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김정우라고, 민지훈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우리가 조지고 있던 선생의 수하 강 권사와 조폭 정광제를 죽이기도 했다.
그래도 부장님의 동료라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제안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끝까지 우리를 막아섰던 인물이다.
마지막 싸움에서 부장님이 어쨌든 이기긴 했다는데, 그 뒤로는 민지훈과 합류한 건지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네.
“…….”
나는 안쪽에 얌전히 서 있는 김정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에 김정우는 모르는 척 시선을 내리깔았다.
마음 같아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저 인간이 중요한 게 아니지.
“왔구만.”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앉지.”
나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SA시큐리티 대표, 이주혁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맞은편의 50대 정도의 남자도 자신을 소개했다.
“조병철일세.”
광철이 아저씨가 말했던 대통령비서실장. 조병철이 정말로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텁.
나는 조병철과 악수를 하며 눈을 들여다봤다.
‘무슨 생각이지?’
솔직히 날 만나러 여기 직접 나올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조심성이 없는 건지, 자신감이 있는 건지.
“예상이랑은 다르네.”
조병철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상당히 거친 성격이라고 들었거든.”
“아, 하하.”
“그런데 그렇게 보이진 않아서.”
“그거야, 아직 거칠어질 일은 없었으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지자 조병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밌네. 마음에 들어.”
“실장님 마음에 드는 건 아직 좀 이른 것 같고, 비서실을 통해 저한테 연락하셨죠?”
조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유가 뭡니까?”
“요새 사람들을 모은다고 들었네만.”
“아, 그거 말입니까.”
“투자금도 모은다지?”
“꽤 자세하게 아십니다?”
조병철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나랑 친분이 있는 친구들이라 전해 들은 걸세.”
“그렇군요. 제가 받은 투자금이 궁금하셨던 겁니까?”
“그것도 궁금하긴 했지만, 가장 큰 의문은 따로 있네.”
“뭡니까?”
스윽.
몸을 앞으로 기울인 조병철이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로 선생과 동료인가?”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분명히 그를 파멸시킨 건 이주혁, 자네지 않나. 그게 다 선생의 계획이었다지?”
“뭐, 그렇죠.”
“그런데 말이야.”
조병철의 표정이 묘해졌다.
“내가 선생 그 친구랑 꽤 긴밀한 사이였거든.”
“…….”
“헌데 이주혁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아서.”
그 말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실 겁니다. 비밀리에 진행하던 건이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야.”
“예?”
“만약 자네가 정말 선생과 같은 편이라면,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단 소리지.”
“……원래 다들 비밀 하나 정도는 품고 가는 법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탁.
“한잔 받지.”
“예.”
쪼르륵-
표정을 관리하며 조병철이 따라 주는 청주를 받았다.
단순히 떠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뭔가를 아는 것도 같아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자네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유야 만들면 되는 거지. 선생의 이름을 빌리면 고위직에 있는 인물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도 있지 않겠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나는 술을 단숨에 마시고 웃으며 물었다.
“왜요. 그러면 안 됩니까?”
“……음?”
“선생은 어차피 당분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한동안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뿐입니다.”
“그런가.”
“그리고 선생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제가 왜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조병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잔을 꺾었다.
“그런 거였군. 그런 거였어.”
“…….”
“좋아.”
탁.
조병철은 술잔을 내려놓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협력하겠네. 자네가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갑자기 협력이라니 솔직히 수상했지만, 조병철의 속내가 어떻든 일단은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닐세. 선생의 후계자 격인 사람인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야지. 나도 그 친구 덕을 많이 봤거든. 아, 아직 식사 안 했으면 들겠나?”
“괜찮습니다. 밥은 먹고 온지라.”
“음. 그럼 가 보게. 바쁜 사람 더 붙잡을 순 없지.”
턱.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선 김정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실장님.”
“뭔가?”
“나중에 저 사람, 저희 회사에 한 번 들르라고 해 주십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알겠네.”
조병철이 흔쾌히 답했다.
그러자 김정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즐거웠네.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그럼.”
나는 자작하는 조병철을 뒤로한 채 문을 열고 나왔다.
드륵-
“갑시다. 여러분.”
끄덕.
부장님과 마종석이 내 뒤를 따랐다.
한정식집 바깥으로 나오자 부장님이 작게 물었다.
“무슨 얘기 했냐?”
“저 새끼, 위험한 놈입니다.”
“그래?”
“어쩌면 큰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박광훈처럼 적당히 넘겨 먹을 수 있는 상대도 아닌 것 같고.
어쭙잖게 장난질했다가는 피 보기 딱 좋은 인간이었다.
혹시라도 선생과 개인적으로 연락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큰 낭패다.
‘다행히 겉으로 그런 티가 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조병철은 날 돕는다는 의사를 표했다.
아마 모임에 왔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잘 말해 주겠다는 소리겠지.
그 말은 그쪽이 날 의심하는 건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박광훈도 알아서 조율해 줄 테고 말이야.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
그렇다면 이제 원래 계획을 진행해야겠지.
“당분간 풍원한정식은 안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뭐야. 왜?”
“출장이 있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마스크 너머로 보일 정도로 부장님의 광대가 올라갔다.
“진짜냐? 어디로?!”
“그건 나중에 한꺼번에 알려 드릴게요. 마종석. 너도 여권 있지?”
“당연히 있지.”
“오케이. 너도 간다.”
이제 슬슬 그놈들도 조져야겠다.
‘DS컴퍼니.’
가장 먼저 모가지를 따기로 한 조직.
한 번 만날 때 됐잖아?
.
.
.
“난 해외 못 가.”
“아…….”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미국 출장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생긴 것이다.
‘이건 상상도 못 했네…….’
고상미가 해외를 출국할 수가 없었다.
여권을 만들지도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된 신분 자체가 없었다.
한국에선 사망 처리됐고, 용병 생활을 하면서도 딱히 그런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그럼, 한국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배 타고 왔지. 아는 선장 아저씨가 있어서.”
“아쉽네요.”
고상미 정도면 사람 죽이는 전문직들 사이에서도 큰 힘이 되어 줄 텐데 말이야.
“다음 기회에 함께 하는 걸로 하고…… 또 누가 좋을까요?”
“춘식이, 걔도 데려가지 그래?”
“아, 맞다. 걔는 비행기 타고 오지 않았나?”
갱 출신인 그 녀석이 어떻게 멀쩡하게 입국한 건진 몰라도, 어쨌든 비행기를 탈 순 있다.
그러고 보니 춘식이는 과거 DS컴퍼니 소속이었다고 했었지.
무조건 데리고 가야겠네.
“재성이는? 영어 잘하잖아.”
“물어볼까요? 안 그래도 부모님 얼굴 뵌 지 꽤 됐을 것 같은데.”
“그러자.”
우리는 곧바로 사무실에 쳐들어갔다.
우재성은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으음……. 사실 부모님을 찾아뵐 생각은 없습니다만.”
“왜요. 위험하실까 봐?”
“네. 그리고 제가 한국에 남아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재성이 해 주는 일이 많긴 하지.
그래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사람이 있으면 움직이기 더 편할 것 같은데.
“돈 관련된 건 사발이나 난쟁이한테 맡겨 놓죠. 뭐, 그렇게 오래 있진 않을걸요?”
“……그 사람을 믿습니까?”
“누구. 사발이요?”
“네.”
하긴, 사기꾼 출신이니 언제 돈을 들고 튈지 걱정될 거다.
“어차피 주식은 당분간 건드릴 거 없고, 그냥 통장에 꽂히는 것만 관리하면 되는데요. 그리고 돈 들고 튄다 해서 우리가 못 찾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잠시 고민하던 우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좋습니다.”
이러면 현재 멤버는 나, 부장님, 마종석, 춘식이, 우재성까지 총 5명.
“이 정도면 되겠죠?”
“흠.”
내 물음에 부장님이 눈썹을 찌푸렸다.
“글쎄다……. 근데 미국이면 애들이 기본적으로 총 들고 다니지 않을까?”
“그렇다고 더 데려가면 오히려 눈에 띌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것도 그렇지. 그래서 소수정예로 가는 거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솔직히 우르르 몰려가고 싶긴 한데, DS컴퍼니에게 주의를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일단은 이대로 하죠.”
“그래. 알았다. 유나한테는 말했어?”
“아뇨. 아직요.”
“네가 직접 말하고 와. 나는 짐 싸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들 준비하고 계세요.”
“다녀와라.”
나는 내 차로 향하면서 데려갈 한 사람이 더 생각났다.
‘그래. 걔도 데려가야겠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게 낫겠지.
***
“갑자기 미국에 간다고요?”
유나 씨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해외로 간다니 의문일 거다.
심지어 같이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일이라니 어쩔 순 없지만…… 같이 못 가는 건 아쉽네요.”
“하하. 가서 놀기는커녕 일밖에 못 할 것 같아서요. 다음에 여유로울 때 둘이 따로 가요.”
“좋죠.”
유나 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번엔 또 무슨 일이에요?”
가볍게 던진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물론 유나 씨도 내가 위험한 일을 주로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미국까지 가서 살인 청부가 전문인 놈들과 싸우는 건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
“아, 그…… 투자 관련해서 볼일이 있어서요.”
“투자요? 어디에 하셨는데요?”
“소셜 미디어라고, 그게 뭐냐면…….”
미리 생각해 온 설정을 말해 주자, 유나 씨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근데요, 주혁 씨.”
“네.”
“투자하러 가는 건데 라세흠 부장님도 데려가시는 거예요?”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맞죠. 제가 걱정하는 건 부장님 한 분으로 충분할까 싶어서요.”
다행히 유나 씨는 내 말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뭐…… 사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긴 한데, 또 굳이 걱정시킬 이유도 없으니까.
“우재성 씨나 다른 직원들도 몇 명 같이 가거든요.”
“아, 그래요?”
“혹시 유나 씨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생각해 둬요. 둘 다 여유로워지면 바로 가게.”
“으음. 일본은 어때요?”
“일본이요?”
“네. 미국은 어릴 때 자주 들렀는데, 정작 일본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거든요.”
일본이라.
예전에 듣기로, 일본에서는 선생이 거의 힘을 못 쓴다고 했었지.
현지 사람들만 조심하면 큰 문제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좋네요. 나중에 같이 알아봐요.”
“네!”
내 말을 듣고 싱글벙글하던 유나 씨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저기, 주혁 씨.”
“네?”
“제가 어제 어떤 분한테 명함을 받았거든요?”
유나 씨가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보여 줬다.
그걸 본 나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이거, 본인이 직접 준 거예요?”
“네. 찾아보니까 본인이시더라고요. 혹시 주혁 씨가 아는 분인가 해서요.”
“……알긴 알죠.”
“표정이 안 좋은데……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혹시 유나 씨한테 이상한 소리 하진 않았죠?”
유나 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제 아버지랑 과거에 아는 사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명함에 적힌 이름을 노려봤다.
[대통령경호실장 조병철]이 새끼, 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