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5)
고대 사막 (5)
어느 사막에 위치한 동네.
창을 든 아이가 모래를 걷고 있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해는 졌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휘이이잉!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인간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
터벅터벅 걷던 아이가 멈칫했다.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
“어, 엄마?”
대상은 어린 인간 소녀였다.
소녀는 아이를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여기 존재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이.
아이의 창에 썰려 나갔으니까.
“엄마, 엄마!”
소녀는 공포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호자를 찾았다.
아이는 씁쓸했다.
어렸을 적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었으므로.
인간들이 강제로 눈을 파낼 때.
끊임없이 불렀던 그 이름.
‘엄마.’
스릉!
아이는 조용히 창을 들어 올렸다.
날붙이 부분에는 시뻘건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흐, 흐어어엉! 엄마, 엄마!”
“…….”
소녀의 울음에 아이가 멈칫했다.
원래 같았으면 당장에 목을 베었을 텐데.
혹은 심장을 꿰뚫어 모래에 파묻었을 텐데.
지금은 분명 머뭇거리고 있었다.
“…….”
고민이었다.
자신의 명확한 ‘적’은 누구일까?
어느 정도 깨우친 어른 인간일까?
아니면, 저런 소녀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종족 전체일까?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메우기 위해.
똑같은 상처를 주는 것이 맞을까?
어린 태양창(太陽槍)은 고뇌했다.
그러는 동안.
“애, 애야!”
어미로 보이는 자가 달려와 소녀를 감쌌다.
태어날 적 아이가 그토록 바랐던 그림.
“…….”
결국, 아이는 등을 돌렸다.
어차피 인간이란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장난감.
저 부녀를 죽여, 자신의 상처를 더욱 곪게 하긴 싫었다.
그래.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 또한.
피해자의 권한 아니겠는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푸욱!
등 뒤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따갑고도 아픈 고통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
느껴졌다.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민 자가 누군지.
“주, 죽어! 이 괴물아!”
자신이 동정했던 소녀.
“죽으란 말이야! 사라져! 이 악마! 마물!”
자비를 베풀려 했던 인간이 선택한 행동.
아아.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이란 말인가?
태양창은 슬펐다.
그래서 절규했다.
사막에 피바람이 불었다.
* * *
나는 태양창을 향해 걸었다.
“…….”
낡은 지팡이도 없이.
항상 내 곁을 지키던 뼈다귀들도 없이.
있는 거라곤 오직 투명한 내 몸뚱어리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했다.
태양창의 기운과 노인의 기운이 맞물리는 곳.
‘본래 같았으면 갈기갈기 찢겼겠지. 아니, 다가가지도 못했으려나?’
지금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이 모든 게 내 정신 속 허상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쯧, 하여간 별난 놈.”
노인이 툴툴거리며 뒤로 빠졌다.
“하긴, 첫 만남 때부터 별난 놈이었지. 그래서 마음에 들었었고.”
스승과 제자 사이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내 의도를 존중해 주는 것.
그러한 사실에 감사했다. 또한, 든든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속으로 예를 취했다.
매번 툴툴거려도.
가끔은 노망난 영감탱이라 생각해도.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날 위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 목적이 어쨌든.
인간이라면,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러운 인간! 간사하고 야비한 인간!”
그리고 이제는.
“너 따위가! 고작 인간 따위가! 감히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태양창의 원한과 집념이 온전히 나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나는 인간을 증오한다! 인간을 저주한다! 내가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의 생태를 보고 나서 느낀 게 뭔 줄 아느냐?”
“…….”
“인간은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라는 거다! 폐기물 쓰레기보다! 병균보다 못한 존재라는 거다!”
외침은 절절했다.
걸걸한 음성이 찢어지듯 울렸다.
동시에.
콰가가강!
내 몸 한가운데로 태양창의 참격이 쏟아졌다.
창은 내 심장을 꿰뚫었고, 뼈를 갈랐다.
근육을 찢었고, 눈을 파냈다.
“끄으으윽.”
내부가 진탕되어 피를 쏟았다.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시뻘건 액체가 흘렀다.
[스킬, ‘고통 내성’(B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아아.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노인이 내성을 길러놓지 않았다면, 벌써 정신을 잃지 않았을까?
‘하지만 멀쩡해.’
분명 통증은 느껴졌지만.
나는 존재했다.
죽지 않았다.
왜냐.
이곳은 내 상상 속의 세계.
실재가 아닌 허상이니까.
갈라지고 찢어졌던 몸이 다시 붙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언데드(Undead)와 마찬가지.
“그래.”
나는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분노하는 태양창을 직시했다.
“어디 한번, 네 원한.”
창을 들었다.
차악!
허상이기에, 멋들어진 창이 허공에 생겨나 손에 감긴다.
“있는 대로 쏟아내 봐라.”
솔직히 누군가는 투정이라 할 수 있었다.
궤변이라 할 수 있었다.
너도 그만큼 남들한테 상처 주지 않았느냐고.
네가 피해 입은 만큼 과한 폭력을 사용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빈정거리지 않았다.
온전히 이해하려 했다.
봤으니까.
스킬을 통해 느꼈으니까.
“내 원한?”
태양창이 비웃었다.
그가 들고 있는 무기에 살의가 가득 담겼다.
수천의 사람을 꿰뚫었던, 그 지독한 살기(殺氣)를 품었다.
“내 원한을 받아낸다고 하였느냐? 우습구나. 나를 온전히 이해하여도 불가능한 것을. 불행의 ‘불’자도 느껴보지 못한 놈이 할 소리더냐? 오만한 발언이구나!”
창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아니, 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어린 날, 생사를 위협받던 아이의 감정.
시야를 잃은 두려움.
부모를 잃은 두려움.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공포가 심장을 휘몰아쳤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반인반수. 세상에 독수리 괴물과 인간 사이의 혼혈이라니. 그런 날 좋아하는 인간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태양창의 무기가 슬피 울었다.
“나는 태어나면 안 될 존재였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내게 칼을 들이밀었지. 눈을 가져가려 했고, 손을 가져가려 했고, 발목을 자르려 했다. 네가 그 끔찍한 고통을 아느냐?”
“……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공격을 받아냈다.
“힘들었겠구나.”
“흥, 그래. 그렇게 동정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
“…….”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똑같았다. 날 무서워했고. 내 등에 칼을 꽂았지. 내 감정이 차츰 죽어갈 때까지. 인간들은 ‘거짓’, 그리고 ‘배신’ 그 자체였다.”
“그래.”
난 그저 녀석의 말을 들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울부짖는 아이를 보는 듯했으니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수천, 수만이었다!”
“너 같은 반인반수가 많았나 보군.”
“그래, 인간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또는 번영을 위해 수많은 종족을 학살했지. 그 과정에는 책임도 존중도 없었다.”
녀석이 보내는 감정의 창은 날카로웠다.
계속해서 육체를 찌르고 고통을 가했다.
“인간들은 날 원망했지. 본인들을 찢고 갈랐던 날 두려워했지. 그들은 말했어. 역시 반인반수는 태어날 때부터 조져놨어야 했다고. 죽여놨어야 했다고. 하, 웃기지 않는가? 제들이 괴물이라 불렀기에 괴물이 된 줄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이미 스킬을 통해 읽었던 감정이기에.
노인 역시 뒷짐을 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욱! 푸욱!
뼈이, 아니, 태양창은.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감정을 쏟아냈다.
‘……한을 털어내는 과정인가?’
나는 분명히 느꼈다.
공격을 거듭할수록.
약해져 가는 녀석의 힘을.
풀어져 가는 녀석의 감정을.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녀석의 공격이 확실히 굼떠졌다.
이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조금은 보이는 것이다.
“태양창.”
나는 녀석을 불렀다.
“언제까지 그렇게 슬퍼만 할 거냐. 고통스러워만 할 거냐.”
“…….”
“사람의 운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법인데. 고통이 있으면, 그만큼의 행복도 있는 거 아니겠냐?”
멈칫!
타이르듯 뱉어낸 말에 녀석이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놀란 모양이었다.
“한번 잘 생각해 봐. 고통이란 감정에만 매몰되어 계속해서 괴로워하면 그게 누구 손해일까? 이미 죽어 없어진 사람 같지도 않은 그 인간 놈들 손해일까? 아니면 네 손해일까?”
후웅!
말하면서 나 역시 창을 찔렀다.
노인에게 배운 ‘자(刺)’(C급).
그것에 감정을 담아냈다.
“허허.”
뒷짐 진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이 녀석. 둔재인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벌써 찌르기에 감정을 담아내는 경지라니!”
노인은 이제 완전히 물러나, 흥미로운 모습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후웅!
나는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솔직히 네가 괴로워하는 이유.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나는 저 녀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스킬을 통해 직접 봤기에.
‘녀석은 인간을 증오하는 만큼 사랑해.’
솔직히.
인간에게 감정이 없으면, 괴로워할 이유도 없다.
속상할 이유도 없다.
그저 죽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 되는 거니까.
기대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저 녀석은 그렇지 않다.
해보고 싶은 거다.
느껴보고 싶은 거다.
따듯한 인간의 품을.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또래의 풍경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어미의 사랑을.
녀석의 속에는 분명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함부로!”
차앙!
태양창이 내 찌르기를 튕겨냈다.
“날 네 멋대로 재단하려 하지 마라!”
그 힘이 엄청나.
수십 걸음이 밀려서야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후우윽!”
나는 고통과 함께 깊은숨을 토해냈다.
“내가 괴로워하는 이유를 나도 안다고 하였느냐? 좋다. 인정하마.”
눈이 부셨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지 않은가! 나는 버려졌고 내 감정은 말라버렸다. 이미 수백 년 동안 곪고 곪아 영영 흉터로 남았다. 이제 와서 뭘 돌린단 말이냐!”
창에 서린 태양 빛이 너무도 뜨거웠다.
“살인을 저지른 자가 사과한다고 유가족의 상처가 치유되겠느냐? 폭력을 일삼는 자가 사과한다고 그 아픔이 사라지는가? 터무니없는 말! 이미 지나간 일은 돌릴 수 없는 거다!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거란 말이다!”
녀석이 강하게 밀쳐왔다.
하지만, 난 물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지는 거다.
나는 기필코.
녀석을 설득해 내야 한다.
치유해 내야 한다.
그리고 경험상, 저런 애들은.
달래기보다는 강하게 말하는 게 더 효과 있다.
“맞아,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지.”
나는 쿨하게 인정했다.
“나는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저 다시 태어나라 말하는 거다. 오직 너를 위해서.”
“……뭐?”
태양창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망자.”
내 창의 움직임이 유려해졌다.
“네 삶은 어차피 그곳에서 끝났다. 네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네가 이미 다 죽였고. 더는 화 풀 곳도 없는데, 언제까지 패배자처럼 그러고 있을 거냐. 이제 새로운 삶도 살아 봐야지. 시간이 아깝지 않아? 네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아?”
“……내 삶이 끝났다고?”
녀석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마치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자각한 것처럼.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이곳은 피라미드. 모든 인간을 척살한 후, 나 스스로 묻혔던 무덤.”
죽어서도 인간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강렬한 ‘한’을 묻은 곳.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죽어서도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거야. 이미 널 괴롭혔던 놈들은 사라지고 없는데. 네가 다 죽였는데.”
“…….”
녀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전투는 어느새 소강됐고, 나는 그런 그를 천천히 기다려 줬다.
이윽고.
녀석의 입이 열렸다.
“……새로운 삶을 살라고?”
기존보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