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82
제283화
최희주는 눈앞의 적을 노려봤다.
가슴께에 닭 브로치를 달고 있던 적은 닭 괴물로 변했다.
완전한 닭의 모습은 아니었다.
수탉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목부터는 뱀의 몸통을 하고 있었다.
웃긴 점은 날개와 다리는 또 닭의 그것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코카트리스(Cockatrice)’잖아.”
뒤에 있던 김보민이 대답했다.
김보민은 박은섭이 마법 주머니에서 꺼내는 활력 포션과 해독 포션을 건네받고 있었다.
받아든 그것들을 향해 흰 지팡이를 갖다 댄다.
그러자 포션병 속의 내용물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코카트리스?”
“유럽 쪽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A등급 몬스터야.”
“저게 A등급 몬스터라고? 생긴 건 별거 없어 보이는데.”
“잘 봤네. 진짜로 별거 없어.”
“으엥?”
“석화(石化) 능력이 있는 거만 빼면.”
“석화? 설마 메두사처럼 쳐다봤다고 돌이 되진 않지?”
“그렇지는 않지만, 손톱 발톱에 공격을 당하거나 침에 닿으면 석화돼.”
“제길, 귀찮게 됐네.”
최희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검을 쓰는 그녀로서는 석화 능력이 있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박은섭도 대형 망치를 쓰는 근접형이었으니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이현욱 일행 쪽과 바꿀까.
그리 생각하고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
웬 갑옷이 머리통을 대롱대롱 쥔 채로 2m에 달하는 검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와아. 저쪽도 정상은 아니네.
벅벅!
최희주는 더 세게 머리를 긁어댔다.
그걸 보면서 김보민은 저러다 피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나만 더. 저거 날지는 못하지?”
“닭이잖아.”
“그나마 다행이네.”
김보민의 대답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석화 능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날기까지 한다?
그랬다면 그녀는 솟구치는 신경질을 풀기 위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을 것이다.
통, 통….
그녀는 몸에서 힘을 뺄 목적으로 천천히 제자리를 뛰었다.
그걸 보며 닭이 빙긋 웃었다.
“작전 회의는 다 끝났냐?”
“뭐래. 지금 기다려줬다는 거?”
“그랬는데.”
“하, 이 닭대가리가 여유로운 것 좀 봐?”
“안 그럴 이유와 필요가 있나?”
“…….”
그녀의 눈썹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그게 마음에 든 듯 닭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더욱 커졌다.
통, 토옹….
제자리 뛰기를 하던 그녀가 무릎을 굽혔다.
“이 빌어먹을 닭 대가리가-”
통!
김보민이 지팡이로 최희주의 정수리를 때렸다.
세게 휘두르지는 않아서 아프진 않았지만 당황스러웠다.
최희주는 무릎을 다시 펴고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야.”
“말 섞지 말랬지.”
“하지만 저게-”
“뻔한 도발이잖아, 바보야.”
“도발…?”
“아까 말했지. 석화 능력만 빼면 별거 없다고.”
“그랬어. 그런데?”
“…….”
퍽, 퍽.
김보민이 눈을 질끈 감더니 주먹으로 제 가슴을 때렸다.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최희주가 답답해서였다.
옆에 있던 박은섭이 대신 설명했다.
“보민이 말은, 저놈은 카운터로 싸울 거란 소리야. 널 돌로 만들면 끝나니까.”
“아.”
짝.
최희주가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김보민을 바라봤다.
“그럼 그렇게 말해주면 되잖아. 뭘 그리 돌려서 말해?”
“…….”
“…….”
두 남녀가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통, 통.
그들의 눈빛을 보지 못한 최희주는 다시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닭은 가만히 서 있었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이유와 필요가 없는 듯했다.
통, 통, 통, 토옹….
규칙적으로 울리던 소리가 늘어졌다.
제자리를 뛰던 최희주가 무릎을 굽힌 것이다.
통!
그녀가 빠르게 닭을 향해 달려들었다.
깡, 까앙!
두 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롱소드가 닭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가볍다, 가벼워.”
그녀의 롱소드는 닭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 공격으로 날 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켁….”
최희주는 닭의 머리를 쳐다봤다.
머리뿐만 아니라 볏까지도 멀쩡했다.
설마 이마에 붙은 살 조각까지 멀쩡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휘익!
또다시 두 자루의 검을 빠르게 휘둘러 공격해보지만, 닭의 몸은 멀쩡했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오히려 공격한 검들이 튕겨 나가는 것이 마치 자신의 석화 능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닭의 여유로움을 이해했다.
닭은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자신하고 있었다.
“내가 코카트리스로 변태한 것은 맞다.”
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마다 볏이 따라 흔들렸다.
“하지만 한낱 A등급 몬스터 같을 거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나는…. 우리는…! 그분의 권속이니까…!”
휘익!
닭이 검은 마나를 내뿜으며 날개를 휘둘렀다.
그녀는 다급하게 손을 뒤로 짚고 돌았다.
그걸 두세 번 더 반복해 거리를 벌린다.
통, 통….
안전거리를 확보한 최희주는 다시 제자리를 뛰었다.
“깜짝이야…. 맞을 뻔했잖아, 이 닭대가리야!”
“…웃기게도 피하는군. 춤이라도 추는 거냐?”
“어! 너 어떻게 알았어?”
“……?”
“나 한국무용 전공인데.”
그리 대답하며 최희주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검을 쥔 새끼손가락 끝이 도드라지게 서 있었다.
우아함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을,
“…….”
닭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한 말에 긍정하며 대답할 줄 몰랐다.
스윽….
최희주는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만둔 지 2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태(態)가 남았나?”
심지어 그녀는 비아냥거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순진한 것인가, 멍청한 것인가.
아니면 제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인가.
통, 통, 통, 토옹…!
그런 감상을 떠올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희주는 다시 달려들었다.
“멍청한 거였나.”
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리 위의 볏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다시 달려드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절망을 심어주는 것도 좋겠지.”
그리 말하며 닭은 기다란 혀로 부리를 핥았다.
최희주가 그 혀를 자르겠다는 듯 칼을 휘둘렀다.
츄릅!
혀는 재빠르게 부리 속으로 들어갔다.
빈 허공을 가른 롱소드가 방향을 바꿔 목이 시작되는 가슴으로 향했다.
까앙!
단단한 바위를 때린 듯한 소리가 울렸다.
두 자루의 칼이 가슴을 베며 같은 소리가 두 번 더 울렸을 때, 닭이 날개를 활짝 펼쳐 휘둘렀다.
최희주는 바로 왼쪽으로 뛰어 제 목으로 쇄도하는 날개를 피했다.
하지만,
“칫…!”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왼쪽 뺨을 베였다.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흐르다가 차츰차츰 돌로 변했다.
석화 저주가 발현된 것이었다.
“흥!”
스윽.
최희주는 손등으로 왼뺨을 문질렀다.
그랬을 뿐인데, 날개에 베여 돌로 변하던 뺨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닭의 석화 저주가 풀린 것이다.
“……!”
이 바보가 이런 재주를 부릴 리 없다.
그리 생각한 닭은 곧바로 그녀의 뒤를 쳐다봤다.
마스크를 쓴 김보민이 흰 지팡이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주변엔 여러 포션 병들이 둥둥 떠다녔다.
닭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커다란 망치를 든 박은섭이 새파란 마나를 뿜어내며 그녀의 앞에 섰다.
“힐러였나….”
“맞아.”
톡, 톡.
최희주가 뺨을 두드렸다.
석화 저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베인 상처도 말끔히 사라졌다.
통, 통….
그녀는 다시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성녀라고 불리는 도희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애지. 참고로 전공은 식품영양학과. 옆의 땀내 나는 애는 야구부.”
“…설마, 그런 치료 마법을 믿고 계속 덤벼들 생각인 거냐? 어쩜 이리도 멍청할 수가….”
“뭐?”
“내 석화 저주를 계속 풀며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저주를 풀다가 저 힐러의 마나가 전부 떨어질 거다.”
“그래서?”
최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보고 닭은 맥이 탁 풀렸다.
하나하나 다 설명해줘야 한다니.
“저 힐러의 마나가 떨어지면 넌 돌이 되어버릴 거란 소리다!”
“……?”
최희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닭은 그 표정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나 싶어 또 한 번 맥이 풀렸다가,
“너 바보야?”
그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보민이 마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널 죽이면 되는 거잖아?”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왜 못해?”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며 그녀는 통통 뛰었다.
그 순간, 닭은 깨달았다.
최희주는 그저 멍청한 사람인 것이 아니었다.
아집(我執).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다른 사람의 논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검 끝을 닭에게 향했다.
“기대해, 닭대가리. 이제부터 난 널 죽일 때까지 내 ‘통통난무(嗵嗵亂舞)’ 멈추지 않을 거니까.”
“……!”
통, 통, 토옹…!
그녀가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닭 앞으로 나아가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소용없는 일…!”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 사이사이 닭의 공격이 끼어들었다.
부리에 찔리고 날개에 베였다.
다친 상처가 돌로 변했지만, 금세 맨살로 돌아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려한 동작으로 공격을 피했던 그녀는 더 이상 그런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얼핏 다리가 얼어붙은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만개한 미소가 그런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다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일 뿐이었다.
스스로 말한 대로 뒤에서 보조하는 김보민을 전적으로 믿고 싸움에 임한 것이다.
치이익….
돌로 변한 상처가 맨살로 돌아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닭에게 단 하나의 상처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난무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
닭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물론, 최희주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난무를 계속 이어나갔다.
“더는 지겨워-”
그 순간, 닭의 귓가에 ‘쩌적…’하고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닭은 말도 잇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쩌적…!
심지어 그 소리는 더욱 커졌다.
“설마…!”
닭이 다급하게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날개를 쳐댔다.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압으로 최희주를 날려 보낼 생각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반응했다.
왼손의 검을 땅에 박아 넣고 오른손의 검으로 닭의 가슴을 찌른다.
자기 가슴으로 쇄도해오는 검 끝을 보면서 닭은 깨달았다.
지금껏 무용(無用)하다고 여겼던 공격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공격은 전부 그의 가슴 한가운데를 향했었다.
푸욱!
닭이 그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최희주의 롱소드가 가슴에 박혔다.
“이! 이 미친년이…! 네년을 꼭 돌로 만들어주마!”
그러나 그뿐.
가슴이 찔린 것은 단단한 외피가 벗겨진 덕분으로 딱 한 발자국이 부족해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그 상황을 파악했으면서도 최희주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그녀는 바로 물러났다.
동시에,
“말뚝은 박아놨어. 마무리 잘 해.”
“확인.”
싸움을 조용히 지켜보던 박은섭이 뛰쳐나왔다.
닭이 풍압으로 날릴 생각으로 또다시 날개를 쳐댔지만, 그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커다란 망치를 들고 빠르게 달리는 그에게 닭이 일으키는 바람 따윈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닭의 목이 새카맣게 변했다.
박은섭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위기에 내보일 비장의 한 수.
석화 능력을 쓰는 놈이니 그 수는 당연히 적을 돌로 만드는 것이리라.
그의 짐작대로였다.
닭은 부리에서 새카만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발밑에 깔린 연기에 닿은 주변의 모든 사물이 돌로 변했다.
박은섭의 몸 또한 마찬가지로 발부터 돌로 변했다.
하지만 그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최희주가 부족했던 한 걸음을 내디뎠으나….
“…….”
“하, 하하! 하하하!”
닭이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에 닿아 돌이 되어가는 박은섭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너흰 다 멍청한 놈들뿐이냐! 석화 능력이 있는 내게 근접이라니-”
뚝!
또다시, 닭의 귓가에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닭은 웃던 것을 멈추고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크리…!”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돌이 되었었는데.
분명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박은섭은 커다란 망치를 휘둘렀다.
“티컬, 히트!”
콰앙!
그의 망치가 정확히 최희주가 박아 넣은 롱소드를 때렸다.
“크헉…!”
닭은 롱소드가 심장을 푹 꿰뚫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 닭의 눈에 박은섭의 몸이 들어왔다.
“……!”
박은섭은 팔과 다리가 없었다.
돌로 된 부분을 강제적으로 움직여 산산이 조각난 상태였다.
닭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미친, 놈들…!”
“뭐가?”
불쑥.
박은섭이 남은 팔로 닭에게 기어갔다.
닭은 “히익!” 소릴 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가 기어오는 것을 지켜봤다.
그가 맑게 웃었다.
“미친 건 너희지. 우리에게 시비를 걸다니.”
“……!”
“지옥에서 기다려. 너희가 말한 그분이란 놈도 곧 이렇게 될 거야.”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퍼억!
박은섭은 주먹으로 닭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머리는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패였다.
툭툭….
그가 주먹을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