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207
207. 반격(反擊)
“존명(尊命).”
방만우는 힘없이 대답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뜻이신가?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겠지만, 이번 전쟁에 패한다면….’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미래의 천마신교를 이끌어 갈 동량(棟梁)까지 전쟁에 투입한다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명령은 떨어졌고, 번복하기엔 늦었다.
번복을 요구할 수는 있으나 천마의 대답은 저승에서 듣게 될 테니까.
“천마시여, 비마대주가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놈은?”
천무열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뇌룡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어, 방만우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천무열이 지칭한 ‘놈’이 누굴 의미하는지 안다.
“혼자 왔습니다.”
“임철극… 이놈이 나의 명을 거부해? 제 놈이 먼저 천마의 율법을 운운한 주제에?”
비마대주 혼자 복귀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천무열의 이마에 혈관이 툭툭 튀어나왔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
천무열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인들의 눈빛에 불만과 의혹이 섞인 것을 발견하곤 이를 악물었다.
으득!
이래선 곤란하다.
천마는 모든 마인의 정점에 선 절대적인 존재.
불경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천마로서의 자격을 의심받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본보기로 몇 놈… 아니야,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역효과만 날 테지.’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에 말없이 마기를 뿜어냈다.
쿠구구구구…!
“!”
“천마시여….”
“천마재림(天魔再臨), 만마앙복(萬魔仰伏)!”
마기에 짓눌린 마인 중 하나가 크게 소리치며 부복했다.
그러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마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천마재림(天魔再臨), 만마앙복(萬魔仰伏)!”
한목소리로 외치는 마인들을 본 천무열은 그제야 마기를 거두고 진영의 중앙에 세워진 화려한 천막으로 걸어 들어갔다.
“썩을!”
본신의 힘을 드러내 불경한 눈빛을 보내는 마인들을 찍어 눌렀으나, 천무열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천마시여, 비마대주 적운강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적운강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어째서 혼자 왔나? 분명 임철극과 함께 오라고 했을 텐데?”
화려한 의자에 앉은 천무열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서 으르렁거렸다.
“제 미력한 힘으로는 임철극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천마시여.”
“임무를 완수하지도 못한 주제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헛소리는 뭔가? 나와 농을 하자는 것인가?”
천무열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기를 내비쳤다.
우우우웅….
“지, 진정하십시오, 천마시여! 임철극은 전서구를 보낸 바가 없다고 합니다. 확인 결과, 조봉두 대주가 보유한 전서구의 숫자도 비는 것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임철극은 적의 농간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림맹이 치졸한 짓을 해야만 할 정도로 힘이 부족함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에 마군은 무림맹까지 치고 올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천마께서도 도움을 달라며 사정을 헤아려 주시길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적운강이 무릎을 꿇은 채 더욱 납작 엎드렸다.
“…….”
천무열이 인상을 쓰면서 고심했다.
딴에는 맞는 얘기다.
마교와 진마련이 손을 잡은 것도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임철극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놈은 아직 속내를 보이지 않았어. 중원을 발아래 두는 것이 진정한 목적인지도 불분명하지.’
임철극에 관해서 생각한 천무열은 이내 상념에서 벗어나, 오체투지(五體投地)한 채로 고개 숙인 적운강을 바라보았다.
“본좌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주둥이만 나불거렸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군.”
“천마시여, 그것이 아니오라….”
“시끄럽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본좌가 의심을 품었다면,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수하 된 도리다.”
무어라 변명하려는 적운강의 말을 끊고, 천무열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천마시여.”
적운강은 변명하기를 포기했다.
이미 뭔가 결정을 내린 듯한 천무열의 말투로 보아, 사족을 단다면 저 성격에 더 난리를 피울 게 분명했다.
“네 녀석의 능력으로 임철극을 어찌할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 집법전을 붙여줄 테니, 임철극 그놈을 끌고 와라. 놈의 입으로 직접 얘기를 들어야겠다.”
“존명(尊命)!”
적운강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자신에게 죄를 추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으니까.
“만약 놈이 불응한다면 집법전 녀석들과 함께 제거하라. 고봉두 녀석과 함께 간 정예 오천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천마시여, 허나 그리하면 마군의 부하들이 반발할….”
“마군의 부하 녀석들 또한 마인이다. 강자존의 율법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체를 따를 수는 없을 것이 아니더냐. 본좌의 명령이다.”
천무열이 더 이상 얘기를 듣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존명(尊命)!”
“피곤했을 것이니, 날이 밝으면 출발하도록 하라. 놈이 오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대기할 것이다.”
천무열이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후환을 남겨 둘 생각이 없었다.
진마련과 임철극이 확실하게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지 않으면 중원 정벌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무림맹을 박살 내고 난 뒤에 임철극과 천마의 자리를 놓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엔 무림맹과 천마신교를 상잔시키고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릴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초반에 서열을 정리하고서 단합된 힘으로 중원을 치는 게 낫다.
아울러 소교주와 후기지수를 기다려야만 했다.
중견급 마인들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허리를 받쳐줄 마인이 없었으니까.
며칠 늦어진다고 대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늘부터 대주 녀석 중 하나는 반드시 경계를 서고, 경계를 두 배로 늘리라고 해야겠어. 같은 수법에 계속 당할 수는 없으니까.’
천무열은 자신을 농락한 뇌룡도를 떠올리고서 그렇게 마음먹었다.
다시 찾아온다면 근처에 오기도 전에 쫓아가 머리통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천마시여.”
적운강이 바닥에 이마를 찧고는 뒷걸음질 치자, 천무열은 아무렇게나 손을 내저었다.
‘날이 밝으려면 두 시진도 안 남았다, 망할!’
속에서 울컥 짜증이 솟구치는 적운강이었다.
또다시 진마련이 있는 곳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튀어나왔다.
***
한편,
천마를 속여 퇴각한 초무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토악질해 대고 있었다.
“웨엑!”
핏물이 한 사발이나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직은 무리인가? 고작 몇 번 스치듯 허용했을 뿐인데, 내상을 입다니….’
초무성이 조금 나아진 얼굴을 하고서 상체를 들었다.
일부러 천마의 속을 벅벅 긁으면서 비아냥거렸으나, 사실은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천마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을 에워싼 화경, 혹은 화경에 준하는 마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들을 따돌리고 탈출하기 위해, 모든 내공을 폭발적으로 운용해 경공을 발휘해야 했으니까.
이제는 누적된 내상이 크게 도져 눈이 가물거릴 지경이었다.
‘어쨌든 무모한 것만은 아니었어.’
초무성이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면서 흐릿하게 웃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처음 천마와 맞붙었을 때보다 자신의 무공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용케 기절하지 않고 탈출해 오지 않았는가!
천마가 채찍이 아닌 검을 사용했음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다.
천마의 무공은 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으니까.
‘미령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놈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이라고 할 만해.’
초무성은 내장이 꼬이는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웃을 수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약속한 장소로 다가가는 초무성을 향해서, 강력한 기운을 지닌 존재가 빠르게 접근해 왔다.
그렇지만 초무성은 위기감 대신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나같이 그에게는 익숙한 기운들이었으니까.
“주군!”
“둘째 형님!”
“주인! 또 걸레가 된 거야?”
거의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초무성을 발견한 세 사람은 빠르게 다가가 부축했다.
“우리 정말 재수 더럽게 없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천마 새끼가 튀어나오냐. 안 그래?”
초무성이 피식 웃고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신야에서는 한창 피바람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당하에서 웅크리고 있던 무림맹이 예상을 뒤엎고 진격해 와 진마련을 급습한 것이다.
휴식을 취하던 진마련의 마인들은 부랴부랴 병기를 들고 진형을 구축해 나갔다.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당한 까닭에 대응이 늦어져 사방에서 파탄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진마련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지 않은 것은, 무림맹의 뒷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무림맹 무인들은 악착같이 공격하지도 않았다.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
“제길! 놈이 선두로 나설 줄이야!”
송비응이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 안타까워했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좌우 양쪽으로 먼저 기습해 들어갔고, 중앙은 송비응을 비롯한 고수들이 포진했다.
진마련의 중앙을 갈라 반으로 나눌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수가 부족한 무림맹이라고 할지라도 진마련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계산이 어긋나버렸다.
기습이 시작되기 무섭게 임철극이 맨 앞으로 나와서 싸우려 들었던 탓이다.
보통 한 단체의 우두머리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서기 마련인데, 임철극은 그런 게 없었다.
두 주먹에 강기화된 마기를 잔뜩 피워 올리며 달려왔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 외에는 그의 일격도 감당할 수 없을 터.
“이른 감이 있지만, 이렇게 된 마당이니 어쩔 수가 없겠소.”
왕귀상이 감산도를 꽉 움켜쥐고서 송비응의 옆에 섰다.
“아미타불!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아미의 장문인인 정화 사태가 자령검을 뽑아 들고서 송비응을 쳐다보았다.
신호만 내리면 바로 달려 나갈 기세였다.
“본인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청성 장문인 조현 진인도 청운검을 꼬나쥐고서 결전을 다짐했다.
임철극을 상대하기 위해서 무림맹주인 송비응을 비롯해, 녹림의 최고수인 왕귀상과 아미, 청성의 장문인이 합공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버렸다.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이 합공을 펼치고서도 임철극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데, 정정당당이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택해야만 했다.
“갑시다!”
송비응이 크게 소리쳤다.
“우와아아아!”
그와 동시에 중앙에 포진한 무림맹 무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무림맹의 장로들과 점창의 장문인 진허충, 남해검문의 허도술이 무림맹 무인들을 이끌며 송비응의 뒤를 따랐다.
‘돌파해야만 이번 계책이 성공할 수 있다!’
송비응이 태천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서 전신의 내력을 집중시켰다.
좌우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중앙을 꿰뚫어야 진마련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임철극을 앞세운 진마련의 고수들이 정면으로 돌진해 왔다.
빠르게 두 집단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임철극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임철극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목표로 했던 송비응을 비롯해 화경의 고수가 넷이나 자신을 목표로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시작은 왕귀상이었다.
커다란 감산도의 칼날에 강기를 가득 품고서 임철극의 주먹을 후려쳤다.
파캉!
“큭!”
임철극이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왕귀상의 공력에 밀려, 마정비갑을 착용한 그의 주먹이 주춤했다.
임철극이 주춤한 사이, 송비응의 태천검이 그의 심장을 노렸다.
평소 어딘가 한 군데 망가진 듯하던 송비응의 모습은 사라졌다.
검왕(劍王)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에, 임철극은 어금니를 꽉 물고서 손등으로 태천검을 후려쳤다.
투캉!
뒤이어 조현 진인과 정화 사태가 각각 청운검과 자령검을 앞세워, 극강의 찌르기 공격으로 각각 임철극의 어깨와 허리를 노렸다.
“망할 것들잇!”
씹어먹을 기세로 소리친 임철극이 연달아 청운검과 자령검을 쳐 내며 두 주먹을 어지럽게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