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04)
독무 (3)
먼저 기력이 차올랐다.
핏기가 돌아왔고, 힘없이 흐느적거리기만 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또한.
심장과 하복부에도 익숙한 힘이 들어찼다.
태청심법으로 다스리던 기운이었다.
그뿐이랴?
녹았던 살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끄으으……!”
기능을 잃었던 신경과 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망가졌던 장기가 제 기능을 찾고, 저하된 면역력이 상승한다.
찢어졌던 근육이 붙었고, 흐릿하던 시야가 돌아온다.
이것은 부활(復活).
가히 기적이라 불릴 수 있을 만한 광경!
[육체 상태를 24시간 전으로 되돌립니다.]“흐아아압!”
바람 빠진 소리밖에 나오지 않던 성대에서 생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뎌져 가던 통각도 다시 살아났다.
‘좋아.’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아직 독무와의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 끼아아아아아!
독무의 기운이 다시 내 몸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탐닉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고통과 재시작되는 상쇄와 보합의 과정.
‘제기랄.’
내가 중얼거렸다.
그 지옥 같은 순간을 내가 어떻게 버텨냈는데.
저 괴물이 또다시 날 고통의 도가니로 빠뜨리려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전과 다르게 견딜 만했다.
처음에 비하면 그나마 내성 좀 쌓였다는 거겠지?
“으음.”
나는 눈을 감고 정신없이 기운을 돌렸다.
몸 안에 들어오는 독의 성분을 재빠르게 분석하여, 컨트롤하려 애썼다.
과연.
노인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굳이 별다른 연구를 하지 않아도.
먹는 것만으로도 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머리로 공부하는 게 아닌, 몸으로 체득하는 것.
뇌가 팔팔하게 움직였다.
– 2번째 들어온 독이랑 6번째 들어온 독이랑은 상성이 좋아 보이네? 붙으면 큰일 나겠어. 떨어뜨리자.
– 흠, 1번과 3번은 상쇄되려나? 저번에 들어왔던 ‘학령초’랑 ‘학정홍’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 오? 5번 극독은 9번이 해독제 역할을 하겠는걸? 붙여! 붙여!
– 와! 유레카! 14번이랑 18번, 19번이랑 운 좋게 합쳐졌는데. 이거 완전 영약이 따로 없네? 기운이 보충되잖아?
독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마치 독학 박사라도 된 것처럼 생각한다.
정확한 지식이 없어도,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불이 뜨겁다는 걸, 글로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수천 종류의 독을 먹어본 자만의 경험이었다.
– 키아아아아아?
내가 본인 뜻대로 당하지 않아서일까?
독무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이전과 비교해 들어오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고, 몰아치는 바람 역시 거세졌다.
‘굳이 억제하려 하지 말자.’
인정하는 거다.
‘독무’(毒霧)는 자연재해 그 자체.
고작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저 거대한 것을 ‘통제’한다고?
그건 인간의 몸뚱어리 속에 바다를 품는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보면 된다.
‘네 녀석을 억압할 생각 없으니. 그저 내 몸속에서 마음껏 노닐어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품었을 것만 같은 괴물.
녀석이 원하는 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독을 이용해 날 녹이려는 것.
그러니, 계속해서 독을 내 몸속에 주입한다.
근데 그건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잖아?
‘들어와.’
나는 내 몸속에 있는 모든 회로와 혈도를 개방했다.
동시에, 태청심법을 컨트롤해, 그 통로들을 세밀하게 보호했다.
콸콸콸콸!
그 안으로.
독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 안에는 1급 맹독뿐만 아니라.
2급 맹독, 3급 맹독, 일반 독 등 수준 낮은 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에겐 하등 피해를 줄 수 없는 녀석들.
그렇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예전에 이러한 방법을 썼다면.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렸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내 몸은 조금 다르다.
뇌가 자동으로 노인의 독술을 받아들여, 분해와 합성 과정을 거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몸이 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후우, 흐읍! 후우.”
신기하게도.
그 엄청난 독에 이제는 숨이 막히지 않았다.
호흡 또한 흐트러지지 않았다.
썩은 내 나던 향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향기로워.’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마치 아침에 빵 굽는 마을을 지나가는 것처럼 달콤한 향.
혀에 절로 군침이 돌 만큼 부드러운 식감.
‘아아……. 이게 독인가?’
독이란 마치 한국의 김치와도 같았다.
중국의 고수와도 같았다.
처음에는 맵고 독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익숙해지고 중독되는 그런 맛.
아아.
나는 희열을 느꼈다.
마치 물아일체…….
아니, 독아일체(毒我一體)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독과 내가 하나가 되는 그런 감각.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허허허.”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내가 눈을 번쩍 떴다.
녹빛으로 물든 시야에 노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엥, 어르신이 여길 어떻게?’
“몰랐느냐? 네 녀석. 본능적으로 24시간마다 날 불러내지 않았더냐. 불러만 놓고 혼자 멍청하게 헤매고 있길래 조금 도와주긴 했다만.”
‘……예?’
나는 황당했다.
잠깐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그게 무슨 말이지?
24시간마다 불러냈다고?
“허허, 이 녀석. 아무래도 제대로 몰입했던 모양이구나. 지금 횟수로만 다섯 번째 불러냈다, 이놈아!”
“…….”
다섯 번?
그 말은 벌써 5일이나 지났다는 거야?
“어?”
그러고 보니.
눈을 떴는데 시야가 잘 보인다.
몸이 허공에 떠 있는데도.
분명히 아직 독이 몸 안으로 쏟아지고 있는데도.
아무 느낌이 없다.
오히려 시원하니 기분이 좋다.
– 키아? 키아아아?
흉포하게 울려 퍼지던 독무의 포효도 어느새 당황하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어떻게 된 거긴. 퍼뜩 정신 차려라. 이놈아! 하긴…… 이제 굳이 정신 안 차려도 되려나? 쯧, 아무리 내 제자라 하더라도 대단한 놈이라니까. 네 녀석은.”
어르신의 목소리가 독처럼 달콤하게 들려왔다.
“고작 천독불침 따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 들어와 기어코 버텨내고, 그 수많은 독을 다 받아내다니. 그래, 기분이 어떻더냐? 주변에 떠 있는 독이 어떤 독인지 본능적으로 파악되지 않더냐?”
그랬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내 주변을 노니는 독들 하나하나.
다 내가 맛봤던 것들.
몸이 절로 아는 것들.
독을 어떻게 거두는지, 어떻게 살포하는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심지어.
저것들을 합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만술(萬術) 중 하나, 독술(毒術)이다. 쯧,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 신묘해서 알 수가 없구나. 죽어라 가르치던 술(術)은 아직도 벌벌 기고 있는데, 생전 처음 겪어보는 술(術)을 벌써 극에 가깝게 이뤄내다니.”
“극……이요?”
“그래, 이놈아! 네가 이룬 그 경지가 바로 만독불침이니라.”
“……!”
내가 눈을 부릅뜰 때였다.
[축하합니다!] [스킬, ‘천독불침’(A급)이 극에 달합니다.] [스킬, ‘만독불침’(S급)을 획득합니다.]아아.
이게 바로 만독불침의 경지라고……?
[스킬 : 만독불침] [등급 : S] [효과1 : 세상 모든 독에 저항합니다.] [효과2 : 세상 모든 독을 파악합니다.] [효과3 : 세상 모든 독을 다룹니다.]“그래, 만독불침은 고작 독에 저항력 따위를 얻는 거로 끝이 아니다.”
노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독의 친구가 되는 과정인 게다. 독을 억압하지 않고 독과 하나가 되는 것. 그렇기에 저항하지 않아도 되는 것. 세상 그 누구보다 독과 가까운 친밀감을 구성하는 것! 네 녀석은 그걸 본능적으로 파악했고, 또한 끈기로 그걸 이뤄냈다!”
스스슷!
내 주변을 감싸던 독무의 바람이 줄어들었다.
– 키르르륵! 키르륵!
아아.
한으로 똘똘 뭉쳤던 그 원념의 목소리가 맞던가?
독무의 포효는 어느덧 애교 많은 고양이처럼 온순해졌다.
“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로를 열었다.
그 사이로.
자연재해와 같던 독무의 기운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와서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내 몸속이 바깥보다 편안하고 좋다고?”
녀석의 감정이 내게로 흘러들어 왔다.
– 키르륵! 키륵! 크륵!
그래, 귀여운 녀석.
아니, 정확히는 갑자기 귀엽게 된 녀석아.
“들어와라, 먹어주마.”
나는 태청심법을 운용했다.
녀석의 독이 아무리 강해도.
이제 녀석은 날 해치지 못한다.
그저 부드럽고 편안한 기운이 될 뿐.
거대한 기운이 내 몸속 한가운데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끌끌.”
그 모습에 노인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녀석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운을 타고났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것을 길들이다니. 만약, ‘대운술’(大運術)이란 게 있다면 이미 네 녀석은 그것을 극에 익히고도 남았을 게야.”
“……뭐, 이번 건 저도 인정 안 할 수가 없네요.”
독무가 내 하복부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나는 녀석을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기운이기에.
하지만, 녀석이 내 몸속에 있는 이상.
또한, 내 몸을 굉장히 편히 여기는 순간.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놈들을 가만 내버려 둘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나는 만독불침.
독무의 친구.
‘확실히 기연이네.’
노인의 말마따나.
운 좋게 또 하나의 기연을 얻었음에 가슴이 벅차오를 찰나였다.
[띠링!] [‘독무’(毒霧)가 사라짐에 따라, 클리어 조건이 달성됩니다!] [시련 ‘테마1’을 종료합니다.] [30분 후, ‘테마2’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생존 인원 : 41명] [보상을 산정합니다.]시야에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
“…….”
델라일라의 홀.
두 남녀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었다.
한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굳어 있던 중.
남자의 입이 떨어졌다.
“제, 제가 지금 뭘 본 겁니까?”
“…….”
“독무. 저 독무를 지금 잡아낸 겁니까? 랭커도 아닌 고작 일반 참가자가 말입니까?”
적안의 뤼카는 평소의 시크하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만큼 놀라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
항상 침착하던 델라일라 또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태껏 없던 신인의 등장에 그녀는 분명 동요하고 있었다.
‘독무’(毒霧).
그녀가 만들 수 있는 모든 던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모은 독의 집합체.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담아 놓은 안개다.
그녀는 절대 그걸 해치우라고 풀어놓은 게 아니었다.
그저 참가자들이 개연성에 따른 높은 보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
던전의 난이도를 극악으로 올려놓기 위한 일종의 트리거일 뿐이었다.
“주동훈. 과연 상상 이상인 자로군요.”
델라일라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극악의 던전에서.
‘독무’로부터 일주일간 생존이라는 임무의 틀을 깨버리고, 그냥 ‘독무’ 자체를 처리해 버린 참가자.
“저, 저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뤼카가 궁금 어린 표정으로 델라일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담담하게 답했다.
“단순해요. 그가 한 행동만큼의 보상을 던전이 산정해서 줄 겁니다.”
“그렇다면…….”
“예.”
델라일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보상이 튀어나올 게 분명해요.”
동시에 그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델라일라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연,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