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1
060화
내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최용달이 다급하게 주소를 불렀다.
-이쪽으로 와라. 최대한 빨리!
“예, 형님! 한 박스도 빠짐없이 가져가겠습니다!”
-새끼, 이번에 잘 해결되면 너한테는 특별히 좀 챙겨 주마.
“감사합니닷!”
뚝.
전화가 끊겼다.
뭔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내가 재워 놨던 깡패들이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으…….”
“저, 저 새끼…….”
나한테 욕지거리를 내뱉은 놈은 노려봐 주자, 놈이 눈을 슥 깔았다.
흠…….
안 그래도 마침 저 상자들을 나를 인력이 필요했다.
나 혼자 저걸 어떻게 다 옮겨?
“얘들아. 창고에 박스 좀 옮기자.”
내가 친절하게 말하자, 당연하게 반발이 튀어나왔다.
그 중 패기 있는 한 놈이 나섰다.
“야 이 쉐끼야!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고!”
“음, 그렇지. 내가 너희한테 뭔가를 시킬 권한은 없지.”
나는 목소리를 깔고 대답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최용달의 책상 위 만년필을 집었다.
디자인이 꽤 고급진 게, 가격이 좀 나가는 것 같았다.
뽁.
뚜껑을 뽑자, 날카로운 촉이 드러났다.
딱 좋네.
휙! 푹!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그대로 던져, 패기 있는 놈의 어깨에 꽂아 줬다.
“으, 으아악!”
비명을 지르는 놈의 뒤로 사색이 된 덩치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 얘들아. 당연히 나는 너희한테 명령할 권리가 없어. 그러니 지원자만 받을게.”
통에 들어 있던 볼펜 여러 자루를 꺼내며 말하자, 덩치들이 슬금슬금 창고로 들어갔다.
역시, 칼보다 펜이 강한 법이다.
“끙…….”
“쒸벌…….”
“욕은 하지 말고, 새끼야.”
팍.
앳된 얼굴을 한 깡패 놈의 뒤통수를 때린 뒤, 핸드폰을 열어 임유나의 번호를 입력했다.
애들을 패다 보니 몇 가지 궁금한 게 생겼기 때문이다.
뭐, 예를 들자면 어리바리는 어떻게 고용했는지.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무언가는 없는지, 이런 것들?
“얼마나 했어?”
“거의 다 했소.”
“사극 보고 잤냐? 어린 놈의 새끼가 말투는.”
퍽!
앳된 깡패 놈의 뒤통수를 한 번 더 때리자, 녀석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뚜르르-.
단조로운 벨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컬러링 같은 것 좀 해놓지, 딱딱하긴.
수신음이 채 두 번 울렸을까.
핸드폰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주혁 씨? 어쩐 일로 전화를…….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 하나요. 그냥 안부도 묻고 하는 거죠.”
-아……. 좋네요.
“근데 뭐, 지금은 용건이 있어서 전화한 거 맞습니다. 제가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 괜찮죠?”
이어지는 대화는 조금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
용달파에서 관리하는 주점.
건물 바깥에서 최용달이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달달달.
“X바. 이 새끼는 언제 오는 거야…….”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며 다리를 떨었다.
그래도 이 쎄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촉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자신이다.
최용달은 이리저리 빙빙 돌며 애꿎은 담배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이거 아무래도 좆된 것 같은데, X발 진짜…….”
최 의원이 룸을 떠나고,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최용달을 그렇게 족쳐 놓고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용달파를 쳐내고 다른 놈들로 갈아탈 가능성이 7할 이상이었다.
“X발, 미치겠네 진짜. 상훈이 이 새끼는 언제 와?!”
최용달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준비한 돈이 없으면 지금 최철호를 찾아가 봤자 의미가 없었다.
담배 팩에서 한 개비를 더 꺼내던 그때.
빵!
“X발, 깜짝아.”
어느새 트럭이 하나 다가와 있었다.
최용달은 트럭 뒤로 허겁지겁 달려가 문을 열었다.
“후…….”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운전석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놈 하나가 내려 최용달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싹 다 가져왔습니다, 형님!”
“네가 상훈이냐?”
“예, 형님!”
“이 새끼 얼굴이 뭐 이렇게 반반해?”
“부모님 유전잡니다!”
코맹맹이 소리가 은근히 거슬렸지만, 그래도 빠릿빠릿하니 쓸 만한 놈 같았다.
최용달은 상훈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새꺄, 내가 빨리 오랬잖아.”
최용달의 손이 상훈이의 머리로 떨어졌다.
휙!
“어쭈, 피해?”
“죄송합니다, 습관이라…….”
“어우. 근데 비염 있냐? 코가 뭐 이리 막혔어?”
“죄송합니다. 이것도 유전이라…….”
“에라이, 새꺄. 핸들 잡어.”
이럴 시간이 아니었다.
최용달은 다급하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러스트 알지? 거기로 가자.”
“용산 넘어가는 거기 있는 데요?”
“그래. 빨리, 출발.”
“옙!”
부아앙-.
트럭이 출발했다.
최용달은 연신 다리를 덜덜 떨며 편하게 기대질 못했다.
그걸 봤는지 상훈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형님. 혹시 고민 있으십니까?”
“운전이나 해라.”
“아니, 계속 불안한 것처럼 보이시길래…….”
“새끼, 운전이나 하라니까.”
“……옙.”
트럭 안은 정적이 흘렀다.
최용달은 살짝 미안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그냥, 거래하던 쪽이랑 문제가 좀 생겼다.”
“거래하던 쪽이요?”
“아, 너는 잘 모르나? 최철호 있잖아. 여당 의원.”
그 말을 들은 상훈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최철호요?”
“뉴스 좀 봐라, 이 새끼야. 최철호를 몰라?”
“아, 들어 본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아무리 세상 물정 몰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겠지. 몇 년째 줄을 대고 있는데, 이번에 그놈이 시킨 일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 근데 그 미친 놈이 날 바로 팽하려는 것 같아.”
“에이, 설마 한 번 실수했다고 바로 그러겠어요?”
“음, 글쎄다.”
“형님이 예전에도 몇 번 실수를 하셨…….”
휙!
“아니, 이 새끼 봐라. 또 피해?”
“생명체의 본능입니다. 본능.”
“이 새끼는 생물을 전공했나, 왜 아까부터 유전자니, 생명체니 지랄이야? 너 이과야? 과학고 가지 그랬냐,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트럭 안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최용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훈이가 그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물었다.
“근데 형님. 의원한테는 어떻게 줄을 대신 겁니까?”
“그놈 성이 뭐냐?”
“최 씨요.”
“그럼 나는?”
“아.”
최용달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같은 강릉 최씨고, 고향도 같아서 연이 닿았지. 근데 돈을 워낙 밝히는 놈이라, 내가 챙긴 이득보다 그놈 배때기에 넣어 준 게 더 많을 거다.”
“순 나쁜 놈이네요.”
“나쁜 새끼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는 새끼지.”
칙.
불을 붙인 담배를 빨았다.
“후.”
“근데 형님. 그 최철호가 뭘 시켰길래 대 용달파의 보스인 형님이 까인 겁니까?”
“새끼, 아부는. 내가 왜 까였냐고? 얼탱이가 없는 게 뭔지 아냐? 아니 어느 날 만나니까 갑자기 지 약점이 무슨 요정에 있다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그걸 찾아오래. 개새끼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려 주지도 않고.”
“약점이요? 무슨 약점이요?”
“몰라. 무슨 녹음기라 그러던데. 어쨌든 한번 그냥 슥 찾아가 봤다? 근데 요정이 한정식집으로 바뀌어 있던 게 아니겠냐. 요정이면 몰라도, 한정식집에 깡패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너무 눈에 띄잖아? 야, 여기서 좌회전이지.”
“아, 맞네요.”
상훈이의 머리를 한 대 때리려던 최용달이 들었던 손을 거뒀다.
“새끼, 또 피할 거지?”
“헤헤.”
“쪼개긴. 뭐 그래서 어떻게 했냐. 김태수 알지? 그 복싱했다던 놈. 하는 건 주먹질밖에 없으면서 돈만 꼬박꼬박 처먹던 놈.”
“아, 알죠. 인상 더러운 새끼.”
툭툭.
최용달은 창문을 열고 재를 털었다.
“내가 그 새끼한테 최철호 약점 찾아오라고 한정식집에 위장 취직시켰거든?”
“스파이?”
“비슷한 거지. 그렇게 멍청한 놈도 아니라 뭐 알아서 잘하겠지 했는데, 갑자기 뭔 교통사고가 났다면서 병원에 드러누워 있데? 아니, 뭔 복싱 국대 출신이라더니 차에 치이고 있어.”
“가오만 살았지, X밥같이 생겼드만요.”
“아냐. 좀 치는 새끼긴 했어. 어, 여기 세워라.”
끼익-.
트럭이 한 건물 옆 주차장에 멈췄다.
“야, 뒤에 실은 거 한 박스만 들고 따라와라.”
“옙.”
최용달은 다급하게 룸살롱 안에 들어가 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최 의원님 어디 계시냐?”
“그건 규정상 말씀드리기…….”
품을 뒤져 지폐 몇 장을 쥐여 주니, 규정은 잠시 바뀌었다.
“3번 룸입니다.”
최철호의 위치를 들은 최용달은 빠른 걸음으로 샤샤샥 움직였다.
3번 룸 쪽으로 다가가니, 최철호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의, 의원님!”
“음?”
최철호가 이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최용달은 달려가 거칠게 무릎을 꿇었다.
“의원님! 잠시만 얘기 나누시지요.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최 사장. 왜 이러나? 나도 잠깐 나온 거야.”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최철호는 뒤에 서 있는 상훈이의 손에 들린 걸 보더니, 선심 쓴다는 듯 최용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말없이 자리를 비우는 건 예의가 아니지. 말만 전하고 오겠네.”
“감사합니다!”
최철호가 3번 룸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꿇고 있던 최용달이, 룸 문이 닫히자 욕을 내뱉었다.
“X팔.”
그리고 벌떡 일어나 옆의 빈 룸 문을 확 열었다.
“상훈아. 들어가서 박스 테이프 까 놔라.”
“예, 형님.”
최용달은 상훈이를 들여보내고 3번 룸 안에서 기다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최철호가 나왔다.
“기다렸지?”
“아닙니다.”
최용달은 순간적으로 3번 룸 안에 앉아 있던 놈이 누군지 파악했다.
‘X발, 저 새끼를 만나?’
놈의 면상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4번 룸으로 최철호를 안내했다.
“자자, 앉으시지요.”
“그래. 또 우리 최 사장이 뭘 준비했나 봐야지.”
‘개새끼.’
입안에서 맴도는 욕을 꿀꺽 삼키고, 최용달은 최 의원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공사가 다망하시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상훈아, 열어라.”
탁자 위의 사과 박스가 열리자, 안에 든 만 원권 수백 장이 드러났다.
그걸 본 최철호의 눈썹이 까딱였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그 말에 최용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에헤이, 최 사장 왜 이러나?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의원님. 저희 용달파, 의원님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살 수 있게 해 주십쇼!”
“허, 참.”
최철호는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턱을 쓰다듬었다.
“내 최 사장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지. 알았어. 일주일 준다. 그 안에는 할 수 있지?”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하하, 그래. 나는 최 사장의 이 패기가 좋아.”
최철호가 껄껄 웃던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래서, 몇 박스야?”
“접때보다 열 박스 더 가져왔습니다.”
그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좋네. 그럼…….”
따릉-.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최용달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종료 버튼을 꾹꾹 눌렀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따릉-. 따릉-.
‘에이, X발 진짜.’
통화를 끊었는데도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번호를 보니 용달파 사무실에서 온 전화였다.
“이 새끼들이…….”
최철호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흔쾌히 손을 내저었다.
“최 사장, 괜찮어. 받아.”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입술을 깨문 최용달이 고개를 틀고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향해 욕을 속삭였다.
“야, 이 새끼야. 끊었는데 왜 다시 걸고 지랄이야.”
-혀, 형님.
“형님 왜!”
전화 너머로 최용달이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튀어나왔다.
-스, 습격 당했습니다.
“습격? 뭔 개소리야. 너 누군데?”
-저 성훈입니다, 형님.
“뭐? 성훈이?”
성훈이라니.
상훈이 아니었나?
최용달은 순간 덮쳐오는 불안감을 무시하고 다시 전화에 집중했다.
“누가 습격한 건데?”
-그, 어떤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와서 사무실 다 털었습니다. 윤한이 형님도 지금 병원 가서 수술 중입니다. 미친놈이 칼을 손등에 박아 버리더라니까요.
“뭐?”
갑자기 사무실이 습격당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최용달은 미칠 노릇이었다.
“뭔 개 같은 소리야. 아까 전화 받아서 박스 다 챙긴 건 누군데 그럼? 그 뒤에 습격 받았다는 거야?”
-아, 아뇨. 저는 형님들 다 누우실 때 도망쳤는데, 멀리서 보니까 그 새끼가 형님들 시켜서 트럭에 박스 옮겨 담던데요?
“뭐? 아니, 지금 상훈이가 박스 다 제대로 챙겨 왔는데 뭔…….”
-상훈이요? 상훈이가 누군데요? 저는 성훈인데요? 김성훈. 그리고 박스는 그 기생오라비가 실어갔다니까요.
“…….”
꿀꺽.
최용달은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표정을 본 최철호가 물었다.
“최 사장.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거야? 표정이 안 좋은데.”
“아, 아, 아닙니다. 그냥 일이 좀…….”
설마, 설마.
최용달은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상훈이가 서 있었다.
아니 잠깐, 상훈이가 맞나?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자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녀석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왜요?”
“X발…….”
……저 새끼 비염 아니었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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