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19
218화. 용패갈이2 (3)
무룡대전이 끝나고.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상태로 치료소에 실려 온 괴츠.
이틀 뒤 눈을 뜬 그는 내상으로 인해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비록 몸은 빠르게 회복되는 중이었지만, 크게 움직일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기억을 되짚어 보는 일뿐이었다.
‘또 졌군…….’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또 권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이건 좀 아프구나.’
단순히 몸이 아픈 게 아니었다.
마음이 아팠다.
제아무리 패배에 무덤덤한 척을 해 보려고 하여도, 마체술을 익혀 나가는 이상 패배의 쓰라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괴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성검이었지?’
자신이 혼신을 다해 만들어 낸 환영을 찢어발긴 권터의 궤적은 분명 성검이었다.
‘그마저도 성의 경지에 들어섰단 말인가…….’
자신이 알고 있기로 권터가 공인 5단의 경지에 든 건 작년 말이었다.
그 소리는 다시 말해 거의 1년 만에 벽을 허물고 공인 6단이 되었다는 뜻이다.
실로 엄청난 성장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원래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권터의 성장.
그리고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괴츠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누군가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던 거군.’
수개월 전, 권터를 날려 버린 황금빛 성검.
권터는 그에 맞서기 위해 성검을 완성한 거리라.
마치 자신이 권터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권터 라이더도 유리 홀랜드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거다.
그리 생각한 순간 괴츠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결승은… 어찌 되었지?”
그의 마지막 기억은 유리가 자신을 경기장의 외곽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이후 피를 한 번 토하고 그대로 정신을 놓아 버린 괴츠.
‘지금쯤이면 결판이 났겠군.’
자신이 정확히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는 모르나 최소 하루 이상은 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권터와 유리의 결승전은 이미 끝이 났을 터.
“누가 이겼을까?”
원래라면 유리의 손을 들어 주었겠지만, 마지막에 자신을 날려 버린 권터의 성검을 떠올리면 쉽사리 누가 이기리라 장담하기 힘들었다.
‘뭐, 누가 되었든 간에… 좋은 구경을 놓쳤군.’
유리 홀랜드와 권터 라이더의 대결.
어쩌면 요람 역사에 길이 남을 시합을 놓쳤다는 사실에 사뭇 아쉬워할 찰나.
난데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겼는지 궁금해?”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괴츠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러자 문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는 유리의 모습이 시야에 잡혀 들었다.
“올빼미 군……?”
살짝 놀란 듯 눈을 끔뻑이던 괴츠.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가 피식 웃으며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되었네.”
“왜? 누가 이겼는지 궁금하다며?”
“웃고 있는 그대의 얼굴을 보니 누가 이겼는지 듣지 않아도 알겠군.”
“아, 내 얼굴에서 광이 나긴 하지? 원래 귀신도 내기에서 이기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 고운 법이니까.”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보았네만?”
“지금 들었으니 됐잖아?”
뭘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있냐는 듯.
손을 휘휘 내저은 유리가 자연스럽게 괴츠의 옆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야, 역시 치료소 침대가 좋긴 좋아? 기수들이 죽든 말든 험하게 굴려 대는 요람이 치료소 시설은 이렇게 잘 꾸려놓았다는 게 참 모순이긴 하지만. 뭐, 죽은 사람은 나 몰라라 해도 뒈지기 직전의 사람은 살려 준다 이건가?”
그렇게 꿍얼거리면서 침대를 팡팡 두들겨 대는 모습에 괴츠는 낑낑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왜? 난 여기 오면 안 돼?”
“설마… 병문안을 온 겐가?”
“에이, 그럴 리가.”
괴츠는 ‘그럼 그렇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럴 때는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해 주는 게 어떻겠는가?”
“내가 또 빈말은 못 하는 성격이라.”
“…정말인가?”
“아마도?”
너스레를 떠는 유리를 보고 괴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정말 여긴 어떤 일로 귀한 발걸음을 하셨는가.”
괴츠의 추궁 같은 질문에 유리가 튕기듯 일어나며 물었다.
“그쪽, 원주회라고 알아?”
“알다뿐인가. 나 역시 속해 있네만?”
“오? 역시 잘 찾아왔네! 그쪽도 나름 있는 집안 자식이라더니, 진짜였나 봐?”
“우리 집이 제법 괜찮은 가문이기는 하네. 그래서…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나?”
“아, 별거 아니고. 그 원주회의 회주인가 뭔가 하는 나부랭이가 날 영입한다고 찾아왔더라고.”
안드레스와 율리아가 말싸움이 격해지는 사이 슬쩍 빠져나와 괴츠를 찾아온 유리.
그는 조금 전 자신이 겪은 일을 간략하게 괴츠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를 들은 괴츠의 눈에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원주회에서? 그대를?”
그러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올빼미 군을 영입하여 권터의 대항마로 쓸 셈인가 보군.’
평소의 원주회가 어떤 분위기인지를 알고 있는 괴츠였기에 그들이 어째서 유리를 섭외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고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
“들어오지 말게.”
“응?”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대를 이용해 먹으려고 할 걸세.”
그런 괴츠의 조언에 유리를 귀를 후비며 답했다.
“뭔 소리야, 이 좋은 기회를 왜 걷어차?”
“음?”
“지 잘났다고 남 등쳐 먹으려는 놈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뭔지 알아?”
“뭔가?”
“거꾸로 지들이 잡아먹힐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거야.”
“…….”
“그리고 자기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순간엔 이미 뒤통수를 후려 맞은 뒤가 대다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유리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괴츠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이 내 첩자가 되어 줘야겠어.”
난데없는 소리에 괴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첩… 자? 내가 말인가?”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여기 그쪽 말고 다른 사람이 누가 또 있어?”
“그건 그렇지만… 허… 나보고 원주회에 첩자 노릇을 하라니.”
괴츠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딱히 원주회라는 조직에 애정이 있다거나, 무슨 책임감 같은 게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첩자 질은 조금 그렇지 않은가.
“흐음… 물론 재미는 있을 듯싶지만,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그런 물음에 유리는 가볍게 턱짓했다.
“거기 누워 있으니까.”
“……?”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괴츠.
이에 유리가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그쪽이 거기 누워 있는 게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해?”
“…….”
“두 발 뻗고 누워서, 멀쩡히 숨 쉬면서 나랑 노닥거리고 있을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일까?”
“…목숨값이라는 말이군.”
“이해가 빨라서 좋네.”
단호한 유리의 목소리에 괴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
만약 유리 홀랜드가 자신을 경기장의 외곽으로 집어 던지지 않았다면 결승전의 여파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체념 섞인 어투로 말했다.
“목숨 빚을 첩자질로 갚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인가?”
“오? 셈도 빠르고?”
“대신 조건이 있네.”
유리의 미간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그건 바람직하지 못한 답변인데? 목숨값을 갚는 일에 조건을 다는 게 대체 어디서 나온 계산법이냐?”
“올빼미 군이 권터를 이긴 데에 내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내가 그래도 조금은 힘을 빼 두었지 않은가.”
“그 영향, 쥐뿔도 없던데? 그쪽이 워낙 순식간에 나가떨어져서 말이지. 권터 그 새끼, 엄청 쌩쌩하더라고.”
“…그 권터 새끼한테 얻어맞은 데보다 방금 그 말이 더 아프군.”
우울해진 표정의 괴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게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조건이 아니라… 첩자질로 목숨 빚을 청산하는 대신 새로이 빚 하나만 더 얹지.”
“나한테 또 빚을 지겠다? 나, 이자 제법 쎄게 받는데. 괜찮겠어?”
“얼마든지.”
그제야 미간을 편 유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조건?”
“내 몸이 다 낫는다면 나와… 싸워 주게.”
“대련을 말하는 거야?”
“그렇네. 내가 이 요람을 벗어날 때까지… 매년 한 번씩 나와 대련해 주게.”
그리 말하는 괴츠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권터는 결국 유리 홀랜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쭈욱 유리 홀랜드를 목표로 빠르게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권터의 등을 보고 좇을지 모르지.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권터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여 괴츠는 목표를 바꿨다.
권터를 좇는 게 아닌, 권터가 좇는 이를 좇기로.
반면 유리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괴츠를 바라보았다.
“흠…….”
“왜 그렇게 보나?”
“난 또 아린이랑 잘되게 다리 좀 놓아 달라는 줄 알았더니. 의외의 조건이 튀어나와서 말이지.”
“아, 알고 있었는가?!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걸?”
“아린이 앞에서만 절절매는데 그걸 몰라보는 게 병신이지. 아무튼 조건이 아린이 아니라 나랑 대련이다?”
“마음을 준 여인을 조건으로 걸 정도로 내가 못난 사내는 아니라서.”
사뭇 진지한 괴츠를 지그시 바라보던 유리.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1년에 한 번 정도 대련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네.”
아니, 솔직히 유리 입장에서도 좋았다.
안 그래도 괴츠의 환영검을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으니까.
“대신 그 빚을 언제 청산할지는 내가 정해.”
“이의 없네.”
“좋아, 계약 완료.”
그렇게 유리가 승낙하자 괴츠가 조금 흥이 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그대의 첩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
괴츠의 질문에 유리의 눈이 반짝였다.
* * *
유리와 악수를 나눈 괴츠가 성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올빼미 군, 원주회에서 그대가 원하는 걸 내주기로 했네.”
“등급은?”
“특.”
“와 씨? 그런 것도 있어? 최상급이 끝이 아니었어?”
“특등급의 4년 차 이상의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거니와, 가격도 눈 돌아가는 수준이어서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지. 아마 그 존재조차 모르고 수료하는 이들이 태반일 걸세.”
“오호?”
“심지어 특등급의 비약은 원주회 내에서도 몇 개 없는 귀한 물건일세. 원래는 최상급으로 주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내가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특등급으로 바꾼 거네. 엣헴!”
“그래 수고했어.”
“…노력에 비해 칭찬이 야박하군.”
괴츠가 툴툴거렸지만, 유리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특등급의 마나 비약이라.’
상급의 마나 비약도 무려 1천만 포인트였다.
그렇다면 최상급도 아닌, 특급의 비약은 대체 얼마란 소리인가.
‘못해도 억 단위겠는걸?’
그리고 그건 자신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상위 연차라고 해도 쉬이 모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또한, 특급 비약이 나타날 때에 맞춰 그 정도 금액을 상시 유지하고 있는 이가 그리 많지도 않으리라.
‘그렇다면 분명 원주회의 공적 자금이 있고, 미리미리 비약을 구비해 둔다는 소리인데.’
그렇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했다.
요람에서 나름 콧방귀 좀 뀐다는 조직이니만큼 분명 운영 자금 같은 것도 있을 터.
그 순간 유리는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품었다.
‘그 공적 자금이 바로 원주회의 힘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이 요람에서 단순히 명문가의 자재들이 모였다고 그토록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보자.
만약 요람에 꾸준히 유입된 명문가의 자제들이 수료하며 남은 포인트를 원주회에 남겼다면?
그 세월이 근 50년에 가깝다면?
그 액수는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원주회는 그렇게 쌓인 포인트를 기반으로 새로 유입되는 명문가의 후손들을 지원하는 거지.’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원주회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
‘요람의 증명 시험을 꾸준히 통과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명문가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다시 그 혜택을 후대에 물려주면서 명문가의 힘을 이어 간다라.’
명문가 선배가 명문가의 후배를 이끌고.
다시 그 후배들이 또 다른 후배를 이끌고.
그 순환이 계속되며 명문가의 힘이 된다.
딱 여기까지가 안드레스와 율리아가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본 순간 유리가 떠올린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의 뇌리를 스친 생각.
‘어라… 가만? 그럼 이거?’
그로 인해 유리는 원대한 목적을 하나 품게 되었으니.
‘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원주회가 대물림해 온 포인트… 그건 분명 회주의 계좌로 들어갈 거다.’
그렇다면 그 포인트엔 자신이 손을 댈 수 없을 터.
그러나.
‘원주회의 창고라면 다르지.’
비약이든, 혹은 다른 귀한 물품이든.
공적 자금으로 구비해 두는 것일 테니 바로바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보관해 두는 창고가 따로 있을 거다.
그래서 유리는…….
‘그 창고를 턴다!’
너무도 당연하게 도둑질을 결심했다.