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34
034화
당연한 말이지만 민혁과 지원이 아무리 빨리 알아본다 한들 당장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너, 꼴이 그래서 촬영은 어떡해?”
“몰라. 망했어.”
촬영이야 거기서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든 되겠지만, 가뜩이나 일정이 빠듯했던 가 문제였다.
“이따가 연락드려야지. 아니면 감독님이 전화하셨을 수도 있고.”
박 감독이 의 홍 작가와 아는 사이라고 했으니 이미 연락을 했을 수도 있었다.
“좀 작은 멍이면 화장으로 가리고 최대한 그쪽 안 찍으면 되는데 이건 얼굴 전체가 붓게 생겼어.”
“알아. 슬슬 얼굴 당긴다.”
내내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부어 당기는 느낌이 났다.
“치고받고 싸우는 씬을 찍어도 이렇게까진 안 될 거 같은데 아주 사심을 듬뿍 담았네.”
“얻어맞은 내 입장은 어떻겠냐.”
상황이 어이없는 건 이정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일단 지금 온 것만 보면 이쪽도 전혀 모르겠다는데? 더 알아봐 주겠다고 했어. 시간 좀 걸릴 듯”
민혁이 아무리 기자를 많이 알아도 아무에게나 마구잡이 식으로 물어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급하게 알아보다가 역으로 기사 나면 더 골치 아프니까 괜찮아.”
그가 출연 중인 것도 아닌 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이유를 파고들지도 모르니 조금 느리더라도 안전하게 알아보는 편이 더 나았다.
“서 교수님한테도 여쭤볼까? 그게 빠르긴 할 텐데.”
“됐어. 서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드라마인데 괜히 안 좋은 소리 할 필요 없잖아.”
이정의 말에 지원도 동의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해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너는 뭐 짚이는 거 전혀 없어?”
“없어. 오히려 당한 건 내 쪽이지. 개인 협찬 없는 거 뻔히 알면서도 전체 협찬 다 가져가고, 촬영 펑크내고, 얻어맞기까지 했는데.”
사실상 여론몰이를 하기도 힘든 수준이었다.
“여태 한 대화가 열 마디도 채 안 될걸? 촬영이 잘 겹치지도 않았고, 겹쳐도 슛 전까지 차 안에 있다가 직전에 나오고, 인사해도 무시하고. 엮일만한 게 전혀 없어.”
백번 양보해 그가 사고를 쳤을 만한 날이라곤 대본리딩 후 회식 날 필름이 끊겼던 딱 하루뿐이지만 그날 강현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일단 내가 제일 만만해서였겠지.”
“네가 제일 쪼렙이야? 왜? 너도 서 교수님 추천받아 들어간 거라며.”
서 교수의 파급력을 아는 민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원은 알만 하다는 듯 웃었다.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거겠지. 대충 알아보니 한예대 출신도 아니고, 필모도, 소속사도 없으니까 당연히 만만해 보일 거고.”
“맞아.”
지원 말대로였다.
강현이 진출하고 싶어 하는 영화계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한주석이 친조카처럼 아끼는 데다 아이돌 출신이라 독자적인 팬덤이 있는 성연은 논외로 치더라도,
VK만큼은 아니어도 대형 소속사에 소속되어있는 모델 출신 주린 역시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 테니, 결국 남은 것은 이정이었다.
“잠깐만.”
― 홍 작가님
주머니 속의 진동에 핸드폰을 확인하자 연락 올 일 없는 홍 작가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 이정 씨!!
역시나, 이미 전해 들은 듯 홍 작가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스피커 폰이 아니었음에도 곁에 있던 민혁과 지원이 움찔했다.
― 촬영하다가 맞았다면서요!
“홍 작가님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멍이 생각보다 심해서 당장 촬영이 어려울 것 같아요.”
― 수철 오빠한테 얘기 들었어요. 오빠도 그거 때문에 저한테 전화한 거 같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이정이 걱정했던 대로, 빠듯했던 의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 설령 이정이 잘못한 일이 아니더라도 입장에선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
― 상황을 들어보니까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수준이던데요.
화난 박 감독이 필터링 없이 상황을 전한 듯 홍 작가의 단어선택도 거침없었다.
― 일단 내일 우리 촬영은 쉬고 병원 잘 다녀와요. 오빠가 자기네 일정 펑크내는 한 있어도 우리 쪽에 맞춰준다고 했으니까.
박 감독과 홍 작가가 잘 아는 사이라 다행이었다. 촬영팀에게는 이미 말을 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쉬라는 말과 함께 홍 작가가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한시름 놨다.”
“네 얼굴을 보면 다행이라는 말이 안 나올걸.”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이정의 얼굴은 점점 붓고 있었고, 지원은 아주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박민혁 너는 뭐해?”
“아니 아까 답장 온 연예부 기자 형하고 연락하고 있었는데…. 와, 진짜 미친 새끼인가 봐.”
이정이 통화하는 동안 열심히 연락하던 민혁이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말끝을 흐리다가 욕을 내뱉었다.
“왜?”
“강현이 너 때린 이유, 이거 같은데.”
민혁이 기자가 보낸 기사를 보여줬다. 아직 업로드되지 않은 기사였지만 당장이라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원고였다.
최근 폭행 논란이 있었던 주말드라마 하나가 뜻밖의 구설에 휘말렸다. 한 신인배우가 선배 배우를 의도적으로 따돌림시키고 있다는 것.
이 배우는 함께 촬영 중인 여배우들을 등에 업고 선배 배우의 말을 무시하거나 촬영 스케줄을 멋대로 바꾸는 등 신인답지 않은 모습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배우의 소속사는 최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인 배우 폭행 논란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며 ‘따돌림을 참다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왕따?”
“네가? 강현을?”
드라마 이름이나 이정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최근 시작된 주말드라마가 하나뿐이라 검색 몇 번만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디꺼야? 이 기사.”
“쿠디일보 연예부. 이 형 친구가 보내준 거래. 형 친구 말로는 스탠바이하고 있으라고 했다는데? 그쪽도 쓰라니까 쓴 거지 취재한 건 아니래.”
“아, 그럴 줄 알았다.”
쿠디일보의 사장 아들이 강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 때린 것인지 이제 이해가 되네.”
“너한테 역으로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거잖아. 지금 보면.”
“그런 거 같네. 병원 갔으면 ‘신인배우 뺨 맞고 응급실 왔나 봄.’ 뭐 이딴 제목 달고 어그로 끌고, 기사 몇 개 올라갔겠지.”
그쯤이야 며칠 뒤면 잊힐 만큼 사소한 목격담이겠지만, 저런 기사가 뜨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얻어맞은 나는 선배 따돌리다가 한 대 맞은 놈이 되는 거고.”
“이슈되고 나서 해명해봤자 촬영팀이나 다른 배우들도 다 한통속이라고 욕먹고, 너는 논란 속에 강제 하차하고 은 망하고. 뻔하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몰라도 이정 하나만큼은 완전히 묻어버릴 수 있는 논란이었다.
게다가 성연이나 주린 역시 ‘똑같은 가해자’ 꼬리표를 떼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네가 병원을 안 갔으니 어쩌나?”
“그러게.”
하지만 이정이 병원에 가지 않아 병원 목격담부터 완전히 틀어져 버렸으니 준비된 기사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근데, 촬영장 목격담이나 그런 거로 올릴 수도 있지 않아? 강현이 신인배우를 때렸다. 이렇게 대놓고 쓸 수도 있잖아.”
“일단 ‘촬영 중 실수’를 핑계 삼아 때렸으니 목격담이 올라와도 그걸 폭행 논란으로 엮기는 힘들지. 앞뒤 자르고 ‘폭행’에 힘을 줄 수 있는 응급실 목격담을 노리는 게 맞아.”
논란이란 일단 믿게 만들고 난 뒤엔 설령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한들 해명하기 쉽지 않다. 강현과 VK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달랑 이 기사 하나 가지고 여론몰이할 생각은 아닐 거고, 아마 악의적으로 편집된 사진이나 그런 것도 준비되어있겠지.”
“그럴 거야.”
지원의 말마따나 그런 식으로 ‘강현 왕따설’ 의혹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그걸 믿게 될 게 뻔했다.
“와…. 미쳤다 진짜.”
강현은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고, 이정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무명이니 뒤집어씌우기도 딱 좋았다.
“이걸 어떻게 하냐 근데.”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우리도 똑같이 하면 되지.”
이정이 우선 박 감독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언제 VK가 다른 방법을 시도할지 모르는 판국에, 그가 찾아낼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감독님 저 이이정인데요. 네. 아까 말씀드렸던 그…. 네네. 이쪽으로 발 넓은 친구가 있어서 좀 알아봤는데….”
박 감독이 경악한 것은 당연했다. 아무리 강현이 에 애정이 없어도 내심 드라마 존속 자체가 위험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아니, 미쳤다 미쳤다 했더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왕따 논란을 씌울 생각을 해? 막말로 우리가 자기를 따돌렸어? 지가 우리를 따돌렸지?
이정은 이걸 약점 삼아 방송국과 다른 딜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부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섞던 존댓말을 완전히 때려치울 만큼 흥분한 박 감독이 당장이라도 VK에 쳐들어가 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독님. 우선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VK는 기사까지 준비된 상태라 잘못하면 정말 순식간에 당해요.”
― 이정 씨 무슨 생각 있어?
생각이야 당연히 있다. VK만 여론전에 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정 역시 15년 매니저 생활에서 얻은 연륜이 있었다.
“답은 간단해요. 저희가 먼저 기사를 내 버리면 됩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 즉 선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