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57
제57화
57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다.
“무기는 망가졌다. 하물며 이곳은 내 저택이다.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겠지.”
말과 달리, 눈에는 모종의 미련이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지만.
딱히 악감정이나 그런 것은 아니리라.
승부에 대한 순수한 집착.
여기서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자신의 체면이나 가문의 명성에 흠이 된다고 여긴 거겠지.
“냉정하군.”
“고작 한 번의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 더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닌가.”
본심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나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시안 네가 마음만 먹으면 끝내는 것도 가능했다.”
엘시아는 그리 말하며, 에밀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흑마법사에게 사역마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무기나 마찬가지다.
일부러 나는 에밀리의 지원을 쓰지 않았지만 쓴다고 가정하면 어떤 결과가 될지 엘시아가 지적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패배를 인정하마.”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뭐, 그녀가 말했다시피 고작 한 번의 대련이다.
이긴다고 해서 그게 모든 역량을 판가름하는 것도 아니고 진다고 끝도 아니라는 뜻.
나도 수업에서 가끔 모의 전투를 하면 다른 학생들에게 규칙상 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문제는 ……조금 전 내기 말이다만.”
“아, 그거…….”
내가 말을 꺼내 놓고 깜빡 잊고 있었군.
“당연히 시안이 이겼으니 약속은 지켜야겠죠!”
지켜보고 있던 성녀 알피네가 어쩐지 신난 기색으로 끼어들었다.
아니, 네 친구가 졌거든?
왜 더 신나 보이냐.
“두말은 하지 않아요! 시안! 바로 저! 성녀회의 일원! 알피네가 그날 당신과 함께할 것을 약속할 테니까요.”
“아. 네. 네.”
“음……. 좀 더 기뻐해도 되는데요. ‘내가 성녀를 손에 넣었다!’라고 사악하게 웃으며 퇴장하는 건 어때요.”
“내가 무슨 악당이냐? 그리고 처음부터 제안한 건 너였어! 이 얼간이 성녀!”
바라 마지않던 일이니 기뻐해도 되겠지.
알피네의 능력은 메인 시나리오 2장에서 상성적 우위를 발휘하게 만들어 주니까.
단지 영입 가능성이 낮다고 여겼기에 고려하지 않았는데, 설마 그녀가 먼저 제안할 줄이야.
‘나를 속일 인물은 아닌가.’
알피네의 캐릭터성은 게임 때의 지식을 근거로 생각해 봐도 지극히 선하다.
흔히 말해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행적을 보일 인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로 일을 벌인 건가…….’
분명 약속한 이상, 성실하게 조력해 줄 거라고 여겨도 되겠지.
“그럼 그날은 잘 부탁해요. 시안.”
“그래,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도록 해 줄 테니 안심해라. 알피네.”
* * *
용건을 마친 시안은 그 뒤에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듯 바로 돌아갔다.
축객령을 내린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사담이나 조금 전 대련에 대한 감상을 나눠도 상관없겠지만, 바로 빠진 것이다.
엘시아는 아쉽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를 설득하려고 부른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시안을 끌어들이려 했는데.
반대로 이쪽의 귀중한 인원을 하나 빼앗긴 셈이 되었다.
이 손해 본 듯한 기분은 뭐냐.
헛웃음을 흘리며 엘시아는 하인이 새로 끓여 온 차를 마신 뒤 한숨을 다시 쉬었다.
“알피네, 이게 무슨 꿍꿍이지?”
“훗! 모든 것은 여신님의 안배대로……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전 아무 생각 없어요! 엘시아!”
“그걸 당당히 말하지 마라! 그러니 교회의 신관들이 난처해하는 거 아니냐.”
생글생글 웃으며 이해 불가한 말을 하려던 알피네는 웬일로 솔직하게 답하였다.
“화났나요?”
“책망하려는 건 아니다. 알피네. 네 말대로 내게 간섭할 권리는 없으니.”
“실은 마음에 두고 있죠?”
“하하하, 그럴 리가. 이 망할 성녀.”
마음에 두고 있다. 적어도 이 대화를 듣고 있는 타인이 있다면 틀림없이 확신했으리라.
“……농담이다. 알피네. 혹시 처음부터 너는 시안과 같이 행동하려 한 게 아니었나?”
“글쎄요. 어디까지나 전 시안이랑 같이 다니는 게 재밌을 거라고…….”
“외부 실습에 대한 거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소문이 들리더군.”
본래 엘시아가 시안을 불러서 설득하려 했던 진짜 이유였다.
정작 그 소년에게는 말도 못 꺼내고 휘둘려서 이 꼴이 났지만.
“이번 외부 실습은 시기가 극단적으로 앞당겨졌다더군. 하물며 장소가 혈목의 숲이다.”
“혈목. 후우, 두근거리는 이름이네요.”
“네 취향을 물은 게 아니다. 그런데 뭐가 두근거리는 거냐?”
“그런가요?”
“묻고 싶은 건 여기부터다. ……폐하께서 외부 실습을 앞당기라고 명하시기 전에 어떤 분과 회담을 가졌다는 소문이 있더군.”
그것은 공작가에서 간신히 알아낸 정보였다.
적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나 심지어 교수들도 알지 못하는 사실.
“어느…… 분?”
“시치미 떼지 마라. 다름 아닌 네가 잘 아는 분이 아니신가.”
굳이 그 정보를 알피네에게 누설한 것은 이미 이 이해 불가한 성녀도 알고 있는 정보이니까.
“대성녀와 회담을 하셨다고 하더군.”
성녀회.
알피네를 포함해 성녀들을 거두어 가르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최고이자 최강의 성녀.
교회의 진정한 실권자.
황제는 그 대성녀와 모종의 이야기를 나누고는 외부 실습을 앞당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네? 그거 우연 아닐까요?”
“세상에 우연이라는 게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나?”
“없네요. 그런 우연 따위는.”
알피네는 깔끔하게 대답했다.
“……알피네, 조금 전 그 행동 역시 교회의 지시인 건가?”
“시안과 약속한 거요? 그럴 리가요.”
말도 안 된다며 웃으면서 부정한다.
“확실히 대성녀님께서 지난달쯤에 편지를 보내신 건 사실이에요.”
“……뭐?”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어디까지나 외부 실습에서 조심하라는 말씀이셨고, 그리고 제 흥미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니까요.”
“…….”
“따라서 전 시안과 같이 행동하는 게 재밌을 거 같아서 선택했을 뿐이랍니다.”
“그래……. 그렇게 이해하도록 하지.”
“아~, 대신 다음에 도움이 필요할 거 같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이번 일로 신경을 쓰게 한 대신이라는 듯.
“엘시아, 당신을 친구라고 여기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
“그럼 전 잠깐 다른 용무가 있어서 실례할게요.”
“일이 있나?”
“거리에서 애들한테! 신성력을 이용한 기예를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정말로 그걸 대성녀님께서 묵인하신 거 맞나?”
하지만 알피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가 버렸다.
반쯤 벙찐 채 저 사고뭉치 성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던 엘시아는 곧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주인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듯 시종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역시 성녀님께서 이탈하신 것 때문입니까?”
“그건 되었다. 약속이고, 크게 지장은 없다.”
이미 알피네의 행적에 관한 문제는 그걸로 됐다고 결론을 지었다.
단지 엘시아가 두통을 느끼는 이유는 조금 전 그 성녀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정보 때문.
“알피네가 말했어……. 지난달 대성녀님께 편지를 받았다고.”
“예.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 설마?”
시종 레이린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발표는 지난주였다. 하물며 황제 폐하께서 교수들을 불러 지시한 게 열흘 전이었고.”
알피네는 일부러 조금 전 엘시아가 물은 정보를 사실이라고 인정해 준 셈이다.
혈목의 숲의 실습 일정을 앞당긴 건 황제와 대성녀 간의 모종의 의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물며 대성녀라고 하면.
“그럼 알피네 님께서 시안이라는 소년과 같이 행동하기로 약속을 잡으신 건.”
“……그럴지도 모른다.”
본인은 흥미 위주라고 했지만.
어쩌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회에 적을 둔 그녀가 굳이 흑마법사와 같이 행동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의 훈련처럼 끝날 리가 없다.”
황제뿐 아니라 대성녀까지, 그 거물들이 개입했다면 달리 내다보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입생들은 그 이유에 휘둘릴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엘시아의 표정이 굳어진다.
제국민, 그것도 공작가의 일원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는 걸.
“파벌의 애들을 모아 다오.”
“지금 말인가요?”
“알피네도 빠졌으니 설명하기도 해야 하고 일정 전체를 다시 의논해야겠다.”
방침은 정했다.
조금 전 알피네가 준 정보는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사과 겸 충고겠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신경 쓰라는 것.
11장 – 혈목의 숲
외부 실습.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사냥회의 첫 번째 날.
“자! 여기가 여러분이 가진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장소!”
우리들은 그 실습 무대에 도착했다.
“바로! 이곳이 혈목의 숲입니다!”
혈목의 숲.
이번 사냥회 실습지로 지정된 제국 3급 마경.
그리고…….
‘제2장의 사건이 벌어질 장소인가.’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앞으로 이 숲에서 일어날 ‘미래’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며 일정을 검토한다.
지금은 가만히 생각에 빠지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게 없으니까.
신입생들은 본격적으로 숲에 투입되기 전에 정렬한 채 동행한 교수들의 설명을 얌전히 듣고 있다.
“무려 이 혈목의 숲은 제국 황명에 의해 3급 마경으로 지정된 특별한 장소이지요.”
지금 기이하게도 들뜬 어투로 설명하는 사내는 아카데미 연금술 클래스의 교수 세밀턴 클레이브.
연금술 교수들 중에서도 식물을 소재로 한 연구에서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
그렇기에 그는 이번 실습에서 만일의 사태를 위해 대처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3급 마경.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드문드문 신입생들 중 표정에 긴장이 여실히 드러나는 녀석들이 있다.
사냥회라고 부르지만, 귀족들의 놀이처럼 우아한 행사 따위가 아니다.
우리들이 상대하는 건 몬스터.
일반인은 발도 들이지 못하는 곳에서 외부의 보급 없이 무려 5일간이나 머물며 그 역량을 보여야 한다.
“3급 마경이라 하면 최소 2서클의 마법사 혹은 오러 프랙티션의 단계에 오른 실력자가 아니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제국의 영토는 넓다.
당연히 모든 영토가 비옥할 수도 없고, 쓸모없는 땅도 제법 있다.
하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위험한 땅.
목적을 위해 혹은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극히 골치 아픈 땅은 존재한다.
3급 마경이라고 하면, 최소 2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땅.
출입 허가는 최소 그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곳.
당연히 여기 있는 풋내기들 중 어지간해서는 그런 땅에 발을 들인 경험이 있는 녀석들은 손가락에 꼽을까 말까 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긴장하는 것일 테고.
“그럼 여러분은 저 ‘혈목의 숲’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숲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설명을 해 두려는 건지 세밀턴 교수가 질문을 던진다.
“어떤 땅인지? 무엇이 있는지? 얼마만큼 사전에 조사를 해 두었나요?”
선뜻 대답하는 녀석이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대답하는 학생에게는 특별히 평가에 점수를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만?”
평가 점수는 끌리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수 앞에서, 그것도 잘 모르는 땅에 대해서 정보를 풀 녀석은 흔하지 않겠지.
“없습니까?”
어쩐지 섭섭하다는 느낌이다.
점수라……. 일단은 따 놓는 게 좋겠지.
“제가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오……. 당신은…….”
“시안입니다. 흑마법 클래스 소속의.”
“아아! 당신이 그…… 과연.”
어쩐지 기이한 생물을 봤다며 끄덕이는 느낌.
최근 교수들 중에는 나를 처음 대면하는 이들이 종종 저런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흑마법 스크롤의 성과 발표 이후에.
대체 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가 나도는 거람.
“좋습니다. 대답해 보세요. 틀려도 감점은 하지 않을 테니.”
“예. ……우선 혈목의 숲의 특징이라 하면 바로 저기 솟은 거대한 나무일 것입니다.”
내 설명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은 숲의 방향에서 약간 위로 향하게 된다.
숲의 입구에서부터 저 위로 보이는 거대한 나무.
하지만 평범한 거목 따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