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53
외전 12. 열병(熱病)
“잠깐만요! 재현 군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다들 모여주세요!”
재현이 입을 떼기 직전.
그의 말을 끊어낸 것은 다름 아닌, 헬라였다.
그녀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이었다.
“재현 군, 죄송하지만 저희끼리 잠시 이야기를 먼저 나눠도 괜찮을까요?”
“…엥?”
김유정의 당황한 듯한 반응.
척 보기에도 미리 합의된 사안이 아닌 듯했지만, 재현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자리를 피해 주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면.
또 그것이 헬라로부터 나오는 말이라면 제 의견을 조금 늦게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을 터다.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평화롭게 잘 끝내주세요.”
“걱정 마세요.”
헬라는 비밀 지령을 받은 스파이처럼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랑을 지켜야 하는 그녀였기에, 지금의 헬라는 필사적인 승리의 여신 그 자체였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재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
여러모로 부담스러워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재현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벌컥.
재현은 문을 열고 잠시 자리를 비켜준 뒤, 바깥에 비치된 벤치에 앉았다.
사실 얼마든지 들으려면 동료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도 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었기에 하지 않았다.
되레 신이 되면 될수록, 격이 쌓일수록 재현은 스스로를 제약하곤 했다.
인간이었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 자신을 신뢰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대체 헬라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자니, 어느새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뭘 어떻게 생각해도 쉬운 선택지는 없다.
헬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누군가는 실망하고 납득하지 못하겠지.
재현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비켜준 이유는 무엇인가?
어쨌든 그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곁에 오래도록 남으며, 힘겨웠을 텐데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버텨왔던 그녀를 재현은 믿었다.
무책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쨌거나 기다려보자. 뭔가 생각이 있겠지.’
재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슬슬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의 끝자락.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재현의 입가에서 부서지는 하얀 입김이, 그를 최고신에 오른 존재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재현은 감은 눈에 기감을 맡긴 채 잠시나마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모든 일이 해결돼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 * *
재현이 떠나간 뒤.헬라는 강제로 소집된(?) 모두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이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첫 번째로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여기서 혹시 재현 군을 좋아하지 않는 여성분이 계신가요?”
“…….”
“역시 그렇겠죠.”
침묵이 답을 대신한다.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예정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도착한 것이고 말이다.
애초에 재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시다시피 재현 군은 지금 한 마음을 굳힌 것 같아요. 즉… 한 사람을 선택했으며, 그 사람과 연애할 생각인 거죠.”
“역시…….”
김유정이 탄식을 흘렸다. 루이나 역시 거들었다.
“하아… 올 게 왔군요.”
“……조금 걱정이 되긴 하네요. 헬라, 당신도 강적이고.”
서이나의 눈이 번뜩였다.
연적이란 자고로 이처럼 무서운 법이었다.
헬라는 손사래 치며 자신이 적이 아님을 어필했다.
“제가 하려는 건 여러분의 적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럼 물러나 주시는 건가요?”
서이나가 조금 유순해진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헬라의 이어진 말은 이들을 단체로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애석하지만 그것도 아니에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헬라가 조금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한 사람이라도 덜어지는가 했더니 이건 되레 원상복구.
아니, 확실한 재현에 대한 포기 거부가 아닌가?
김유정마저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나는 이제 뭔가 감을 잡은 듯한 표정.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어째서인가 헬라가 할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재현에 대한 모두의 애정.
그것이 루이나로 하여금 헬라의 판단의 이유를 알게 해 준 것이다!
헬라는 잠시 모두를 모은 뒤, 마침내 자신이 내린 최선의 수이자. 이 알 수 없는 이야기. 즉, 연애담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잘 들으세요. 저희는 그 누구도 재현 군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단 한 사람도요.”
“……?”
가장 먼저 의문을 가진 것은 서이나였다.
“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다음은 김유정이었으며,
“다 포기하지 않는 다라… 결국 헬라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셨네요!”
헬라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내린 결론. 그것은 말 그대로 이곳의 그 누구도 재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자, 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었기에.
* * *
-너는 정말 잘 해냈니?
어렴풋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한동안 선잠에 빠져들어 꿈을 꾸었다.
아주 잠시간의 꿈.
하지만 그것의 내용이 선명히 떠올랐음은, 극히 당연했다.
신화적 존재로서 성장하며, 어떤 것도 잊지 못하게 된 내가 아닌가?
무엇이든 기억해야 하며, 관찰자로서 관조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는 최고신이 된 내가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였다.
‘아직도 믿기지 않네. 내가 헤니르라는 사실도, 모두를 구했다는 것. 오딘을 죽이고, 끝내는 세계의 시작이었던 이미르까지 처치했다는 것까지.’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상처를 딛고 일어나며 이뤄낸 것은, 결코 폄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과는 성과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인류를, 아니 아홉 개의 세계에 거주민들을 모두 구해낸 나를 영웅이라 부르며 나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재현이라는 인간에서 신이 된 존재를 찬양했다.
세상의 찬가의 일부는 나를 위한 것이, 나머지는 동료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나는 내심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고 해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연애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사실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눈치 없는 척 굴어도 소용없다는 것 역시 알았다.
예전에 소율 누나가 말한 적이 있었지.
-이제 더는 네 마음을 속이지 마. 다른 애들이 더 힘들어져.
-……네.
-그게… 음. 어쩌면 네가 가장 힘들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나는 큰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권소율은 두 여후배를 챙기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걱정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걱정 해 주고 있었다.
선택을 내리지 못함으로서 오는 고통을 겪는 것은, 다름 아닌 온전한 나이니까.
다른 이들도 힘겹겠지만, 모두의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다.
누군가의 감정, 또 다른 누군가의 감정…… 그것들이 소용돌이치며 와류를 만들어 내며 부딪힐 때, 나라는 사람은 방황하고 만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말해준 것이다.
이제 그만 결정을 내리라고.
‘나도 알아. 내가 바보 같다는 걸.’
내 감정조차 알지 못했던 과거가 미련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현재에 모든 것을 감당할 마음을 먹었고, 결정을 내렸다.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띠링!
-이제 오셔도 돼요!
헬라의 문자를 받은 내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담판을 지어야 할 때다.
‘사랑이라.’
층계를 오르며 계속해 생각한다.
그것이 대체 어떠한 감정인가,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고찰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릇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없으면 죽을 것처럼 애절, 처절하게 묘사되기도 하고.
다시 어떤 때에는 지워내지 못하는 낙인처럼 가슴에 남고 마는 것이다.
벌컥-!
“저 왔어요.”
“재현 군, 앉으세요. 우선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그대로.”
“네? 아, 네에…….”
뭐지?
왜 헬라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혹 내 마음을 듣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그런 거라면 이해도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상처니까.
나도 지금 내 머릿속으로 떠올린 사람에게 거절당한다면?
마찬가지로 가슴이 아픈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저 열병(熱病)처럼 한순간, 앓고 지나가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는 끝나지 않겠지.
나를 사랑해준 애들만큼이나 나 역시 누구에게 상처받는 게 두려우니까.
“저희가 먼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우선 그 이야기를 듣고 결정해주세요. 뭐가 됐든.”
“알겠습니다.”
우선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눴든 일단은 듣는 것이 예의 아니겠나.
더구나 내가 고민한 기나긴 시간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어떤 이야기가 들려와도. 설령 그들이 나를 거부한다고 해도 이해할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는데.
어째서일까?
“저희는 모두 재현 군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끝까지 모두 책임 주셔야겠어요!”
헬라의 입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새어 나온 것은?
도저히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식에 나는 현기증마저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대체 왜 이런 상황에 내가 처하게 된 것이냐는 물음.
하지만 더 이상한 일은 다음에 이어졌다.
“……나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수가 있다면 그걸로 족해. 내가 독점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해도, 어쨌거나 빼앗기는 건 아니잖아.”
“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아무래도 적들이 다 쎄고…… 아닛! 그게 내가 자신이 없다는 건 아니긴 한데 어쨌든!”
“저는 애~초부터 찬성이었으니 괜찮아요!”
더구나 놀라운 것은 누구도 헬라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삽시간에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껏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을 다잡았더니, 이제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모두 선택하라고?
“아니… 너희 나 선택 장애 만들어 놓고 이러기야?”
“…….”
“…….”
“…….”
“…….”
내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다 진심인 것 같다.
아니 애초에 한국에서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아무리 내가 헤니르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지금은 민재현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데 여러 명과 맺어지라고?
내 심란함을 눈치챘는지, 헬라가 작게 속삭여왔다.
“이미 결정 난 거니까. 그만 포기하세요.”
물론 전혀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