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98
98.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하남성 당하의 몽연객잔.
“…….”
침상에서 눈을 뜬 소녀는 멍한 눈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
“…….”
초무성과 한영중이 백치처럼 눈을 껌뻑이는 소녀를 경계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점혈로 내공을 금제해 두긴 했으나, 소녀를 바라보는 눈에 ‘허튼짓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기색이 그득했다.
소녀가 있는 침상과 멀리 떨어진 탁자에는 검은색의 검과 암기가 놓여 있었다.
자그마한 소녀에게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초무성과 한영중이 소녀의 무장을 해제하면서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여긴 어디? 당신들은 누구?”
소녀는 멍한 얼굴로 초무성과 한영중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기억을 잃은 척하지 마.”
초무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암습을 가했던 살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내가 기억을 잃어? 그건 무슨 얘기?”
“경극 배우로 나가도 되겠네… 쯧!”
소녀의 말을 들은 초무성이 혀를 찼다.
“적당히 해라. 계속 그런 식으로 모른척하면 죽는다.”
한영중이 냉기를 폴폴 날리면서 은근슬쩍 살기를 뿌렸다.
움찔!
“그거 하지 마.”
살기에 노출된 소녀가 흠칫하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영중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한영중이 눈을 부라렸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지금 소녀가 하는 짓이 딱 그랬다.
뭘 잘했다고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노려본단 말인가!
“나를 암습했을 땐 붙잡힐… 아니, 죽을 각오도 되어 있었겠지?”
초무성이 나섰다.
어째 분위기가 어린아이들끼리 싸우는 것처럼 유치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널 암습해? 왜?”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냐?”
초무성도 울컥하고 말았다.
“내 주인은?”
“죽었다.”
“그렇구나. 잘 죽었네, 나쁜 년….”
“?”
무감정하기만 했던 소녀의 입에서 모처럼 감정이 담긴 욕설이 흘러나왔다.
초무성은 소녀의 표정에서 거짓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아니, 애초에 표정 자체가 없었으니 눈빛을 보고 판단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몰랐나?”
“몰랐어. 그년이 죽어서 내가 깨어난 거구나.”
“약 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
“솔직하게? 뭘?”
한번 감정이 무너져서인지, 소녀의 얼굴엔 의아해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네 정체.”
“나? 살막의 유일한 계승자.”
어린 소녀는 숨길 필요조차 없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
“살막? 그게 진짜로 있었어?”
초무성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고, 한영중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응. 주인 년이 늙은 막주를 죽이고 나한테 섭혼술을 사용했어. 거부했지만 너무 오래 굶어서 힘이 없었어. 진짜 나쁜 년이야.”
“음….”
초무성이 소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충 감이 온다.
‘요미령, 그 여자가 나에게 섭혼술을 사용해 대륙 전장에서 자금을 찾을 생각을 했던 거였군. 그 여자가 죽었을 때 이 꼬맹이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지 알겠네. 섭혼술이 깨지면서 충격을 받았던 거겠지.’
소녀의 대답을 통해 요미령의 이상했던 행동에 관해서도 의문이 풀렸다.
초무성은 모든 자금을 자신의 이름으로 맡겨 두었다.
요맹벽의 황금패와 달리, 초무성이 직접 방문해 수결을 해야만 자금을 찾을 수 있도록.
그런데도 자신을 붙잡기만 하면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었다.
무슨 속셈인지 궁금했는데, 섭혼술을 사용할 줄 안다면 말이 된다.
정신력이 무너질 때까지 고문… 혹은 눈앞의 소녀에게 했던 것처럼 기력이 떨어질 때까지 굶긴 다음, 정신을 장악하고 대륙전장에 데려가기만 하면 끝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주인 년이 명령하면, 그때부터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의 일은 기억하지 못해.”
“요미령이 진마련 소속이라는 건 확실해?”
“일단은 맞아.”
“일단은?”
“요맹벽이 죽어서 진마련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 힘들다고 했어. 그래서 돈과 영약, 그리고 무슨 지도를 가져가서 협상하겠다고 들었어.”
소녀가 눈살을 찌푸리고선 대답했다.
기억을 더듬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정보를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요미령이 진마련 소속의 마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이제껏 서장에 틀어박혀서 대외활동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던 진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눈속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이름은 있나?”
“천미령, 주인 년이 지어 준 이름이야.”
“그렇군.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뭘?”
“넌 살수야. 그것도 상당히 위험한 수준의 능력을 지녔어.”
초무성은 손으로 턱을 긁적이면서 천미령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그림자에서 천미령이 불쑥 튀어나왔을 때는 정말이지,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만약 초무성이 아니라 한영중이 당했다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을 터다.
‘이 녀석에게 상처를 입었더라면 요미령에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암습을 당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린 초무성이 진저리를 쳤다.
생각해 보니 아찔한 순간이었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부터 네가 내 주인.”
천미령이 검지를 뻗어 초무성을 가리켰다.
“뭐? 왜?”
“살막은 목숨을 살려 준 외지인을 죽을 때까지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율법이 있어.”
“이제껏 요미령을 따라다녔잖아. 나를 주인으로 모시면 전과 달라질 게 없는 삶일 텐데도?”
“상관없어. 살막 망했다. 나 돈 없다. 먹고 싶은 거 많다. 주인이 없으면 굶어 죽어.”
“…….”
초무성이 말을 잃었다.
‘꼬맹이가 대놓고 빈대 붙겠다는 거네.’
너무 당당해서 거부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솔직히 천미령의 제안은 나쁘지 않다.
암살 실력이 상당한 천미령을 놔주는 건 불안했다. 어디서 또 사람 목을 슥슥 베고 다닐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단전을 파괴하자니, 어디 가서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말버릇이었다.
곁에 두고 암중 호위로 삼는다면 든든할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널 믿고 풀어 주었다가 나를 암살하러 쫓아다니면 귀찮을 것 같은데?”
라는 거였다.
그러자,
“…못 믿겠으면 날 가져.”
천미령이 잠시 고민하더니, 윗옷을 훌렁 벗어 던졌다.
“…됐어!”
초무성이 지친 얼굴을 하고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그렇지 이제 겨우 열서넛이나 될까 말까 한 꼬맹이를 무슨…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죽여. 주인으로 선택한 이상, 내 목숨은 주인 거야.”
“…….”
천미령의 단호한 말에 초무성이 곤란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주군, 답이 없겠는데요?”
한영중이 힘 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나 천미령, 살막의 유일한 계승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주인.”
“그래 보이긴 한다만… 이 녀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일단은 알았다. 내가 거두도록 하지.”
초무성은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찜찜하긴 했으나 오히려 수련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기척을 찾으려면, 항시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있어야 할 터.
초무성은 그녀에게 다가가 봉해 두었던 혈들을 해제해 주었다.
투두둑!
“고마워, 주인.”
천미령이 침상에서 내려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더니, 탁자 위에 올려 둔 검은색 검과 암기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주군, 저게 또 다 들어가네요.”
“그러게.”
한영중과 초무성이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암기가 천미령의 흑의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마술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주인.”
“말해.”
“배고파.”
“…그래.”
어째 혹이 하나 붙은 느낌이다.
***
“진짜 신기하네.”
초무성이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면서 놀라워했다.
“주인의 그림자는 커서 이전 주인 년보다 은영술(隱影術)을 사용하기가 쉬워.”
“…그, 그래?”
초무성은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하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주군, 기척이 아예 안 느껴집니다. 정말 저 녀석을 거두어도 괜찮겠습니까?”
한영중이 그림자를 내려다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오롯하게 정신을 집중하고서야 겨우 천미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엉뚱한 마음을 먹는다면 주군인 초무성에게 심각한 위험이 닥칠 터였다.
“믿어야지. 갈 곳도 없다잖아. 괜히 엉뚱한 놈들 밑으로 들어가서 적으로 만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째….”
“주인, 믿어 줘서 고마워. 주인은 내가 지켜 줄게. 그리고 돼지, 나 기분 나빠. 밤에 발 뻗고 자고 싶으면 그만해. 화나려고 해.”
초무성의 발밑에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어느새 눈동자가 생겨나 한영중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한영중이 그림자에서 생겨난 천미령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녀가 밤마다 암살을 시도한다면… 아니, 암살을 시도하진 않더라도 근처에 와서 살기를 쏘아댄다면?
편히 자기는 다 틀렸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일단 후퇴하는 수밖에.
“잘 생각했어, 돼지.”
“돼지는 너무하지 않나? 내가 어딜 봐서 돼지야?”
“그럼 곰으로 할게.”
“이름으로 부르는 건 안 되겠냐?”
“살막의 살수가 입에 담는 사람 이름은 목표물 외에는 없어. 이름을 불러 주길 바라는 거?”
“…됐다! 그래, 차라리 곰으로 불러라.”
한영중이 힘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어, 곰.”
“씨ㅂ….”
왠지 꿇리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살수의 기술… 정말 신기하군.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다니.’
초무성은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면서 감탄했다.
그림자 속에 천미령이 녹아들어 있다는 건,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의지해 알 수 있었다.
살막의 살수라면 누구나 배우는 기초 수준의 기술이라고 하는데, 기초라고 보기엔 너무나 뛰어나서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긴장감을 유지하는 용도로 천미령의 존재가 최고라는 건 확실했다.
“주인.”
“…그래.”
초무성은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에 들린 접시를 받아 탁자 위로 올렸다.
“만두.”
“…그래.”
만두가 놓인 접시를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에 올려 주는 초무성이었다.
‘이건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군. 나와서 먹으면 서로 편하잖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참….’
초무성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홍유근이 무거운 얼굴을 하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홍 전대주님, 어서 오십시오.”
“예는 되었으니, 자리에 앉게.”
홍유근은 하룻밤 사이, 폭삭 늙어 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대원들은 좀 어떻습니까?”
“다들 상처가 커서 운신하는 게 쉽지 않다네. 아무래도 표국에 의뢰해서 맹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아.”
씁쓸한 표정을 지은 홍유근이, 어느새 점소이가 놓고 간 술잔에 술을 채웠다.
“포로로 잡힌 녀석들을 심문한 결과, 진마련 소속의 마인이라는 것을 알아내었지. 개방에서 조금 더 파고들 모양이야. 지독한 놈들, 하나뿐인 목숨을 그리 쉽게 끊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나마 한 놈이라도 건져서 다행이었어.”
술을 단숨에 비운 홍유근은 질색한 얼굴을 하고서 다시금 잔에 술을 채웠다.
“대별산채에 기웃거리던 사도맹 놈들의 정체가 바로 어제의 그놈들이라더군. 오해가 풀리기는 했는데, 맹에서는 조금 더 확실한 근거를 가져오라고 하니 머리가 복잡해 죽겠단 말이야.”
“확실한 근거라 하심은….”
초무성이 말끝을 흐렸다.
진마련 소속 무인의 자백을 받은 것 이상으로 확실한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네들과 함께 대별산채의 주인을 만나서 직접 대화해 보라고 하더군.”
“…네? 그건 최악의 경우일 때에나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담철우 채주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거든. 만나주기나 할지 걱정이야. 무림맹의 체면을 봐서라도 곧장 칼질은 하지 않을 테지만….”
홍유근은 한숨을 가장하면서 말끝을 흐렸지만, 그게 차마 입 밖으로 욕을 꺼내지 못해 속으로 삼킨 것이라는 사실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입 모양은 누구나 알 만한 형태의 것이었으니까.
“거참… 사람이 그렇게나 다쳤는데 굳이 채주와 만나서 얘기를 하라니요? 무림맹의 노친네들이 붓대만 깔짝거려서 그런가, 영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거 아니오? 쯧!”
한영중이 고개를 흔들고는 혀를 찼다.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명령이 내려졌으니 따르는 수밖에. 임무는 완수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언제 대별산에 오를 생각이십니까?”
초무성 또한 난처한 얼굴을 하고서 홍유근에게 물었다.
“이 잔만 마시고 떠날 생각이라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술잔의 술을 단숨에 털어 넣는 홍유근이었다.
***
대별산.
어제와 똑같은 태양이 떠오르고, 대별산의 녹림도들은 느지막한 아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의 접객(?)을 맡은 삼분지 일 정도의 인원이 산채 밑으로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날 마신 술자리를 치우고 각자 자유시간을 갖는다.
대별산채의 평범한 하루 일과의 시작은 보통 이런 식으로 짜여 있다.
“어이, 매립이! 치우다 말고 어딜 가는 거야?”
접시를 쟁반에 쌓던 살벌한 인상의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같이 치우던 사내 하나가 배를 움켜쥔 채로 슬금슬금 자리를 뜨는 모습을 발견한 까닭이다.
“속이 너무 꾸륵거려서 도저히 안 되겠어.”
동료의 불만 섞인 음성에, 서매립이 아랫배를 움켜쥐면서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빨리 돌아와!”
“그, 그래. 부탁 좀 하자고. 으읍!”
고마움을 표하려던 서매립은 배가 꾸르륵거리자 하얗게 질려서 어기적어기적 이동하기 시작했다.
산채에 측간이 여러 개 있었지만, 가보나 마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을 터였다.
산적 좋다는 게 뭔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측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아니겠는가.
‘좀 더 내려가야 해. 순찰 도는 놈들이 밟으면 또 개지랄 떨 테니까.’
서매립은 이제 욱신거리기까지 하는 아랫배를 단단히 틀어쥐고서 조금 더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정 견디기 어려우면 적당한 곳에서 바지를 까내리면 그만이기도 하니까.
“조, 조금만 더….”
서매립은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내려갔다.
일을 치르면 십 년 묵은 숙변까지 한꺼번에 쑥 빠져나가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있다.
“후우!”
드디어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 그는 조심조심 바지를 내리고 주저앉았다.
푸득! 푸드득!
“…….”
서매립의 잔뜩 일그러졌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
“…$@#$?”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음성에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이쪽은 영업 나가는 방향이 아닌데?’
서매립이 눈살을 찌푸렸다.
푸르륵….
힘을 주면서 고개를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아래쪽 수풀에 가려진 곳에서 언뜻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사, 사도맹?’
서매립은 나무와 나뭇잎으로 은폐한 사람들의 복장을 보고선 사도맹 소속 무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채를 노리고 온 것인가? 이거 진짜 좁 됐다!’
서매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자칫 발각되었다가는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왜 이런 곳에 숨어 있겠는가!
들키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산채를 기습하려고 대기 중인 것일 수도 있고.
숨소리조차 조심하는데,
“으윽! 누가 똥 싸냐! 어떤 새끼야! 대체 뭘 처먹었길래!”
아래쪽에서 성난 음성이 들려왔다.
“빠진 인원이 없는데? 대체 뭐야?”
“잘 세어봐!”
“다시 세어 봐도 똑같아. 빠져나간 사람이 없어.”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우, 시펄! 시체 썩는 냄새!”
아래쪽에서 사도맹 무인들의 웅성임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서매립이 긴장하고 말았다.
푸덕! 푸다다닥!
“앗! 위쪽이다! 위에 누가 있어!”
서매립이 긴장한 탓이었는지 괄약근에 잔뜩 힘이 들어간 소리(?)를 들은 사도맹 무인이 소란을 일으켰다.
푸드드득….
긴급 상황임에도 끊기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