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169)
069. 대제국을 건설하다(1)
1.
나폴레옹의 필체는 여전히 악필이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누군가 따로 정리해둔 덕분에 별 무리 없이 읽어나갔다.
– 니콜라이여, 오랜만이구나. 오스만 제국을 공략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분명 네놈이라면 팔다리를 다 잘라놓고 술탄에게 제안을 강요했을 테지. 마치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일까.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 그래도 결과만 놓고 보면 썩 나쁘진 않다고. 나폴레옹 당신은 물론이고 마흐무트 2세도 이슬람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으니까.’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짜둔 판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지만,
속으로 미소를 머금은 나와는 달리 게오르기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아무리 나폴레옹이라 해도 그렇지, 신하 된 도리로서 너무 건방진 건 아닌지요?”
“놔두거라. 한때나마 황제였던 자가 아니더냐? 게다가 프랑스의 차기 국왕이 될 녀석이 그의 조카이니 최소한의 존중은 해줘야겠지.”
나중에 샤를과 프랑스를 통제할 패로도 쓸 수 있는 만큼 나폴레옹의 가치는 무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게오르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읽어보시지요.”
이런저런 잡설이 이어진 뒤.
드디어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 청나라는 지금 수십 조각으로 분열된 상태다. 위구르인의 서장과 티베트인의 신장, 그리고 제국에 타협한 몽골족, 만주족이 모인 내몽고와 만주까지. 이 네 곳은 확실하게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나 본래 한족들의 영토였던 중원은 여전히 난장판이지.
– 이걸 국민성이라고 해야 하나? 도광제가 사라지니 군벌, 토호들끼리 편을 갈라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더군. 심지어 공산주의라는 이상한 사상을 가져와 지껄여대는 미친놈도 봤다니까. 그래도 내가 맡은 네 곳만큼은 청정구역으로 만들어두었으니 안심해도 좋아.
– 자세한 건 막심 그 맹랑한 놈과 바그라티온 원수가 맡았으니 따로 물어보아라. 나는 네가 시킨 대로 총독 놀이, 교주 놀음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니까.
나폴레옹은 이외에도 자신과 다부 원수, 근위대의 공적을 떠들어대며 자랑하기 바빴다.
게오르기는 그런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성과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야. 몽골족은 그렇다 쳐도 만주족까지 회유에 성공하여 만주를 집어삼키다니. 대체 어떤 수완을 발휘했을까. 설마 이것도 폐하께서 계획해두신 건가?’
게오르기가 묘수풀이를 해나가던 와중.
때마침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폐하. 그러고 보니 뮈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도광제를 속이기 위한 패 말이냐? 임무를 완수한 뒤 잘 먹고 잘사는 것 같더군.”
‘나폴레옹이 본인과 프랑스 민족을 배신한 역적을 살려뒀다고? 그렇게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게오르기는 황급히 편지를 살펴나갔다.
그곳에는 놀라운 말들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 사실 뮈라 그 녀석을 본 순간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지.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현명해지는 건 가능하더군. 시종일관 임무에만 충실하여 트집 잡을 게 없었다니까.
– 전통을 유지한답시고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해놓고 방치된 만주족과 도광제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낸 건 전적으로 그 녀석의 공이다. 그러니 작은 장원 하나를 마련해준 걸로 트집 잡지 않으리라 믿는다.
게오르기는 뭔가 찜찜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공적은 인정할 만합니다만…… 그래도 분란의 씨앗을 남겨두는 건 찝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내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당사자가 용서했는데 뭘 더 따지고 드느냐?”
내가 내린 시련과 역경을 거치고도 나폴레옹의 밑에 들어갔다는 건 정말 진실로 뉘우쳤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공이 과를 덮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뮈라 그 녀석도 남은 생은 편히 보내야지.”
원 역사에서 뮈라는 총살당해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마지막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잘난 얼굴이 아닌 다른 곳을 쏴서 죽여달라 했던 일화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제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편히 살길 바란다.’
짤막하게나마 축복을 빌어준 뒤.
나는 막심이 보낸 편지를 펼쳐들었다.
나폴레옹처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나 안부를 묻는 등 수많은 문구가 쏟아졌다.
그러다 시선이 멈춘 곳은 역시 청나라에 관한 내용이었다.
– 폐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가장 먼저 주요 항구와 무역로를 점거하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과 무역을 재개했습니다. 이렇게 돈줄을 쥐고 흔드니 한족 상인들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알아서 복종하더군요.
– 사실 동방 원정군의 무력이라면 중원의 혼란을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폐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고민해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 저는 한족들끼리 서로 증오하고 원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전쟁이 터질 만큼 일이 커지면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원수는 이웃으로 변하고, 저희는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가 되어있더군요. 덕분에 세금까지 알아서 바쳐서 한결 편해졌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바그라티온 원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는 얘기를 끝으로 편지는 마무리 되었다.
차분히 내용을 곱씹어 보던 내 눈에 이채가 흘렀다.
‘호오, 막심 이 녀석 정말 많이 컸구나. 그동안 가르치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도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제국 군사 아카데미에 방문하거나 교육지침을 내릴 때마다 강조했던 건 다름 아닌 역사였다.
‘그걸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려 했는데. 그게 제대로 먹혔어.’
과거 몽고-타타르의 지배를 받던 러시아 내 수많은 공국들도 비슷한 역사를 거쳐야만 했다.
그걸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그대로 갚아주게 되니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
‘이쪽은 이제 믿고 맡겨도 되겠어. 나중에 조선과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만 한 번 더 짚어줘야겠군.’
2.
아시아가 의도한 대로 잘 굴러간다는 걸 확인한 뒤.
어느새 나와 게오르기의 관심은 북아메리카로 옮겨갔다.
“그쪽도 청나라 못지 않게 역학관계가 복잡하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쯤 남북전쟁이 끝났는지 궁금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부디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군요.”
내가 가장 먼저 펼쳐 든 건 바르클레이 원수의 서신이었다.
그가 바로 북아메리카 원정군을 이끄는 수장이었으니까.
– 폐하.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미국은 본국의 중재 하에 둘로 갈라서기로 결정됐습니다. 다만 본국의 지원을 받는 북부와는 달리 남부는 열악한 상황이라 머지않아 무너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이 차지한 영토를 통째로 집어삼키겠습니다.
원 역사보다 수십 년 일찍 터진 탓일까.
남북전쟁의 희생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정확한 수를 세기 힘들어 수십만이라고 뭉뚱그려놓은 것만 봐도 대충 짐작됐다.
‘하지만 그렇기에 원주민과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과 멕시코, 남미 방면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
게오르기는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지지의 말을 건넸다.
“저는 폐하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결국 미국놈들은 화를 자초한 거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진즉에 잘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
노예제를 여전히 원하는 이들은 죄다 남부로 몰아넣었으니 쓸어버리기도 쉬우리라.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쿠즈민의 서신을 펼쳐 들었다.
다행히 그곳엔 미소를 지을만한 소식이 여럿 있었다.
– 폐하의 가르침과 보살핌 덕분에 북아메리카 중부와 서부는 완전히 본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캐나다는 본래 영국이 지녔던 전통을 유지하도록 도운 덕분에 본토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적어도 이곳만큼은 공산주의자들이 손대지 못할 겁니다.
‘이건 굉장한 성과군.’
영국 본토를 순조롭게 공산화하려면 반대하는 세력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마치 전생에서 중국 본토에서 쫓겨나 자기들끼리 살림을 차린 대만처럼 말이지. 흐흐.’
속으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 나는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근황을 읽어나갔다.
– 폐하께서 궁금해하실까 싶어 말씀드립니다. 푸시킨은 검은 영웅이라 불리며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부상하였고, 글린카는 수많은 음악을 만들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는 중입니다. 두 사람의 성과를 전시한 박물관까지 생겼으니 나중에 한 번 들러주시길 간청하옵니다.
– 차다예프 또한 저를 보좌하면서 많은 공을 세우는 중입니다. 비록 상식을 벗어나는 기발한 계책을 내놓는 건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내부를 다스리더군요. 게다가 부족한 행정인력을 채우고 교육하는 데에는 아주 탁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폐하의 치세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할 인재라고 생각되옵니다.
난세에는 분명 기책사(奇策士)가 필요했다.
하지만 태평성대에는 확실히 차다예프 같은 내실 있는, 사상이 바로 된 인재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큰 줄기만 잘 잡아주면 되겠구나.”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어느덧 다 커버린 이들을 바라보니 괜히 묘한 생각이 들었다.
3.
네 사람의 서신을 모두 읽은 뒤.
나와 게오르기는 그동안 이뤄낸 업적을 곱씹으며 깊은 감상에 빠졌다.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도다.’
빈 회의에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치달았어야 할 러시아 제국.
그것을 정 반대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도움이 필요했는지.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미래는 더욱더 험난하고 예측하기 어려울 테니까.’
옛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벌써 1830년이 되어버렸다.
만으로 서른넷이라는 나이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판도를 그려내다 보니 부담이 컸다.
이제부턴 원 역사라는 답안지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 나가야 했기에.
그래도 두렵거나 떨리진 않았다.
이미 내게는 믿을 수 있는, 평생을 함께할 인재들이 수두룩했으니까.
‘바로 이 녀석처럼 말이지.’
게오르기와 시선을 마주한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스탄티니예를 함락시키고 마흐무트 2세와 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는 제국을 능가하는 제국.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대제국이 되었다. 이 영광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선 본국이 지닌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지.”
“끊임없이 인재를 발굴하고 개발을 진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겠군요.”
교육, 과학기술, 공업,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격차를 만들고 유지해야 만이 대제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다만 영국의 공산화가 완성되기 전까지 시스템을 갖춰야 흔들리지 않고 싸울 텐데. 기한 내에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지방 귀족들, 소수민족 간의 이해관계 등 여전히 신경 써야 할 게 많으니.’
게오르기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을 때.
그의 고민을 눈치 챈 나는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하와 군주의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책임을 얼마나 지느냐겠지. 너는 걱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도록 하여라. 그게 옳은지, 아닌지는 전부 내가 결정할 터이니.”“폐하……”
게오르기는 감격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온전히 짊어지는 군주야말로 위대한 군주의 기본 자질이었으니까.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폐하를 믿고 일을 추진해보겠습니다.”
“절대 쉽진 않을 것이다. 각오 단단히 하도록.”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고생하는 중이잖습니까?”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이렇게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영토는 그 자체로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했다.
전생에서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둔 땅이 넘쳐났으니
‘그래도 이번 생에서는 씨앗을 충분하게 뿌려두었지.’
한참 전부터 개척자들을 위해 땅과 직업,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 등 많은 것들을 보상으로 내걸었다.
이제 그것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자리는 잘 잡았는지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느새 내 시선은 수도가 자리한 곳을 향해 있었다.
“가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그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지.”
“알겠습니다,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