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78
제379화
우웅…!
거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두드리는데, 전화가 왔다.
이 밤중에 나한테 전화를 걸 사람은 손에 꼽기 때문에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예상한 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유재이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당황이 묻어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당황하게 할 만한 행동을 했던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모르는 척하지 말고.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 왓쳐의 눈알 말이야!
“어라? 그게 벌써 도착했어?”
해체업자들은 왓쳐의 눈알 수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제법 걸릴 거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배달을 받기로 하고 돌아왔던 거였는데….
몇 시간도 안 돼서 도착할 줄은 몰랐네.
설마 제법 걸린다는 게 몇 시간을 뜻하는 거였나?
무슨 해체 작업이 이렇게 빨라?
우리 길드의 해체업자 아저씨들도 이렇게 빨리 처리하진 못할 텐데.
– 왓쳐의 눈알 100개라니….
“응? 잠깐만. 지금 100개라고 했어?”
– …그런데?
“어라?”
– …왜? 뭔데?
“나 오늘 사냥한 왓쳐 344마리였는데? 왜 100개만 왔지?”
– 뭐? 344마리? 당신 설마 인수봉 게이트에 사는 왓쳐를 완전히 소탕하고 돌아온 거야?
“응! 그랬어.”
– 산뜻하게 대답하지 마…. 끄응…. 여기에서 244마리가 더 온다고…?
재이는 곤란하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곤란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244마리는 왜 오지 않을 걸까.
날 상대로 사기를 칠 생각은 아닐 텐데.
그런 시답잖은 고민하다가 이내 간단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인수봉 게이트의 해체업자들이 출중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344마리를 해체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는 것을.
아마 그들은 해체 작업을 한 100마리를 먼저 배송하고 나머지를 따로 보내기로 한 것이리라.
그래도 이 작업 속도라면 금세 끝날 것 같은데?
내일 새벽이면 모든 왓쳐의 눈알이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 지금도 왓쳐의 눈알로 대장간 창고가 미어질 거 같은데…. 어떡하지….
“아. 창고가 부족해? 공실(空室) 내어줄게.”
– 그래도 돼?
“안 될 게 뭐 있어? 어차피 내 건물인데. 애초에 창고가 부족한 게 내가 너무 많이 사냥한 탓이기도 하고.”
– 하긴 그러네. 당신이 숫자를 조절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구나.
그야말로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입술이 비죽 튀어나오는 건 멈출 수가 없군.
이게 다 지상욱이 김재식에게 쓸데없이 내기를 건 탓이다.
그러지만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사냥하진 않았을 거다.
전부 지상욱 그놈이 문제다.
왓쳐의 눈알도 못 쓰게 만든 그놈이.
[세계수 어린나무가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낍니다.] [적반하장도 참 유분수라고 전합니다.] [그걸 지상욱 탓으로 치부해버리는 건 너무한 처사라고 지적합니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본인의 잘못이라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어른스럽게.]“…한재임 연락처 있어?”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간단히 무시해주기로 했다.
안 보인다, 아무것도 안 보여.
“걔한테 말하면 위치 적당한 곳으로 창고 내어줄 거야.”
– 그럼 내가 성훈 씨한테 말할게.
“이성훈? 아. 맞다. 걔 요즘 한재임 밑에서 일하고 있지.”
내 팀원이면서 왜 거기서 일하고 있는 걸까.
-라고, 말하기엔 이유가 너무나 명백했다.
백도운의 팀원으로서 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팀장이 일을 안 하는데, 팀원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월급도 주고 있으니 어떻게든 부려먹으면 좋은 거지.
한재임이 지켜보고 있으면 딴짓도 못 할 테고.
– 창고 문제는 덕분에 해결됐고…. 그나저나. 당신 때문에 아저씨들 고생하고 있겠네.
“별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던데.”
–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의 소린데.”
– ……?
부르르.
저녁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몸이 살짝 떨린다.
몇 개월 만에 찾아간 인수봉 게이트의 해체업자들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전혀 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왓쳐들을 챙겨가서 능숙히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그걸 히죽히죽 웃어 대면서 했다는 점이다.
그 즐기는 모습을 미루어 짐작건대, 그 사람들 해체업자가 안 됐으면 꽤 안 좋은 직업을 선택하고 말았을 거다.
“…그런 게 있어.”
– 그래. 아저씨들 얘긴 됐고. 안마도 게이트엔 언제 가?
“내일 아침에. 협회에서 워프 게이트로 이동할 생각이야.”
– 워프 게이트? 무기 씨랑 같이 안 가?
“교황청 결계에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컨디션 회복할 겸 혼자 수행하기로 했어.”
그리고 그게 내가 방 침대가 아니라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해준 거다.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줄까 생각도 했는데, 무기가 자존심을 부리면서 괜찮다고 거절했다.
교황청 결계 안에선 솔직하게 목에 감겼었으면서 말이다.
– 역시 교황청 결계가 명불허전이네…. 며칠이 지났는데도 무기 씨가 힘들어할 정도면.
“그러게. 지금 상황으로는 이브까지 회복이 될지도 모르겠어.”
– …혹시, 적맥주를 만들어서 갖다 주는 건 어때? 무기 씨 그거 좋아하잖아.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적맥주라니.
재이가 앞에 있었다면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거라면 무기도 만족하겠지.
술이라서 수행에는 방해가 되겠지만, 최소한 좋아하는 걸 마셨으니 컨디션은 좋아지리라.
어차피 여의주에 마나를 주입하는 건 수백 년 단위의 수행이니까 하루 이틀쯤 늦어지는 건 별문제도 되지 않는다.
– 좋아. 그럼 내가 바로 수정이한테 연락할게.
“그럼 난 안성평야 게이트에 다녀올게. 운전해서 갔다 오면 새벽이면 도착할 거야.”
– 그럴 필요 없어. 수정이 무기 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별도로 구비해놓은 적맥이 있을 거야.
“오….”
설득력이 있는걸.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홍수정이라면 응당 그럴 인간이었으니까.
“고마워.”
– 고맙긴. 당연한 건데.
그리 대답하고 재이는 전화를 끊었다.
아마 그녀는 홍수정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무기를 위한 적맥주를 요청할 것이다.
홍수정은 만사 제쳐놓고 적맥주를 빚을 테고.
우리 무기는 복도 많지.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삐죽 내밉니다.] [관리인에게 자신도 복이 많아지고 싶다고 따집니다.]아휴.
당연히 우리 새싹이도 복이 많지.
널 위해서 인수봉 해체업자들에게 받아온 게 있거든.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관리인이 받아온 것을 기억한다고 전합니다.]역시 기억하는구나.
그래, 맞아.
바로 ‘김재식과 지상욱이 사냥한 왓쳐들’이야.
[어린나무는 관리인 덕분에 복이 많아지는 듯하다고 기뻐합니다!]후후, 좋아할 줄 알았지.
자, 그럼….
알테라-쇼넴을 쓰러 가볼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기뻐하는 새싹이와 함께 난지도 매립지로 향했다.
임페일은 잘 하고 있으려나?
***
A+등급 안마도 게이트의 입구 앞.
이른 아침에도 그곳엔 세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위버멘쉬 길드의 김서준, 황시열, 채정연이다.
그들은 오늘 안마도 게이트의 인면오공주를 토벌할 계획이다.
정부와 협회엔 ‘10대 길드가 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고 밝혔으나 그건 사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보스 몬스터인 ‘인면오공주의 심장’이었다.
그것을 현상범인 공우재와 유혜주에게 건네고 변태화를 쓸 수 있게 해준다는 포션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
입구로 걸어가던 김서준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황시열과 채정연은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의 시선 끝엔 초록의 숲과 푸른 바다만이 보일 뿐이었으니까.
“서준 씨? 왜 그래요?”
“뭐라도 있어?”
“손님들이 제법 많이 왔다 싶어서.”
“손님?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역시 서준 씨네요. 전 아무 인기척도 안 느껴져요.”
채정연이 자세히 보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더 집중되면서 아까보단 잘 보이게 됐지만 김서준이 말한 ‘손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이곳 안마도 게이트에 오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라는 게 기억난 거다.
백운천의 백도운.
그도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백운천이에요?”
“아뇨. 최희석 사숙과 파티원들이에요. 처음 보는 사람도 한 명 껴있고요.”
“최희석? 그 아저씨가 여긴 왜-”
“김 형과 백 형 때문이겠지.”
황시열이 끼어들었다.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태도에 채정연은 손을 휘둘렀다.
손톱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황시열의 얼굴에 붉은 선이 생겨났으리라.
“우리가 인면오공주를 노리고 있듯, 백 형도 원하는 바가 있어서 오는 걸 거 아냐.”
“설마, 게이트 안에서 싸우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찾아왔다는 거야?”
“나나 누님 둘이라면 굳이 안마도까지 내려오지 않았겠지.”
황시열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김서준을 바라봤는데, 마치 “여기에 김 형도 있으니까 이 먼 곳까지 내려온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피식….
김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상대가 그 백도운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웃겼던 거다.
“새삼 느끼는 건데, 시열이 너는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가?”
“난 도운 씨와 상대하게 된다면 바로 포기할 거야.”
“흠, 그렇단 말이지….”
황시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김서준의 “포기할 거”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어젯밤 깊은 고민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백도운을 상대하게 됐을 때 손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고민을 하지 않았으리라.
또 게이트 안으로 진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뭔가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하며 김서준을 바라봤지만, 그는 황시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서 있을 뿐이다.
“…근데.”
해서, 황시열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 백 형 오긴 하는 거야?”
“온댔으니 오겠지.”
“하지만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난 게이트 앞에서 마주칠 줄 알았다고. 뻘쭘한 상황을 피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백도운도 우리가 들어가는 걸 알 텐데 왜 아직 안 오지? 이제 열렸으니 먼저 들어갔을 리는 없고. 음….”
채정연이 황시열의 말에 동의한 후 김서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라면 도운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알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 씨 마나는 느껴지지 않아요.”
“아직 안 왔다는 거죠?”
“네.”
“쳇. 설마 우리가 만만하다는 건가?”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긴 하지. 우리는 백 형한테 상처 하나 못 내고 졌잖아.”
“켁…!”
채정연은 불만스러운 듯 목이 막힌 소릴 냈다.
마음 같아선 부정하고 싶었으나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도운과 다시 붙는다고 해서 이길 자신도 없었다.
셋 중에서 가장 강한 김서준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순순히 패배를 시인했었던 상대이니까.
“도운 씨가 만만하게 보고 있다면 우리로서는 오히려 잘 된 거예요. 그만큼 시간을 버는 거니까.”
“아….”
“그 말도 맞네. 상대는 백 형이니, 까…!”
통, 통…!
황시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뛰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몸에 열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김서준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이내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출발할까요? 인면오공주 잡으러.”
위버멘쉬 길드.
아침 7시 35분 A+등급 안마도 게이트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