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ake over the male lord RAW novel - Chapter 53
53
“적장의 목입니다.”
로이가 목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리삭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의 목이군.”
생각보다 거물을 잡았다.
“이러다가 오란 제국의 총사령관마저 잡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총사령관이라.”
오란 제국은 사령관까지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지고 말았다. 총사령관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 공은 크군.”
“감사합니다.”
“자네는 정말 전쟁을 위해 태어난 남자 같아.”
리삭의 말에 로이가 그냥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이미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전 이만.”
로이는 고개를 숙이고 막사를 나왔다.
‘아리스.’
전쟁을 잊으려면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가 보낸 편지의 향을 맡을 생각이었다.
봄의 얼굴이 출발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동쪽 지역에 도착했을 것이다.
아아, 그녀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녀의 존재를 이 손으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전쟁이 길면 길수록 그녀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었다.
* * *
한 달 내내 마차를 타고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는 책을 빼라고 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짐이 많아지더라도 책을 넣는 것이었는데.
루진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아리스를 보았다.
“아가씨.”
“응.”
“노래 연습 다 하셨어요?”
“아, 해야지.”
아리스는 악보를 바라보았다. 악보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지겨워.’
한 달 동안 같은 곡만 연습하고 있었다. 레슨을 받았던 곡이기에 어떻게 부르는지 잘 안다. 악보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불러도 부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파트는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불러 볼게.”
아리스는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레슨도 받았고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기에 노래는 술술 입에서 나왔다. 아리스의 노래를 듣던 루진도 눈을 감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아리스가 루진에게 물었다.
“어때.”
“듣기 좋아요.”
너무 많이 노래를 해서 지겹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불평불만을 토해 버리면 끝이 없을 것 같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리스의 이미지가 망가질 것 같았다. 속으로는 노래 부르기를 그만하고 싶었지만 꼭 참았다.
움직이던 마차가 멈추었다. 아리스와 루진은 서로 바라보았다.
“점심때인가.”
아리스는 시계를 보았다.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네요.”
아리스와 루진은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녀들 곁으로 기사 한 명이 접근했다. 황제가 특별히 호위 기사를 붙여 주었다. 아리스와 똑같은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지 남자였는데 그의 이름은 로지엘이었다. 로이와 이름이 비슷해서 금방 외웠다. 또 그는 로이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카데미를 같이 다녔다나.
제논 제국의 아카데미는 하급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가 다니는 학교다. 고위 귀족이나 황족은 개인 교수를 불러 교양 과목을 들었다. 로지엘은 하급 귀족 기사 집안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황실 기사였고 그의 아들 역시 황실 기사가 되었다.
아리스가 기지개를 폈다.
“점심 먹을 시간인가요?”
아리스의 질문에 로지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만들러 갔을 겁니다.”
요리사도 따로 있었다. 아리스와 루진, 로지엘은 요리가 다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에 시종들이 음식을 들고 아리스 곁으로 왔다.
요리는 쟁반에 담겨 있었다. 간단히 만든 수프와 빵이었다. 아리스는 자기 몫을 챙겼다. 그리고 마차 안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로지엘은 그녀가 들어가는 걸 보고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식사를 하면서 아리스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같은 수프를 며칠째 먹는지 모르겠다.
입이 짧은 편은 아니지만 후작 가문에서 잘 먹다가 이리 먹으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먹어야 해.’
먹어야 기운이 난다. 그리고 먹어야 다음 저녁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마차에 가속 마법이 걸려 있어 다음 마을까지 금방 도착한다는 점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노숙을 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 보내고 싶은데.’
여행을 하면서 편지를 보낼 틈이 없었다. 저녁에 자고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부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곧 있으면 공연을 할 도시에 도착한다. 거기서 며칠 머문다고 하니 편지를 보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편지 보내고 싶어 하신 것 같아요.”
수프를 먹으면서 루진이 말했다.
“응, 맞아.”
“후우. 먹는 게 지겨워요.”
루진도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리스는 루진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고.
자신이 만든 아리스 호리슨이란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지겨워도 먹어야지. 안 먹으면 힘들어.”
“아가씨는 괜찮으세요?”
“응, 먹을 만해.”
사실 먹을 만하지 않았지만 생긋 웃으며 넘겼다. 아리스의 이런 태도에 루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는 여행도 익숙하신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아.”
책으로 들어오기 전에 여행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지루한 여행은 아니었다. 아리스는 그때를 생각하며 수프를 다 먹었다. 루진도 꾸역꾸역 다 먹었다.
“접시 두고 올게요.”
루진이 쟁반과 빈 접시를 들고 나갔다. 혼자 남은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은 제대로 먹을 수 있겠지.”
그녀는 저녁을 기다리며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서 부를 노래와 다른 노래로 그녀가 연습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다.
로이에게 불러 주고 싶은 노래였다.
“아아.”
이런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루진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도시 하울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로지엘이 마차를 두드렸다.
“호리스 영애.”
“네.”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공연장에 도착한다고 하더니 드디어 다 온 것 같았다. 아리스는 얼른 문을 열었다. 우선 묵을 여관 앞에 마차가 멈춰 있었다.
“무대로 가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짐을 풀고 있을게요.”
루진이 손을 흔들었다. 아리스는 루진을 두고 로지엘과 함께 무대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무대에서 간단하게 노래하고 나오는데 그전에 하울란에서 마련한 무대 공연이 있었다. 그 무대 공연 마지막에 아리스와 레오가 합동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정이었다.
무대는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레오가 먼저 도착해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레오 님.”
아리스가 그를 불렀다.
“아리스 님.”
레오가 다가왔다.
“무대가 생각보다 크네요.”
레오가 주변을 살폈다. 아리스 역시 주변을 살폈다. 거대한 무대가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램프와 가로등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내일 공연하는 날이잖아요. 연습은 많이 하셨나요?”
아리스가 레오에게 물었다. 그러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연습했습니다.”
“저도요.”
“나중에는 너무 지겨워서 얼른 공연하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레오 역시 지겨웠던 것 같다. 그의 말에 아리스가 조용히 웃었다.
“전 지겹진 않았지만.”
“역시 아리스 님답군요.”
“저답다니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마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종종 들었습니다.”
아아, 연습하는 걸 이 남자가 들은 것 같았다. 되도록 크게 부르며, 일부러 티를 냈는데 몰랐다면 이쪽이 섭섭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리스는 웃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리스가 연습하기에 레오도 연습했다. 그녀가 연습하는데 자신이 연습하지 않는다는 게 알려지면 평이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시면 됩니다.”
심사 위원을 맡은 사람이 계단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리스와 레오는 함게 올라갔다.
레오와 아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조명이 화려해서 눈이 떠지질 않았다. 강한 빛에 적응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조명이 너무 강해요!”
아리스의 말에 조명이 줄었다.
눈을 뜬 그녀는 레오를 보았다. 레오도 적응한 듯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다.
일행 중 유명 피아니스트가 곡을 몇 번 연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리스가 먼저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한 소절 부른 그녀가 레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오가 그 손을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한 소절씩 주고받은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향했다. 둘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높은 고음과 저음이 섞이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