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170)
069. 대제국을 건설하다(2)
4.
코스탄티니예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길은 아득히 멀었다.
마차로 쉴 새 없이 달려왔건만 눈에 보이는 건 찰랑거리는 바다였으니까.
‘이제 겨우 흑해 연안인가? 이거 또 한세월 걸리겠는데.’
이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라이넨은 날렵한 모양의 선박 여러 대를 끌고 왔다.
“폐하. 이 배들은 전투가 아닌 상행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안전을 신경 쓰면서도 속도를 최대한 높인 물건이니 이동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오오! 내 직접 타 보고 평가하도록 하지. 성과가 있다면 조만간 큰 상을 내리겠다.”
“하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 게오르기는 계단을 올라 배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됐으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속도감을 즐기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곳저곳을 살피고 돌아온 게오르기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폐하. 선박의 크기가 작아 적재량이 다소 부족하긴 하나 단점을 무시할 정도로 빠른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술 부서에 문의하여 세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음. 실효성이 있다면 도입해봐도 좋겠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바다를 향한 길이 열렸으니 써먹을 곳은 많겠지.”
“다만 영국이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연합군으로 참여해 공을 세운 만큼 아예 무시하긴 힘드니까요.”
“아아.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쪽은 본토의 민심을 달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까.”
다른 민족이 독립하는 건 군대까지 끌고 가서 도와주면서 정작 영국으로 넘어온 이주민들은 외면한다는 비난과 비판.
떼를 쓰면 들어준다는 선례를 남긴 이상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리라.
‘슬슬 아일랜드 쪽에서부터 식량난이 시작될 것 같던데. 그때를 노려 공작을 수행하면 되겠군,’
생각을 정리한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국 쪽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우린 다른 쪽이나 신경 쓰지. 들러야 할 곳이 적지 않으니.”
“알겠습니다. 미리 일정을 잡아놓도록 하지요.”
어느덧 세바스토폴에 도착한 나는 키이우, 민스크,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지나며 민생을 살폈다.
그때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온 게오르기는 마차 구석에 편지를 한 무더기나 쌓아 놓았다.
“폐하. 현지 귀족들이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응하시겠습니까?”
“기껏 해봐야 무도회겠지. 나는 그보다 더 값진 곳에 시간을 쓰고자 한다. 최소한의 민원만 받고 자리를 뜬다.”
“혹시 황후마마 때문에 그렇습니까?”
“벌써 몇 년이나 가족을 보지 못했잖느냐. 과부도 아닌데 홀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했으니…… 내가 지은 죄가 크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수도가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게오르기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폐하. 그동안 제가 황후마마께 폐하의 일정과 소식을 간단하게라도 전해드렸습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허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언제 그렇게 눈치가 좋아졌느냐?”
“이 모든 게 폐하께서 그만한 자리를 주셔서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워진 아부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편해졌다.
‘그래. 나는 이제 홑몸이 아니다. 이렇게 든든한 수하들과 함께하고 있잖은가.’
가슴 한구석에서 차오르는 충만함을 느끼며 수도에 도착할 즈음.
마차를 보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꽃잎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와 사방에 흩뿌리며 연신 내 이름을 외쳐댔다.
“니콜라이 폐하 만세!”
“위대한 대제국을 건설하고 돌아오셨도다!”
“이제 오스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폐하야말로 정교회의 수호자! 진정한 성자로다!”
어찌나 많은 군중이 모였는지 거리는 빈틈없이 꽉 찼고, 광장은 때아닌 축제에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 지나가는 길목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드디어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곳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부패한 귀족을 죽이고 빈민을 구제하며 잡지, 백야를 배포했던 지난날.
그 모든 여정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자들은 전부 내 편이라는 건가.’
아무리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군주라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마차 천장을 열고 손을 흔들어주던 나는 남몰래 속으로 다짐 하나를 했다.
‘절대 너희들을 배신하지 않으마. 나는 내 러시아에 세계를 바치고 말리라!’
어느덧 황궁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작은 꼬맹이 하나가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버님!”
“알렉산드르! 네가 마중을 나왔구나.”
나는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두 팔을 쭉 뻗어 안아 올렸다.
미남 미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눈매와 콧대가 제법 날렵해 보였다.
“네가 올해로 몇 살이었더라?”
“여섯 살입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써 이만큼 자라다니.
알렉산드르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는 여러 감정이 깃들었다.
‘미안하구나. 네 곁에 오래 있어 주지 못해서.’
아이의 유년 시절을 함께한다는 것은 정서발달, 애착 관계 형성 등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다만 워낙 일에 치여 사는 터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큼직한 일들은 대부분 마무리해두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잘해야지.’
함께 따라 나온 유모에게 알렉산드르를 맡긴 뒤.
나는 황급히 걸음을 옮겨 샤를로테에게로 다가갔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이제는 힘들게 하지 않을게.”
“어머.”
나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샤를로테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여보. 사람들 다 보잖아요.”
“보면 뭐 어때. 앞으로 찐하게 붙어있을 건데.”
내 말이 믿기지 않는지 샤를로테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게 정말인가요? 밀린 업무는 어쩌고요?”
“적어도 며칠 동안은 건드리지 말라고 일러뒀으니 걱정하지 마. 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무리 일이 바빠도 가정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건 한 인간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체제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군주가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버리는 순간 괴물이 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전생의 푸틴,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처럼 인정사정 없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 다짐은 샤를로테와 알렉산드르 등 가정이 건재한 이상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자, 그럼 모처럼 휴가를 즐겨볼까?’
5.
내가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요 며칠 동안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공연까지 보러 간 뒤.
피로에 곯아떨어진 샤를로테를 뒤로 하고 나와 알렉산드르는 조심스레 황궁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들아. 여기가 어딘지 아니?”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낯선 방의 모습에 주춤거릴 즈음.
나는 곧바로 정답을 입에 올렸다.
“여기가 바로 내가 어렸을 적 쓰던 서재야. 나폴레옹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수업도 들었었지.”
“우와. 정말요?”
눈이 땡그래진 알렉산드르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고개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물려받을 곳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그, 그게 무엇인가요?”
꿀꺽.
알렉산드르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잔뜩 긴장했다.
일부러 시간을 끌며 애를 태우던 나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얘기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일단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듣자 하니 며칠 전에 수업 하나 빼먹고 놀러갔다는데. 한두 번은 몰라도 자꾸 그러면 혼난다?”
“엑. 그건 싫은데……”
나를 닮아서인지 공부 얘기가 나오자 울상을 짓는 알렉산드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을 움켜쥐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님과의 약속이라면 반드시 지킬게요! 그러니 이곳을 이 방을 제게 주세요.”
“녀석.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더냐?”
“예. 저도 아버님처럼 대단한 군주가 되고 싶으니까요!”
똘똘하다고는 하나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앞으로 짊어져야 할 무게를 짐작조차 못 하리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영국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내가 헤쳐 나가야 할 시기였으니까.
‘내 뒤를 이을 든든한 후계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제국의 기틀은 탄탄하다고 봐도 좋겠지. 슬슬 일이나 하러 가볼까.’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 알렉산드르를 침실로 데려다준 뒤.
나는 날이 밝자마자 각 부서를 돌며 가장 먼저 출근했다.
‘이렇게 직접 나서지 않으면 괜히 눈치만 보면서 부르지도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소란이 일었다.
“폐하.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편히 쉬셔야지요.”
“그냥 방 안에 박혀있으려니 심심해서 말이야. 그나저나 자네가 맡은 업무가 뭔가?”
“그, 그것이……”
오랜만에 회장님 놀이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버렸다.
교육부 청사로 걸음을 옮긴 나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간 잘 지냈나? 살이 쪽 빠진 걸 보면 적잖이 고생했겠구나.”
“아이고, 폐하. 어서 오십시오. 차라도 한 잔 드리겠습니다.”
접견실로 나를 모시고 간 자바도프스키는 그간 쌓인 게 많았는지 초장부터 우는 소리를 해댔다.
“폐하. 언제까지 이 자리를 맡고 있어야 합니까. 저도 이제 많이 늙었습니다. 남들은 다 노후 준비나 하는 판에 저 혼자만 이게 뭡니까.”
차분하게 하소연을 받아주던 나는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조금만 힘을 내줘. 거의 다 끝났으니까.”
“그러다가 벌써 세월이 이만큼 지났습니다. 더는 안 속습니다.”
“허어. 이번에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적어도 새로운 세대는 키워두고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
세르게이, 막심, 쿠즈민 등.
이런 엘리트들만 위대한 세대가 아니었다.
‘제국을 받치고 있는 관료, 귀족들.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인재로 갈아치워야 비로소 세대교체가 가능하지.’
어렸을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덕분인지 단번에 내 의도를 알아챈 그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짜 딱 한 번만 믿어보겠습니다.”
“곧 인재원을 설립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네 후임자도 미리 뽑아놓고.”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겨우 자바도프스키를 달랜 나는 이번 오스만 원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꺼내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이 진출하게 된 극동을 안정시키고자 할 때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조선과 일본처럼 새로이 국경을 맞대게 된 국가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지. 조선은 그렇다 쳐도 일본은 비교적 세가 약할 때 완전히 쓸어버리는 게 좋겠더군.”
“아니, 그 먼 곳을 어떻게 말입니까?”
자바도프스키의 물음에 나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에 아이누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던데.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뒤흔들어 놓을 틈이 보이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