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101)
040. 개혁과 혁명의 차이(2)
3.
예술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전.
나는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라. 너희들이 작품에 담아내야 할 러시아는 어떠한 개입도 없는 순수한 모습이어야 할 터. 게다가 괜히 소란을 일으킨다면 모두가 불편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세르게이와 그들이 떠난 뒤.
호위대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 대신 경호는 더욱 철저히 해야겠군요. 아직 이곳은 안정되었다고 보기 힘드니까요.”
빈 회의에서 폴란드는 모든 영토가 러시아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퍼져나가는 유럽의 상황을 고려하면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수십 년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야금야금 먹히다가 마지막 발악으로 나폴레옹의 편에 서기까지 했으니. 어떻게 보면 핀란드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지.’
바르샤바 공국에서 폴란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나선 수십만의 젊은 청년들은 러시아 원정 도중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폴란드의 왕족, 포니아토프스키라는 정신적 지주마저 잃어버렸으니 러시아에 분노가 상당할 터.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잘해주는 것밖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들을 다독이고자 핀란드의 모델을 많이 가져다 이식했잖느냐?”
농업생산량 증진과 새로운 작물 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협동조합.
개인이 투자하고 운영하며 국가가 지원하고 감독하는 수많은 회사와 공장 설립.
여기에 러시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대대적인 무상교육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보고 들은 게 많았던 호위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상부에서 내려온 총독 역시 폴란드계 러시아인 관료를 앉혀놓았으니 비교적 반발이 적으리라 예상합니다.”
원 역사에서는 콘스탄틴 대공이 폴란드 총독에 눌러앉아 엄청난 폭정을 펼쳤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드르 1세가 직접 나서서 말릴 정도였겠나.
‘그나마 나를 만나고 나서는 성격이 좀 죽었다지만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콘스탄틴에게는 분쟁지역에서 후방을 맡기는 게 가장 괜찮단 말이지.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리긴 해도 배신할 염려는 없으니까.
저번 러시아 원정 때도 모스크바를 맡아줘서 제법 든든했거든.
‘형님. 나중에 중동, 중앙아시아 등 남쪽 지방을 정벌할 때 데려갈 테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십쇼. 그러고 보니 원래대로라면 재혼을 폴란드인과 한다고 했던가요? 평생 홀로 살게 둘 수는 없으니 종종 무도회가 열리면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내가 콘스탄틴이 거주하고 있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을 바라보는 동안.
예술가들은 마을을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공장과 주거시설이라니. 공업단지라도 세웠단 건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허였을 텐데 잘도 만들어놨군.”
다행히 니콜라이가 의도했던 대로 폴란드는 그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발전하는 중이었다.
이건 단순히 폴란드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지리적인 특성도 한몫했다.
“하긴 독일 연방과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동네니 인적 자원을 구하기 쉬웠겠어. 지난 전쟁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독일 민족이 그렇게도 많다지?”
“그쪽에는 워낙 기술력이 좋은 장인들이 많으니 서로 교류가 이루어지면 큰 효과가 있을 거야. 단기간에 이렇게 지어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비록 장인의 시대는 저물었으나 그들이 지닌 기술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영국의 산업혁명도 과학의 발전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술자들의 시행착오로 탄생한 증기기관 등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니까.
‘앞으로 유럽연합의 미래는 밝겠어.’
‘우리 프랑스도 서둘러 따라잡아야 할 텐데. 그나마 니콜라이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다행이려나.’
언어가 달라 쭈뼛거리는 프랑스인들과는 다르게 독일인 예술가들은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노동자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때마침 휴식 시간이라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혹시 이 공장의 주인은 누굽니까? 분명 명망 높은 황족이나 귀족이겠지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지도자 계층에 관해 물음을 던졌다.
이건 다른 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였다.
‘이렇게 대우해줘도 남는 게 있나? 늘그막에 자선사업을 벌이는 돈 많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텐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저희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취업 알선은 정부에서 알아서 다 해주거든요. 회사와 공장마다 요구 조건은 다르지만 정부에서 정한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니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여기에는 어린애들조차 없단 말이오?”
“어휴. 애들은 공부하고 한창 뛰어놀아야지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물가가 안정되니 그리 큰 부담은 없습니다.”
‘러시아가 이렇게 선진적인 제도를 갖췄다고?’
‘일자리 걱정이 없는 사회라니. 참으로 놀랍구나.’
노예나 다름없던 그들이 이토록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줄이야.
심지어 각지에 설치된 직업소개소는 개인의 역량과 여건에 맞는 직장을 알선해주기까지 했으니.
예술가들의 마음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술과 능력만 있다면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이야. 나도 예술 따윈 때려치우고 여기서 한번 일해볼까?’
그건 결코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지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넘어온 이주민들도 잔뜩 있었으니까.
“아니, 이게 누군가. 저거 산동네에 살던 리암 맞지?”
“오오. 반갑네. 그간 잘 지냈나?”
반가운 듯 담소를 나누던 두 사람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알면 알아갈수록 러시아는 놀라운 것이 많은 나라였다.
“초등학교 무상교육? 기초적인 교육을 공짜로 해준다는 소린가?”
“그럼. 직장에는 의무적으로 교육시설을 갖추게 되어있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니 사장들도 부담은 별로 없지.”
“…..!”
원 역사에서 영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수십 년은 앞서 산업화를 이룩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준은 자연스럽게 영국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과 교육 시스템을 처음부터 한데 묶어놨다는 것은 정말 혁신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예술가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어린애들을 찾아나섰다.
“애들아.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겠니?”
“아저씨는 누구예요? 어디서 왔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러시아어로 떠들어대자 그나마 친분이 있는 한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봐, 세르게이!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건가?”
“원래 여긴 독일어를 쓰는 동네일 텐데. 참 이상하군.”
서둘러 달려간 세르게이는 단번에 니콜라이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 세대는 몰라도 다음 세대부터는 완전히 러시아인으로 키워내려는 것이로구나.’
원 역사에서 러시아는 엄청나게 많은 영토와 민족을 거느린 대국이었다.
하지만 철지난 전제정치를 강요하며 다른 민족들을 탄압한 끝에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전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통해 상처 입은 폴란드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뿐더러 자연스레 러시아인으로 동화시키고 있지 않던가.
‘이들이 러시아와 영원히 함께한다면. 그 어떤 나라도 부럽지 않으리라!’
세르게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어느새 따스함이 가득 흘러넘쳤다.
4.
예술가들을 마을에 풀어놓은 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구경을 잘하고 있나 보군.”
“……”
사실 그건 호위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에 따른 반작용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 이렇게 질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날 세대는 어쩌면 ”
“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나중에 유럽에 공산혁명을 일으킬 주역들은 의외로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이 많았다.
그들은 심지어 변절조차 잘 하질 않았으니 각국의 군주들에겐 크나큰 골칫덩이였으리라.
‘하긴 자신들의 사상을 곱씹고 정립하며 생산적이지 못한 일에 인생을 낭비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다만 그에 대한 예방작업은 한참 전부터 되어있었다.
“일관되고 상식적인 교육을 보편화하여 백성들의 대다수가 오염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눈에 띄는 그들을 쉽게 색출할 수 있겠지.”
“색출한 이들은 전부 제거하는 것입니까?”
원 역사에서 이 몸뚱이는 온갖 혁명조직에 첩자를 심어두어 수상쩍은 자들을 시베리아로 보내버리곤 했다.
이를 위해 비밀경찰의 힘을 어마어마하게 키워 숨 한번 들이쉬기도 어려운 세상을 만들었지.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아니. 그걸 아깝게 왜 죽이나? 자기들끼리 이상사회를 만들어볼 수 있도록 기회는 마련해줘야지. 그래야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칠 게 아닌가?”
“그 말씀은 설마……”
“내 러시아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은 전부 잡아다 영국으로 수출한다. 거기서 어디 한번 열심히 혁명을 일으켜보라고 하려무나!”
내 러시아는 유토피아 같은 이상사회는 될 수 없다.
철저히 내 입맛에 맞는 국가가 될 테니까.
‘설령 세계를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혁명이 아닌 개혁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겠어!’
그때 어디선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세르게이와 함께 한창 초등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예술가들은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뭣이? 애들 급식이 이렇게 부실하다고? 지원금까지 받아 처먹고 이게 대체 무슨 장난질이야?”
“이거다!”
“드디어 찾았다!”
건수 하나 제대로 잡은 그들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쏟아내며 역사의 한 장면을 새겨넣기 위해 애를 썼다.
이 소식은 당연히 내게도 전해졌다.
“전하. 보십시오. 전하께서 지시한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급식이 공공연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폴란드계 귀족들과도 연이 닿아있을지 모릅니다. 속히 조치해주십시오.”
잠자코 얘기를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제 보니 이 녀석들과 취재 기자가 다른 점이 뭐가 있지?’
사진이 발명되기 전이라 어설프긴 해도 그림으로 대신했다.
여기에 당장이라도 잡지와 신문에 올리고 싶어 사실 위주로 요약한 글까지 더해지니 기사 한 편이 뚝딱 만들어졌다.
‘이거 실력이 좀 처지는 사람 중에서 열정 있는 자들은 언론인으로 키워봐도 되겠는데?’
모든 예술가가 탁월한 재능을 가지진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이동파 화가 중에서도 재능에 따라 파벌이 갈려 극도로 대립하지 않던가.
그런 이들을 거둬들여 정보국 같은 기관의 기자로 고용한다면.
어쩌면 마르크스가 창간하고 레닌이 극찬한 신라인신문의 대항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양날의 검인 만큼 잘 사용하는 게 중요하겠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미 수천만, 수억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역대급 황태자가 아니던가!
‘평생토록 콩깍지를 쓰게 해주마. 설령 벗겨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 어떤 대안보다 내가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말겠다!’
속으로 의지를 불태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일단 빌나성으로 가자. 그곳에서 주동자를 색출하고 질서를 바로잡겠노라!”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점령했던 곳이자 한때 대학을 중심으로 배신자들이 속출했던 장소.
이번에도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