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6)
고대 사막 (6)
“그래.”
나는 눈앞에서 갈등하는 어린아이를 바라봤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너의 과거를 짓눌렀던 인간들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인간을 학살한 네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
녀석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벌어진 상처 속에 빨간 소독약을 받아내듯, 반발심에 움찔거렸다.
화나겠지.
이해할 수 없겠지.
분노와 원망이라는 감정이 가슴속에 멍울로 남아 있는데.
그게 다 끝난 일이라니.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라니.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다.”
녀석이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나는 그 끔찍한 기억을 털어낼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길일진대. 너는 지금 나를 부정하라 하는 것이냐? 혹여, 네 말대로 다 잊고 털어낸다 한들, 그게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오직 인간을 저주하며 살아온 아이에게, 내 말은.
자신을 버리라 하는 것처럼 느꼈을 터.
녀석의 입술이 굳게 앙다물어졌다.
오랜 세월, 긴 시간 동안 오직 한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온 자의 고집이요, 집념이었다.
“너를 부정하라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이 경계한 듯, 창을 들어 올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하고 싶었던 것, 못 했던 것을 이제는 누려보라는 거다.”
“하고 싶었던 것?”
“그래, 네가 하고 싶었던 것.”
어느덧 녀석의 사정거리 속에 들어왔다.
창끝이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스윽.
살포시 손을 뻗어 밀었다.
힘없이 밀려났다.
“잠깐이지만, 나는 과거의 너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네가 무엇 때문에 아팠고,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걸 원했는지 나는 전부 알 수 있었다.”
스킬, ‘기억 재현’(S급)의 효과.
“…….”
“그리고 그 속에서, 너는 분명 세상을 보고 싶어 했다.”
“세상……?”
아이가 움찔했다.
시커멓게 파인 눈 부위가 흔들렸다.
“너는 궁금했다. 부드럽게 밟히는 모래가 궁금했고, 사막을 활보하는 낙타가 궁금했다. 하지만 오직 기억에 남는 거라곤 태양뿐이 없어서, 본인의 생김새조차도 모르고 있지 않던가.”
“맞아.”
녀석이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는 세상이 궁금했다. 그건 인간의 선악을 떠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럼 된 거 아냐?”
“그럼 된 거라고?”
녀석이 얼굴을 구겼다.
말장난하는 거라 느낀 듯했다.
저벅.
어느덧 나는 녀석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네 아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잠깐 느껴봤다 해도, 그뿐이야. 온전히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니까.”
“…….”
“그래서 네 감정을 섣불리 위로하기 싫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난 그저.”
“…….”
묘한 침묵이 흘렀다.
난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저 욕망에 충실하면 안 되냐는 거다. 인간에게 어떤 증오를 느꼈든, 어떤 앙금이 남아 있든. 다 제쳐두고 세상을 볼 수 있단 것만 생각하란 거다.”
아이가 어깨를 떨었다.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궁금하겠지.
바라보고 싶겠지.
이윽고, 녀석이 물었다.
“그렇다는 건, 네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냐?”
“물론.”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켈레톤은 언데드(Undead) 중 가장 하위종.
죽었던 시체가 목이 베였든, 눈이 파였든.
온전한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종이다.
‘근데 생각해 보니, 스켈레톤 이놈들…… 눈 없잖아?’
눈이 없긴 한데.
볼 수는 있다.
그건 확실하다.
네크로맨서인 내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스윽!
나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상상 속 세계답게, 멋들어진 지팡이가 손아귀에 잡힌다.
자, 이제 제안해볼까?
“나는 네크로맨서(Necromancer). 비록 저주받았지만, 죽음을 다루는 강령술사.”
투욱!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내가 사는 세계는 네가 살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이라도 보고 싶다면…….”
그러고는 왼손을 내밀었다.
움찔.
아이가 몸을 떨었다.
“내 손을 잡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
[스테이지 : 태양창의 한] [난이도 : 측정 불가] [인간을 향한 ‘태양창’의 원망이 하늘을 뚫을 정도입니다.] [태양창을 굴복시켜 ‘뼈다귀2’의 진정한 각성을 이뤄내세요.]나는 녀석에게 굴복할 것을 제안했다.
아이가 가진 욕망 중 하나, ‘시각’을 조건으로.
[‘태양창’이 고뇌합니다.] [‘태양창’이 갈등합니다.]“…….”
침묵은 길었다.
그래도 꿋꿋이 기다려 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너는.”
“응?”
“너는 다른 인간과 다른가?”
스스슷!
녀석이 손에 힘을 주어, 다시 창을 들었다.
“나는 고대 사막 제국의 절대자. 세상에 적수가 없었던 반인반수. 드높은 태양을 삼킨 창.”
우우웅!
녀석의 창에 막대한 기운이 담겼다.
“나는 아무나 섬기지 않는다. 특히나 그 상대가 인간이라면.”
“…….”
“너는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가?”
상처 입은 아이의 물음.
[띠링!] [히든 퀘스트 발동!] [‘스테이지 : 태양창의 한’ 전용 히든 조건입니다!] [인간을 향한 ‘태양창’의 원한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습니다.] [다만, ‘태양창’이 의문을 가집니다.] [헌터, ‘주동훈’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당신이 진정한 주인임을 증명하세요.] [증명 시, ‘태양창’의 기억과 의지를 ‘뼈다귀2’가 그대로 이어받습니다.]‘이런.’
퀘스트의 변형인가?
달라진 워딩이 있었다.
원래는 ‘뼈다귀2’의 진정한 각성이었다면.
지금은 ‘태양창’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게 그거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히든 퀘스트인 것만 봐도, 후자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웃었다.
스윽!
동시에 오른손으로 ‘창’을 생성해 부여잡았다.
스르륵!
지팡이는 없애 버렸다.
“주인이라.”
뼈이가 태양창이 되어, 주인이라 부르는 모습이라.
두근.
가슴이 뛰었다.
“그거 어떻게 증명하면 되는데?”
“간단하다.”
내 물음에 녀석이 답했다.
“내 창을 받아내어라. 퇴색된 원한 덩어리가 아닌, 진정한 태양의 힘을 견뎌내라. 그럴 수 있는가?”
아이가 창을 들었다.
나는 답했다.
“얼마든지.”
세상이 번쩍였다.
* * *
우우웅!
뜨거운 태양 볕.
따사로운 햇살이 창날이 되어 온몸을 쑤셨다.
‘이게 진정한 태양의 힘.’
한낱 원한에 사로잡혔던 아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수였다.
어느 정도냐면.
뒤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혀를 내두를 정도.
“허어, 제자야. 괜찮느냐?”
‘괜찮아 보이십니까? 아파 뒈질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저 아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흠…… 대충 내 전성기 정도 되었을 때쯤에야, 가볍게 죽일 수 있겠군.”
“…….”
이 영감탱이가.
아파 죽겠는데 자뻑질인가?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죽일 수 있겠다니.
“욘석아, 대단한 거다. 난 보통 제압한다고 하지, 죽인다는 말은 함부로 쓰지 않거든. 내가 제압하기 힘들 정도의 상대. 그게 현재 저 아이의 힘이다.”
‘참으로 그러시겠군요.’
미안하지만.
노인의 수다에 맞장구칠 겨를이 없었다.
창에서 쏟아져 나오는 태양 빛 하나하나가 전부 치명타였으니까.
[‘태양창’이 스킬, ‘태양연격’(太陽連擊)(Lv.MaX)을 사용합니다.] [‘태양창’이 스킬, ‘몰아치는 사막’(Lv.MaX)을 사용합니다.] [‘태양창’이 스킬, ‘영혼의 불꽃’(Soulflare)(Lv.MaX)을 사용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스킬명들.
이어지는 고통에 나는 신음했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이가 공격을 멈추는 건 아니었다.
“제자야. 굳이 맞받아칠 필요 없다. 아…… 하긴, 걱정할 필요 없겠구나. 네놈에게 그럴 실력이 있을 턱이 없으니.”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겁니까?’
내가 뾰족하게 묻자, 노인이 웃었다.
“그냥 견디라는 거다. 어차피 이곳에서 네놈은 무적과 다름없지 않으냐?”
‘대신 무지 아프지요.’
“어허, 본 만술의 비기. 태청공재만성대법을 치르고 있는 네놈이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지 않으냐!”
“…….”
제기랄.
뒈지게 아파 죽겠는데.
자꾸 저런 말을 하니, 속이 더 불타오른다.
내외부 쌍으로 뜨거워지는 느낌.
“네 녀석도 알지 않느냐.”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아이. 네 실력을 보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네 의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의지…….’
“그래, 네 녀석의 뚝심. 네 녀석의 됨됨이. 본래 끈기 있는 자일수록 올곧은 법이거든. 본인을 다루고 싶다면, 이 정도는 견뎌보란 말이겠지.”
아이는 아무나 섬기지 않는다.
특별한 자만을 섬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걷는다고 하지 않던가.
특히, 인간에게 많은 상처를 입었던 만큼.
나를 판단하고 싶은 것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그 말이 가진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아무나 섬기지 않는 만큼, 한 번 섬기면 확실히 충성을 맹세한다는 뜻이니.
“그래.”
뭐가 어떠면 어떻고, 저쩌면 어떤가.
한번 쏟아내 봐라.
끝없이 견뎌주겠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지만.
어차피 나는 랭커가 되기 위해, 죽음마저도 불사하고 있다.
‘그리고 태양창은.’
그 랭커로 가기 위한 커다란 디딤돌.
“네가 판단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전부 판단해 봐라.”
아이는 계속해서 창을 쏟아냈다.
태양을 삼킨 창.
아니, 이제는 태양을 뱉어내는 창.
[스킬, ‘고통 내성’(B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킬, ‘고통 내성’(A급)을 획득합니다.] [해당 스킬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습니다.]아아.
이러다가 마조히스트로 전직하는 거 아냐?
끔찍했던 고통이 점차 줄어든다.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허허, 좋구나.”
노인이 중얼거렸다.
“과연 내 제자답다. 악바리 하나만큼은 세계 최강이구나.”
‘어르신 덕분이지요.’
여유를 찾았다.
이제는 녀석의 창을 받아내며.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정도.
저벅, 저벅.
나는 번쩍이는 창격을 맞으며 녀석에 앞에 다가섰다.
다가서서 차분히 녀석을 응시했다.
“……너는.”
태양창이 놀랍다는 듯 읊조렸다.
“너는 확실히 다르구나.”
아이의 기세가 꺾였다.
기세와 더불어 쌓여 있는 원한 역시 놓아줬다.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없는 것이다.
다 끝난 세상인데.
이미 전생의 일이 되어버렸는데.
계속해서 고통받기 싫은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이전의 삶은 버리고, 누군가를 충심으로 섬기는 삶.
굳건한 강령술사의 아래 세상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삶.
투욱!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또옥!
동시에 눈물도 떨어졌다.
고대 사막 제국의 통치자가 된 이래로, 단 한 번도 흘린 적이 없던 눈물.
아이는 눈물에 원한을 담아 씻어냈다.
그리고.
“주군.”
자신이 섬기기로 한 ‘인간’을 불렀다.
“저는 주군을 인정합니다.”
[축하합니다!] [히든 조건을 충족합니다.] [‘스테이지 : 태양창의 한’을 클리어합니다!] [클리어 보상이 도착합니다!]한 세계의 절대자를.
수하로 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