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24
223화
“헉…… 헉…….”
한참 프라이팬을 휘두르던 강예원이 지쳐서 털썩 주저앉았다.
손발이 묶인 남자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다시 의식을 잃었다.
“끝났어?”
백기준의 물음에 숨을 고르던 강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러 와 줘서 고마워.”
“고맙긴. 이주혁이 보내서 온 거니까 감사는 그쪽에 해.”
“그래도.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끔찍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백기준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너도 호신술 같은 거 배워 보지 그래? 너희 사장님은 부장님한테 따로 배운다던데.”
그에 매일같이 뒷마당에 나가 운동하던 임유나를 떠올랐다.
강예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기절한 남자를 살피는 백기준에게 슬쩍 물었다.
“저기, 혹시 네가 가르쳐 주면 안 돼?”
“어. 안 돼.”
“응?”
나름 용기 내 한 부탁이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강예원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바빠. 시간 없어.”
강예원은 무심한 백기준의 태도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무슨 백마 탄 왕자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하네.”
“뭐가. 다른 사람 많잖아.”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관심한 반응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의 일로 백기준에 대한 호감도가 굉장히 높아졌기도 할뿐더러, 원래 멘탈이 강한 강예원이었기에 저런 말에도 별로 타격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 계시고?”
“응. 다행이지. 같이 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야.”
“그래?”
계속 남자를 살피던 백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새끼는 경찰에 넘길 거지?”
“아마 그럴 것 같은데.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너 전에도 죽인 사람이 몇 명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데리고 심문하는 것보단, 책잡힐 일 없게 바로 경찰이 잡아 가게 두는 게 낫다.
대신 그 전에 알아낼 건 알아내야겠지.
꽈악.
백기준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남자의 쇄골을 꽉 잡았다.
“아, 아악!”
“야. 정신 차려 봐.”
이주혁의 말대로면 이놈은 분명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이 사진, 누가 줬어?”
남자의 주머니에 고이 들어있던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며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누런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누가 주긴. 내가 찍었지.”
이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려는 남자에게 백기준이 물었다.
“야. 이름이 뭐냐?”
“구정남.”
“그래? 정남아. 넌 옷은 거지같이 입고 다니면서 카메라는 좋은 걸 쓰네. 좀 더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하지 그랬냐?”
백기준의 인신공격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하긴, 어머니랑 단둘이 사는 여자만 노릴 정도로 쪼다 같은 놈인데 당연하려나. 뭐 사회적 약자 킬러 구정남, 그런 거야?”
“여자만 노린 적 없어.”
“그래? 노인이나 어린아이도 포함인가? 네 그 비루한 몸뚱이로는 프라이팬 든 얘도 못 이길 것 같은데.”
자존심을 살살 긁어 주자 남자가 바로 발작을 일으켰다.
“X바알! 아니야! 아니라고!”
백기준은 침을 튀기며 말하는 남자를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음침하게 멀리서 사진이나 찍으면서.”
“내가 찍은 게 아니야. 받은 거야.”
“아, 그래? 그럼 누가 찍은 건데.”
“몰라. 어떤 사람이 이 여자를 작업하면 경찰의 수사를 막아 주겠다고…….”
“누군진 모르고? 생김새나 이름은.”
“몰라.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의뢰를 했다면 아마 선생 쪽 사람일 텐데.
백기준은 이주혁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술술 부는 걸 보니 이놈은 단순히 살인마인가 보네.’
선생의 하수인이었다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터.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데, 남자가 퉁퉁 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난 너 같은 인간들이 제일 싫어. 자기가 위에 있다는 것처럼 남들을 깔보는…….”
“개소리할 거면 다시 자라.”
깡!
백기준은 프라이팬을 휘둘러 남자를 다시 기절시켰다.
들어줄 가치가 없는 말로 귀를 더럽힐 이유는 없었다.
“어휴…….”
우선 이놈부터 빨리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다.
‘일단 이주혁한테 전화부터 해 봐야겠어.’
.
.
.
“알았다. 그럼 경찰에 넘긴다.”
-어. 구정남은 내가 따로 알아볼게.
보고를 마치고 백기준은 경찰에 신고했다.
“네. 여기 괴한이 들어와서 제압해 놨는데요,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사람을 죽여 봤답니다. 이름은 구정남이고,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의 범인일 수도 있으니까 빨리 와 주십쇼.”
-예? 연쇄살인이요?
“데려가서 자세히 알아보세요.”
백기준은 신고까지 끝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일이 너무 많은 날이었다.
상대가 좀 하는 것들이면 모를까, 이런 허접한 놈 하나가 다라니.
게다가 경찰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에이.”
백기준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그가 통화하는 걸 지켜보던 강예원이 물었다.
“저 사람, 진짜 살인……마야?”
“그런 것 같은데?”
강예원은 새삼 자신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는 걸 실감했는지 손으로 팔뚝을 쓸었다.
“미친 새끼…….”
몸서리를 치던 강예원이 백기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니 또 괜찮게 생긴 것 같았다.
“…….”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백기준이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선수를 쳤다.
“그러지 마라.”
“어? 뭘?”
“하지 말라고.”
“무슨 소리야?”
잠시 미심쩍은 눈으로 강예원을 쳐다보던 백기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뭘 생각하는진 몰라도, 그거 잘못 생각하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
“그게 뭐든 간에.”
강예원은 다 안다는 듯 말하는 그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 * *
“끄윽……. 몰라. 정말 모른다고…….”
강북도끼파의 2인자, 장말동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 정도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그의 앞에서 몸을 일으키는 의사에 말에 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긴 한데, 정말 곁가지 중의 곁가지만 움직인 거라니 조금 힘이 빠졌다.
물론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이 나서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놈이 우리 쪽 정보를 가지고 있어.’
강북도끼파의 복수. 그리고 웬 미친놈의 살인미수.
이게 공교롭게, 아주 우연히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그것도 경호 인원이 모두 빠지는 시간에?
누군가한테서 정보가 새어 나간다는 뜻이었고, 나는 그 누군가가 누군지 대충 감이 왔다.
‘사발.’
원래 선생 놈은 내 동향을 감시하지 않았다.
대놓고 그러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확히 경계가 느슨해지는 시간에 맞춰 작업이 들어왔다.
사발이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말이다.
“경찰에는 적당히 신고해 뒀으니까, 입막음하고 밖에 던져 놔요.”
“알겠습니다.”
끼익-.
나는 트럭 뒤편에서 내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추궁을 좀 해 봐야겠어.’
왜 사발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건지 말이다.
.
.
.
회사로 다시 돌아오자 회식 자리는 슬슬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에 곧장 사발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니 자기 책상에 앉아있던 사발이 깜짝 놀랐다.
“대표님?”
“잠깐 얘기 좀 할까.”
“무슨 얘기를…… 일단 앉으시죠.”
털썩.
사발이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그분들한테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뭔가 의문스러운 점이 하나 있어서.”
“어떤 거요?”
“오늘 우리 직원들이 모이는 시간에 정확히 습격이 시작됐어. 이게 뭘 뜻하는 거 같냐?”
“음.”
내 질문에 사발이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말이 샌 거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감시를 붙였다기엔 바로 알아챌 수 없는 정보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군가한테서 정보가 흘러나갔다고.”
스윽.
나는 고개를 들어 사발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그게 새어 나간 게 네가 퇴원한 이후더라고.”
“예?”
“뭐, 널 의심하는 건 아닌데…… 혹시 우리 직원 말고 접촉한 사람 있나?”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지금 제대로 의심 중이시구만!”
사발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가 정보 흘리고 다닐 사람입니까? 그리고 뒤통수치면 와이프한테 제 정체 까발린다고 협박했으면서 어떻게 절 의심해요?”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나는 한 수 물러났다.
“말했잖아. 의심이 아니라, 혹시 도청 같은 게 붙었나 해서 말하는 거다.”
“도청이요?”
“그래. 병원에서 뭔가 이상한 일 없었어?”
사발은 조금 누그러들었는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굴렸다.
“이상한 일이라…….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럼 그때 가지고 있던 소지품은.”
“핸드폰이랑 지갑도 안 챙겨 갔던 거 같은데…….”
“하나 확인만 하자. 정신은 언제 차렸어?”
“구급차 안에서요.”
“그때 몸에 들고 있던 게 하나도 없었다고?”
내 물음에 사발이 자기 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와이프가 선물해 준 시계 하나밖에…… 잠깐. 설마?”
사발은 손목시계를 풀어 뒤쪽을 열었다.
“허…….”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작은 장치 하나가 들어있었다.
시계 부품인 척 자연스레 위치한 것은 도청 장치. 역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였다.
나는 바로 장치를 꺼내 밟아 부쉈다.
콰직!
정말 자신한테서 정보가 샜다는 걸 확인한 사발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냐. 이건 나라도 바로 눈치 못 챘을 거다.”
애초에 시계 안에 도청 장치를 넣은 놈이 미친놈이지.
분명히 구급대원이 넣은 걸 텐데, 매수당한 건지 선생의 부하인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민기형과 과거에 인연이 있었다고 했나?’
거대 야쿠자 조직의 부두목. 스가와라라고 했지?
그 녀석을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 * *
다음 날 오후. 나는 이번 일과 관련된 경찰 진술을 마무리한 뒤 인천으로 향했다.
“이야. 인천은 처음 가 보네예.”
운전대를 잡고 있던 덩치가 나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원래는 전투원들과만 올 생각이었는데, 녀석이 같이 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하는 탓에 운전사로 데려왔다.
돼지와 난쟁이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야쿠자 놈들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표의 권한으로 셋 중에선 싸움 실력이 제일 나은 덩치를 선발했다.
이러면 나머지 두 녀석도 좀 더 열심히 하겠지.
그리고 부장님과 고상미가 동행하니 끗발이 조금 딸리는 덩치도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다.
부웅-.
우리는 그렇게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는 동인천의 한 유흥가.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는 술집과 나이트클럽들이 밀집된 곳으로, 주요 도심만큼 사람이 많진 않아도 나름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곳이었다.
물론 건전하게 놀고만 가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말이야.
끼익-.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 조직의 사무실.
조직의 이름은 양동이파로, 과거 주철수나 정광제와 같이 곽환성 밑에 있던 양동철이라는 놈이 결성한 단체다.
한때는 꽤 잘 나갔다던데, 듣자 하니 지금은 세력을 밀고 들어오는 야쿠자들한테 빌붙어 파이를 나눠 먹는 신세가 됐다고 들었다.
원래는 바로 야쿠자들을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다짜고짜 찾아가서 윗대가리 데려오라고 난동을 부릴 순 없었다.
‘그러니 명분을 만들어야지.’
그놈이 나를 만나야만 하는 명분을.
나는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사무실 하나 보이시죠?”
“어.”
“일단 쳐들어갑시다.”
내 말에 부장님과 고상미가 씨익 웃었다.
우선, 몸의 대화부터 시작해 보자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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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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