확실히 소재 선택도 중요하긴 했다.
그런 와중 등장했다.
보자마자 눈을 사로잡는 임팩트 넘치는 건축물이.
“우와…”
마이크래프트 비제이인 고래도 감탄할 정도였다.
위로 솟아오른 철탑.
거기에는 거대 고릴라가 매달려있다.
상공에는 고릴라는 에워싼 채로 비행기들이 날아다닌다.
그래. 지금 상상하는 그 장면이었다.
‘킹콩.’
킹콩의 명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그 와중에 킹콩 어깨 위에 올라탄 작은 연두부가 포인트였다.
원래 저 자리에 새가 있었나?
‘너무 오랜만에 봐서 잘 모르겠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퀄리티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정교함이 느껴지는 철탑부터 야성이 느껴지는 킹콩과 에워싸는 비행기들의 디테일까지.
긴박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와ㅏㅏㅐㅏㅏㅏㅏ
-미쳤다…
-우승인데?
-한 시간 만에 만든 거 맞냐 ㅋㅋㅋ
-와ㅏㅏㅏ
-ㄹㅇ 감탄 나오네.
실성한 듯한 채팅창.
역시 킹콩을 본 세대라 그런지 그 장면의 감동을 그대로 느낀 모양이다.
물론 연두는 알지 못하는 감동이었다.
“.. 아빠. 이게 뭐에요?”
“킹콩이라는 거야.”
“.. 키콩?”
“킹콩. 엄청 큰 고릴라가 나오는 영화인데 이건 그 영화 중 한 장면이야.”
납득한 듯 연두는 물었다.
“그런데 킹콩.. 왜 화났어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킹콩을 보지는 않았어도 감정은 전해지는 모양이네.
“왜 화가 났냐고?”
“네.”
“그걸 알려면 킹콩을 봐야 해.”
“볼래여! 킹콩..!”
왜인지 연두가 발음하는 ‘킹콩’은 무척 재미있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근데 지금은 안 돼.”
“왜여..?”
“킹콩은 15세 이용가거든. 열다섯 살이 돼야 볼 수 있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7년이 지나야겠네.”
화들짝 놀란 연두는 중얼거렸다.
“치, 칠 년… 진짜 많이 남았다…”
“하하, 그렇지.”
대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고래가 입을 열었다.
“엄청난 작품인데 간과한 게 딱 하나 있네요.”
자연스레 나는 말을 받았다.
“그게 뭐죠?”
“아이들의 공감대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거. 심사위원에 맞춰 작품을 내놓는 것도 실력이니까요.”
“그렇군요.”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심사위원 중 세 명이 킹콩에 대해 모르는 걸 고려하면 소재는 조금 아쉬운 편이긴 했다.
그걸 초월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긴 했지만.
만약 이 퀄리티에 소재마저 완벽한 작품이 나온다면 이길 수 없겠지.
ilovekingkongandyeundoo : 제가 킹콩 덕후거든요 ㅠㅠ 킹콩 귀여워서 연시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착오였네요, 흑흑. 더욱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친 닉네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띄어쓰기를 고려해서 읽으면 ‘아이러브킹콩앤연두’.
닉값에 충실한 건축물이었다.
-ㅋㅋㅋㅋㅋ 킹콩 덕후는 킹정이지.
-아니, 근데 킹콩이랑 연두를 한데 묶어놓은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저게 무슨 조합이람 ㅋㅋㅋㅋ
-닉네임으로 가산점 줘야 될 듯 ㅋㅋ 띄어쓰기 좀 하라고.
-진짜 소재만 좋았으면 무조건 우승이었다.
-지금도 우승후보임.
동의한다.
우승후보 두 개를 꼽자면 첫 참가자와 이번 참가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게 가장 좋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어.’
이렇게 말하니 아재가 된 느낌이긴 한데.
어릴 적 본 킹콩의 감성을 그대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입력해두기로 하자. 지금까지 내 1위는 킹콩.
‘쉽게 안 깨질 거 같은데.’
이 임팩트를 깨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
미친 작품이 등장했다.
***
나무로 만든 작은 통로였다.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좀 특이하네.’
이번 참가자는 조금 특이했다.
채팅창이 아닌 간판에 적힌 글씨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통로를 따라 걸어갈 때마다 글씨들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초록아들입니다.)
처음부터 웃음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이 생겼네.
(제한 시간이 한 시간인 관계로 소박하게 준비했습니다.)
안 그래도 다음에는 시간을 늘릴 생각이다.
충분한 시간까지 주어졌을 때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보고 싶거든.
이 마크 괴물들이.
글씨를 읽으며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끝에 도달하니 나온 건 작은 방이었다.
“깜짝이야.”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방 안에는 익숙한 형상을 한 누군가가 거울을 보며 앉아있었다.
조커였다.
알다시피 조커는 다소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 누구에요, 아빠..?”
거울에 비친 조커의 모습을 보며 연두는 움츠러들었다.
시은이와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면. 무서워.”
“못생겼서…”
그렇군.
킹콩에 이어 조커인가.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연시레는 전혀 조커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처음 듣는다.
레나가 누군가를 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건.
‘잘 만들었네.’
짤막한 총평이었다.
소박하다기에는 조커의 형상을 잘 표현해냈다.
그런 멘트와 함께 돌아서는데,
“어?”
끝난 게 아니었다.
[EXIT]출구라는 뜻이었다.
그 밑에는 미처 보지 못한 문이 보였다.
“다들 여기로 와 보세요.”
모여서 곧장 문을 열었다.
다시 간판이 등장했다.
간판 속 글씨들은 여전히 우리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연두야.”
“네에.”
“여기부터 글씨는 연두가 읽어줄래?”
내 물음에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간판 위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비극이라고 생각했어.”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대사는 아주 잘 아는 대사였으니까.
결코 잊을 수 없는 조커의 명대사.
터벅.
몇 발자국을 더 내딛고 보니 또 간판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또,
“연두를 만나고 나서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희극이었다는 걸.”
마지막 간판이었다.
간판 위 몇 문장은 우리 모두를 숨죽여 몰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 간판을 지나쳐 옆을 돌아봤을 때,
“…!”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노란색 계단.
좌우에 있는 회색 벽 사이로 태양이 비추고, 그 아래에는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조커가.
쉽사리 소름이 가시지 않았다.
조커를 봤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햇빛 비추는 연출 미친.
-진짜 웅장해진다….
-우승! 우승! 우승!
-소재 잘못 잡았다고 했는데 대사 패러디로 메꿨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연출 뭐냐고!
-빛부터 구도까지 다 고려해서 지었다는 건데, 한 시간 만에 이게 가능한 영역이냐?
고래도 입을 열었다.
“와, 진짜 건콘 많이 해 봤는데 이건 역대급이네요. 그냥 예술을 해 놓으셨는데?”
-ㅇㅈ
-엄마.. 나 이런 거 처음 봐…
-연두튜브를 또 하나의 건콘 맛집으로 인정합니다.
-지려버렸다.
-그 와중에 구석에 숨어있는 연두부 찾은 사람? ㅋㅋㅋㅋㅋ
-지금까지 본 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나… ㅠㅠ
잠깐이지만 나도 그랬다.
킹콩 빼고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났으니 말이다.
간판의 대사 덕분일까.
뭐가 뭔지 모르는 연두도 마냥 아리송한 표정은 아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마침 옆에 보이는 연두의 노란색 티셔츠.
나는 그걸 스카프처럼 목에 두르고 연두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 으응?”
외마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 연두.
나는 살인미소를 지었다.
“후후.”
“아, 아빠?”
“내가 아직도 초록으로 보이니?”
-앜ㅋㅋㅋㅋㅋㅋㅋ
-코리안 조커… ㄷㄷ
-조커 ㄴㄴ 초커.
-코리안 초커 ㅋㅋㅋㅋㅋㅋㅋㅋ
-살인미소 미쳤다.
한편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나왔다.
“아빠! 장난치지 마세여..!”
“으, 응?”
“아빠는 아빠에요!”
눈에 꾹 힘을 주고 소리친다.
-단호하네 ㅋㅋ
-이제는 안 속는구나, 우리 연두.
-아빠는 아빠에요 뻘하게 웃기네 ㅋㅋㅋㅋ
-그 노래 떠오른다. 뒨뒨은 뒨뒨!
-ㅁㅊ ㅋㅋㅋ
나는 꽤나 당황한 상태였다.
확실히 너무 많이 써먹은 패턴이긴 하지.
반응이 재미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아빠가 아빠로 보이니?’를 남발했으니까.
‘이제 통하지 않는 건가…’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때 든 생각.
만약 여기서 굴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간다면?
“그래? 내가 정말 연두의 아빠일까?”
“…”
또르르.
기어코 2절까지 간 나는 바로 손을 내저었다.
연두의 눈망울을 보고.
“아, 아빠 맞아, 연두야! 장난이야, 장난!”
큰일 날 뻔했다.
역시 연두는 아직 세상 여렸다.
“또 장난하면 연두도 할 꺼에요!”
“뭘?”
눈에 꾹 힘을 주고 나름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서 말한다.
“연두가.. 아직도 아빠 딸로 보여요..?”
혼신의 연기.
심지어 반말도 아니고 존댓말이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공손한 영혼이 들어갔구만.
“푸흣.”
결국 웃음이 터졌다.
참으려 했는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빵 터진 나를 연두가 째려보는 사이,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뭐냐, 방금?
-레전드 장면이 스쳐 지나간 거 같은데.
-미친 개귀여워 ㅋㅋㅋ
-우승! 우승! 우승!
-아닠ㅋㅋㅋㅋㅋ 왜 연두가 우승인 거냐고.
-기승전 연두 ㅋㅋㅋㅋㅋ
-클립 또 한동안 여기저기서 나돌겠다. 방송만 켜면 꼭 한 번씩은 레전드 클립 생성이네 ㅋㅋㅋ
본의 아니게 레전드 장면을 또 하나 뽑아낸 연두였다.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이 등장했다.
나와 연두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참가자도 있었고, 책상 위에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참가자도 있었다.
깜짝 놀랐다.
게임 속 진수성찬을 보고 입맛을 다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장난 아니네.’
마이크래프트 고인물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네, 잘 봤습니다.”
마지막 작품까지 감상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씩 웃으며 나는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제1회, 연두튜브 마이크래프트 건축 콘테스트 시상식을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상식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