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99
99. 대별산의 혈투
‘시바알!’
서매립은 울상이 되었다.
독하게 어금니를 깨문 그는, 단전에 힘을 빡 주고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쳤다.
“사도맹 놈들이 쳐들어왔다! 적이다! 적이다!”
푸덕! 푸드득! 푸드덕!
단전에 힘을 주는 바람에 그의 음성이 멀리 펴져 나갔고, 배변 활동 또한 굉장해졌다.
“놈을 잡아!”
“아니, 후퇴해야 합니다! 임무는 실패한 것입니다!”
“지랄하지 마!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을 조진다!”
밑에서 소란이 더욱 커졌다.
‘기회!’
내공을 사용한 덕분에 장을 말끔히 비운 서매립이 그대로 바지를 추켜올렸다.
마무리 작업(?)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일단 소리친 놈부터 잡아 죽여! 재수가 없을라니까, 원! 놈을 본보기로 삼아 죽이고, 산채까지 밀고 들어간다!”
적기단주 조구문이 명령을 내렸다.
“다, 단주님, 이건 아닙니다. 우리가 맡은 임무는 사도맹을 사칭한 놈들을 잡는 거였습니다. 어찌 대별산채와 싸우려 하십니까. 고정하십시오.”
부단주인 번자개가 매달렸다.
“시끄럽다! 그렇지 않아도 대별산채의 담철우가 제법 싸움 좀 한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한 번쯤 손을 섞어 보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누가 더 강한지 강호에 알릴 것이다! 놈부터 잡아!”
조구문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발각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꽁지를 빼는 것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별산채의 녹림도가 두려워 도망쳤다는 소문이 났다간, 다른 단주 놈들이 나를 우습게 볼 테지. 그건 못 참는다!’
“적이다! 사도맹 놈들이 산채를 노린다! 적이야! 적!”
명령을 내리는 와중에도 도주하는 놈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장 저놈부터 잡아 죽인다. 가자!”
조구문이 구겸창을 양손으로 움켜쥐고서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읍!”
언덕의 중간쯤 달려가던 조구문이 비틀거렸다.
엄청난 냄새.
“우, 우회하라!”
도저히 직진은 무리였다.
***
거신천곤(巨身天棍)
대별산채의 주인 담철우를 칭할 때면 반드시 그의 별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칠 척(210cm)에 이르는 키와 근육질로 이루어진 강인한 육체.
초절정의 경지를 십 년 전에 개척한 그의 무력은 누구나 엄지를 세울 정도로 인정하는 천생 무인이었다.
“속이 좀 쓰리군.”
담철우는 침상에서 일어나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경석산의 녹림 총채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거하게 잔치를 벌였다.
드디어 녹림십오걸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정식으로 녹림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명문이 별거더냐. 우리도 놈들처럼 그럴싸한 후기지수를 키워서 적당한 이름만 갖다 붙이면 그만이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에는 녹림십오걸이 강호에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정파 무림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다 할 만한 업적도 없으며, 무공 실력 또한 명문 정파에 비해서 격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녹림십오걸의 평균 무력 수준은 절정 말.
개중에는 초절정의 벽을 넘어선 호걸도 있다.
‘그 자식들이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이야.’
녹림십오걸 중에서 쌍둥이 형제를 떠올린 담철우가 혀를 찼다.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켠 그가 옷을 차려입고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쇠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오늘날 그에게 거신천곤이라는 별호를 만들어 준 애병이었다.
단단하기 짝이 없다는 현철을 사용해 접쇠 방식으로 두들겨 만든 철곤이었다.
철곤을 만드는데 굳이 접쇠 방식을 사용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평생을 철곤과 함께해왔다.
칠 척의 덩치로 철곤을 내리찍는 태산압정의 한 수는, 이제껏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느릿하게 건물을 나서자, 바삐 움직이던 녹림의 무인들이 포권을 쥐며 인사를 건네왔다.
“여전하군. 그렇지, 우리 녹림도 부지런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법이야.”
담철우가 흐뭇한 얼굴을 하고서 산채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도맹 놈들이 쳐들어왔다! 적이다! 적이다!”
“응?”
멀리서 들려오는 음성에 담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대별산채에 사도맹이라니?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이곳을 노릴 리가 없잖은가?’
의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별산은 녹림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소림과 무림맹이 뿌리내린 하남성에서도 녹림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산채.
어설퍼 보이는 산적조차 이류 수준을 상회할 정도로 정예만 모아 놓은 곳이다.
하지만,
“적이다! 사도맹 놈들이 산채를 노린다! 적이야! 적!”
두 번이나 똑같은 내용의 악에 받친 음성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목소리에 깃든 공포감까지 생각하면 단순한 장난일 리가 없었다.
“모두 준비하라! 사도맹 놈들에게 녹림의 호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줄 시간이 왔다!”
담철우가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만약 조금 전 들려온 음성의 주인이 장난을 친 거라면,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굳이 담철우가 알려 줄 필요가 없었다.
“사도맹이 쳐들… 크아아악!”
극도의 공포와 고통이 뒤섞인 비명.
목숨을 잃어가는 자가 내지르는 단말마가 분명했다.
“서둘러라! 영업 중인 녀석들도 복귀시켜!”
담철우가 크게 소리쳤다.
명령이 떨어진 순간,
퍼엉!
산채에서 쏘아진 신호용 폭죽이 하늘에 붉은 연기를 퍼뜨렸다.
위기 상황을 알리는 신호였다.
“모두 목책에 의지해 대기한다. 활을 준비하고 돌을 굴릴 준비를 끝내라!”
“존명(尊命)!”
대별산채의 녹림도들은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의 명령에 크게 대답했다.
평소 방만하게 지낸다 해도 정예는 정예. 녹림도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조금 전 들렸던 동료의 비명이 그들의 분노를 끌어낸 것이다.
“놈들이 옵니다!”
높게 세워진 망루에서 사방을 감시하던 녹림도 중의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준비하라!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 주겠다! 임소열! 임소열은 어디 있느냐!”
담철우가 소리치자, 바삐 뛰어다니는 녹림도 중에서 제법 커다란 덩치를 지닌 사내가 달려왔다.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채주인 담철우를 대신해 녹림도를 지휘하던 부채주 임소열이었다.
“채주님! 부르셨습니까!”
“불렀으니까 왔겠지. 우선 돌부터 굴려. 놈들이 몇이나 되었든 일단 숫자부터 줄여 놓고 시작하자고.”
“존명!”
임소열이 크게 대답하고는 품에서 황색의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목책 밖에서 대기 중이던 녹림도들이 일제히 커다란 망치를 들어 힘껏 내리쳤다.
터더덩! 터덩!
망치에 얻어맞은 버팀목들이 부러져 나가고, 목책 앞에 세워둔 어지간한 성인 남자의 키 높이만 한 바위들이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우지직! 쿠구궁! 와작!
무거운 바위가 굴러가면서 나무들을 부수더니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저토록 난잡하게 굴러떨어지는 바위도 사도맹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상자 경미! 정예로 추정됩니다!”
망루 위에서 상황을 살피던 녹림도가 크게 소리쳤다.
“사도맹 놈들이 작정한 것인가? 실력깨나 있는 놈들을 보낸 것 같은데….”
“채주님, 놈들이 접근하기 전까지 활로 피해를 입힌 다음에 방진을 구성해 대응해야 합니다.”
임소열이 굳은 얼굴로 조언했다.
“시행해!”
“존명(尊命)!”
허락받은 임소열이 품에서 푸른색 깃발을 잡아 흔들었다.
바위를 굴렸던 녹림도들이 목책 안으로 들어온 뒤, 굵은 나무들로 입구를 막았다.
안에서 대기 중이던 녹림도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무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철시(鐵矢)를 시위에 걸고 있었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스듬하게 들어 올린 철시의 끝은 한 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잠시 후 망루에 서 있던 녹림도가 푸른색 깃발을 들었다.
“훠어!”
임소열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구체적인 단어가 아닌 맹수의 포효를 닮은 외침.
적이 대비하지 못하게 미리 약속된 신호였다.
투두두둥!
거의 동시에 백여 개의 묵직한 철시들이 하늘을 날았다.
“창을 들어라!”
곧장 명령을 내리는 임소열이었다.
화살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감추는 동시에 근접전을 대비한 명령이었다.
“적의 숫자는 대략 이백 명. 피해 없음! 곧 도착합니다!”
망루의 녹림도가 씹어뱉듯이 소리쳤다.
설마 바위 공격과 철시 공격이 이처럼 성과가 없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옵니다!”
“던져!”
망루의 선 녹림도의 외침을 듣기 무섭게 임소열이 소리쳤다.
“대열을 갖춘다!”
상황을 지켜보던 담철우가 짧게 명령을 내렸다.
바위 공격과 철시 공격에도 무사했던 놈들이 투창 공격에 당하겠는가!
‘낭패로군.’
정예 녹림도들이 대열을 갖추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담철우가 이를 악물었다.
적의 숫자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대별산채의 녹림도의 숫자는 대략 삼백.
그중에서 일류 이상의 실력을 지닌 무인은 백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놈들이 작정하고 찾아온 모양이니, 환영해 줘야겠지?”
“채주님, 사도맹이 전면전을 벌이려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대별산채를 노릴 수 있단 말입니까.”
임소열이 박도를 뽑으면서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의 실수다. 저만한 숫자의 사도맹 무인들이 왔음에도 파악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오늘 우리의 복수는 채주님이 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많은 놈들을 저승길로 데려간다!”
담철우가 철곤을 어깨에 턱 걸치고는 성큼성큼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콰아앙!
두꺼운 나무로 단단히 봉했던 입구가 뻥 뚫렸고,
“담철우! 담철우 어디 있나! 산적 주제에 전쟁놀이 따위나 하다니, 창피한 줄도 모르는가! 당장 나와서 나 조구문과 백 합만 겨뤄보자! 으하하하!”
담철우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을 듯한 체구의 조구문이 구겸창의 끝을 바닥에 찍고서 호탕하게 소리쳤다.
“부채주, 내가 놈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녀석들을 이끌어.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되, 상황이 불리해지면 퇴각하라.”
담철우가 무거운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평소에는 이름을 부르던 그였다.
이처럼 부채주라는 직함으로 부른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존명(尊命).”
임소열은 이를 악물고서 겨우 대답했다.
“이노옴! 나 담철우가 여기 있다! 인혈창(人血槍) 조구문이 천하의 개쌍놈이라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오늘 네놈의 머리를 으깨 개먹이로 던져 주겠다!”
담철우가 크게 소리치고는 곧장 지면을 박찼다.
콰앙!
마치 진천뢰가 폭발한 듯이 지면이 터져 나가고, 담철우의 육중한 몸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
초무성과 한영중, 그리고 홍유근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당하에서 대별산은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한 시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초무성을 등에 태운 말은 속보 정도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다른 말보다 조금 더 힘겨워하고 있었다.
무림맹 근처의 마방에서 가장 튼튼한 놈으로 고른 것이었는데도.
그 이유는 천미령이 말의 배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은영술을 사용하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응? 저게 뭡니까?”
초무성이 대별산 꼭대기에서 솟아오른 붉은 연기를 가리켰다.
“문제가 생긴 모양일세. 저기를 보게.”
홍유근이 손으로 정상 부근을 가리켰다.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꼬물거리면서 굴러 내려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 되었군요.”
“뭐가 잘되었다는 얘긴가?”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데, 우리가 도와주면 담철우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적의 숫자가 얼마나 될 줄 알고? 위험부담이 크네. 차라리 현 상황을 맹에 보고하고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게 낫지 싶네만.”
홍유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홍 전대주님은 되돌아가십시오. 저는 녹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초무성은 대별산을 올려다보면서 무심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