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60
59화 첫 번째 분기점 (2)
“정말 다행입니다. 민재현 생도, 서이나 생도. 던전에 문제가 생겨 구하러 가지 못했던 것,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지연 교관이 허리까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 왔지만 재현은 시큰둥했다.
서이나 역시 재현의 말을 떠올렸는지, 차가운 눈으로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려 할 뿐이다.
재현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김지연 교관님이 일부러 저희를 함정에 빠뜨리신 것도 아닌데요.”
묘하게 뼈가 있는 말이었다.
재현은 가볍게 웃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직성이 풀리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재현은 이번 모의 던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하면 아직 1학년밖에 안 된 생도에게 B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게 하는 거지? 아무리 구자인이 막 나간다고 해도 이렇게 막장 짓은 안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구자인은 물론 악인이고, 아카데미의 생도들을 도구로 다루지만, 그것도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 내에서였지 이렇게 초반부터 조급하게 굴지는 않았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재현이 큰 변수로서 작용하고 있으며, 구자인의 계획안에 그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역시 상대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야. 구자인…… 예상보다 더 위험하다.’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서이나가 재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어왔다.
“……저기 재현아.”
“응?”
“……앞으로의 계획 말인데, 아무래도 이번과 같은 일이 또 있을지 모르니까…….”
서이나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왔으나, 재현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 말했잖아. 앞으로 내 계획에 넌 포함되어선 안 돼.”
“……하지만.”
“미안해. 이나야.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 약속한 거 지켜 줘.”
재현은 서이나를 뒤로한 채, 먼저 자리를 피해 자신이 묵는 호텔로 향했다.
김지연 교관은 재현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의 찢어진 생도 교복과 복부에 박힌 깊은 상처를 본 뒤, 더는 묻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두었다.
구태여 말을 붙이지 않아도 힘든 싸움을 했다는 증거가 버젓이 있다.
거기다. 어차피 이번 일에 관해 묻는 건 내일도 충분히 시간이 있고, 아직 민재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호텔로 돌아온 재현은 즉시 찢어진 옷을 버린 뒤 샤워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교복은 어차피 매월 두 세트씩 아카데미 측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물론 그건 곧 매월 두 세트의 교복이 넝마가 될 정도로 생도들을 굴린다는, 무언의 압박과 다름없는 이야기지만 재현은 이미 한번 경험해 온 일이다.
새삼스럽진 않았다.
물을 맞으며 핏기 어린 자국들을 지워나가는 동시에 《새크리파이스》를 사용했다.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는 유성은과 달리 재현은 스킬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블랭크 카드의 특수 효과 덕분이었다.
지이이이…….
녹빛이 재현의 신체에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서서히 몸이 수복되기 시작한다.
찢어졌던 부위가 봉합되고, 피가 쏟아져 나왔던 복부가 아물어간다.
재현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바이 때문에 치료도 못 하고 쓰라려서 죽는 줄 알았네.”
조금 전. 그 역시 치료하고자 하면 얼마든 그 역시 제 상처를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구자인과 교관들의 눈을 속이기 위함.
그는 오히려 레벨업으로 치료된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도 두 사람이 B급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 것도 모자라 상처도 하나 없다면, 그건 정말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그는 상처를 낸 뒤, 이제야 《새크리파이스》를 발동해 치료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물을 맞던 재현이 문득 수도꼭지를 잠근 뒤 고개를 들었다.
“서이나와 접촉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겠어.”
어차피 김유정은 미래에 죽는다.
반드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이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재현 없이도 훌륭한 레이더로 성장할 인재.
재현은 이번 전투를 통해, 서이나가 자신을 생각보다 더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언젠가 그녀에게, 또 자신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컸다.
“접촉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만약 하더라도 미래를 바꾸지 않은 선에서.”
간단명료한 결론이었다.
물론 이기적으로 판단하면 그녀를 좀 더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는 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과 엮여 죽거나, 위험한 일에 처하는 건 그로서도 질색이었다.
심지어.
“《오딘의 까마귀》와 구자인 사이의 접점을 밝혀내는 게 우선이야. 분명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재현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구자인의 마수가 뻗친 이번 이벤트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B급 마수를 양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
그런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노르니르 시스템의 적은 에시르 신좌들과 오딘의 까마귀. 구자인이 만약 이 일에 깊게 연관돼 있다면…….”
다행인 것은, 지금 당장 구자인과 맞붙어도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구자인의 정신 조작계 마법은 재현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헬의 가호》 덕분에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 데다, 다른 마법 역시 《절대 연산》으로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력이 남아 있는 한. 절대 그는 구자인에게 패배하지 않는다.
지금 그가 당장 그를 처치할 수 없는 것은 단지 둘러싸인 환경. 그리고 까마귀와 그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섣불리 구자인을 처치해선 안 된다.’
재현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지금은 몸을 회복하고 더 강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동시에 떠올렸다.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 * *
김지연 교관과의 대화를 모두 마친 뒤, 서이나 역시 호텔로 돌아왔다.
눈이 땡땡 불어 있는 김유정도 나란히 함께였다.
김유정은 조금 전 돌아오는 길에 서이나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 참이고, 서이나는 자신 때문에 펑펑 운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재현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유정이 먼저 연락해 몇 번이나 오라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피했다. 오늘은 피곤하다, 지금은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그의 말에 결국 김유정이 먼저 포기해 주었다.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끌고 오는 게 그녀의 성격이지만, 지금만큼은 재현 역시 적지 않게 놀랐을 테니 나름의 배려였다.
“그나저나 이나야. 정말 그 안에 코볼트 로드가 있었던 거 맞아?”
“……으응.”
“그런데 너희 두 명이서 어째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두 사람 실력이면 금방 해치우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잖아. 혹시 다른 문제가 있었던 거야?”
“…실은 중간에 변수가 좀 많이 생겨서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어.”
“변수?”
“…응.”
김유정은 서이나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두 사람에게 코볼트 로드는 각자 홀로 상대해도 충분히 쓰러뜨릴 만한 수준의 마수였다.
특히 재현의 경우는 잘은 몰라도 혼자 두세 마리쯤은 가볍게 처치할 실력이고.
그런 두 사람이 어째서 그런 D급 보스에게 고전한 걸까?
심지어 조금 전 돌아가는 재현의 옷가지는 찢어져 있었고, 복부와 양팔에서는 붉은 피가 잔뜩 적셔져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이 던전 안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었다는 의미.
정적이 이어지자, 서이나가 우물쭈물하며 김유정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걱정 끼쳐서.”
“아, 아냐! 그 뭐냐…… 민재현이 막 짜증 내고 그러진 않았어? 걔 원래 둘이 있으면 맨날 그러거든.”
“…….”
다급해서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는데, 이상하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김유정은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서이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서이나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굳이 뿌리치지는 않았다.
“왜 그래. 진짜 민재현이 너한테 뭐 나쁜 말이라도 했어?”
“……유정아.”
“응?”
김유정이 반문하자, 서이나는 조금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더니 겨우 토해내듯 말했다.
“……재현인 널 많이 믿는 것 같아.”
“……그 던전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유정의 물음에도 서이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재현과 약속했다.
이번 던전에서 있었던 일은 결코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건 김유정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재현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 마나 리바운드에 걸릴 것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모두 알면서 한 행동이었다.
‘……재현이. 날 조금만 더 의지해 준다면 좋을 텐데.’
아직 자신은 못 미더운 걸까?
재현은 강했다.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기다 이번에도 일행을 구하기 위해 가장 내리기 힘든 결정을 내렸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숨겨 둔 힘까지 사용했다.
평소 생각이 깊은 그가 능력을 숨기고 있다면. 자세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면. 분명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조금 속상해서 그래.”
조금은 서운했다.
어째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는 그녀 역시 잘 모른다.
너무 오래 타인과 교류하지 않은 탓일까?
재현은 따지고 보면 동료인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비밀을 몇 개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녀에게 딱히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 감정은 끊임없이 그녀를 좀먹는 듯했다.
“……?”
고민하는 와중. 김유정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더니 가볍게 쓰다듬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재현 걔, 양아치처럼 보이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니야. 뭐가 됐든 내가 나중에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응.”
그렇게 대답하는 서이나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있었다.
* * *
모의 던전 실습 후, 돌아온 재현은 코볼트 로드와의 전투를 반추해보았다.
압도적인 위력을 지닌 곤봉으로부터 나오는 파괴력과 그 무시무시한 마력.
그것은 감히 지금의 그로서도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
덕분에 던전에서 돌아온 직후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기억을 되짚으며 던전과 필드, 몬스터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책에 적힌 내용은 명료했다.
상급 몬스터의 약점부터 속성. 어떤 공격이 적에게 주효한 지. 어떤 무기가 마수들에게 좀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등.
하나같이 레이더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로 꼽히는 정보들.
이미 7년이나 던전에서 구른 재현이었지만 상위 몬스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재현은 회귀 전에는 상위 마수를 잡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는 D급 무투계 레이더였기에, 낄 수 있는 길드나 파티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부분에 대해 특히 더 열심히 공부해 두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적을 상대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완벽한 선택을 내리기 위해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빠르게 다가오는 다음 이벤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아직 나는 약해. 생각보다 구자인의 견제는 더 심한 상태고. 이런 상황에서 버텨내기 위해서는 역시.’
재현은 침착한 얼굴을 한 채, 스마트폰으로 주변 지도를 띄웠다.
그는 지금부터 ‘신의 안배’라고 불리는 아이템.
즉, 히든 피스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