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49)
649화. 연두튜브 케미 이상형월드컵
막상 보여주고 나니 수줍은 걸까.
살짝 붉어진 얼굴.
치솟은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며 나는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 미치겠네.’
다시금 올라가는 입꼬리.
역시 못 참겠다.
나를 웃게 만든 건 단순히 여름방학 계획표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부분부분 틀린 귀여운 맞춤법 때문은 더더욱 아니고.
1. 아빠랑 수족간 가기
2. 아빠랑 할머니내 가기
3. 아빠랑……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포인트는 거의 대부분이 ‘아빠랑’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기분이 좋은 한편 또 쑥스러워진다.
‘이런 줄도 모르고 쫌생이처럼 삐지기나 하고.’
연두는 나와 함께할 여름방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삐져있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아냐, 잊자.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나는 항목 하나하나를 읽어내려가며 눈에 담았다.
‘이런 것들이 하고 싶었구나.’
물어본 적은 많았다.
지금껏 안 해본 것 중에서,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게 있는지.
그러나 말로 묻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적은 걸 보니 확실히 연두가 바라는 여름방학의 모습이 감이 왔다.
27. 콩쿠루 나가기
무려 27번에 콩쿠르가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그에 관련해서 이은경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의 결론은 하나였다.
슬슬 다시 콩쿠르에 나갈 때가 됐다는 거다.
레나와 함께 도전한 첫 콩쿠르는 출전이 불발됐으니 실패라고 볼 수 있다.
허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패는 아니었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보면 콩쿠르 우승보다 값진 장면들을 봤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남은 건 우승뿐이야.’
콩쿠르 일정에 관한 건 이은경이 전해주기로 했다.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는 연두에 관해 많은 것들을 신경 써주고 있었다.
특히나 피아노에 관해서라면.
이제는 완전히 스승과 애제자 관계가 고착화됐다고 해야 하나.
‘마법 같은 일이지.’
가끔 망각할 때도 있지만 이은경은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다.
그런 사람이 연두의 스승인 거다.
생각하면 할수록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관계에 가장 집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은경이라는 거고.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피아노에 관해서는 연두도 전적으로 이은경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제 둘은 억지로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애틋한 사제관계가 됐다는 것.
천천히 입을 뗐다.
“연두야.”
“네, 아빠.”
“다른 건 몰라도 27번은 좀 고쳐야 되겠는데? 콩쿠르 나가기.”
흔들리는 눈동자.
갑작스러운 지적에 당황한 듯한 반응이다.
“아직.. 연두 피아노 못 쳐서요..?”
아무래도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이다.
내가 뱉은 고쳐야겠다는 표현의 의도는 콩쿠르를 나가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빠가 조금 고쳐도 될까?”
“.. 네에.”
힘 빠진 연두의 목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나는 펜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수정을 가했다.
슥. 슥.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계획.
새로이 탈바꿈한 27번을 본 연두의 입이 자그맣게 벌어진다.
27. 콩쿠루 나가서 우승하기!
이윽고 나를 향하는 연두의 시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거니까.”
“.. 아, 아빠.”
“그래도 미안해. 연두가 세운 계획을 아빠가 멋대로 바꿔서.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원래대로……”
휙. 휙.
괜한 걱정이었다.
고개를 휙휙 저으며 연두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으니까.
“원래대로 안 해요! 엄청.. 엄청 마음에 들어요..!”
“하하, 다행이네.”
장난스레 물음을 덧붙였다.
“우승할 자신 있어, 연두야?”
“아빠가……”
“응?”
“우승하기라고 아빠가 적었으니까.. 그래서 연두 계획 됐으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내 수정으로 계획이 바뀌었으니, 이제 그게 연두의 계획이 됐다는 뜻이다.
즉, 연두 나름의 자신감을 드러낸 거다.
척.
연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빠는 믿어.”
“.. 으응?”
“연두가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은은히 번지는 미소.
그 뒤로 나는 계획을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갔다.
조심스레 연두가 입을 뗀다.
“아빠..”
“응, 연두야.”
“여름방학 계획.. 너무 많아여?”
“조금 많긴 하네.”
어쩔 줄 몰라 하는 연두를 향해 덧붙였다.
“그래서 더 좋지만.”
“네?”
“연두가 여기 적은 건, 아빠도 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니까.”
진심이었다.
어느 하나도 지우고 싶은 게 없었다.
하나같이 연두가 바라는 계획들이고, 연두가 원하는 걸 내가 싫어할 리 없으니까.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전부 다 하자, 이번 여름방학에.”
미세하게 떨리는 볼.
내가 이렇게 반응할지 몰랐던 걸까.
그렇다면 이 타이밍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을 줄 필요가 있겠군.
“근데 연두야.”
“네.
“다 좋은데 계획표에서 하나 빠진 게 있는 거 같은데?”
코난에 빙의한 듯이 나는 턱을 짚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따라 연두도 반응한다.
“빠진 거?”
“응.”
“그게 뭔데여..?”
“들어 봐. 연두는 초등학생이잖아. 맞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맞아여.”
“초등학생은 학생이고.”
“으응.”
“그럼 수수께끼 하나. 학생의 본분은 뭘까요?”
“…”
이쯤 되니 연두도 감을 잡은 표정이다.
그와 별개로 섣불리 나오지 않는 답.
분명히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여기서 멈추면 부모라 할 수 없지.
“뭘까요오?”
그제야 들려오는 세상 자그마한 목소리.
“…… 부요.”
“응? 아빠가 귀가 안 좋아졌나? 갑자기 연두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혹시 다시 말해줄 수 있겠뉘?”
“…”
소위 말하는 킹받는 말투를 한 번 구사해봤다.
축 처진 고개.
그러다 무언가 돌파구를 찾은 듯이 연두가 입을 뗀다.
“.. 아빠!”
“응?”
“유준이오빠가 그랬어여! 공부는 학교에 가서 하는 거라고..!”
“오호, 그랬어?”
“네!”
나름 괜찮은 논리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건데 방학에는 학교에 가지 않으니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논리.
나는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볼래, 연두야?”
향하는 곳은 연두의 방이었다.
안에 들어간 나는 책상 앞 의자를 슥 잡아끌었다.
그러고선 말했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 네?”
“방학 동안에는 여기가 연두 학교거든.”
망연자실한 표정.
기어코 나는 계획표에 계획을 하나 추가했다.
35. 아빠랑 열심히 공부하기!
아무래도 당분간 연두 방은 연두에게 미움받을 거 같았다.
***
첫 프로젝트의 성공.
그로 인해 찾아온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인지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지.’
스튜디오 초록.
작화팀을 개설할 당시부터 과분한 주목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팀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엄청났던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팀으로서 증명한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달라졌어.’
이제는 달라졌다.
앨범 유출 건부터 프로미스의 성공적인 데뷔로 작화팀까지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관심을 받았다.
커뮤니티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나뿐 아니라 팀원들에게까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예능 제의도 받았지.’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담고 싶다는 취지의 제안이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거절하긴 했지만.
이런 변화의 이유는 하나였다.
그만큼 인지도가 올랐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됐다는 뜻이었다.
커다란 성과였다.
이제 겨우 첫 프로젝트를 끝마친 걸 고려하면.
‘그리고.. 이것도 있고.’
사실상 가장 큰 변화였다.
작화팀 이름으로 개설했던 메일.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초록’에 드릴 제안이 있어 메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수많은 메일.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더 이상 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협업 제의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다.
팀으로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가장 원했던 변화였다.
‘이제 공유할 수 있겠어.’
개인적으로 세운 조건이기도 했다.
만약 ‘스튜디오 초록’이 팀으로서 인정받게 된다면, 그때 이 메일을 팀원들과 공유하기로.
그 시기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기대가 됐다.
이 많은 선택지 중에서, ‘스튜디오 초록’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
며칠 남지 않은 연두의 여름방학.
공교롭게도 나도 방학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팀원들에게는 일주일간 휴가를 줬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첫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에 대한 포상 휴가의 개념이었다.
윤호 삼촌에게 들은 적이 있다.
몇 달간에 걸친 프로젝트를 하나 끝내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기간의 휴가가 주어진다고.
쉬는 동안에도 돈은 그대로 나오고.
처음에 들었을 때는 신기했다.
그러나 나중에 작화팀을 구상할 때는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니까.
외삼촌 회사처럼 몇 달을 쉬는 건 오버지만, 일주일 정도는 휴식기를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
그 뒤에 팀원들과 메일 주소를 공유하고, 제2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부작용이 있긴 하네.’
심심하다는 게 유일한 부작용이었다.
계속 작화팀과 학교, 그리고 집을 오가며 쉴 틈 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럴 때는 방법이 있지.’
세상 심심할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은 누렁이랑 놀기다.
킬링타임으로 훌륭하지만 지금은 기각이다.
‘계속 놀았거든.’
낚싯대로 한참을 놀아줬다. 먼저 지친 건 누렁이 쪽이었다.
세상 신나게 놀더니 지금은 방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다시 심심해졌고.
슥.
남은 건 하나였다.
연두튜브.
눈 깜빡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공간이다.
마침 확인할 게 많았다.
쪽지함도 한동안 안 봤고,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에도 안 들어갔으니까.
먼저 들어간 건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였다.
구독자가 또 늘었다.
들어갈 때마다 상승세인 건 변함없지만, 이제는 그 단위가 달라졌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 곤란한데.
이러면 이천만 구독자 이벤트 준비를 서두를 수밖에 없겠어.
‘수익은……’
말이 안 나왔다.
언젠가부터는 달러를 원화로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그 밖에도 여러 항목을 둘러본 뒤에 창을 닫았다.
다음은 쪽지함이었다.
‘여기도 장난 아니군.’
제의가 장난이 아니었다.
작화팀 메일함이 작화에 관련된 제의라면, 유투브 쪽지함은 합동 방송이나 그 밖의 콘텐츠에 관한 제의였다.
놀랍긴 하다.
군대에 간 동한이를 마지막으로 딱히 타 크리에이터와 교류한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럼에도 이렇게 매일같이 쪽지가 쏟아진다는 게.
달칵. 달칵.
몇 개의 쪽지를 읽은 나는 창을 닫았다.
‘나머지는 다음에 확인하자.’
아무래도 날을 제대로 잡아야 할 거 같았다.
이 쪽지를 다 읽으려면.
놀랍게도 몇 개를 읽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안 읽으면 안 되냐고?
‘예의가 아니지.’
정성껏 써서 보냈을 텐데 안 읽고 지워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재밌는 쪽지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창을 닫고 나서 유투브를 닫으려는 참이었다.
‘.. 어?’
유투브 메인.
실시간 인기 동영상란에 시선을 잡아끄는 썸네일이 보였다.
뭐야, 나랑 연두잖아!
그런데 내가 이런 썸네일의 영상을 올린 기억은 없다.
당황한 나는 눈을 세게 한 번 감았다 뜬 뒤에 영상 제목을 확인했다.
[연두튜브 케미 이상형월드컵!(feat. 대망의 1위는!?)]생각지 못한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