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행님. 와 그라십니까?”
“암것도 아이다.”
“누구 전홥니까. 민철이 아이라예?”
그 물음에 왕근철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놈 전화가 맞기는 한데…… 아무래도 사무실에 뭔 일이 생긴 모양이다.”
“설마 갱찰입니까?”
“그건 아인 것 같다.”
경찰이라면 이런 식으로 전화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 뽕을 언급하는 걸 봐선 이곳에 관해 뭔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X발. 지가 알면 뭐 우짤 긴데.”
“예?”
“아이다. 하던 거 마저 해라.”
부하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뒤 멀어졌다.
“흐으음…….”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왕근철은 이내 몸을 돌려 작업장을 나섰다.
조그마한 비닐하우스처럼 된 작업장 바깥으로 나오자, 넓은 바다와 인접한 작은 어촌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외부에서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이 없기에 이곳을 작업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어촌에서 비닐하우스는 살짝 어색한 감이 있긴 하나, 규모가 크지도 않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관리하는 중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여길 찾아오진 못하겠지.’
워낙 외진 마을이라 왕근철도 올 때마다 비포장도로 때문에 엉덩이가 배기곤 한다.
전화를 건 놈이 뭐 하는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업장을 찾아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 X발, 이래 긴장할 거 없는데.”
혀를 내두른 왕근철은 이내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렇게 한 세 대쯤 줄담배를 피우며 심란함을 가라앉힌 뒤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앞으로 물량을 얼마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왕근철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음?”
자동차의 엔진 소리였다.
이곳에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왕근철을 제외하면 상당히 드물었다.
왠지 다시 불안하진 왕근철이 부하에게 손짓했다.
“잠깐 나갔다 온다.”
“예.”
펄럭.
비닐 문을 젖히고 나가자, 저 멀리서 달려오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생긴 외형은 평범한 SUV 같았는데, 짙게 선팅된 창문과 매섭게 달려오는 속도 때문에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아앙-
왕근철이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SUV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아차! 이럴 때가 아이지!’
끼익-!
먼지를 휘날리며 차가 멈춘 걸 확인한 왕근철은 황급히 몸을 돌려 달음박질쳤다.
후다닥!
비닐하우스의 옆으로 돌아가며 슬쩍 확인하자,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작업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X이발.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데……!”
부웅-!
도망가는 모습을 봤는지, 차가 뒤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개 같은!”
순식간에 가까워진 SUV가 그대로 왕근철을 쳐서 날려 버렸다.
콰앙!
“끄아악!”
그 충격에 왕근철은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어억……. 억.”
탁.
운전석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쓰러진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 이 미친 새끼……. 이거 뺑소니야!”
“도망간 것도 아닌데 뭔 뺑소니.”
귓전을 스치는 익숙한 목소리.
왕근철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니, 니제! 그 씨부럴…… 컥!”
남자가 왕근철의 멱살을 붙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아, 아! 갈비! 갈비 나갔다고! 아악!”
“엄살은. 새꺄.”
콱.
옷깃을 단단히 틀어쥔 남자의 눈빛을 마주한 왕근철은 살짝 오금이 저렸다.
“내한테 와 이라는데!”
“됐고,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뭐?”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왕근철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와 부딪혔다.
퍼억!
* * *
“우욱…….”
“잘못했어, 안 했어?”
애를 혼내는 듯한 내 물음에, 무릎을 꿇고 있던 왕근철이 반항적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옆에 나란히 꿇은 놈 하나를 밟아 줬다.
퍽! 퍽!
“어억! 자, 잘못했습니다!”
“자, 다시. 잘못했어, 안 했어?”
재차 질문을 던지자 왕근철이 발끈했다.
“이라는 이유가 뭔데? 갱찰도 아인 것 같구만. 니 국제파 새끼들이 보낸 거 맞제?”
“만족 못 했나 보네. 목소리가 큰 걸 보니.”
왕근철은 내가 주먹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놈이 마지막이다.”
비닐을 젖히고 들어온 마종석이 기절한 남자를 내 앞에 툭 던졌다.
털썩.
“오케이. 그럼 심문을 시작해 볼까.”
심문이라는 말에 무릎을 꿇고 있는 놈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종석.”
“왜.”
“묵직한 걸로 아무거나 하나 들고 와.”
내 지시에 녀석은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툴툴댈 분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움직였다.
“좋네. 뾰족한 것도 하나.”
“한 번에 좀 시켜라…….”
결국 몽키스패너에 땅에 떨어진 사시미까지 갖다준 마종석이 구석에 가서 섰다.
나는 비닐하우스의 흙바닥에 꿇어앉은 처량한 인간들을 향해 물었다.
“자, 내가 여기서 마약을 만들 줄 안다. 손.”
그 말에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직접 약을 만드는 놈들을 걸러낸 뒤, 마종석과 춘식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쟤네는 따로 모읍시다.”
“그래.”
“옙.”
그러자 이를 부득부득 갈던 왕근철이 비웃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봐라. 정의로운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약 팔아 물라고 저 사람들 데려가는 거제. 니도 똑같은 놈인 기라.”
“뭐래. 마종석.”
“왜, 또.”
“얘네 데려가서 손 하나랑 혓바닥 잘라라.”
내 표정을 본 마종석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태연한 우리 직원들과 달리, 왕근철과 부하들은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에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또 어디서 뽕 만들어 팔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끼릭끼릭.
몽키스패너의 나사를 돌리며 말하니, 왕근철이 살짝 눈가를 떨었다.
“……원하는 게 뭐고. 대체.”
“이거 말이야.”
나는 책상 위에 소분해서 포장해 놓은 흰색 덩어리를 놈의 앞에 던졌다.
툭.
“누구한테 팔았어?”
“…….”
“일본 애들이지?”
“그래.”
“마츠시마, 그놈인가?”
왕근철은 내가 구체적인 이름까지 말하자 놀랐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그걸 니가 어떻게…….”
“오케이. 맞네.”
마츠시마는 아직 일본에 남아 있는 미우라에게 들은 이름이었다.
그 허름한 가게에서 잡은 마약상들의 리더가 마츠시마라는 놈이었다.
끼익.
의자에서 일어나 꿇고 있는 왕근철과 눈높이를 맞췄다.
“왕근철 내가 선택지를 줄 테니까 잘 들어라.”
“선택지는 뭔 놈의……!”
“1, 여기서 물고기 밥이 된다.”
뭐라 반발하려던 왕근철은 첫 번째 선택지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2, 여기로 찾아올 경찰한테 얌전히 잡힌다.”
“뭐? 지금 내보고 깜빵에 가라는 소리가?”
“그럼. 너 같은 새끼는 감방에 처넣어야지.”
“이, 이…….”
“그리고, 경찰에 잡히면 내가 말해 준 대로 증언하면 돼. 간단하지?”
“내가 언제 니 말대로 한다고……!”
나는 왕근철의 말을 끊으며 정색했다.
“그럼 죽을래?”
“…….”
“네가 경찰서에 있든, 감옥에 있든. 내 사람들이 널 지켜볼 거다.”
“헉. 헉…….”
“그러니까 처신 잘해. 죽기 싫으면.”
툭.
놈의 뺨을 가볍게 치고 몸을 일으켰다.
왕근철은 공포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감정에 의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왕근철에게 쐐기를 박는 말을 날렸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
* * *
“보스. 레이가 일을 완수했습니다.”
삼합회 허베이지부장, 리신페이는 시커의 보고에 피식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당일 바로 처리했군.”
“그렇습니다. 그쪽 소속이 아닌 걸까요?”
“글쎄.”
이번에 그에게 맡긴 일은 리신페이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실력자, 레이.
그리고 그에 맞춰 날아든 러시아산 날파리 하나.
리신페이가 의심하고 있던 시나리오와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라 미끼 격으로 던져 본 것이다.
“같은 편을 그렇게 망설임 없이 죽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같은 편이 아닐 수도 있겠지.”
“으음. 의심을 해소할 수 있을까 했는데, 오히려 더 헷갈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난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어째섭니까?”
시커의 의아한 듯한 물음에 리신페이가 시선을 내리깐 채 말했다.
“같은 소속을 죽여 버릴 만큼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지만…… 보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놔둬. 그놈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다음 산주山主 선발과 관련해 보고하겠습니다.”
“그러도록.”
목을 가다듬은 시커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책상에 올려 뒀다.
팔랑.
리신페이는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확인했다.
“흠.”
“산주 어르신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고 있답니다.”
“암이 무섭긴 하군. 그 양반이 이리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갈 줄이야.”
“최고의 의료진이 붙었지만, 길어도 6개월이 한계라고…….”
주기적으로 실력 좋은 의사들에게 검진을 받는 그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아마 자신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숨겼으리라.
그러니 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차기는 누가 될 것 같나.”
“예?”
“자네 의견을 묻는 거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시커가 난감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군.”
“입에 발린 말은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나도 큰 변수가 없다면 장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쉬안.
삼합회 홍콩지부의 지부장으로, 명운제약이라는 이름의 나름 큰 회사를 운영하는 이였다.
지금의 산주를 가장 오래 보필하기도 했고, 사업 수완도 좋으며 정치인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지금으로선 가장 차기 산주에 가까운 사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별 탈 없이 자리를 물려받게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변수를 만들어야겠지.”
“어떤 변수를 말입니까?”
“글쎄. 레이, 그놈을 보내서 암살해 버릴까.”
“…….”
시커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도 살벌하십니다…….”
“아무래도 명분 없이 죽이는 건 무리겠지.”
“예. 그보단 약점이나 빈틈을 찾아 평판을 낮추는 게 좋으리라 사료됩니다.”
틀린 의견은 아니었지만, 워낙 철저하게 행동하는 인물이라 이렇다 할 약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리신페이가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뗐다.
“명운제약. 그곳에 관련된 소문은 없나?”
“큰 건 없습니다만…… 정보원으로 있던 노숙자들이 몇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실종이라.”
탁. 탁.
리신페이는 책상을 두드리다 지시했다.
“한번 자세히 알아봐.”
“알겠습니다. 레이에게 따로 전할 말씀은 없으십니까?”
스윽.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간 시선이 캐리어에 닿았다.
“갖다주면서 수고했다고 전해.”
“아, 예.”
드륵.
시커가 캐리어를 들고 나갔다.
그를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리신페이는, 이내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넌 누구냐. 대체…….”
정말 홍콩에서 온 부랑자인가, 아니면 러시아에서 온 킬러인가.
리신페이는 최근 신경이 상당히 예민해졌다는 걸 느끼곤 한숨을 내쉬었다.
딸깍.
만년필의 뚜껑을 연 리신페이가 종이에 무엇인가 휘갈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