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
021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남상민 실장이 불쌍해 보인다.
라세흠 부장님. 애를 패도 이렇게까지 팹니까?
“부장님. 너무 심하게 때린 거 아닙니까?”
“심하긴? 발도 안 썼는데.”
“예? 발도 안 쓰고 서른 명을 처리했다고요?”
“발 쓰면 애들 죽어. 나……. 감방 가긴 싫다.”
어쩌면 라세흠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괴물일지 모른다.
주특기는 하나도 안 쓰고 연장 든 놈들을 처리하다니…….
그것도 서른 명이나.
“북한 애들은 깡다구라도 있던데, 얘네들은 그런 것도 없네.”
“북한군하고 싸운 적도 있습니까?”
“아…….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해라.”
이 인간. 북한도 자주 다녀왔구나.
나도 넘어가 본 적은 있지만, 마주치지는 않았는데.
나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접었다.
내 목표는 만수무강이다.
내 시선이 남상민 실장에게로 향했다.
“주철수가 나 제끼라고 했냐?”
“…….”
“침묵하지 마. 침묵이 금이라는 말은 옛날 말이다. 지금은 떠들어야 살 때야.”
“목숨은……. 붙여서 오라고 하셨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거참. 대화 두 번 나누다가는 전쟁 나겠네.”
대화라는 뜻의 정의를 모르나?
아니면, 주철수만의 뜻이 따로 있는 거야?
누가 떡대들 서른 명이나 데리고 대화하러 와?
‘주철수가 직접 지시 내린 거면, 대충 상황은 파악했다는 건데…….’
내가 그린 그림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그 능구렁이 같은 새끼. 눈치는 X나 빨라요.
“너 이대로 돌아가면, 주철수한테 눈깔 하나 뽑히겠네?”
“……그걸 어떻게?”
“아……. 그놈 원래 악명 높잖아. 눈알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주의인 거.”
주철수 밑에 있는 놈 중에 외눈박이들이 많았다.
그건 하나의 상징 같은 거다.
큰일에서 실수를 범했거나, 잦은 실패로 실망을 안겨 줬을 때, 받는 형벌이었다.
근데, 그게 또 의외의 효과를 낸다.
사람이 한쪽 눈으로 살다 보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실패하면 남은 눈알도 뽑힐 수 있다는 불안감에 미칠 듯이 자기 임무를 수행한다.
적어도 내 기억에 한쪽 눈을 가진 놈들이 실패한 건 본 적이 없다.
죽으면 죽었지.
그만의 철저한 공포 정치였다.
“눈깔 뽑힐래 아니면, 자수해서 광명 찾을래?”
“뭐?”
“너 이번 건도 실패했어. 운이 좋으면 눈알 하나고, 주철수 기분이 나쁘면 인천 앞바다에 짠맛 구경하러 가는 거지. 그러니까 선택해. 이대로 경찰서 가서 네가 했던 나쁜 짓들을 하나씩 실토해서 감방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다시 돌아가든가.”
“…….”
고민 좀 될 거다.
여기 있으나, 저기 있으나, 이놈에게 펼쳐질 미래는 지옥이다.
두 지옥 중에 어떤 게 나을지 선택하라는 말이다.
그럼, 여기서 내가 왜 이런 관용을 베푸냐?
‘주철수 수족을 하나 잘라 내는 거니까.’
다시 돌아가서 애꾸눈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남 실장은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인물이 된다.
독기가 오를 대로 올라서 어떤 일이든 생사결을 각오하고 펼칠 거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서 나름의 전략의 짤 수도 있고.
그런, 위험 요소는 남겨 둘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범법자는 아닌지라, 이놈을 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선택한 게 자수해서 광명 찾자는 거다.
감방에 들어가면, 적어도 10년을 살만큼 나쁜 짓을 골라 했던 놈이다.
칼잡이였으니, 직접 죽인 놈도 몇 되겠지.
이놈은 제 입맛대로 진술해서 형량을 정할 수 있다.
“가서 10년만 살다가 나와. 그게 네가 유일하게 살길이야.”
“…….”
“고민 많으시네. 어떻게? 주철수 사무실까지 친히 모셔다 줘?”
“자, 잠깐만.”
“……?”
“빵에 가겠다.”
“그래. 잘 생각했어. 주철수 같은 개새끼 밑에 있지 말고 교도소에서 교정 교화돼서 와라. 앞으로 칼은 주방에서나 쓰고. 아! 그래. 너 칼 잘 쓰니까 요리 배우면 되겠다. 나중에 셰프들 뜬다. 열심히 요리 배워서 돈 많이 벌어라.”
너무 친절하게 가르쳐 줬나?
뭐, 어때? 이 인간이 출소하고 착하게 살 것도 아니고.
“난 이만 가면 되나?”
“아니. 잠깐만.”
난 뒤쪽을 바라보며 경호원 하나를 불렀다.
“이 친구가 경찰서까지 데려다줄 거다. 가는 중에 허튼 생각은 하지 마. 이 친구도 무시무시한 친구거든.”
“그……. 그러지.”
어깨너비가 얼굴 몇 개는 더 있을 정도로 넓은 놈이다.
정태섭이라고 했던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정태섭이 남 실장을 끌고 밖으로 나가자, 난 머리를 굴렸다.
‘지금이 프락치를 심기 딱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배상훈을 어떻게 주철수 밑으로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내가 밟았던 코스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하면 언제 주철수의 옆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고급 정보다.
밑에 놈들이 받는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그런 정보가 아니라, 주철수의 의중을 알고 싶은 거다.
그러기 위해선, 적당한 쇼가 필요했다.
“부장님.”
“응?”
“밖에 때려눕힌 애들 그대로 있죠?”
“있을걸. 타고 온 봉고차에 고스란히 실어 놨거든. 처리하기 귀찮아서.”
아……. 이건 이것대로 무섭네.
하긴, 안 죽을 만큼 팼으니, 그런 거겠지.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난 라세흠 부장의 귀에 대고 조곤조곤 말했다.
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구겨지고 있다.
“야. 그럼, 내가 나쁜 용이냐?”
“뭐, 그런 거죠.”
“배상훈이가 백마 탄 왕자고?”
“네. 큭.”
“에이. X발. 내가 진짜 별걸 다하네. 알겠다.”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욕은 해도 반대는 하지 않는다.
난 곧바로 체력단련실에 짱 박혀 있는 배상훈을 찾아갔다.
문이 잠겨 있네. 후……. 이러면 문고리 다시 사야 하는데…….
파각!
문고리를 부숴 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령으로 귀를 막는 무식한 짓을 하며, 배상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걸로 귀가 막히냐?”
“듣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다.”
“지랄.”
난 이놈을 잘 알고 있다.
생사를 같이 한 동료가 아닌가?
이놈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1억.”
“……뭐?”
“언더커버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데, 1억 준다고. 위험수당 1억 챙겨 주고, 연봉 1억은 따로 챙겨 준다. 올해 받아 갈 너의 연봉은 무려! 2억이다.”
“……!!”
네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 놈인지 안다.
나처럼 생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 험한 북파공작원에 지원한 놈이니까.
“싫으면 말아라. 다른 동기나 후배로…….”
“고용주님.”
“……?”
“왜 그리 성급하십니까?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태세 전환 보게.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연봉부터 부르고 시작할 걸 그랬네.
*****
배상훈이 쭈뼛거리는 표정으로 주철수 사장 앞에 섰다.
“그래. 우리 애들이 신세를 졌다고요?”
“아……. 신세는 무슨.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던 시민으로서 해야 할 걸 했을 뿐입니다.”
고전 동화가 먹히는 이유는 판타지스러운 면에 실제 벌어졌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번 콘셉트는 ‘백마 탄 왕자.’
배상훈이 왕자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고 구해 준 것도 공주가 아니라 깡패긴 하지만…….
어쨌든 콘셉트는 비슷했다.
“우리 애들이 ‘SA시큐리티’직원과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상훈 씨가 아니었다면, 제 밑에서 도와주던 친구들이 큰일을 치를 뻔했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랬다.
봉고차에 실려 있는 주철수의 수하들이 일어날 시점에 맞춰, 라세흠 부장과 배상훈을 싸우게 했다.
훈련소에서 하던 것처럼, 파이팅 넘치게.
물론, 배상훈이 라세흠 부장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훈련식으로 하면 시간을 끌 수 있다.
그 타이밍에 맞춰, 경찰과 구급차가 동시에 등장했다.
라세흠 부장은 부리나케 도망가고, 배상훈이 부상자들을 구급차에 태워 줬다.
깡패들에게 자신들을 도와준 구세주로 만드는 거였다.
배상훈은 이주혁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잘 들어. 이 방법은 그냥 허울뿐인 거야. 백마 탄 왕자 전략을 쓴다고 해서, 주철수 그 빠꼼이 새끼가 너를 믿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엥? 그럼, 왜 이런 쇼를 해?’
‘쇼라도 확실하게 보이는 게 있으니까.’
‘뭔데?’
‘네가 실력 있는 놈이라는 거. 주철수는 사람을 믿지 않아. 그 사람이 가진 실력을 믿지. 그러니까, 이 단순한 쇼도 먹힌다. 그 새끼는 일 맡길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거든.’
주철수는 사람을 아예 믿지 않는다.
그에게 사람은 도구다. 자기가 나아가야 하는 길에 사용되는 도구.
배상훈은 그런 도구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제 수하들 서른 명을 때려눕힌 괴물과 싸우고 버텼으니까.
특히나, 칼잡이 남상민 실장이 경찰에 자수하는 미친 상황이 벌어진 지금.
한 명이라도 많은 실력자가 필요한 그였다.
“운동을 하셨나 봅니다?”
“아……. 운동은 아니고. 군부대를 좀 특이한 곳을 나왔습니다.”
“특이하다면……?”
“이거, 기밀이라 말하면 안 되는데……. 그……. 북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부대 있잖습니까? 하하. 이건 비밀로 해 주십시오.”
“오호. 그래요? 어중이떠중이들하고는 다르시구만.”
배상훈이 이렇게 제 출신을 밝히는 이유가 있었다.
HID 부대원들은 제대 후에도 기밀을 유지한다.
그래서 육군사령부 12지구대 출신. 이런 식으로 신분이 위장되어있다.
한마디로 이주혁과의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주철수가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아……. 공무원 준비 중인데, 잘 안 되네요.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공무원 한다고 하니까 경쟁률이 장난 아니네요. 가산점이 적용되는 데도 떨어지고……. 하…….”
슬프게도……. 이건 사실이었다.
“그럼, 저하고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예?”
“강남물산이란 곳을 운영 중입니다. 여기서 함께 일해 볼 생각은 없으신지요?”
허울뿐인 강남물산이란 간판.
강남파를 위장하는 회사 중의 하나다.
여기서 바로 ‘콜!’을 외치면 의심받을 수 있으니, 배상훈은 현실적인 제안에 들어갔다.
“연봉은……. 얼마나……?”
“하!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업계 최고로 쳐 줄 테니까요. 당신 같은 인재를 싼값에 데려올 생각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생각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주철수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한 변호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한 변호사가 명함을 내밀었다.
“법률 자문과 인사 관리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삽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이 친구한테 연락 주시죠.”
“……네. 그러겠습니다.”
명함을 받아든 배상훈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
“사장님. 달도 차면 기운다고, 남 실장 개새끼가 가고 나니, 더 괜찮은 친구가 들어오는군요.”
“아니.”
“예?”
주철수가 턱을 괴었다.
“프락치일 확률이 높아.”
“프락치요?”
“그래. 이주혁이 보낸 프락치일 가능성이 다분해.”
“……그런데, 왜 받으시려는 건지?”
“프락치면, 프락치대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실력이 좋잖아. 적당히 쓰다가 단물 빠지면 뱉어 버리면 돼.”
“아…….”
주철수는 이미 이주혁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의심병 환자 같은 그에게 우연은 있을 수 없으니까.
***
“뭐? 상훈이가 프락치인 걸, 알 거라고?”
라세흠 교관이 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주혁아. 저쪽에서 눈치챌 거면, 프락치로 심을 이유가 없잖아?”
“훗. 있죠. 거짓된 정보라도 정보라는 게 들어오잖습니까?”
“……?”
“가짜 정보도 정보입니다. 상훈이를 의심해서 거짓 정보를 흘리면, 우린 그걸 역이용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디 업소를 인수한다고 하면, 거긴 아예 배제해 버리는 거죠. 우리한테 거짓 정보를 주는 걸 테니까요.”
주철수. 너는 무조건 의심하겠지.
근데, 그 의심이 당신 무덤을 파는 일이야.
내가 당신 머리 꼭대기에 있거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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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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