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나스트론드(2)
“이곳 나스트론드는 추악한 세 가지 죄를 저지른 이들을 가두고 있는, 니플헤임 최대 규모의 감옥입니다.
첫 번째가 간통을 저지른 자에게 예비된 독액이 떨어지는 지옥. 바로 이곳 1관문이죠.”
헬라의 설명은 일목요연했다.
재현은 첫 번째 관문을 걸으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 지옥의 테마는 독이었다.
사슬에 묶여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죄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죄인을 지나쳐 걷던 재현의 귓가에 망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아… 나에게 자유를… 줘….]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재현은 사슬에 묶인 채 끔찍한 소리를 지르는 죄인들을 바라보았다.
몸 군데군데가 썩어 있는 흉측한 모습은 아무리 비위가 강하더라도 보기 힘든 수준이었고, 코끝을 찌르는 악취 또한 지독했다.
일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지옥.
그리고 중죄를 저지른 죄인의 비참한 말로라고 해야 할까.
재현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헬라, 아까 니드호그가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이 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었죠?”
“그렇습니다. 흐베르겔미르로 가기 위해서는 그가 말한 세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해요.”
“각각의 관문을 지나는 조건은 뭐죠?”
재현의 물음에 헬라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해당 관문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겁니다. 물론 당신이 죄를 저질렀다면 말이지만요.”
죄의 고백이라.
헬라는 각 관문에서 그에 해당하는 중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이 각 관문의 목적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재현은 이번 관문에서 걱정할 게 하나도 없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다루는 중죄. 이는 간통이었다.
허나, 재현은 간통을 저지르기에는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본 적 없으니, 죄가 될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슬퍼지는데….’
재현은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첫 번째 관문을 지키는 자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키와 지나치게 보랏빛으로 물든 피부를 지닌 남자.
헬은 그가 각 관문의 문지기 역을 맡고 있는 나스트론드의 세쌍둥이 형제 중 하나인 ‘남의 것을 탐한 자’라고 설명해 주었다.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누구보다 두렵게 느껴질 수 있는 자.
허나 재현은 거리낄 것 없었다. 그는 당당하게 걸어 문지기의 앞에 섰다.
‘남의 것을 탐한 자’가 재현을 훑어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릉!
재현은 아장아장 따라오는 파피와 함께, 다음 단계로 향하기 위한 문으로 걸음을 뗐다.
문의 내부에는 꽤 긴 통로가 준비돼 있었는데, 벽면에 죄인들의 얼굴을 본떠 박제해 둔 것이 악취미다 싶었다.
그렇게 텅 빈 긴 직사각형의 공간을 걷고 있는데.
별안간 헬라가 피식 웃으며 말을 붙여왔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배우자가 없어서.
애초에 여자친구도 없지만.”
“…뭔가 들떠 보이네요?”
묘하게 놀리는 듯한 목소리에 재현이 발끈했지만, 헬라는 멈추지 않았다.
재현은 한숨을 푹 내쉰 뒤, 다시 걸어 지옥의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등장한 2관문. 여기서 재현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것들은?”
* * *
나스트론드의 두 번째 관문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
무수히 많은 수의 뱀이 죄인을 물어, 그 가운데 피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제, 제발… 이것들 좀 떼 줘! 부, 부탁이야!] [그만… 저리 가! 저리 가라고!]들려오는 망자들의 소스라치는 비명.
재현이 침체된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자, 헬라가 입을 열었다.
“이곳 두 번째 관문은 맹세를 어긴 죄인들이 뱀에게 물려, 피를 쏟아가며 고통 받게 하는 지옥입니다.”
“맹세를 어긴 자라….”
재현은 자신에게 그런 죄가 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회귀 전부터 지금까지 당연하게도 완벽히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동안 실수도, 반성도 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맹세와 신의를 저버린 일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
재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헬라를 향해 물었다.
“만약 이번 관문의 문지기가 제게 죄가 있다고 판단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되짚어 보았을 때, 그리 큰 죄를 저지른 기억은 없었다.
허나, 최악의 경우 여기서 발목이 붙잡힌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자신의 죄와 마주해야 합니다.”
“죄와 마주한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깊은 곳으로부터 내재된 죄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죠.
그렇게 하면 문지기도 당신을 앞으로 가게 해줄 겁니다.”
헬라는 나스트론드의 관문을 지나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자신의 죄와 마주하는 데 실패한 이들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또 거대한 중죄가 씻을 수 없기에 이곳에 수감되어 하루하루를 고통받는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제가 털어서 뭐 하나 안 나오는 놈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이번 역시 마찬가지로 헬라에게 존경을 표하는 망자들을 지나쳐 관문의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문지기로 보이는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1관문에서 봤던 것과 거의 비슷하나 피부는 정상적인 색이었다.
다만, 그는 허리와 다리에 뱀을 칭칭 동여맨 기이한 모습이었다.
[나는 두 번째 관문의 문지기 ‘맹세를 저버린 자’다. 지나가겠나?]“그래.”
[너의 죄를 보겠다.]그는 고압적인 어투로 말한 뒤, 재현의 온몸을 훑기 시작했다.
죄인을 판별하고, 적합한 죄를 묻는 것이 문지기인 그가 해야 하는 일.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문지기가 재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구나. 너는 이미 수차례 타인과의 맹세를 저버렸으니.]“그래? 그거 안타깝게 됐네.”
재현은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건 채 그렇게 말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에는 여기서 ‘맹세를 저버린 자’와 싸워서라도 니드호그를 만날 생각이었다.
장비의 강화. 이는 에시르와 대적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물러서서 되돌아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재현이 전투를 준비하던 그때였다.
갑작스레 운을 뗀 문지기가 이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조금 전에 죄가 있다고 했던 놈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지나갈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걸까?
재현은 빠른 태세전환에 눈을 깜빡이며 앞의 ‘맹세를 저버린 자’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하지만 자격이 있다고 하여, 죄를 묻지 않을 수는 없는 일. 너에게 형을 내리겠다.]“그게 무슨….”
재현이 뭔가 말하려 했으나, ‘맹세를 저버린 자’는 계속해 이었다.
[지금부터 네게 과거의 편린을 보여주겠다.그 기억을 보고 돌아와 어떤 맹세를 저버렸는지 너의 죄를 고백하라.]
그 순간, 갑작스레 발밑으로부터 뱀 무리가 쏟아져 나와 재현의 사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큽…! 이게 무슨!”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 분수와 함께, 재현은 정신이 잠시 정전이 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곧이어 떠오른 목소리와 장면.
재현의 눈이 가늘어지며, 그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느리게 사생 되는 기억.
이는 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 * *
“도망가!”
의식이 흐려짐과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익숙한 이들의 것이었다.
재현은 눈앞에 보이는 두 사람의 앳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이곳은 던전.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이들은 김진아와 박성우.
저들은 지금… 나를 위해 희생하려 하고 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재현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은 ‘맹세를 저버린 자’가 보여주는 환상이다. 과거의 기억이었으며, 자신의 죄였다.
‘모의 던전 당시… 이건 두 사람이 희생되었을 때의 과거다.’
회귀 전, 모의 던전이 있었던 그날. 김진아와 박성우는 재현을 위해 희생했다.
바보처럼 착했던 이들은 모의 던전에서 구자인의 마수로 인해 위험에 빠졌고, 이미 자신들은 늦었다고 판단해 재현만이라도 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 말을 들은 재현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들에게 채 감사한 마음을 느낄 새도 없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만이 당시, 재현의 다리를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고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나서야, 재현은 이날을 회상하고 자신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구하지 못했고, 도망쳐왔다.
자신만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홀로 도망쳐왔다.
재현은 생각했다.
과연 이는 얼마나 큰 중죄인가?
* * *
배경이 갑작스레 휙 바뀌었고, 기억의 편린은 계속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재현이 있는 곳은 던전이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또한, 이는 회귀 전 재현의 가장 마지막 기억이 있는 장소였다.
‘유성 길드와의 던전 공략 당시… 이날 나는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얻고 회귀했었지.’
재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수히 많은 유성 길드와 고용된 프리랜서 레이더들.
그 사이를 파고드는 보랏빛 연기.
독 안개.
그제야 재현은 조금 전 ‘맹세를 저버린 자’가 이야기했던 맹세가 무언지 깨달았다.
그 사람과 나누었던 유대.
이것은 타인과 쌓였던 일종의 역사였다.
허나, 타인을 믿지 못하던 그는 이를 져버렸다.
그것도 최악의 방법으로.
재현은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기억을 계속해 관조했다.
짙은 보랏빛 안개가 깔리고, 이윽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행동이 마비된 이들의 입에서 나온 거친 비명과 신음이. 몰아치는 피 분수가 무거운 안개를 더욱 가라앉게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재현은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주 그리운 사람의 얼굴.
‘…명호 형.’
이명호.
무투계 레이더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그를 잘 챙겨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재현은 그런 사람을 마지막 순간에 배신했다.
그는 말했다.
[정우민.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할게. 그러니까…….]그 말은 명백한 배신이었고,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이었다.
정우민은 이명호를 죽인 자였다.
하지만 재현은 그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자신의 생을 위해서.
나의 죄.
재현은 혀끝에서 씁쓸한 피 맛을 느끼며 계속 이어지는 기억을 주시했다.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안개는 계속해 깊어졌다.
폭발음이 들려와 사방이 시끌시끌해진 가운데.
재현은 새하얀 날붙이가 이명호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것을 초연히 지켜보았다.
다시 생각한다.
죄. 나의 죄는 무엇인가?
생을 위한 처절한 갈망? 그것이 나의 죄라고 말할 수 있나?
‘아니야.’
재현은 쓰러지는 이명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맹세를 저버린 자’가 말했던 나의 죄.
그것은 결국….
챙그랑.
그 순간, 온 시야를 뒤덮고 있던 환상이 깨어졌다.
그와 함께 재현의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
이윽고 기억을 보고 돌아온 재현의 입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죄. 그것은 ‘동료를 앞에 두고 도망친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재현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죄책감이기도 했다.
재현의 말에 ‘맹세를 저버린 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양팔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두 번째 관문의 문이 활짝 열렸다.
[지나가라. 예언의 대적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