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오케이, 컷!”
컷 소리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네 사람이 서서히 내려왔다.
“액션씬 별로 없다면서요!”
“하, 하하….”
더운 날씨에 보기만 해도 더운 사제복을 입고 있던 이정이 와이어 벨트를 풀었다.
기존에 비해 수정된 대본에 액션씬이 부쩍 는 것은 사실이라 곽 PD는 그런 이정의 말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들 액션을 너무 잘해서 그래요. 특히 이정 씨는 더 기대 이상인데.”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 이후로는 액션 영화 찍은 것도 못 본 거 같은데….’
일명 ‘회장님’의 부하 역인 세 사람은 원래도 액션 관련된 역을 자주 맡는 사람들인 것에 비해, 이정은 액션에 특화된 배우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액션스쿨이라도 다녔어요?”
네 사람이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이미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형원의 말을 듣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의외였다.
“네. 때 잠깐이요.”
그러나 이정은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 일반 촬영보다 조금 피곤해할 뿐, 별달리 힘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괜히 걱정했네….”
“저는 옷 갈아입고 올게요.”
“아오, 허리 아파.”
“오늘 와이어는 이게 끝이죠?”
오히려 이정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이 더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탓에 곽 PD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와이어는 끝났지만, 촬영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으으….”
이정까지 네 명의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형원이 대표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땅에 발 딛고 촬영하는 게 어디에요.”
네 사람 중 유일한 여자인 희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정은 그녀와 처음 통성명할 때 회사 대표인 희경과 이름이 같아 멈칫한 적 있었다.
“이정 씨 옷 갈아입으니까 좀 나아요?”
한여름인 8월이지만 검은 복장으로 꽁꽁 싸맨 진용이 다른 씬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온 이정을 보고 말했다.
“가짜 피 주머니가 따듯해요.”
이정이 옆구리를 툭툭 쳤다. 지난번 나연과 함께 찍었던 장면의 앞부분을 찍어야 해서 가짜 혈액팩을 찬 채였는데, 날씨 때문에 팩이 뜨끈뜨끈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윽, 그게 더 싫다.”
진용이 진절머리를 쳤다. 그나마 현재로서는 액션씬 촬영도 오늘로써 끝이라는 점을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얼른 끝내고 커피 한 잔씩들 합시다!”
곽 PD가 두런두런 대화 중인 배우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레디!”
이정이 대기 중인 커피차를 보고 씩 웃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고 서 교수가 보내준 커피차였다.
“액션!”
* * *
“아, 그냥 순순히 가자 쫌. 안 그래도 회장님한테 겁나 깨지게 생겼는데.”
“임원선. 입 좀 다물어.”
J가 자신을 포위하는 세 사람과의 거리를 벌렸다.
“…….”
이 세 사람은 그가 지금 상태로 손쉽게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J, 아니 주세인. 너도 알겠지만, 흡혈귀, 그것도 너 같은 완전한 데이 워커는 더 귀하다.”
틈을 노리는 J와 달리 박재호는 느긋했다.
한 명, 한 명은 그보다 약하지만, 그들은 무려 세 명. 심지어 J는 약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
“웬만하면 그냥 같이 가줬으면 하는데.”
박재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서자 J가 약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하아….”
“팀장님, 그냥 기절시켜서 데려가죠.”
“뭣하면 죽여버려~ 어차피 약 기운 때문에 비실비실 하구만. 회장님도 여차하면 죽여도 된다고 했잖아?”
“멍청아, 데이 워커는 인간처럼 시체가 남아서 처리하기 귀찮다고.”
박재호가 한숨을 쉬자 곁에 있던 이지희와 임원선이 말을 거들었다. 앞에 있던 J는 자신을 다 잡은 것처럼 구는 모습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그들을 비웃었다.
“허세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네가 마신 그 약 흡혈귀한텐 진짜 치명적인 거라니까? 우리도 얼마나 조심해서 다루는데…. 어지간한 흡혈귀들 같았으면 벌써 바닥을 굴렀을걸. 저 자식이 세긴 센가 봐?”
그의 말대로 지금 J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여도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준 거 같은데. J.”
시계를 확인한 박재호가 귀찮음이 서린 얼굴로 J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 때를 노리던 J가 휘청거리는 척하며 길게 뺀 손톱으로 그의 다리를 노렸다.
“큭.”
“팀장님!”
“팀장!”
설마 끝까지 공격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지희와 임원선의 대처가 반 박자 느렸다. J가 그들을 공격하는 대신 도망치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오른쪽으로 막아!”
다리를 노린 공격에 순간 주저앉은 박재호가 일어나 명령했다. J처럼 긴 손톱을 빼든 그들이 맹렬하게 J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회장이 탐을 낼 정도로 강한 흡혈귀라는 걸 알면서도 여유로웠던 이유는 J가 흡혈귀를 무력화시키는 약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사지만 멀쩡하면 되겠지!”
“입 좀 그만 나불거리고 집중해!”
이지희가 끝까지 입을 나불거리는 임원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약을 마신 흡혈귀들은 심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잃고, 강한 개체라 약이 잘 들지 않아도 흡혈귀의 진짜 힘이라 할 수 있는 변형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윽….”
도망치던 J는 평소라면 숨 쉬듯 쉽게 할 수 있어야 하는 1차 변형을 한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몰려옴을 느꼈다.
“이쪽!”
평소 같았으면 벌써 따돌렸어야 할 저 두 흡혈귀에게 꼬리가 잡힌 것만으로도 현재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증명했다.
아예 막다른 벽을 등지고 선 그가 아주 잠시 벽에 기대 숨을 고른 뒤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먼저 J를 발견한 임원선이 손으로 그의 오른쪽 다리를 공격했다. J가 그랬던 것처럼 움직임을 제한시켜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J는 몸을 틀어 임원선의 공격을 피했다. 다만, 이어서 임원선의 옆구리를 공격하려던 시도는 뒤이어 도착한 이지희에 의해 막혀버리고 말았다.
“정신 안 차려?”
“실수야 실수!”
이지희가 도착하기 전에 임원선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하자 J가 말없이 입술을 짓씹었다.
“약 잘못 탄 거 아니야? 대체 왜 1차 변형이 되는 건데?”
“내가 알아?”
두 흡혈귀는 투닥거리면서도 곧장 J를 공격하기 위해 협동했다. 한 명은 옆으로, 또 다른 앞으로 흩어진 뒤 각각 공격했다.
까드드득―
손톱과 손톱이 부딪치는 소리라고 보기엔 다소 험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윽.”
그들 앞에서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J가 결국 신음을 터뜨렸다. 가까스로 공격을 막긴 했지만, 완전히 변형된 오른손과 달리 왼쪽 손은 평소의 절반 수준밖에 변형되지 않았다.
“그치? 아예 효과가 없을 수가 없지.”
그 모습을 본 임원선이 신난 얼굴로 막힌 왼팔 대신 오른팔을 휘둘러 J의 옆구리를 노렸다. 저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크윽.”
결국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J가 힘을 쥐어짜 그들을 떨쳐냈다.
“와 씨… 아직도 힘이 남아있어? 회장이 탐낸 이유를 알겠네.”
“방심하지 마.”
이지희의 경고에도 임원선이 자신을 낮잡아 보고 있단 사실을 파악한 J가 임원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팀장은 무력화시켰어.’
한 명만 더 무력화된다면 달아나는 것이 좀 더 쉬울 터.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쏜살같이 움직이는 J의 옆구리에서 울컥 피가 터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임원선!”
포기할 줄 모르는 J의 공격에 이지희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결국 J에게 목덜미를 내어주고 만 것이었다.
“이 자식이…!”
손으로 상처를 누른 임원선이 다급하게 남은 팔을 휘둘렀지만, J가 눈먼 공격에 당할 리가 없었다.
“물러서.”
임원선을 인질로 잡은 J가 이지희에게 말했다.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 지금 그놈을 인질로 잡았다고 내가 널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해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굴어도 서로 간의 신뢰가 있는 듯한 사이였다. J는 그녀가 함부로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대로 한 번 더 찌르면 아무리 흡혈귀라도 죽어.”
그의 말마따나 임원선의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피의 양으로 치면 J의 옆구리에서 나오는 양도 만만치 않았지만, J는 임원선의 피인 척 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임원선 이 망할 놈… 내가 그렇게 방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지희는 눈으로 욕을 하면서도 천천히 물러섰다. J의 짐작대로 그녀는 임원선을 싫어하면서도 차마 그의 목숨을 담보로 J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날 잡으면 먹이려고 했던 그 약. 먹어.”
마음 같아선 저 약을 가져다가 수경에게 성분조사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이지희가 물약을 마시고 입을 벌려 확인시켜주었음에도 J의 경계는 풀어지지 않았다. 저 약의 효과가 돌 때까지 약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이지희의 손톱이 다시 사람처럼 변했다. J는 그리고 나서도 이지희의 안색을 살핀 뒤에야 임원선을 그녀에게 떠밀었다.
“더럽게 철저하네.”
만약 임원선이 J 같은 성격이었다면 이미 잡고도 남았을 정도의 꼼꼼함이었다.
약을 마시고 바로 쓰러질 정도로 약해지진 않았어도 J를 쫓아갈 만큼의 힘은 남아있지 않았던 그녀가 임원선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그새….”
J는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드는 사이 이미 몸을 숨긴 채였다.
그렇게 도망친 J는 예나를 처음 만났던 골목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